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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화 (176/200)

176화

무광의 말에 울지랑이 콧김을 내뿜으며 가슴을 두드렸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 패천부왕 울지랑입니다! 제가 해결할 테니 안에 들어가셔서 편히 쉬고 계십시오!”

“뭘 들어가. 구경해야지.”

무광의 말에 울지랑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고는 배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군사 역시 그 옆을 따라갔다.

울지랑은 자신의 눈앞에 들어온 사내를 향해 외쳤다.

“네놈이 여기는 어쩐 일이더냐!”

울지랑의 외침에, 반대편 배의 앞부분에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남자가 대답했다.

“네놈이 망쳐 놓은 수로채를 원상 복구시키기 위해 왔다! 기회를 주마! 채주 자리를 나에게 넘기고 신물을 이리로 던져라. 그러면 목숨은 살려 주지.”

“역시 그것이 목적이었군.”

“잘 알고 있었구나! 네놈이 수적질을 못하게 하는 바람에 문을 닫는 수로채가 한둘이 아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면 당장 물러나라!”

둘의 대화를 듣던 무광이 장천에게 물었다.

“저쪽에 있는 놈은 누구냐?”

무광의 물음에 장천이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장강수로채주와 경쟁 관계에 있다는 웅패신권(熊敗神拳) 같습니다.”

“웅패신권? 주먹질하는 놈인가 보네?”

“맞습니다. 나름 유명한 인간입니다.”

장천의 설명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지켜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울지랑이 큰 소리로 상대방의 별호를 외치고 있었다.

“웅패신권! 네놈의 욕심을 위해서가 아니고?”

“닥쳐라! 나는 우리 위대한 장강수로채라는 거대 연합을 지키기 위해서 이 한 몸 나선 것이다!”

“크하하하하. 말은 번지르르하구나!”

울지랑이 내공을 모으며 한바탕하려는데 뒤에서 무광이 전음으로 말했다.

-야! 너 수로채에 미련 있냐?

갑작스러운 무광의 물음에 울지랑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되돌아봤다.

-멀뚱멀뚱 쳐다보지 말고 대답을 해야지!

-네? 아니요. 딱히 미련은 없습니다.

-그럼 쟤들한테 넘겨줘. 그리고 우리랑 같이 가자.

-그, 그럴까요? 생각해 보니 주군 곁에 있는 것이 더 좋겠네요. 하하.

사실 천룡을 주군으로 모시기로 마음을 먹은 뒤부터 천룡의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같이 하고 있던 울지랑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장강수로채라는 집단의 수장이었고 책임져야 할 식구가 한가득 했기에 그동안은 쉽사리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울지랑은 무광의 전음을 듣고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을 굳힌 울지랑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찾아온 웅패신권을 바라보았다.

진지한 표정으로 품속에서 푸른빛이 나는 옥패를 꺼냈다.

옥패를 잠시 쳐다보고는 건너편 배를 향해 던지며 말했다.

“옜다! 가져라! 그리고 웅패신권 네가 채주해라. 난 오늘부로 그만두련다.”

“헉!”

웅패신권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옥패를 소중하게 받아 들었다.

갑작스러운 울지랑의 행동에 웅패신권은 놀란 얼굴로 자신의 손에 있는 수로채의 신물과 울지랑을 번갈아 바라봤다.

“너, 너 미친 거냐?”

자신이 알던 울지랑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러니 당황스러운 웅패신권이었다.

저놈의 평소 성격이라면 도끼를 던져도 수백 번은 던졌어야 정상이었다.

거기에 울지랑은 절대로 채주 자리를 넘길 놈이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그 자리에 욕심이 가득한 자였으니까.

그런데 지금 보라.

아무런 미련이 없는 표정으로 넘긴 것이다.

오히려 속이 시원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왜? 줘도 지랄이냐? 나는 넘겨줬으니 너희들끼리 채주를 정하든 네가 하든 맘대로 해라.”

울지랑의 말에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재차 물어보는 웅패신권이었다.

“저, 정말 나에게 넘기는 것이냐? 채주 자리를?”

“그거 원해서 온 거 아냐? 싫어?”

“아, 아니, 싫은 건 아닌데…….”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렸다.

천하의 패천부왕이다.

최소한 팔 하나는 내줄 각오로 온 그였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쉽게 일이 풀리니 허무하기도 하고 뭔가 찝찝했다.

그러다가 옆에 수로채의 군사가 보였다.

저놈이 뭔가 함정을 파 놓은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군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저놈이 수를 쓴 것은 아니겠지?”

웅패신권의 말에 울지랑이 발끈하려고 할 때 뒤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아따! 새끼, 의심 더럽게 많네! 야! 그냥 가! 인마! 안 가?”

