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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화 (182/200)

182화

***

안지현의 현청 마당에 무릎 꿇린 채 쉬지 않고 소리를 지르는 세 청년.

벌써 한 시진 동안 지치지도 않고 욕설과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선 대단한 놈들이었다.

지현이 가운데 의자에 앉아 그들이 하는 말을 그냥 얌전히 듣고 있었다.

옆에는 황제와 천룡이 앉아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황제가 들어오기 전에 지현에게 말했다.

실컷 떠들게 두라고.

그게 이승에서 마지막 말일 테니.

지현은 황명을 충실히 이행 중이었다.

“야이! #%#&@# 놈아! ####해서 @@를 해 버릴까 보다! 당장 이거 안 풀어?”

“%% 놈이 진짜 사지를 찢어발기기 전에 당장 풀어! 풀라고! XXX야!”

세상에 저리 많은 욕이 있는지 처음으로 경험하는 황제였다.

“세상에 저리 많은 욕설이 존재하는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하하, 저것보다 더 많습니다. 저들은 그래도 귀족이라고 나름 격식 있는 욕을 하는군요.”

“허! 저게 격식 있는 것입니까? 소제의 귀가 썩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제가 저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기막을 펼쳐 드릴까요?”

“하하, 아닙니다. 이것도 세상 경험이 아니겠습니까. 소제가 잠시 어리광을 부린 것입니다.”

이곳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게 평온한 분위기의 두 사람이었다.

다시 한 시진이 지나자 이제 좀 지쳤는지 세 청년의 말수가 급격히 적어졌다.

“헉헉! 이 독한 놈이. 이 정도 겁을 주었으면 응당 맨발로 달려 나와 엎드려야 하거늘.”

“그러니까! 헉헉. 저 새끼 진짜 독한 새끼네.”

“야, 그냥 풀어 줘. 우리 아무 짓도 안 하고 조용히 갈게. 응?”

이제 달래기 시작하는 그들이었다.

자신들의 협박이 씨알도 안 먹힌다는 것을 두 시진이나 지나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다.

“우릴 풀어 준다면 오늘 일은 없던 것으로 하는 것은 물론이고 금전도 주겠네.”

“이 친구 말이 맞네. 내 지금 수중에 가진 것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자네 일 년 녹봉을 될 걸세.”

“나, 나도 보탤 것이네. 이것이 부족하다면 돌아가서 금은보화를 보내 주겠네. 약속하네. 증서로 남겨도 되네. 풀어만 주시게.”

하지만 여전히 꿈적도 안 하는 지현을 보며 그들은 결국 포기를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휴! 이래도 안 통해? 뭐 저런 게 다 있냐? 독하다 독해. 그래. 맘대로 해라. 맘대로. 씨-.”

“에이씨! 그래, 맘대로 해라. 지가 죽고 싶지 않으면 우리를 뭐 어떻게 하겠어?”

“에라, 모르겠다.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해라. 대신 그것은 알아 둬라. 내 수하들이 아버님께 이미 이 사실을 다 전했을 것이다.”

“크크크, 그렇지. 아마 지금쯤 거의 다 오셨을 것이다. 각오해라.”

“우리를 빨리 풀어 주지 않은 것을 평생 후회하게 해 주마.”

“내 네놈을 내 하인으로 만들어 개처럼 끌고 다닐 것이다.”

“크크크, 그거 좋네. 나는 그 옆에서 몽둥이로 때려 주지.”

아예 바닥에 드러누운 채 지현을 향해 온갖 협박을 다 해대는 대갓집 자식들이었다.

그렇게 떠들고 있는데 세 청년의 얼굴 쪽에 그림자가 다가왔다.

뭐가 햇빛을 가리는가 싶어 고개를 올려다보니 자신 또래로 보이는 세 명이 각각 앞에 서서 웃고 있었다.

무광, 천명, 태성이었다.

“뭐야? 이놈들은?”

“저리 안 꺼져?”

“구경났냐? 어? 네놈들도 죽고 싶으냐?”

아직까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큰소리치고 있었다.

큰소리치는 그들에게 태성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도련님들 혀가 짧네. 일단 그 짧은 혀부터 늘어나게 해 줘야겠다.”

“뭐?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컥!”

누운 채로 목을 잡힌 청년.

“커억! 컥컥!”

버둥거리면서 뭐라고 계속 말을 했다.

퍼억-!

“케엑!”

단 한 방에 축 처지는 남자.

기절한 것이다.

살아생전에 이렇게 강한 충격은 아마 처음 받았을 것이다.

“뭐, 뭐야? 기절했네? 왜 기절해?”

태성이 더 당황했다.

