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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화 (175/200)

175화

백금만의 말에 제갈군이 고개를 저었다.

“보아하니 그 세력은 전 중원을 움켜쥐고 있는 것 같은데…… 죄송하지만, 금력만으로는 무리입니다.”

“하아, 그럼 전 어찌해야 합니까?”

“아니, 회주님께는 가장 든든한 뒷배가 있지 않습니까? 무엇을 그리 걱정하시는 겁니까?”

“네? 제게 든든한 뒷배가 있다니요?”

“하하하. 주군이 계시지 않습니까? 주군께 도움을 요청하시지요.”

제갈군의 말에 백금만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랬다.

모든 관부의 정점에 올라 있는 절대 권력.

바로 자신의 주군 천룡이었다.

하지만 백금만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도움을 받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이런 일로 염치없이 주군께 심려를 끼칠 순 없지요. 당분간은 제 힘으로 버텨 보겠습니다.”

백금만의 말에 제갈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군요. 거대한 성도 작은 균열에 무너지는 법입니다. 지금이야 버틸 수 있지만, 나중에 가면 사태가 더 심각해지겠지요. 그때는 주군께서 나서서 해결해도 상회는 엄청난 피해를 볼 것입니다. 그러면 주군께서 마음이 편하실까요? 자신의 수하를 도울 힘이 있는데도 수하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 무너져 내리는 것을?”

제갈군의 말에 백금만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흔들리라고 주군께서 도움을 주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왕 도움을 받으시려면 확실하게 받으십시오. 주군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분께서는 수하의 고민은 곧 자신의 고민이라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제갈군은 손뼉을 치며 계속 말했다.

짝-!

“이럴 것이 아니라 저와 같이 가시지요. 마침 주군께 가는 길이니.”

“알겠습니다.”

마음을 정한 백금만은 제갈군을 따라 천룡이 있는 전각으로 향했다.

그 시각 천룡은 황제와 함께 차를 즐기고 있었다.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제갈군이 인기척을 내었다.

“주군! 소신 제갈군입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거라.”

천룡은 제갈군과 함께 들어오는 백금만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오!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잘 지냈느냐? 이제 어려움은 없고?”

천룡이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반기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엎드리는 백금만이었다.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 불충한 소신을 이리 반겨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주군!”

갑자기 엎드리며 울부짖는 백금만을 보며 당황하는 천룡이었다.

이 자리엔 황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아니. 그,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너 바쁜 것을 내가 뻔히 아는데 이러느냐.”

당황하면서 백금만을 말리는 천룡이었다.

황제가 있는데 아랫사람이 이런 인사를 받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하, 전에도 보아서 알고 있었지만 다른 수하들도 이리 충성스럽습니까? 부럽습니다. 상국.”

백금만은 지금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천하의 상국을 저리 말하는 청년.

두 눈을 끔벅거리는 백금만에게 천룡이 말했다.

“이 나라의 황제 폐하시다. 폐하께 인사 올리거라.”

천룡의 말에 백금만은 기겁하며 재빨리 황제에게 절을 올렸다.

“시, 신이 미처 몰라뵈었습니다. 마,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부들부들 떨면서 절을 하는 백금만이었다.

“하하, 되었다. 그리 떨지 않아도 된다.”

천룡은 황제에게 양해를 구하고 온 이유를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 이렇게 둘이 같이 온 것을 보니 무언가 곤란한 일이 있나 본데?”

천룡의 말에 제갈군이 대신 말해 주었다.

백금만이 현재 처한 상황과, 이해할 수 없는 각 성의 검문검색에 관한 이야기들을 말이다.

“호오, 누가 봐도 뇌물을 받은 것이군.”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황제가 입을 열었다.

“하하, 괘씸한 놈들이고. 백성들을 살피라 관직을 내려 줬더니 사리사욕을 챙기다니. 상국, 아무래도 내가 때를 아주 잘 맞춰서 암행을 나온 것 같소.”

황제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백금만에게 물었다.

“어디가 가장 심하였느냐?”

황제의 의도를 파악한 백금만은 재빨리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절강성과 광동성입니다. 그곳은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백금만의 말에 황제가 고개를 돌려 천룡에게 말했다.

“상국, 저 두 곳을 먼저 가 봅시다. 상국의 충실한 수하면 나에게도 마찬가지요.”

황제의 말에 천룡이 감사의 뜻을 표하고 제갈군에게 말했다.

“가서 애들한테 이 상황을 설명하고 준비하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둘이 밖으로 나가자 황제가 말했다.

“반드시 부정부패를 뿌리 뽑고 말 것이오.”