뒤에서 보고 있던 무광이 답답한 마음에 나와서 소리쳤다.

저놈은 또 뭐란 말인가?

어이가 없는 눈으로 무광을 바라보는 웅패신권.

그런 웅패신권 옆으로 여러 사람이 날아와 착지했다.

“아직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소? 그냥 칩시다.”

“저자는 절대로 채주 자리를 넘기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소.”

“넘길 마음이 있었다면 진작 넘겼겠지.”

“저놈은 욕심이 가득해서 죽기 전엔 절대로 채주 자리를 넘기지 않을 것이오!”

뒤늦게 나타나 뒷북을 치는 그들.

그들은 장강수로채를 구성하는 연합의 고수들이었다.

뒤늦게 배를 이끌고 합류한 것이다.

그 모습에 울지랑이 소리쳤다.

“다 모이네. 다 모여. 야! 채주 자리 저놈한테 넘겼으니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라.”

“뭐?”

“그게 무, 무슨 소리요?”

“넘겼……다고? 뭐를?”

“진짜?”

울지랑의 말에 다들 놀란 눈을 하며 웅패신권을 바라보았다.

웅패신권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라는 소리였다.

그 말에 다들 경악을 하며 울지랑을 쳐다보았다.

“저, 정말이라고? 저 독불장군이?”

“마, 맙소사! 그게 사실이라고?”

“시, 신물도 넘겼다고? 미친 거 아냐?”

다른 반응이 비슷했다.

“너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이렇게 믿음이 없냐?”

무광의 말에 울지랑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워했다.

그런 울지랑을 뒤로하고 무광이 다시 소리쳤다.

“야! 넘겼으니 얼른 가라. 우리 갈 길 멀다.”

아까부터 자신들에게 하대하며 건방지게 구는 저 어린놈이 자꾸 거슬리는 수로채 연합 사람들.

“이런 건방진 새끼가! 너는 뭐 하는 놈이냐? 죽고 싶은 것이냐? 네 옆에 있는 패천부왕이 네놈의 목까지 지켜 준다고 믿는 것이냐?”

“지금 당장 그 주둥아리를 찢어 놓기 전에 아가리 닥치고 구석으로 꺼져라.”

“아가야, 너 같은 핏덩이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대가리를 뽀개기 전에 저리 꺼지거라.”

무광을 향해 날아오는 엄청난 말들.

이제 겁을 먹고 울먹거리며 구석으로 갈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겁먹고 구석으로 가라는 놈은 안 가고 패천부왕이 경악을 한 얼굴로 부들부들 떨면서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저놈이 왜 저래? 미쳤나?”

“하하, 우리가 한 말을 자신에게 한 줄로 오해했나 봅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모습에 다들 의아해하는데 엄청난 살기가 온 장강을 덮쳤다.

“헉! 뭐, 뭐냐!”

살기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그들.

찾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런 엄청난 살기를 내뿜고 있는 자는 바로 자신들이 방금 몰아붙였던 청년이었다.

“무, 무슨?”

크게 당황하는 그들의 귀에 한기가 느껴지는 음성이 들어왔다.

“뭘 찢어? 뭘 뽀개?”

흉신악살의 모습을 한 무광.

“어휴, 사형 또 열받으셨네.”

“그러게요. 저거 사부 아니면 아무도 못 말리는데……. 사부 모셔 올까요?”

태성의 말에 천명이 말했다.

“사부님이 모르시겠느냐? 다 알고 계시겠지. 나오지 않으시는 걸 보니……. 무광 사형이 날뛰어도 상관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지.”

“하긴…… 왠지 들어가는 느낌이 자리를 피해 주는 것 같긴 했어요.”

천명이 태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뒤에 있는 애들에게 말했다.

“야, 잘 지켜보다가 정말로 죽을 것 같은 놈만 구해라.”

“네!”

콰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쿠콰콰콰쾅-!

무광이 자신에게 막말을 한 놈들이 있는 배만 남기고 주먹으로 장강 위에 있는 모든 배를 다 때려 부수고 있었다.

콰콰쾅-!

“으아아악! 괴물이다!”

“사, 살려 줘!”

주먹 한 방에 네다섯 척의 배들이 산산조각이 나며 박살이 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신기하게도 죽는 사람은 없었다.

그 모습을 입을 떡 벌리고 지켜보는 웅패신권과 연합의 고수들.

자신들의 무공으로는 배 하나도 부수기 힘든데, 저자는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배를 아주 산산조각 내고 있었다.

심지어 힘들어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부수다 짜증이 났는지 하늘 높이 뛰어오르는 무광이었다.

그리고 하늘 높은 곳에서 그가 외쳤다.

