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7화 (177/200)

177화

사실 운가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크기가 작은 장원인 줄 알았다.

그래서 가서 할 일이 뭐 있겠냐는 마음으로 쉽게 생각했다.

군사가 되고 나니 웬걸?

할 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건 뭐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지 난감한 것 천지였다.

거기에 천룡을 따르겠다고 운가장 근처로 온 무리는 또 얼마나 많은지 이건 정말 어지간한 거대 문파급이었다.

‘이게 일개 장원이라고?’

무사들의 수는 또 얼마나 많은지 돈이 쭉쭉 빠져나가고 있었고, 총관이라고 있는 놈은 능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가장 급선무가 저 총관의 자리를 바꾸는 것이었다.

그동안은 제갈군이 겸업으로 그 자리를 맡고 있었다.

이대로 뒀다간 운가장이 파산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무공밖에 모르는 인간들 천지여서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운가장은 점점 더 커졌고 결국 자신 외에 다른 누군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던 중에 만난 것이다.

적임자를 말이다.

제갈군이 무광에게 말했다.

“저기 저 수로채 전 군사는 제게 맡겨 주시겠습니까?”

“응? 왜?”

“솔직히 저 혼자서 운가장의 모든 것을 관리하기엔 너무 일손이 부족합니다. 저 사람을 보니 말하는 것도 그렇고 장강 수로채라는 거대 세력을 오랫동안 이끌어 온 것 같으니 제가 원하던 인재상입니다.”

제갈군의 말에 무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군사지 요즘은 운가장의 모든 대소사를 전부 처리하고 있는 제갈군이었다.

“그래라. 그동안 너에게 너무 신경을 못 썼구나.”

“하하, 아닙니다.”

무광은 그런 제갈군의 등을 두드려 주고는 천룡에게 보고하고 오겠다며 선실로 들어갔다.

이렇게 일행에 새로운 무력과 두뇌가 생각지도 못하게 합류했다.

***

어느 한 마을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곳엔 수많은 병사가 무언가를 연신 찾고 있었다.

반항하거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가차 없이 베였다.

그러고는 집에 불을 질러 버렸다.

혹시라도 안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그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

“정천호(正千戶) 님! 아무래도 이곳엔 없는 것 같습니다!”

병사 하나가 달려와 장수에게 보고했다.

“으드득! 벌써 빠져나간 것인가?”

정천호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변했다.

“서둘러라! 다른 놈들에게 뺏겨선 안 된다!”

“네! 모두 다음 마을로 이동한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대를 바라보며 정천호는 비릿하게 웃었다.

“어디 얼마나 도망갈 수 있는지 두고 보자.”

그 시각.

누군가를 피해 정신없이 도망을 치고 있는 한 청년이 있었다.

도망치는 와중에 저 멀리 불길이 보이자 비통한 얼굴로 눈물을 보이는 그였다.

“크흑! 나, 나 때문에…… 죄, 죄송합니다. 크흐흑!”

그리고 다시 달렸다.

연신 눈물을 흘리며, 험한 산길을 다급하게 도망치다 보니 여기저기 안 다친 곳이 없었다.

발은 여기저기 찢어져서 피가 흘러나왔고 고통스러울 텐데 이를 악물고 뛰고 있었다.

“멍청한 놈! 바보 같은 놈! 그런 힘을 가졌을 때는 조심을 해야 했는데! 이런 병신 같은 놈!”

그리 외치며 달리는 청년.

신기하게 조금 전까지 피가 나던 상처들이 아물고 있었다.

“사람을 치료하는 힘이길래 세상을 이롭게 하는 힘인 줄 알았는데……. 욕심 가득한 이들을 위한 힘이었구나.”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생긴 힘이 있었다.

사람을 치유하는 힘이었다.

처음에 청년은 그저 신기해하며 이 사람 저 사람을 치료했다.

사람들은 그를 칭송했다.

신선이 하계에 내려온 것이라고도 했고, 화타의 재림이라고도 했다.

그는 그런 사람들의 평이 좋았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인정을 받고, 또 누군가를 위해 살아간다는 것이 이리도 행복한 일인지 몰랐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치료하고 다녔다.

문제는 그로 인해 수입이 줄어든 의원들이었다.

그들이 단체로 들고일어난 것이다.

