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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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근처 안지현(安吉县).
조천생은 안지현의 지현을 만나고 있었다.
“사, 상서 대인께서 이 누추한 곳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맨발로 달려 나와 조천생을 반기는 지현이었다.
“허허허, 잘 지냈는가? 오면서 보니 현 주민들의 표정이 아주 밝더군. 자네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아주 잘 알겠네.”
“쑥스럽습니다. 다 그분과 상서께서 지시한 것을 지킬 뿐입니다.”
“안 지키고 있었다면 정말로 큰일이 일어날 뻔했는데 아주 완벽히 잘하였네.”
조천생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좋은 게 좋다고 잘했다고 하니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어떤 일이십니까?”
“절강에 볼일이 있어서 지나가던 차에 잠시 신세를 좀 질까 하고 와 봤네. 괜찮겠지?”
“아이고! 그럼요! 저를 바른길로 인도해 주신 상서 대인이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이번엔 사람이 좀 되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객당이 많이 비어 있습니다. 잘되었습니다. 상서 대인께 보답을 할 기회가 있을까 하고 걱정했는데 이번에 제대로 보답을 하겠습니다.”
과거 조천생과 유가연이 기회를 준 덕에 중원에서 가장 살기 좋은 현이 되었다고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덕분에 황제에게 포상도 받았다.
조천생 역시 마음이 뿌듯했다.
갱생시켜 보자는 마음으로 진행했던 것인데, 이렇게 좋은 결과로 나타나니 그의 기분이 정말 좋았다.
지현의 어깨를 토닥이던 조천생은 자신의 일행과 다시 오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지현은 서둘러서 객당을 청소시키고 요리사들에게 최고급 요리를 준비하라고 일렀다.
한편, 조천생은 황제와 천룡에게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안내했다.
“하하하, 그랬군요. 역시 형님은 대단하십니다.”
“제가 뭘 했습니까? 그저 그녀가 다 한 일이지요.”
현의 분위기를 보며 연신 즐거워하는 황제였다.
자신이 원하는 나라가 이런 나라였다.
만백성이 저리 환하게 웃으며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가는 나라.
자신이 만들어야 할 나라의 미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상을 줘야겠군.”
황제의 말에 조천생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폐하께선 이미 그에게 상을 내리셨습니다.”
“응? 내가? 언제?”
“전에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한 현이 있다며 직접 상을 내려 주시지 않았습니까. 기억이 나지 않으십니까?”
“아! 그곳이 이곳인가?”
“네! 그러하옵니다.”
“하하하하. 그랬군.”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 황제를 보며 천룡은 미소 지었다.
과거 두려움과 슬픔에 빠져 우울했던 모습은 이제 더는 없었다.
자신을 보며 웃는 천룡과 눈이 마주친 황제는 천룡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것 역시 전부 형님 덕입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제가 한 일은 없습니다.”
“아니에요.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것도, 그리고 이렇게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는 것도 모두 형님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얼마나 애정이 넘치는지 천룡을 바라보는 황제의 눈이 뜨거웠다.
“일단은 정체를 숨기는 것이 나을 것 같군요. 형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암행이니 정체를 숨기는 것이 좋다고 저 역시 생각합니다.”
천룡의 말에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 상서. 우리는 상단의 일행일세. 알겠는가?”
“네! 알겠사옵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덧 현청이 보였다.
그 앞에 지현을 포함한 현청의 대신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그 모습에 조천생이 당황하며 말했다.
“폐, 폐하. 저, 저건 제가 시킨 것이 아닙니다.”
당황하는 조천생의 모습에 황제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조 상서께서 저런 대접을 좋아하시는지 이제 알았소. 하하, 역시 상서도 사람이셨구려.”
“아, 아닙니다. 폐, 폐하. 오해십니다.”
누가 보면 정말로 자신이 시켜서 전부 나온 것으로 오해하기 딱이었다.
“우리 조 상서가 슬슬 권력의 맛에 눈을 뜨나 봅니다.”
황제가 천룡을 보며 말을 하자, 천룡 역시 같은 미소를 보이며 조천생을 바라보았다.
눈을 질끈 감는 조천생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이미 늦었다.
저 둘은 자신을 놀리기로 작정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허! 황제가 말을 하는데 눈을 감다니. 이거 보십시오. 권력이 이렇습니다.”
“그렇군요. 안 되겠습니다. 날을 잡아서 한 번 거나하게 대접을 해 드려야겠군요.”
울상이 된 조 상서의 앞으로 지현이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상서 대인! 모든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누추하지만 편히 쉬었다 가십시오!”