“무극폭풍격(無極爆風擊)!”

쿠콰콰콰콰콰쾅-!

한 방에 장강 위에 있던 수많은 함선을 박살 내 버리는 무광.

“무, 무극?”

모두가 들었다.

“무극신공? 무, 무황?”

“그, 그러고 보니 무황이 젊어졌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서, 설마.”

놀라거나 말거나 하늘에서 유유히 내려오는 무광이었다.

그들의 앞에 무황으로 보이는 자가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서자 다들 사시나무 떨듯이 벌벌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묻는 무광.

“아까 뭐라고? 다시 씨부렁거려 봐.”

웅패신권을 비롯해 수로채 연합의 고수들은 자라목처럼 움츠러들었다.

“귓구멍이 막혔냐? 다시 뚫어 줘?”

딱 봐도 무광의 주먹에 맞으면 세상 하직할 것 같은 강기가 맺혔다.

그 모습에 다들 다급하게 엎드리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모,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부디 요, 용서를!”

자신들이 아무리 수로채에서 알아주는 고수들이라고는 하지만 무황에겐 안 됐다.

상대도 봐 가면서 덤벼야 하는 것이다.

“주둥이를 찢고 대가리를 깬다며. 응? 해 봐. 해 보라고!”

계속되는 윽박질에 손발이 닳도록 싹싹 비는 수로채 사람들이었다.

보다 못한 패천부왕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렸다.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한솥밥을 먹던 식구들이 아니던가.

“어, 어르신 그만하시지요. 애들도 알았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제 얼굴을 봐서라도 제발.”

울지랑의 말에 무광이 콧바람을 내뿜으며 뒤로 물러서며 한마디 했다.

“너희들 두고 보겠어.”

무광이 잠시 진정한 모습을 보이자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자리가 그리도 탐이 났던가?”

“아닙니다! 채주님! 저희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맞습니다! 저기 저놈 웅패신권 저 새끼가 끌어들였습니다. 저희는 그냥…….”

패천부왕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나는 확실하게 넘겼다. 그러니 이제 나는 너희들의 채주가 아니다.”

“안 됩니다! 한 번 채주님이면 영원한 채주님이지요! 저희는 채주님을 절대적으로 신임합니다!”

“맞습니다! 저희가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채주님!”

눈물을 글썽이며 필사적으로 비는 그들이었다.

그들이 이러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지금 보니 채주와 무황의 관계가 보통 관계로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채주가 바뀌면 언제 무황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두려움에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웅패신권이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신물을 건네며 엎드렸다.

“채, 채주님! 소신이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부디 용서를!”

그러면서 자신의 이마를 찍는 웅패신권이었다.

울지랑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안쓰러운 눈빛을 했다.

그때 무광이 다시 다가와 말했다.

“야! 그만!”

바닥을 찍던 웅패신권은 그 자리에 돌처럼 굳은 채 멈췄다.

“그만 앵기고 가라고. 응? 야 웅패 뭐시기. 네가 오늘부터 수로채 채주다. 너희들이 명심할 건 별거 없고……. 에이. 너네 전(前) 군사한테 들어라.”

전 군사 방연은 수로채 사람들에게 앞으로 조심해야 할 일들과 절대로 해선 안 될 일들을 말해 주었다.

그 뒤로도 한참을 안 된다며 애원했지만, 울지랑의 단호한 모습에 이미 마음이 떠난 것을 확인하고 포기한 그들이었다.

“이제 그만 가라. 그동안 즐거웠고 앞으로 될 수 있음 보지 말자.”

울지랑의 말에 다들 느릿느릿 배를 돌려 떠나려 할 때 무광이 한마디 더 했다.

“물속에 있는 놈들 싹 건져 가라. 한 놈이라도 두고 가면 네놈들도 저 강물 속에 처박을 테니.”

“네? 네! 알겠습니다!”

서둘러서 물속에 있는 수하들을 건져 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 배에 올라서자 배가 기우뚱하며 가라앉으려 했다.

뒤뚱거리며 사라지는 배를 보는 울지랑은 왠지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평생을 몸담아 온 수로채를 이런 식으로 넘길 줄이야.

천룡을 만나러 올 때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오늘 일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항상 주군 곁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이 기회를 살린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정말로 운가장 소속이 되었군.”

“그렇습니다.”

“너는 후회 안 하냐?”

“후회는 없지만…… 그래도 좀 마음이 아프네요. 평생을 몸담았던 곳인데.”

그런 그들을 뒤에서 바라보던 사람들.

그중에 제갈군은 유독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방연.

그에게 연신 눈길을 주고 있었다.

‘흐흐흐, 이제 내 곁에서 도와줄 인재를 얻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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