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8화 (178/200)

178화

만약 이들마저도 자신을 향해 욕망의 눈빛을 발산한다면 그냥 자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신 하나만 사라지면 될 일이었으니까.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저에겐 특이한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을 치유하는 능력이지요.”

손문은 이제 사람들이 전부 놀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놀라기는커녕 다들 무덤덤한 표정으로 경청하고 있었다.

“왜 말을 하다 마나? 계속하게.”

“아니, 놀라지 않습니까? 사람을 치유하는 능력이라는데?”

오히려 손문이 되물었다.

“그게 뭐? 놀라야 하나? 아주 좋은 능력이구먼. 그게 다야? 그게 왜 저주받은 능력이야? 축복받은 능력이지.”

“맞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힘이 어찌 저주 받은 힘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이들은 달랐다.

지금까지 자신이 봐 온 사람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 이 능력으로 많은 사람을 구했지요. 세상 사람들이 저를 화타의 재림이라고 하더군요. 의신(醫神)이라는 과분한 별호도 붙었습니다.”

“아! 의신! 의신 손문! 그게 당신이었군. 하하하, 이거 반갑소.”

제갈군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나도 들어 본 것 같네. 화타의 환생이니 뭐니 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떠들었다지?”

“저자가 만지는 사람들은 모두 치유가 되어 멀쩡하게 변한다고 하지요.”

다들 신나서 떠들어 댔다.

막상 그것을 듣는 당사자는 암울했다.

“아니, 그런데 왜 쫓기는 것인가?”

“저를 쫓는 이들은 이 능력으로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려 합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 끝까지 저항했지만…….”

다시 눈물을 흘리는 손문.

짐작이 갔다.

“저를 믿어 준 마을을 아주 박살을 내더군요. 저, 저는……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천룡은 그런 손문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우리와 함께 가자! 내 너를 지켜 주지! 내 곁에서 맘껏 사람들을 위해 그 힘을 사용해라.”

천룡의 말에 손문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저를 지켜 줄 힘이 있으십니까?”

“있지. 그러니 이리 말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자가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는 데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손문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피어났다.

천룡을 믿어 보자는 마음이.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걱정하지 마라.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지켜 주마.”

그렇게 천룡 일행에 손문이 합류를 했다.

***

절강성(浙江省) 서호 인근.

그곳에 웅장한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판에는 힘찬 필체로 단목세가라 적혀 있는 곳.

단목세가의 가주실에 가주가 의자에 앉은 채 무언가를 지켜보고 있었다.

가주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가의 장로들이 화가 난 말투로 아랫사람들을 다그치고 있었다.

“놓쳤다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죄, 죄송합니다.”

“죄송? 지금 죄송하다고?”

퍼억-!

쿠당당탕-!

“죄송할 짓을 말아야지!”

“어허, 심 장로. 진정하시게.”

“구 장로! 이게 진정할 일이오? 그놈을 잡기 위해 그동안 들인 공이 얼만 줄 아시오?”

장로들끼리 싸움으로 번질 모양새가 보이자, 가주인 단목천이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탕탕-!

“그만!”

가주의 말에 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장로를 비롯해 그곳의 모든 사람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놓쳤다면 대책을 세워야지. 그렇게 소리만 치면 되겠소? 아니 그런가.”

“마, 맞습니다. 가주님. 소, 소신이 그만 흥분하여.”

“심 장로는 그게 문제요. 욱하는 성격. 고치라고 몇 번을 말해야 들을는지. 쯧쯧.”

“죄, 죄송합니다.”

“되었고 어쩌다 놓쳤느냐?”

가주가 방금 혼나던 수하에게 직접 물었다.

“또 다른 무리가 그자를 쫓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충돌하는 바람에…….”

“아니, 우리 애들을 상대로 싸움을 걸 정도로 강하다고?”

“그렇습니다! 그들은 강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절박해 보였습니다.”

“절박해 보였다?”

“네! 이를 악물고 저희를 막아섰습니다. 그런 그들을 상대하다가 놓친 겁니다.”

“흐음.”

단목천이 탁자를 두드리며 생각에 빠졌다.

“그놈이 도망을 간 방향은?”

“보타산(普陀山) 방향입니다.”

“현재 상황은?”

“보타산에 애들을 보냈습니다.”

“관부에서는?”

“뒷북을 치며 애꿎은 마을만 들쑤시고 다닌다고 합니다.”

“쯧쯧! 그러면 가서 정보를 주고 협조를 구해야 할 것이 아니냐!”

