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도지휘사가 뒤에 있는 병사들에게 소리쳤지만, 병사들 역시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다들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도지휘사가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옆에 가만히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천천히 일어나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 후 일어난 상황은 도지휘사가 짐작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천천히 이동하는 남자 곁으로 또 다른 남자가 따라오더니 정면에 있는 모든 이에게 외쳤다.
“중원의 주인이자, 천자(天子)이신 황제 폐하시다! 뭣들 하느냐! 어서 인사 올리지 못할까?”
우렁찬 외침에 도지휘사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귀로 입력된 정보를 머리에서 처리를 못 하고 있었다.
그런 도지휘사의 정신을 깨운 것이 바로 뒤에 있는 병사들이었다.
일제히 소리를 치며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이 나라의 주인이신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그제야 사태가 파악된 도지휘사가 새하얗게 변색된 얼굴로 부복하며 외쳤다.
“시, 신! 절강성 도지휘사 석가중!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인사를 하건 말건 무시한 채 천천히 도지휘사의 앞까지 걸어간 황제였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그를 있는 힘껏 발로 찼다.
퍼억-!
“컥!”
쿠당탕탕-!
평소처럼 화를 낼 수 없었다.
여기서 화를 냈다간 구족이 멸족할 테니까.
재빨리 일어나 다시 부복하는 도지휘사였다.
퍽-!
쿠당탕-!
말없이 발길질을 하는 황제와 계속 재빨리 일어나 다시 부복하는 도지휘사.
황제의 발길질이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황제가 발길질을 멈추고 천룡에게 말했다.
“형님이 저 대신 손 좀 봐주시겠습니까?”
황제의 말에 도지휘사는 고개는 들지 못했지만 깜짝 놀랐다.
‘현 화, 황제에게 형이 있던가?’
뿌드득-!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명 받드옵니다. 폐하.”
스산한 목소리가 귀를 강타했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니 흉신악살처럼 변해 있는 남자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신! 상국 운천룡. 이제부터 폐하를 대신하여 도지휘사를 벌하겠습니다.”
상국이란다.
자신 앞에 중원 최고의 권력자 두 명이 나란히 서 있었다.
이들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나를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네? 간이 아주 배 밖으로 나왔구나?”
천룡의 손가락이 도지휘사의 이마를 향했다.
“아까 애들이 하는 거 보니 이게 효과 만점인 거 같은데.”
무슨 소린가 싶었다.
손가락으로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머리를 밀어서 굴욕감이라도 주겠다는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천룡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딱-!
맑고 고운 소리가 조용한 현청에 울려 퍼졌다.
파르르-!
도지휘사는 번개에 감전된 거처럼 파르르 떨더니 바닥에 쓰러진 채 이마를 마구 문지르며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아무리 문지르고 발버둥을 쳐도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마를 맞았는데 온몸이 아파 왔다.
고통은 대략 일각(一刻 : 십오 분) 동안 지속하였다.
어느 정도 고통이 가라앉으려 할 때 이마에 있던 손이 강제로 떼어졌다.
화들짝 놀라서 바라보니 다시 이마로 손가락이 날아오고 있었다.
따악-!
“끄아아아악!”
다시 파닥거리며 현청의 바닥 여기저기를 망둥이처럼 뛰어다녔다.
천룡은 인간 생선처럼 파닥거리는 도지휘사를 잠시 바라보다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말했다.
“한 명씩 맡아라.”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은 사람들.
곧 알게 되었다.
따악-! 딱-! 딱-!
도지휘동지들이 이마를 맞고 도지휘사와 같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끄아아악!”
“커어어억!”
사방팔방으로 팔딱거리는 네 명의 인간 생선들 덕에 현청의 바닥이 깨끗해지고 있었다.
그 후로 일각의 시간마다 박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딱밤은 대략 두 시진 동안 이어졌다.
“그, 그만하십시오! 제발! 잘못했습니다! 소인이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맞습니다! 저희가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무릎 꿇고 싹싹 비는 사람들.
체면이고 뭐고 없었다.
일단 살고 봐야 할 것이 아닌가.
천룡이 고개를 끄덕이자 무광이 천천히 걸어 나가 물었다.
“너희들이 지금까지 한 짓들 전부 말해.”
“네?”
너무 정신이 없는 나머지 이해를 못 하고 되물은 것인데 돌아온 답변은 그들의 안색을 새하얗게 변하게 했다.
