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1화 (181/200)

181화

***

안지현 현청에 머문 지 며칠이 지났다.

그사이 조용했던 현에 하나의 사건이 터진다.

현을 지나 항주로 가던 젊은 무리가 여인을 희롱하고 그것을 말리는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한 것도 모자라 객잔에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팬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군사들이 즉각 출동해서 그들을 모두 포박해 왔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며 현청 앞에 엎드리며 외쳤다.

본 사람도 많고 증거도 확실하기에 당연히 벌을 받을 것인데 왜 이리 몰려와서 저리 억울하다며 외치는 것인가.

문제는 그자들의 신분이었다.

하나같이 지현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자들의 자식들이었다.

“네 이놈!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런 짓을 하느냐! 당장 이 포박을 풀지 못할까!”

“지금이라도 이 포박을 풀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어서 풀지 못할까!”

“일개 지현 따위가 지금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것이냐!”

자신들의 아비가 누군지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소란을 피우는 이들이었다.

사람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이렇게 몰려와서 통곡을 하며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빌고 있는 것이다.

지현이 심각한 얼굴로 악을 쓰며 고래고래 소리치는 세 청년을 바라보았다.

“어찌할까요?”

저들의 말을 들은 현승이 두려운 얼굴로 물어왔다.

“하아, 나라고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 일단 깨끗한 방으로 모셔라.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판결을 내려야겠다.”

“현명하신 결정이십니다.”

일단 깨끗한 방에 가두고 최대한 불편함이 없게 하라 지시를 내리고 이마를 짚는 지현이었다.

“하아, 미치겠군. 하필이면 도지휘사와 도지휘동지의 자식들이라니…….”

골치가 아팠다.

자신은 정칠품의 관직이다.

저들의 아비들은 자신이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할 위치에 있는 권력자들이었다.

특히 이곳 절강성에서는 저들이 곧 법이었다.

자신 같은 힘없는 지현 따위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더욱이 저들의 아비들은 포악하며 자비가 없었다.

일개 지현이 자기 자식들을 이렇게 대우하고 가뒀다는 것을 안다면 당장 군을 이끌고 와 자신의 사지를 찢을 것이다.

가뜩이나 요즘 혼자 나댄다며 자신을 향한 시선이 좋지 않은데 이런 일까지 벌어졌으니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현청에 조천생이 와 있는 것을 생각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래! 조 대인이 계셨군. 그분께 물어봐야겠다.”

지현은 천천히 몸을 일으킨 뒤 힘없이 조천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딱히 조천생이라 해도 해결할 방안은 없겠지만 어쩌겠는가.

당장 자신이 기댈 곳은 조천생밖에 없는 것을.

가는 내내 후회가 됐다.

‘아까 그냥 포박을 풀어 주고 싹싹 빌 걸 그랬나? 아무리 조대인이라도 그들과 맞서 싸우기엔……. 아니지. 조대인은 그냥 여기를 떠나면 그만 아닌가. 하아, 내가 미쳤지. 광명정대는 무슨. 역시 사람은 살던 대로 살아야 하는 건데…….’

머리를 계속 쥐어뜯으며 마지막 희망을 찾아 열심히 걸음을 옮기는 지현이었다.

한편, 조천생은 황제와 천룡이 있는 방에서 함께 다과를 즐기고 있었다.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고 있는데 밖에서 지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서 대인,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힘이 없는 목소리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들어오시게.”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지현의 안색은 한눈에 봐도 좋지 않았다.

조천생이 그 모습을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얼굴이 다 죽어 가는구먼.”

조천생의 말에 지현이 울먹거리며 조천생의 다리를 잡고 애원했다.

“저, 저 좀 살려 주십시오! 제가 믿을 곳은 이제 상서 대인뿐입니다. 부디부디 소인을 가엽게 여기시어 저를 이 위기에서 구해 주십시오. 대인!”

다짜고짜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엉엉 울며 매달리는 지현을 간신히 달래 떼어 놓고 이유를 물었다.

“이보게. 이유를 말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래야 내가 도와주든지 할 것이 아닌가.”

조천생의 말에 지현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마을 객잔에서 술을 마시던 자들이 음식이 맘에 안 든다며 행패를 부렸고, 그 과정에서 이들이 객잔을 불태우고 그곳 주인과 종업원들을 사정없이 폭행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군사들이 갔을 때는 객잔 주인의 딸을 끌고 가려 했고, 그것을 못 하게 말리는 객잔 주인을 마구 밟고 있었단다.