어찌나 정성을 다해 인사를 하는지 머리가 땅에 닿을 듯했다.
“이, 이보게. 너, 너무 과하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네.”
쩔쩔매는 조 상서를 보며 지현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자신보다 한참 낮은 곳에 있는 자에게도 저리 대하는 분이시라니.
“역시! 청렴결백하신 분은 다르십니다. 이런 점은 제가 아직도 배워야 할 자세 같습니다. 하하하.”
크게 오해를 하는 지현이었다.
지현은 조 상서가 자신이 데려온 사람들이 오해를 할까 봐 이렇게 행동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조 상서의 일행에게 설명을 했다.
“제가 너무 큰 은혜를 입어서 이런 것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마시길 바랍니다. 조 대인께서는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되십니다. 자 자,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지현의 안내에 조천생은 연신 뒤를 힐끔거리며 천천히 들어갔다.
그런 조천생을 보며 환하게 웃는 황제와 천룡이었다.
“자, 형님. 저희도 들어가시죠.”
“알았네.”
다른 사람들 앞이라 다시 하대하기 시작한 천룡이었다.
그 뒤를 천룡 일행들이 따라 들어가는데 딱 한 사람이 움직임 없이 멍하니 서 있었다.
바로 손문이었다.
‘이, 이게 뭐야? 사, 상서라고? 지현이 저리 극진히 대하는 것을 보니 사실인가 본데? 그, 그럼 그런 상서가 극진히 모시는 저 두 명은 누구야?’
혼란스러웠다.
그냥 일반 상단 무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무림의 고수들이었다.
그런데 오늘 일로 더 알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짐작한 것보다 더 엄청난 사람들인 것 같았다.
“뭐 해? 어서 와.”
무광의 부름에 정신을 번쩍 차린 손문이 허둥지둥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지나 저녁이 되었다.
지현은 정말로 산해진미를 잔뜩 차려 올렸다.
저녁을 다 같이 먹고 있을 때 지현이 물었다.
“이번에도 생일 때문에 내려오신 겁니까?”
“생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어? 절강성 도지휘사 생일 때문에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까? 상서께서 이곳까지 오실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는데 그것밖에 없어서…….”
“도지휘사가 생일이라고?”
“네! 요즘 그것 때문에 이곳이 난리입니다. 이 왕야가 계실 때보다 더합니다.”
이 왕야 이야기에 황제가 잠시 움찔했지만, 조천생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 정도인가? 아니, 폭정이 심하다는 얘기는 이곳으로 오면서 들었네.”
“그 정도가 아닙니다. 오죽했으면 저희 현으로 사람들이 몰려오겠습니까? 가뜩이나 그것 때문에 요즘 아주 죽겠습니다.”
“사람들이 다 이곳으로 몰려온다고?”
“네. 그래서 주변 현의 지현들이 다 저를 원망합니다. 자기들 것을 뺏어간다나 어쩐다나.”
“백성들이 어디 개인 물건인가! 괘씸한 것들!”
조천생이 흥분하며 벌떡 일어나서 씩씩거렸다.
“지, 진정하십시오. 이렇게 흥분하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도 잘되었습니다. 이렇게 내려오셨으니 이곳 상황을 잘 살펴보시고 부디 황상께 말씀 좀 잘해 주십시오.”
지현의 말에 조천생은 그제야 자신이 누구와 같이 있는지를 깨닫고 슬그머니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그, 그리하지.”
대답하며 황제의 눈치를 살피는 조천생이었다.
황제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 도지휘사를 비롯해 주변의 지현들의 목을 칠 기세였다.
조천생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으로 어찌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밝히고 황제를 말려야 하나 고민을 하는데, 천룡이 황제 옆에서 황제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다행히 천룡이 황제를 잘 달래며 진정시키고 있었다.
이곳에 황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는 지현은 연신 부탁을 하며 읍소하고 있었다.
조천생은 지현을 잘 달래고 서둘러서 그 자리를 파했다.
지현은 나가는 그 순간까지 연신 잘 부탁드린다고 읍소를 하며 나갔다.
방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어찌할 것인지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모였다.
“생각보다 폭정이 심각한 모양입니다. 다 내가 부덕한 탓이오.”
황제가 자책하며 말하자 천룡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대로 보고를 하지 않은 지방 관료들이 문제지요. 폐하께서 천신도 아니신데 보고 받지도 않은 이 먼 곳의 사정까지 어찌 다 아시겠습니까.”
“고맙습니다. 형님.”