이렇게 쉽게 정신을 잃을지는 몰랐다.

“뭐 이리 약해? 이건 해도 너무한 거 아냐?”

당황하는 태성과, 함께 바닥에 누워 있던 나머지 청년들도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너, 너! 지, 지금 무슨 짓을? 지금 우릴 쳤어?”

“네놈도 곱게 죽이진 않겠다! 얼굴 똑똑히 기억했다. 도망을 가도 반드시 찾아서 개처럼 끌고 다닐 것이다!”

부들부들 떨면서도 여전히 독기가 가득한 얼굴들이었다.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었을 것이다.

태어나서부터 모든 사람이 자신들을 떠받들었을 테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성이 무광과 천명에게 말했다.

“사형들, 이것들 겁나 허약하니 최대한 살살 때려야 합니다.”

“뭐 이런…… 하아…….”

“애들 시킬까요?”

천명이 조방과 진천을 바라보았다.

“아냐. 쟤들은 힘 조절 더 안 된다.”

무광이 자신 앞의 청년을 살포시 들어 올렸다.

“이, 이거 놔라! 이놈들! 내가 누군지 누누이 말을 해 주었거늘!”

버둥거리면서 떠드는 청년의 이마를 향해 무광이 중지로 딱밤을 때렸다.

따악-!

“이 정도면 되려나?”

최대한 힘을 빼고 치고선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맞은 청년은 파르르 떨더니 동공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청년의 몸이 갓 잡은 생선처럼 퍼덕였다.

어찌나 싱싱한지 팔딱팔딱 뛰기도 했다.

고통이 얼마나 큰지 표정과 몸짓에서 느껴졌다.

너무 아픈 나머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봤지? 이 정도 힘이어야 한다.”

“우와! 역시 대사형! 탁월한 방법이네요.”

“이런 방법을 생각하시다니! 역시!”

“크흠!”

대답함과 동시에 자신의 앞에 있는 청년 이마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살짝 쳤다.

딱-!

“끄아아아악!”

최대한 힘을 빼고 쳤음에도 앞에 청년과 달리 엄청난 고성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똑같은 몸짓으로 파닥거렸다.

파닥파닥-!

“으아아악!”

고통스러운 소리를 지르며 잠시 파닥거리더니 이내 축 처졌다.

“뭐, 뭐야? 이것도 기절한다고? 뭐 이런…….”

천명과 태성이 당황하며 얼마나 더 힘을 빼야 하나 하고 고심을 했다.

그 모습에 손문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태성에게 다가갔다.

“제가 도움을 좀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응? 어떻게?”

손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기절한 청년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우웅-!

환한 빛이 청년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벌떡-!

효과 만점이었다.

청년이 언제 기절했냐는 듯이 벌떡 일어난 것이다.

“고마워.”

태성이 씨익 웃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이거 좋네. 야, 너 옆에 있다가 기절하며 바로바로 깨워라.”

“흐흐흐. 이제 양껏 때려도 되겠네.”

천명과 태성이 환하게 웃으며 신나했다.

한편, 손문은 다른 이유에서 놀랐다.

자신의 능력을 보고도 전혀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다들 이것을 보면 놀라거나 아니면 욕심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손문이 이렇게 기술을 쓴 이유도 큰마음을 먹고 전개한 것이다.

이들을 믿었기에.

그런 손문의 마음을 읽었는지 태성이 웃으며 말했다.

“왜? 내가 너의 특이한 능력을 보고 놀라지 않아서 그래? 걱정하지 마라. 그런 거로 널 어찌하지 않을 테니. 일단 여기 있어 봐. 네 능력이 필요하니까.”

딱-!

“끄악!”

처음 맞았던 청년은 배가 찢어지는 고통에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더니 이번엔 머리에서 반짝 빛이 난 것같이 번쩍하더니 깨질 듯한 고통이 휘몰아쳤다.

파닥파닥-!

바닥을 여기저기 닦으면서 열심히 파닥거리는 세 청년.

어찌나 파닥거리며 닦고 다녔는지 바닥이 반짝거렸다.

이마가 빨개졌다.

“오, 이거 효과 좋네요. 사형, 어찌 이런 기발한 생각을 하셨어요?”

“약하게 그리고 극한의 고통을 어찌하면 줄까 고민했지.”

그리고 움직임이 좀 약해진 청년을 다시 잡았다.

청년이 화들짝 놀라며 기겁을 했다.

“자, 잠깐!”

따악-!

“끄으으으으으으윽!”

다시 이마를 부여잡고 아까보다 더 심하게 파닥거렸다.

그렇게 몇 번을 돌자 앞이마가 툭 튀어나온 세 명이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렸다.