“헉! 죄, 죄송합니다.”

수하는 미처 그 생각을 못 했는지 고개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했다.

“지금이라도 도움을 요청해! 그놈이 산을 넘어가면 더 골치가 아파진다!”

“네! 알겠습니다!”

서둘러 나가는 수하를 보며 단목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나저나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그놈의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문파인가?”

“알아볼까요?”

옆의 젊은 남자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아니야. 그놈을 우리가 먼저 잡든 그들이 먼저 잡든 간에 만날 테니. 그나저나 운가장이라는 곳에 대한 조사를 해 봤나?”

“네! 조사를 해 보니 말도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읊어 봐.”

“일단 삼황이 그곳에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나온 말에 다들 웅성거렸다.

“소문이 사실이란 말인가?”

“맙소사! 그럼 정말로 무림맹에 그들이 등장했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장내가 다시 시끄러워지자 가주가 책상을 두드렸다.

“조용!”

순식간에 조용해진 장내.

“계속 말해.”

“네! 칠왕십제 중에 둘이 그곳에서 거주하고 있고, 제갈가의 천재라는 소와룡이 그곳의 군사로 있습니다. 거기에 패천부왕이 그의 수하라고 선언했고, 당가와 무당이 혈맹을 선언했습니다.”

무황성, 천검문, 구룡방에 관한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한마디로 중원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세력의 탄생이었다.

“가주 운천룡이라는 자의 무공은 측정 불가입니다.”

보고를 마치자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정말 인간이란 말인가?”

“삼황이 꼼짝을 못 한다니. 아니, 얼마나 강해야 그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들의 말에 단목천이 속으로 비웃었다.

자신의 무공 수위는 이미 삼황을 능가했다고 자부하는 바.

아직까진 비밀이었다.

마진강의 명령이었다.

자신이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는 자신을 철저하게 숨기고 살라고.

그동안 자신을 얽매이던 그 사슬이 풀렸다.

‘크크크, 이제 슬슬 나도 세상에 이름을 알릴 때가 되었나?’

단목천이 소란스러운 장내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그만!”

가주의 말에 다들 고개를 숙이며 가주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대들에게 내가 말해 줄 것이 있다.”

단목천의 말에 다들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그대들이 보기엔 내 무공은 어디쯤에 속할 것 같은가? 칠왕십제?”

단목천의 말에 다들 그렇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삼황과 운천룡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는데 그보다 급이 낮은 칠왕십제급이라 어찌 말을 한단 말인가.

저들이 말을 못 하는 이유를 아는 단목천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삼황을 능가했다고 생각한다.”

“헉……!”

“네……?”

단목천의 선언에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이 화들짝 놀랐다.

“왜? 믿지 못하겠는가?”

“그, 그것이 아니옵고.”

“믿지 못하겠지. 나라도 믿지 못할 것 같군.”

단목천이 자신의 기세를 개방했다.

고오오오오-!

“크으으윽!”

“커허헉!”

“가, 가주!”

갑자기 뿜어내는 엄청난 기세에 장내에 있는 모든 이들이 무릎을 꿇으며 고통스러워했다.

그 모습이 만족스러운지 미소 지으면 힘을 거두는 단목천.

“미안하군. 그래도 약간 기세를 내보낸 것인데 그리 쓰러지면 어찌하나?”

단목천의 말에 다시 경악하는 사람들.

“그, 그것이 사실이라면…… 가, 가주께선 정말로?”

“그렇다네. 나는 예전에 그들의 경지를 넘어섰네.”

“경하드리옵니다!”

모두가 감격한 얼굴로 목청껏 소리 질렀다.

“이제 세상에 우리 가문을 알릴 것이다. 모두 그리 알고 철저히 준비하도록!”

“충!”

모두가 한껏 들뜬 목소리로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런 가신들을 보며 단목천은 잠시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명령을 내렸다.

“자! 이제 다시 그놈을 쫓아라! 멀리 가진 못했을 것이니. 반드시 산 채로 잡아 와야 한다! 알겠느냐?”

“충!”

“그리고 관부에도 알려! 어느 방향으로 도망갔는지.”

“운가장은 어찌할까요?”

“지금 당장은 놔둬. 어차피 우리 아니어도 운가장을 노리는 사람은 더 있으니. 일단 지금은 그놈을 잡는 것이 급선무다.”

“알겠습니다!”

단목천의 명에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런 수하들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는 단목천이었다.