그래서 잡아 왔는데 그들의 정체가 이곳 절강성의 실세들인 도지휘사와 그 수족들의 자식들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직위도 직위지만 이들은 이곳 절강성에서는 황제나 다름없기에 자신의 목숨은 이제 끝이라며 다시 서럽게 울었다.

“대인! 소인이 이제 믿을 곳을 대인뿐입니다! 저자들을 잡아들인 순간부터 소인은 저들과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조 대인! 소인을 살려 주십시오!”

어찌나 애절하게 매달리는지 조천생이 안쓰러운 마음에 달랬다.

“알겠네. 일단 진정하시게.”

한편, 옆에서 이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황제와 천룡은 분노가 치솟았다.

벌떡-!

“이런 개잡놈들을 보았나! 그런 개 잡종 같은 것들이 활개를 치고 다닌단 말인가?”

지현은 울다가 고개를 들어 씩씩거리는 사람을 보았다.

저들마저 저리 분노하는 것을 보니 조천생이 자신을 불쌍히 여겨 도와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무엇하느냐! 당장 그 자식들을 현청 마당에 대기시켜라! 내 직접 심문하겠다! 주리를 틀고, 팔, 다리를 잘라 일벌백계(一罰百戒)할 것이다!”

지현은 지금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조천생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을 바라는 눈빛이었다.

조천생이 당황한 모습으로 종종걸음으로 분노하는 남자에게 다가가더니 화를 내는 남자의 귀에 무언가를 속닥거렸다.

지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저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고 애썼다.

“폐, 폐하. 여기서 정체를 밝히시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전에 황제가 버럭 화를 냈다.

“정체가 뭐! 저런 인간 말종 같은 놈들이 짐의 심기를 건드렸는데 지금 그것이 중요한가? 지금 짐이 명하지 않는가! 저들을 당장 끌고 오라고!”

그 순간 지현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짐? 짐이라고?’

세상천지에 자신을 짐이라 지칭하는 사람은 없다.

굳이 있다면 딱 한 명이 있긴 한데.

‘서, 설마?’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어야 했다.

그런데.

“그대 이름이 무엇이냐?”

남자의 말에 지현이 조천생을 바라봤다.

그러자 조천생이 진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엇하느냐. 폐하께서 하명하고 계시지 않느냐!”

“네?”

“이놈이! 어서 답하지 못하느냐!”

“헉! 화, 황제 폐하시라고요?”

“그렇다. 어서 대답부터 하거라!”

지현은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거기서 황제가 왜 나온단 말인가.

그러나 몸이 먼저 반응했다.

“마, 만세! 만세! 만만세! 신, 안지현을 다스리는 지현 율량생!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재빠르게 몸을 일으킨 뒤에 절을 올리는 지현이었다.

지현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황제는 분노의 목소리로 명령했다.

“그래, 그래. 내 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이 현을 절강성에서 가장 살기 좋은 현으로 만든 자라지?”

“마, 망극하옵니다! 폐, 폐하.”

“이런 인재가 저런 인간 말종 같은 놈들 때문에 기를 펴지 못하고 눈치를 봐야 하다니……. 잘못되었다! 잘못되었어!”

황제의 언성이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러니 천하의 인재들이 관직을 마다하고 자꾸 은거를 하며 숨는 것이 아닌가!”

분노한 황제.

그 누구도 그를 말릴 수 없을 것 같았다.

“폐하, 고정하시지요.”

분노한 황제의 몸에 손을 대며 말하는 청년.

지현은 화들짝 놀랐다.

천자의 몸에 손을 대는 불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 있었다.

지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칫 황제의 분노가 저자뿐 아니라 자신에게까지 올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전혀 상상도 못 했던 말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런. 형님 앞에서 또 제가 언성이 올라갔군요.”

“아닙니다. 폐하.”

“형님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저들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황제의 말에 천룡이 곰곰이 생각했다.

“일단은 직접 대면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옳습니다. 형님 말씀대로 하지요.”

그러고 황제가 지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는 지금 당장 가서 그 잡놈들을 대령하라.”

“며, 명 받드옵니다! 폐하!”