“아직 정신 못 차렸네. 이거 더 맞아야 할 것 같은데요?”
무광이 뒤를 돌아보며 묻자 도지휘동지가 도지휘사의 비리를 마구 말하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그 옆에 있던 다른 도지휘동지 역시 마구 말하기 시작했다.
누가 더 많이 말하나 대결을 하는 것 같았다.
가장 최측근들이었기에 누구보다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도지휘사 역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안고 가야 할 판이었다.
도지휘사도 가세했다.
개판이었다.
서로 물어뜯고 욕하고 난리가 났다.
그 모습을 보던 황제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하아, 저런 자들이 한 성을 다스리는 관료들이라니…….”
암행을 나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천룡은 손문에 대해서도 물었다.
“너희들이 쫓는 청년이 있지 않으냐. 그에 대해 말해 보아라.”
천룡의 물음에 도지휘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억이 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오는 청탁이 얼마나 많은데 그깟 청년 찾는 자잘한 일까지 기억한단 말인가.
딱-!
잠시간의 정적은 곧바로 응징으로 이어졌다.
“캬오오오오!”
이마가 닳도록 비벼 대는 도지휘사.
무광이 다시 손가락을 장전했다.
그러자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기억을 끄집어냈다.
“기, 기억났습니다! 났습니다요! 제발!”
싹싹 빌며 엎드리는 도지휘사였다.
“얼마 전에 단목세가에서 의뢰가 들어온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한 청년을 찾는데 조건은 무조건 살아 있는 채로 데려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잡아만 준다면 엄청난 재물을 주겠다고 약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소인이 군사들에게 찾으라고 명했습니다.”
“찾으면 됐지 왜 마을에 불을 지르고 지랄이야!”
“제, 제가 그런 명령까지 내리진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도지휘사의 말에 천룡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꼿꼿이 서 있는 군사들을 바라보았다.
사방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천호. 이리 와 봐.”
천룡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천호가 달려왔다.
“사실이야?”
천룡의 물음에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마을을 불살라 버리라고 직접 명하셨습니다! 그렇게 마을을 초토화해 놓으면 소문이 퍼져 그 청년을 감춰 주는 마을이 없을 것이라며 저에게 직접 명하셨습니다!”
정천호가 조목조목 반박을 하며 대답했다.
그 말에 안색이 하얗게 변하며 더듬거리는 도지휘사였다.
“아, 아니 그, 그것이 아니고.”
당황하는 도지휘사를 지그시 바라보던 천룡.
무광에게 말했다.
“도지휘사가 거짓이다.”
천룡의 말에 도지휘사가 재빨리 이마를 가렸다.
“이마를 왜 가려? 넌 이마 정도로 안 되겠다.”
천룡이 굳은 얼굴로 도지휘사에게 말했다.
천룡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자신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사방으로 물러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정천호는 무광이 뒷덜미를 잡아 끌어냈다.
이마를 가린 채 눈을 껌벅이는 도지휘사.
빠지지직-!
갑자기 도지휘사의 머리 위에서 뇌전이 생성되었다.
뇌전은 곧바로 도지휘사의 온몸을 휘감았고, 끊임없이 뇌전을 뿌렸다.
“으그그그극!”
도지휘사의 동공은 이미 하얗게 변하였고, 입에선 끊임없이 거품이 솟아올랐다.
“으브브브브!”
빠지지직-!
이 기이하고 충격적인 장면에 모든 사람은 경악했다.
충격과 공포.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의 공통된 감정이었다.
다만 손문은 다른 것에 놀라고 있었다.
천룡이 뇌기를 쓴 것도 놀랐지만, 그 뇌기에서 느껴지는 기운 때문에 더 놀란 것이다.
그 기운은 자신이 너무도 잘 아는 기운이었다.
바로 자신이 각성하고 나서 얻은 능력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치료하는 능력.
그 기운이 바로 저 뇌전에서 느껴진 것이다.
‘설마, 저분도?’
그리 생각하자 갑자기 희망이 샘솟기 시작했다.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갖춘 자가 또 있었고,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을 도와준 은인이라는 것이다.
‘그래. 그래서 저분에게 마음이 간 것이구나. 그런 거였어.’
천룡에게 마음이 갔던 이유가 이것이라고 확신하는 손문이었다.