“저 또한 도울 것입니다. 폐하.”

“하하하하, 상국만 곁에 있다면야 천군만마가 두렵겠소. 일단 절강부터 가 봅시다.”

“알겠습니다. 폐하.”

그렇게 제일 먼저 갈 목적지가 정해졌다.

***

황제와 천룡은 만금상회의 일행이 되어 상행을 나섰다.

황제는 암행이니 이제 황실에서 쓰는 언어는 절대로 사용하면 안 된다고 천룡과 일행들에게 신신당부했다.

특히 천룡에게 망극, 폐하 이런 말은 절대 안 되고 그냥 아우라고 칭하라 명했다.

처음에는 절대 안 된다고 펄쩍 뛰던 천룡이었다.

하지만 황명이라고 못을 박으니 어쩔 수 없이 따르는 천룡이었다.

황제는 길을 가는 내내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었다.

“하하하! 형님! 정말 즐겁습니다. 갑갑한 궁에서 벗어나 이리 다니니 정말 행복합니다.”

“그, 그런가? 아우님이 좋다니 나도 좋네.”

하대가 아직은 어색한 천룡.

그런 천룡을 바라보며 연신 즐거워하는 황제였다.

한편 뒤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던 운가장 사람들.

“아무리 봐도 황제가 작정했네, 했어.”

“그러게 말입니다. 누가 봐도 저거 사부를 형님으로 모시려고 작정한 것 같은데요?”

“황명이라잖냐. 그것도 평생!”

“그런데 사부를 형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황제 표정이 엄청나게 밝아졌어요.”

“그렇긴 하지. 그리고 풍기는 기세도 엄청 편안해졌다.”

“하하, 아버지 곁이 편하기는 하지. 안 그러냐?”

뒤돌아 따라오는 애들에게 물어보는 무광.

뒤에 묵묵히 따라오던 제갈군, 조방, 여월, 장천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들의 눈에는 천룡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애정이 가득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웃는 무광이었다.

이렇게 웃으며 즐겁게 지내는 날이 올 줄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이 행복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무광이었다.

뒤에서 재잘대는 제자들과 수하들의 음성을 들은 천룡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때. 이렇게 살아가는 거지.’

마음을 비우니 편해졌다.

유일하게 마음 편히 있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백금만이었다.

도움을 요청했는데 돕겠다고 나선 이들이 화려했다.

그중에 정점이 바로 황제였다.

‘미친……. 관부에 관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했더니…… 황제가 직접 나설 줄이야. 주군께선 도대체 정체가 뭘까? 역시 주군은 신이 맞는 거 같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상황을 보라.

천하 만물의 주인인 황제가 천룡 옆에 딱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그것뿐인가?

정말로 애정 가득한 얼굴로 천룡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형님을 아끼는 마음으로 보는 아우였다.

“하아, 나도 모르겠다.”

백금만의 한숨을 들은 부총관이 물었다.

“뭐가 말입니까? 그나저나 주군께서 나설 줄은 몰랐는데요?”

부총관의 말에 백금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너 저런 분을 본 적 있냐? 세상 어느 누가 수하를 위해 직접 길을 나선단 말이냐?”

“그만큼 저희가 중요하다는 뜻 아닐까요? 운가장의 유일한 상단이지 않습니까?”

“야, 우리 없어도 운가장엔 돈이 넘쳐흐른다. 창고에 가득 찬 영약들 못 봤어? 우리가 일순간에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 영약들이었어.”

“저희가 팔아 주었기에 돈이 생긴 것 아닙니까?”

“얘가 계속 헛소리하네. 굳이 우리를 통하지 않아도 사겠다는 사람은 줄을 섰을 거고, 거기에 초지의문을 통해 유통해도 될 일이었어. 하지만 우리에게 넘기셨지. 그뿐이냐? 엄청난 무력도 주셨잖냐. 저분은 신이다.”

어찌나 푹 빠져 있는지 약도 없었다.

“그런데 주군 옆에서 알랑방귀를 계속 뀌는 저 인간은 뭡니까? 첨 보는데? 주군께 아우가 있었습니까?”

부총관의 말에 백금만이 화들짝 놀라며 입을 막았다.

“너 미쳤어? 죽고 싶어?”

“읍읍?”

“절대로 저분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마라. 주군만큼 중요하신 분이다. 그러니 주군께서 아우로 삼으셨지.”

백금만의 신신당부에 고개를 끄덕이는 부총관이었다.

“정체를 알려고도 하지 말고, 그저 높으신 분이구나 하고 정성을 다해 모셔.”