***

천룡 일행과 합류를 한 손문.

그는 그 후에도 유심히 천룡 일행을 지켜보았다.

언제 돌변을 할지 몰랐기에.

하지만 저들은 정말로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사실 천룡은 눈치를 채고 있었다.

이자가 오행체 중의 한 명이라는 사실을.

다만 경계가 심하고 마음고생도 심하게 했던 것 같아 마음을 열고 다가올 때까지 지켜보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손문은 연신 경계를 하며 따라가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작은 희망을 품었다.

정말로 저들이 진심으로 자신을 대해 줄지도 모른다는, 자신을 정말로 지켜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 말이다.

그러나 손문은 머지않아 다시 두려움에 빠지고 만다.

자신을 쫓던 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번에 나타난 무인들은 전에 자신을 찾던 무인들과는 질적으로 달라 보였다.

“크크크크. 고작 도망을 간 곳이 여기더냐?”

“네놈 때문에 우리가 혼난 것을 생각하면 당장 죽여야 마땅하나 상처 하나 없이 잡아 오라는 명이 있기에 참는 것이다.”

“우리를 얌전히 따라오거라.”

그리 말을 하고는 주변의 사람들을 스산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무사들.

“나머진 모두 죽여라. 목격자가 있으면 골치 아프니.”

제일 선두에 있던 남자의 명에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 천룡 일행을 향해 다가가려 했다.

천룡 일행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손문이 그들 앞을 가로막아 섰다.

“안 되오! 이들은 그냥 보내 주시오!”

“뭐?”

“나만 잡아가면 될 것이 아니오! 이들은 아무런 죄가 없소!”

“그것은 우리가 판단한 일이다.”

무사는 남자의 말을 무시하며 다가가려 했다.

그러자 손문이 품속에서 작은 칼을 꺼내 자신의 목에 상처를 냈다.

“뭐 하는 짓이냐!”

“저들을 보내 주지 않는다면 나는 자해를 할 것이오! 그러면 곤란한 것은 당신들이겠지. 나를 상처 하나 없이 데려오라고 했으니.”

“뭐? 이익!”

선두의 무사가 화가 난 얼굴을 했지만, 딱히 어쩌지는 못했다.

정말로 저자가 자해해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다면 자신들의 목숨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한 번 실패했기에 두 번의 용서는 없었다.

무사는 손문을 달래기 시작했다.

“아, 알았다. 저들을 무사히 보내 줄 테니 일단 그 칼부터 바닥에 내려놓아라.”

“그럴 순 없소! 저들이 무사히 이곳을 벗어나는 것을 확인한 후에 거둘 것이오!”

“그, 그래. 알았다. 뭣들 하느냐! 저들을 어서 보내지 않고!”

대장 무사의 명에 그들을 보내 주려 하는데 남자가 다시 막아섰다.

“저들이 큰 대로변까지 가는 것을 확인해야겠소!”

“으드득! 아, 알겠다.”

이를 갈면서 겨우겨우 대답하는 대장 무사였다.

“움직여라. 큰 대로변이 나오면 풀어 주겠다.”

대장 무사의 말에 사람들은 환호를 지르며 서둘러 이동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다들 시큰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싫은데?”

심지어 대놓고 싫다고 말하고 있었다.

“뭐? 이해가 안 되는 거냐? 네놈들을 살려 주겠다니까?”

“그걸 왜 네놈이 결정해?”

“뭐라고?”

대장 무사가 순간 얼이 빠졌다.

이런 상황은 상상을 해 보지 않았기에 더욱더 당황스러웠다.

손문을 믿고 이러는 것인가?

짜증이 났다.

남자를 넘기고 나서 저놈들을 반드시 도륙하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참아야 했다.

“하하, 아까 내가 말실수했네. 자네들에게 그 어떤 해도 없을 것이니 따라오게.”

최대한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대장 무사.

“아, 새끼. 말귀 더럽게 못 알아먹네. 싫다고!”

빠직-!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간신히 다시 연결했다.

“그, 그래. 이유가 뭐냐? 싫은 이유.”

부들부들 떨면서 물어보는 대장 무사였다.

“큰 대로변으로 가면 팰 수가 없잖아.”

“뭐?”

오늘따라 자주 반문을 하게 되는 무사.

“사람 많은 곳으로 가면 네놈들을 팰 수가 없다고. 한적한 여기를 놔두고 왜 힘들게 내려가냐?”

“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어디 놈들인지 모르겠는데 지금 너희들 상황 판단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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