황제와 천룡이 심각하게 대화를 시작했고 사람들은 다들 무거운 분위기에서 고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손문은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표정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너무도 엄청난 소리를 들은 것이다.
‘폐, 폐하라니. 폐, 폐하…….’
이 넓은 중원에서 폐하라는 호칭을 받는 이는 단 한 사람이다.
그 누구에게도 칭할 수 없는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호칭.
바로 황제였다.
만물의 주인이라는 대명의 황제.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왜 상서라는 고위직에 있는 관료가 저리도 극진히 대하는지를.
여기서 소리를 치면 저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자신의 입을 막고 혼자서 놀라움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거기다가 손문을 더 놀랍게 한 것은 바로 천룡이었다.
황제에게 형님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였다.
보아하니 황제가 천룡을 대하는 자세는 정말로 아우가 좋아하는 형님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었다.
연기가 절대로 아니었다.
‘이게 지금 꿈은 아니겠지?’
현실성이 전혀 없는 그림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런 손문을 본 무광이 고개를 흔들며 천룡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버지, 저기 저놈 곧 숨넘어갈 것 같은데요. 제가 데리고 나가서 설명 좀 하고 올게요.
무광의 전음에 고개를 돌려보니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 가는데도 숨을 참고 있는 손문이 보였다.
그 모습에 천룡이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설명해 줘라.
-네.
무광은 손문을 데리고 나갔다.
손문이 그제야 숨을 내쉬며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저, 저기 아, 안에 계신 분이 저, 정말로 화, 황제 폐하 맞습니까?”
“그래. 황제 폐하시다. 그 옆에 계신 분은 바로 이 나라의 상국 전하시고. 조 상서는 알 테고.”
강호의 무인들인 줄 알았는데 황궁 사람들이었다.
그것도 숨넘어갈 정도로 아득히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화, 황제 폐하께서 어, 어찌 밖에?”
“암행 중이시지.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겠다고 나오셨다.”
“그럼 지금 말씀하시는 분께서는 금의위십니까?”
자신을 보며 금의위냐고 묻는 손문에게 무광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 나는 황궁 사람이 아니다. 강호 사람이다.”
“네?”
“흠, 네가 알려나……? 나는 강호에서 무황이라고 불리지.”
“…….”
“모르지? 일반인들은 강호에 대해 잘 모르니 이해한다.”
손문의 표정에 변화가 없자 무광은 자신에 대해 잘 몰라서 저런 표정을 짓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손문이 펄쩍 뛰면서 말했다.
“네에에에? 무, 무황이시라고요?”
“어? 나를 알아?”
“아, 알죠! 무황을 모르는 사람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습니까? 그, 그런데…… 황제 폐하 앞에서 별호에 황을 붙여도 됩니까?”
“아, 나도 그거 때문에 엄청 찝찝했는데, 폐하께서 허락하셨다.”
“허…….”
중원의 주인이라는 황제와 강호의 최강자라 칭해지는 무황이라니.
자신이 지금 얼마나 엄청난 곳에 몸을 의탁했는지 깨달았다.
‘그, 그래서 날 지켜 줄 힘이 있다고 하신 거구나.’
이제야 깨달았다.
천룡이 왜 자신을 지켜 줄 힘이 있다고 했는지를.
“이제 다 놀랐지?”
“네? 네.”
“이제 들어가자. 나머지 애들은 나중에 소개해 줄 테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놀라고.”
“더, 더 놀랄 것이 있습니까?”
손문은 도망을 다니느라 강호에 퍼진 일에 대해 전혀 몰랐다.
“나중에. 크크크. 나중을 위해 남겨 두자. 안 들어가?”
“저, 저는 잠시 머릿속을 정리 좀 하고 들어가겠습니다.”
손문의 말에 무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는 무광이었다.
‘아니, 지금 들은 것 말고 더 놀랄 일이 있다고?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자신을 놀리기 위해 한 말이라 생각을 한 손문은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좋은 분들이시다.”
손문은 무광이 왜 자신을 데리고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배려한 것이다.
자신은 이방인이니까 그냥 건너가 쉬라고 말해도 되는데 이렇게 배려를 해 준 것이다.
그것은 자신들의 일행으로 받아들였다는 소리였다.
처음으로 소속감이라는 것을 느낀 손문은 이 생소한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 기분을 앞으로도 쭉 느끼고 싶었다.
손문은 무광이 들어간 문을 바라보면서 무언가를 결심했다.
“그래. 이제 내 목표는 저곳의 식구가 되는 것이다.”
주먹을 꼭 쥐고 굳은 다짐을 하는 손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