“푸하! 알겠습니다.”

막은 입을 풀어 주자 숨을 몰아쉬며 대답하는 부총관.

뒤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황제는 여전히 천룡 옆에 딱 붙어서 계속 떠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저 멀리 장강이 보이자 환호했다.

“우와! 형님, 저기 저것이 장강이라 불리는 강입니까?”

황제는 환한 미소를 보이며 계속 쳐다보았다.

천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천룡은 자신이 아는 한에서 장강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그때 저 멀리 울지랑이 이끄는 수로채의 배들이 보였다.

“아우님, 이제는 저 배를 타고 이동할걸세.”

“우와! 형님! 장강도 형님이 장악하셨던 겁니까? 하하하. 이거 이 아우 정말로 엄청난 분을 형님으로 모셨군요.”

“아, 아니, 그, 그게…….”

“하하하, 괜찮습니다. 다 이해합니다.”

천룡이 왜 당황하는지 눈치를 챈 황제가 괜찮다며 웃었다.

잠시 후, 배 위로 올라간 천룡 일행들.

“신 울지랑! 주군을 뵈옵니다!”

“주군을 뵈옵니다!”

천룡을 보며 일제히 부복하는 그들이었다.

얼마나 훈련을 했는지 정예군인들 같았다.

“오오! 과연! 형님의 수하들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평범한 이가 없군요.”

황제가 연신 즐거워하며 떠들어 대자 울지랑과 수로채의 군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군께 아우가 있었나?

군사에게 전음을 보내는 울지랑.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최근에 사귀신 것 같습니다.

-그치? 누굴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주군께서 아우로 삼으셨다면 절대로 평범한 이는 아닐 겁니다.

군사의 전음에 울지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둘의 귓속으로 들려오는 천룡의 전음.

-황제 폐하시다. 그러니 절대로 경거망동해선 안 된다.

“컥!”

“켁!”

갑자기 사래가 들린 울지랑과 군사였다.

‘역시 주군! 아우로 삼은 분이 황제라니!’

‘역시 대단하신 분.’

너무 놀라서 잠시 사래가 걸렸지만, 천룡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커지는 둘이었다.

-그런데 우리 전음 들으신 건가? 아니겠지?

-설마요, 그냥 우연이겠죠.

너무도 완벽한 순간에 들어온 전음 때문에 둘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다 들린 거 맞다.

천룡의 전음에 둘은 말이 없어졌다.

“…….”

설마설마했는데 전음을 들을 줄이야.

천룡의 곁에 있으면 항상 이렇게 놀랄 일뿐이었다.

-주군은 저희의 태양이시며…….

갑자기 군사에게 천룡의 찬양을 줄줄이 전음으로 말하는 울지랑.

천룡이 머리를 짚었다.

-알았으니 그만해.

-넵!

이걸로 확실해졌다.

‘정말로 들으실 줄이야.’

초롱초롱한 눈으로 연신 천룡을 쳐다보는 둘이었다.

그 모습을 본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형님 수하들은 전부 눈빛이 한결같습니다.”

“어떤데?”

“저것 보십시오. 하나같이 형님을 바라보는 눈빛에 충심이 가득합니다. 부럽습니다. 정말.”

“부러워할 것도 많다. 자네 곁엔 내가 있지 않은가.”

천룡의 말에 황제의 미소가 더욱더 진해졌다.

“그 소리 정말로 듣기 좋습니다. 형님! 하하하!”

황제와 함께 안으로 들어간 천룡.

밖에 남은 무광은 울지랑에게 물었다.

“그동안 잘 지냈냐?”

“네! 덕분에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약탈하거나 그러진 않지?”

무광의 말에 격렬하게 손사래를 치며 말하는 울지랑.

“저, 절대 아닙니다! 그, 그랬다간 어찌 될지 뻔히 아는데 제가 감히 그러겠습니까?”

“알지, 알아. 혹시나 하고 물어본 거야. 왠지 불만이 많은 놈들이 있는 것 같아서.”

“하하하, 그럴 리가 있습니까? 장강을 지배하는 건 저 울지랑입니다!”

“아니, 불순한 기운들이 이곳으로 향하고 있어서. 아무래도 아버지가 저놈들 때문에 내려가신 것 같은데.”

“불순한 기운요?”

무슨 소린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는 울지랑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수십 척이 넘는 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헉! 저들은…….”

“아는 애들 맞지?”

무광의 말에 울지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습니다. 수로채를 이루고 있는 수적 연합들입니다.”

“아무래도 널 노리고 온 것 같은데? 알아서 처리할래? 아님, 도와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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