분노에 가득 찬 명령을 받은 지현은 온몸에 식은땀이 난 채로 서둘러 뒷걸음질로 밖을 나갔다.

왠지 지체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있는 방으로 이동하면서 겨우 이마의 땀을 닦는 지현.

“후와, 이게 무슨 일이야? 이게 꿈인가? 생신가?”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황제라니.

“그런데…… 그 옆에 계신 분은 누구지? 황상께서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놀라운데, 극존칭을 쓰며 정말로 윗사람 대하듯이 대하다니.”

지현은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떨쳐 냈다.

“에이, 고민해 봐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위기를 벗어난 것에 감사하자. 흐흐흐.”

아까 전만 해도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신의 한 수였다.

이제 거리낌이 없었다.

자신의 뒤엔 황제가 있었다.

점점 신이 나며 자꾸 웃음이 나왔다.

더욱이 황제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 않는가.

자신에게 인재라는 말까지 했다.

자신을 크게 쓰겠다는 표현도 하신 것 같다.

고조된 기분은 지현의 머리끝까지 올라갔고, 지현은 날아갈 것 같은 기쁨에 결국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이것이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것이구나! 하하하!”

황제가 뒤에 있는데 세상 두려울 것이 무엇이야.

당당하게 그들이 있는 감옥으로 향하는 지현이었다.

“크크크. 이놈들 다 죽었으!”

한편, 이들을 경호하던 무인들은 재빠르게 파발을 보내 현 상황을 도지휘사에게 알렸다.

파발을 받은 도지휘사는 대노해 자신이 직접 지현의 사지를 찢겠다며 군을 이끌고 안지현을 향해 출동했다.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출정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

단목세가 가주가 붉어진 얼굴로 보고를 하는 수하들을 질책하고 있었다.

“다 잡은 놈을 놓쳤다고? 내가 분명히 말했지? 두 번의 기회는 없다고!”

“가, 가주님. 사, 사정이 있었습니다!”

“사정? 그래. 어디 들어 보자. 이번엔 무엇 때문에 놓쳤느냐? 또 방해꾼이 있었느냐?”

“그, 그렇습니다! 그, 그들의 무공이 저희보다 강했습니다. 저희가 손 쓸 틈도 없이 제압당할 정도의 강자들이었습니다.”

“허! 그러하냐? 또 정체를 모를 고수들이겠지? 그렇지?”

“아, 아닙니다! 이번엔 정체를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정체 모를 자들에게 당했다고 변명을 할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단목천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수하를 바라봤다.

“그래? 누구더냐?”

“마, 만보상회 무사들이었습니다.”

“만보상회?”

“네! 그렇습니다! 저희가 똑똑히 보았습니다. 만보상회의 깃발을 말입니다!”

수하의 말에 단목천이 탁자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말했다.

“만보상회가 그랬단 말이지? 우리가 누군지 얘길 했느냐?”

“네! 단목세가라 분명히 언질을 주었습니다. 또한, 저희 세가의 행사이니 참견하지 말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너희를 공격하고 그자를 데려갔다는 건가?”

“그, 그렇습니다! 단목세가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며 오히려 저희를 놔주기까지 했습니다. 크으윽!”

마지막 말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단목천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며 사방을 옥죄었다.

“지금 무어라 하였느냐? 우리 가문을 뭐라 했다고?”

“크, 크으윽! 시,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건방진!”

점점 더 거세지는 기운.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하는 자들이 속출했다.

“가, 가주님! 부, 부디 기, 기운을…….”

힘겹게 외치는 수하의 애원에도 단목천은 기운을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눈빛으로 수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문에 먹칠하고도 살려 달라고 하는 것이냐? 하하하.”

우드드득-!

사방에서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단목천의 기운에 수하들의 목이 돌아가며 절명한 것이다.

털썩- 털썩-!

짚단처럼 쓰러지는 수하들을 보며 단목천이 말했다.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두 번의 용서는 없다고. 난 미리 말해 두었으니 억울해하지 말거라.”

단목천이 기세를 거두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자들이 우르르 들어와 시신들을 들쳐 메고 나갔다.

다시 조용해진 방 안에서 홀로 탁자를 두드리며 생각을 하는 단목천.

‘만보상회라. 만보상회……. 아무래도 만금충을 만나야겠군.’

생각을 정리한 단목천이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며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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