의원들은 절강성 도지휘사에게 가 이 사실을 고하며 사술을 펼치는 악독한 자를 처단해 달라고 읍소했다.

물론 도지휘사의 품에 재물을 가득히 안겨 주었다.

도지휘사는 속으로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거기에 도지휘사도 함부로 못 하는 절강성의 실세 단목세가에서도 요청이 들어왔다.

그들 역시 엄청난 보화를 도지휘사에게 보냈다.

단 한 사람만 잡으면 되는 일이었다.

잡아서 단목세가에 보내면 추가금까지 준다고 하니 일거양득이었다.

도지휘사는 곧바로 자신의 휘하에 있는 정천호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그 청년을 찾으라고 명한 것이다.

협조하지 않는 마을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도 좋다는 명령과 함께.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관부와 알 수 없는 무인들에게 쫓기는 신세.

무인들은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 청년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우기까지 했다.

그 아귀다툼 덕에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그 이후로 계속 이렇게 도망을 다니는 신세였다.

자신에게 은혜를 입은 마을에서 지켜 준다며 숨겨 주었지만, 그 결과는 지금 눈에 보이는 저 연기다.

그냥 산으로 도망갔어야 했다.

저들은 자신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따위 저주 같은 능력은 이제 필요 없어!’

눈물을 훔치며 도망을 치는 그였다.

어느덧 해가 떨어지고 깊은 산속 기온은 급격하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청년은 나무 밑동 빈 곳에 숨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물론 자신의 앞은 나뭇잎과 수풀들로 가려 놓은 상태였다.

불을 피울 수도 없었다.

배가 고팠지만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갈 수도 없었다.

그저 어서 이 악몽 같은 나날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 순간 인기척이 들려왔다.

청년은 재빨리 숨을 참으며 입을 막았다.

점점 가까워 오는 발소리.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사람이 가려 놓은 것 같은 이 어설픈 수풀은 뭐지?”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청년은 심장이 철렁했다.

바스락-!

누군가 청년이 가려 놓은 수풀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촤악-!

단번에 걷어지는 수풀.

청년은 눈을 질끈 감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가로막혀 잡혔다.

“놔, 놔라! 이런다고 내가 너희 같은 짐승들에게 협력할 것 같으냐!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네놈들을 위해 힘을 쓰진 않을 것이다!”

발버둥을 치며 악다구니를 질렀다.

“기운이 넘치네.”

“그러게요. 미약한 기운이 느껴져서 다 죽어 가는 줄 알고 놀랐더니.”

이 두 사람은 천룡과 무광이었다.

천룡이 저 멀리서 기척을 느끼고 이쪽으로 향하자 무광이 따라온 것이다.

가까이 오니 무광에게도 청년의 미약한 기가 느껴졌다.

너무도 약한 기운.

그래서 구하기 위해 이렇게 온 것인데.

“이익! 놔라!”

힘이 넘쳤다.

“특이한 놈이네. 기운이…….”

“그래요? 전 그것까진 모르겠는데요.”

“음, 데려가자. 아무래도 무슨 사연이 있어 보인다.”

“네!”

무광은 자신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청년을 점혈 해서 재웠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안 들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축 처진 청년.

들쳐 메고 다시 이동하려는 찰나.

“놔라!”

다시 버둥거리는 청년을 보며 깜짝 놀라는 무광이었다.

천하의 무황이 직접 한 점혈이다.

그것을 풀고 다시 버둥거리는 것이다.

“뭐, 뭐야! 아버지! 이게 무슨?”

“내가 말했잖냐. 특이하다고. 아무래도 특이한 신체 같은데? 조방이나 진천 같은.”

“그, 그럼 오행체?”

“아마도?”

청년은 버둥거리다가 둘의 대화를 들었다.

둘의 대화 내용을 들어 보니 자신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정말로 지나가다 자신을 발견한 사람들일까?

청년은 믿지 않았다.

그러기엔 그동안 당한 것이 너무 많았다.

버둥거림이 멈추자 무광이 웃으며 말했다.

“소형제, 이제 좀 지치셨는가?”

“다, 당신들은 누구요? 나를 노리고 온 것이 아니오?”

“응? 노리다니? 누가 소형제를 노리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묻는 무광.

“그래서 이리도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군.”