“제, 제발 그만요! 이제 그만하세요! 엉엉!”

“자,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제발 그만!”

그런 청년들을 향해 무광이 나직하게 말했다.

“조용!”

무광의 말에 다들 기합이 팍 들어간 채 입을 꾹 다물고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이제 좀 얌전해졌다고 느끼고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쾅-!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

딱 봐도 고위직 관리들이었다.

그들은 살기 가득한 얼굴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청년들에게 시선이 멈췄다.

“헉! 아, 아들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토록 기다리던 자신의 아버지가 눈앞에 있었다.

“아, 아버지! 흑흑!”

자신의 아버지가 모습을 보이자 서럽게 우는 청년이었다.

이마가 터지기 일보 직전으로 피가 흐르고 있었고, 옷은 넝마가 되어 있었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의 상태를 보니 분노가 치솟는 관리들이었다.

뿌드드득-!

이가 부서져라 악다물고는 지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 이놈! 내 아들을 저 꼴로 만들어 놓고 네놈이 무사할 성싶더냐. 어디 이야기나 들어 보자. 내 아들을 저리 만들어 놓은 이유가 무엇이냐!”

호통에 지현이 귀를 파면서 대답했다.

“죄를 지었기에 죗값을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당연한 걸 물어보고 그러십니까?”

능글거리며 태연하게 말하는 지현을 보자 안 되겠는지 남자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내가 이곳 절강성의 지배자 도지휘사다! 네놈 따위가 지금 어디서 함부로 그따위 행동을 하느냐? 정녕 곱게 죽고 싶은 마음이 없구나.”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 자신을 밝히며 호통을 쳤으나 돌아오는 것은 심드렁한 지현의 말투였다.

“곱게 죽고 안 죽고를 떠나 방금 말씀드렸잖습니까. 죄인을 심문하는 중이었다고. 국법이 지엄한데 도지휘사의 아드님이라고 해서 봐주고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지현이 꼬박꼬박 말대꾸하며 반박하자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개진 도지휘사였다.

“뭐, 뭐라? 지, 지금 내가 누군지 말을 했음에도 그리 행동을 하는 것이냐?”

“도지휘사든 도독이든 국법은 지엄한 것입니다.”

“오냐. 네놈이 지금 무슨 배짱으로 그러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따가 사지가 찢겨 나가는 고통 속에서도 그딴 말을 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 뭐들 하느냐! 저기에 있는 놈들을 모두 잡아들여라! 내 직접 고문을 집행할 것이니 준비하거라!”

“충!”

도지휘사의 명에 군사들이 일제히 지현과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군사들을 막아섰다.

“안 되지. 어딜 가려고?”

퍼퍼퍼퍽-!

“커헉!”

“커컥!”

쿠당탕탕-!

콰당탕-!

달려가던 군사들은 무광을 포함한 운가장의 무인들에게 처맞고 나뒹굴었다.

“뭐, 뭐야! 네 이놈들! 지금 네놈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이냐!”

생각보다 강한 저항에 당황한 도지휘사였다.

삐이익-!

도지휘사의 옆에 있던 수하가 뿔피리를 불자 밖에 있던 군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제일 선두의 장수가 위엄 가득한 표정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천호장! 당장 저자들을 모조리 주살하라!”

천호장이라 불린 장수는 제일 선두에서 칼을 뽑아 진격하려 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이야, 여기서 다시 보네? 그래. 준비는 잘하고 있지?”

깜짝 놀란 천호장이 부들부들 떨며 칼을 떨어뜨렸다.

땡그랑-!

“가서 반성하며 증거 모으랬더니 이런 데를 따라왔어. 정신 안 차리지?”

천룡이 계속 천호장에게 말을 하자, 도지휘사는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못 하고 계속 소리를 쳤다.

“뭐 하는 거냐! 어서 공격하지 않고!”

천호장이 천룡을 향해 달려가자 그제야 도지휘사가 소리치는 것을 멈췄다.

천호장이 공격을 시작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털썩-!

“아, 아닙니다! 저, 저는 상급자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군인인지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자신이 생각하는 상황과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도지휘사가 자신의 주변에 있는 부관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부관들도 처음 보는 상황이기에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곳 절강성의 절대자가 바로 자신인데, 자신의 명을 거부하고 생판 처음 보는 자에게 무릎을 꿇는 천호장이라니.

“네놈이 미친것이냐? 아니면 배신이냐?”

도지휘사가 어이가 없는 목소리로 소리를 쳤지만 천호장은 요지부동으로 엎드려 있었다.

“저놈도 포함해서 모조리 죽여라! 뭣들 하느냐!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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