그런 손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룡은 무덤덤하게 뇌전을 계속 뿌리고 있었다.
도지휘사가 쓰러지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손문은 환희에 찬 표정으로 천룡을 바라보았다.
천룡의 손에서 새하얀 광구가 나온 것이다.
바로 자신이 사용하는 그 기운이 천룡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전에도 확신하고 있었지만, 저 모습을 보니 완벽했다.
이제 천룡 곁에 있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저분이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었던 거야. 그래! 이제 저분의 품 안에서 살아가겠다.’
그것이 자신이 살길이었고, 그것을 떠나 천룡의 곁에 있는 것은 포근하고 따뜻했기 때문이었다.
손문이 황홀하게 바라보고 있자, 무광이 사제들에게 전음을 날렸다.
-아버지가 자신과 같은 기운을 가졌다는 것을 깨달았나 보다.
-이제 더는 경계 같은 것은 안 하겠네요.
은연중에 계속 경계를 하던 손문.
지금 그의 모습은 경계심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존경 가득한 눈으로 천룡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편, 천룡의 활인기에 의해 치유된 도지휘사가 눈을 떴다.
“한 번 더?”
천룡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는 데는 조금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전광석화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듯이 엄청난 속도로 엎드리는 도지휘사였다.
“아, 아니옵니다! 전하! 시, 신이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차라리 죽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살면서 받은 고통 중에 무광에게 맞은 딱밤이 가장 큰 고통이라 생각했다.
그 이상의 고통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천룡이 뿌린 뇌전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온몸 세포 하나하나에 딱밤이 때려지는 것 같은 충격이랄까?
그것도 무광이 때린 딱밤의 수백 배의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정신을 잃으며 생각한 것은 삶에 대해 아쉬움이 아니었다.
이제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안도감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이대로 죽으면 더는 고통은 없을 테니.
하지만 죽는 것 역시 자신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생과 사.
이 모든 것이 눈앞에 있는 천룡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도지휘사는 자신이 그동안 한 모든 것들을 숨김없이 말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것을 다 말하고 오들오들 떨며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다.
도지휘사는 천룡이 너무도 무서웠다.
차라리 저 입에서 자신의 목을 치라는 말이 나오길 바랐다.
그러면 이 공포에서 해방될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질질 끌려 나가는 도지휘사였다.
황제는 도지휘사와 그의 측근들의 모든 재산을 압류하라 명하였다.
그리고 그의 모든 가족을 포함해서 남만으로 귀양을 보내 버렸다.
***
단목천과 만금충이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로 운가장과 만보상회에 관한 이야기였다.
“정보를 취합해 보면 현재 만보상회에 그놈이 있고, 만보상회는 운가장의 무인들이 지키고 있으니 쉽지 않다 이건가?”
“그렇지. 자네는 만보상회를 잡아야 하고 나는 그놈을 잡아야 하니 같이 손을 잡자는 거지. 어차피 목적은 같은 게 아닌가.”
“그렇긴 하지. 하하하, 좋네. 그렇게 하세.”
만금충이 허락의 뜻을 전하자 단목천의 안색이 환해졌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술이나 한잔하세. 내가 천상공주를 구해 놓았네.”
“그 소문의 술 말인가?”
“자네는 맛보지 못했는가?”
만금충의 말에 단목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이런. 그럼 맛보여 주면 안 되는데.”
“무슨 뜻인가?”
“이거 한번 맛보면…… 만보상회를 공격하기 싫어질 걸세. 그들이 망하면 이 술을 더는 맛보지 못할 테니. 그래서 고민일세. 적당히 숨통만 살려 놓을지 말일세.”
“그, 그 정도인가?”
만금충의 설명에 침을 꿀꺽 삼키는 단목천이었다.
그 모습에 만금충이 웃으며 말했다.
“일단 맛보고 다시 이야기하세.”
잠시 후.
술자리가 펼쳐졌고 단목천의 손에는 천상공주가 가득 담겨있는 잔이 들려 있었다.
“이, 이것이 바로 그 술이란 말이지. 공청석유가 들어갔다는 술.”
“그렇다네. 그런데 공청석유의 효능은 잘 모르겠네.”
단목천이 잠시 술잔을 쳐다보다 입으로 가져가 음미했다.
“헉! 뭐, 뭐야, 이거! 마, 말도 안 돼! 이런 술맛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