천룡이 왜 이러는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룡을 본 청년은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 처음 본 사이인데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

저런 모습을 한 사람이 악인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금까지 도망 다니면서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떨쳐 냈다.

그 누구도 믿어선 안 된다.

이들 역시 아직 자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친절을 베푸는 것으로 생각했다.

일단 자신에 대해 모르니 이대로 가자고 마음먹은 청년.

무광은 그런 청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움직임이 멈추자 내려놓았다.

“이제 발버둥 끝나셨는가?”

무광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청년이었다.

“너무 경계하지 마시게. 그저 지나가다가 미약한 숨소리가 들려 위험한 상황인 줄 알고 나선 것이니.”

“감사합니다.”

청년의 인사에 천룡과 무광이 미소를 지었다.

야영지에 도착하자 사방에서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다.

“우와! 간만에 천명이가 힘 좀 썼나 보구나?”

천룡의 말에 천명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제가 아닙니다.”

“응? 네가 아냐? 그럼 누군데? 우리 중에 너 말고 요리할 줄 아는 애가 누가 있어?”

그러자 다들 시선이 한곳에 쏠렸다.

거기엔 화려한 칼 솜씨로 재료를 다듬고 있는 울지랑이 보였다.

“저, 저거…… 진짜냐?”

“네. 한때 요리사가 꿈이었다네요.”

“진짜로?”

“네.”

천룡이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남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고 뭐라 했는데 남 말할 처지가 아니었구나. 나야말로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구나.”

반성과 작은 깨달음이었다.

그 순간 천룡의 안에서 무언가의 봉인이 풀렸다.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고 있는 천룡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청년은 이들과 떨어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신과 같이 다니기엔 이 사람들이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것도 있지만, 자신에게 이렇게 친절을 베풀어 준 착한 이들이 자신 때문에 해를 당하는 것도 많이 봐 왔기에 서둘러 떨어지려는 것이었다.

“어제는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제 이름은 손문입니다. 훗날 기회가 된다면 어제 받은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손문이라. 이름 좋네. 그러지 말고 가는 길이 같으면 우리랑 같이 가지.”

천룡의 말에 손문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잖습니까. 저랑 다니면 여러분들이 위험합니다.”

“위험하다고? 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오는 천룡을 보며 손문이 말했다.

“모르시는 것이 더 좋습니다. 아무튼, 여러분들이 제게 주신 따뜻함 잊지 않겠습니다. 그럼 부디 살펴 가시길.”

그리고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저 청년 정말 위험하다. 아무래도 오행체인 것을 눈치챈 인간들이 있나 보다.’

이미 청년을 살펴본 천룡은 손문이 오행체임을 확신했다.

그렇다면 이리 보내는 것은 정말로 손문을 위험하게 하는 일이었다.

천룡은 지체 없이 손문에게 달려가 그를 잡았다.

“그러지 말고 같이 가세.”

손문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서 천룡을 바라보았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을 아는 눈치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도우려는 저 눈빛.

그동안 많이 봐 온 눈빛이었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왜 이리 말을 안 듣는지 모를 일이었다.

손문의 언성이 올라갔다.

“제가 방금 다 말씀을 드렸을 텐데요? 저와 다니면 위험하다고.”

“위험하다고 위기에 처한 사람을 어찌 그냥 두고 가겠는가? 그럴 순 없네. 우리와 함께하세.”

“저, 저는 정말로 위험한 놈입니다. 여러분들이 정말로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무엇이 위험하단 말인가? 내가 볼 땐 전혀 위험하지 않네.”

“몰라서 그런다고요! 내가 가진 이 저주 같은 능력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다, 당신들이 뭘 알아!”

결국,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는 손문이었다.

“이 빌어먹을 능력을…… 크흐흑!”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지 알 수 있는 울음이었다.

천룡은 조용히 다가가 그런 손문을 달래 주었다.

한참을 펑펑 울고 나니 조금 나아진 손문.

천룡과 일행들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감정이 격해졌습니다.”

“괜찮네. 그런데 저주받은 능력이라니?”

천룡의 물음에 손문은 잠시 고민했다.

‘이들이라면…… 말해도 되지 않을까? 이들마저도…… 변한다면…… 그래……. 그땐 내 운명을 탓하며 자진하자.’

마지막으로 이들을 믿어 보기로 한 손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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