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5화 (185/200)

185화

***

한적한 호수에서 낚시를 즐기던 마진강은 요즘 들어 계속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알 수 없는 찝찝함.

“뭘까? 이 찝찝함은…….”

낚시에 집중도 잘되지 않았다.

결국, 낚시대를 걷어 자신이 지내는 곳으로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집에 와서도 여전히 찝찝함이 남아 있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권능의 구슬이 놓여 있는 곳을 보았다.

네 개의 구슬 중 하나가 깨져 있었다.

“어라? 뭐야, 이거였나? 의외로군. 내가 알아채지 못하게 죽였어. 누굴까?”

자신의 권능을 가진 자가 죽으면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죽음과 동시에 권능이 회수되니까.

그런데 권능이 회수되지 않았다.

그것은 그 누군가가 자신이 나눠 준 권능을 흡수했다는 소리다.

“이것 참, 호기심이 생기려 하네. 이 세상에서 나의 권능을 흡수하는 자가 있다고? 크크크. 마침 무료했는데 찾아봐야겠군.”

걱정하지 않았다.

새로운 장난감을 찾은 아이처럼 신나하며 집 밖으로 나서는 마진강.

태양궁이 있는 곳으로 몸을 돌리더니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잠시 후, 태양궁에 도착한 마진강은 턱을 쓰다듬으며 무언가를 생각했다.

“뭐지? 이 마기는?”

자신과는 다른 마기.

하지만 어디선가 많이 느껴 본 마기였다.

이곳에 온 지 워낙에 오래된 터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런 마기를 쓰는 존재가 있는데 내가 느끼지 못했다고?”

점점 흥미가 올라왔다.

이건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크크크. 집에 돌아갈 날이 다가오니 이런 재미난 일들이 생기는구나. 잘되었다. 남은 시간 동안 재밌게 즐겨 보자꾸나!”

마진강은 희미하게 남아 있는 마기의 흔적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

황제는 도지휘사와 단목세가를 일시에 모두 잡아들이면서 그들과 합심하여 백성들을 수탈하고 괴롭히던 모든 이들을 때려잡았다.

인정사정이 없었다.

그들의 재산은 전부 국고로 귀속이 되었고, 어떤 이는 참형을 당하고 어떤 이는 노역 형을, 어떤 이는 귀양을 떠났다.

황제는 안지현의 지현을 절강성의 도지휘사로 임명했다.

엄청난 출세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반대하는 이가 없었다.

특히 절강성에서 안지현의 지현의 유명했다.

공명정대하고 백성들을 생각하는 인물로 말이다.

덕분에 안지현의 지현이 절강성을 다스리는 도지휘사가 된다는 얘기에 모든 사람이 거리로 나와서 환호했다.

절강성의 백성들이 연신 황제를 연호하며 만세를 불렀다.

그들의 눈에선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지만, 표정은 세상 누구보다 환했다.

그동안 얼마나 심하게 당해 왔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한편, 이 일로 황제가 암행을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퍼지면서 모든 성의 도지휘사들이 일제히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재물을 마구 뿌리며 백성들의 민심을 다독였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비리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황제뿐 아니라 그 무섭다는 상국까지 같이 다닌다는 소문에 더욱 몸을 사렸다.

두 절대 권력자가 같이 온다는 것은 곧 사신 방문을 받는 거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황제의 세상 나들이는 이것으로 끝이 났다.

결국, 황제는 환궁을 하게 되었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여 세 제자들에게 호위를 맡겼고 섬서의 경계까지 천룡이 배웅을 나갔다.

엄청 아쉬워하는 황제를 겉으로는 슬퍼하는 모습으로 배웅하면서 속으로는 만세를 부르는 천룡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 내며 연신 꼭 황궁에 놀러 와야 한다며 애원하는 황제를 뒤로하고 운가장으로 돌아온 천룡이었다.

전에 울지랑이 요리를 하는 것을 보고 작은 깨달음을 얻은 천룡이었다.

그런데 그 뒤로 계속 속에서 무언가가 말을 거는 기분이었다.

운가장에 도착한 천룡은 그 길로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와의 대면을 위해 폐관에 들어갔다.

깊은 동굴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내면으로 들어간 천룡은 또 다른 자아와 만나게 된다.

얼마 전부터 계속 자신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던 또 다른 자아에게 말을 거는 천룡이었다.

‘너는 누구냐.’

천룡의 물음에 내면에 있던 또 다른 자아가 대답을 했다.

-나는 너다. 너의 욕망. 너의 진정한 힘.

‘나는 강하다.’

-크크크. 너는 약하다. 마진강이라는 자를 겨우 상대하는 주제에…….

마음의 소리에 천룡은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그, 그것은 앞으로 수련을 하면…….’

-헛소리! 너도 알 텐데? 수련으로는 그 이상 강해질 수 없음을……. 나를 받아들여라. 그럼 너의 진정한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유혹하는 내면의 자아.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저것을 받아들이면 자신이 아닌 다른 이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천룡은 고개를 저었다.

‘널 받아들이지 않는다. 과유불급(過猶不及). 그것이 너다.’

천룡의 말에 내면의 자아가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하. 너 같은 놈은 처음이다. 보통은 나의 힘을 조금이라도 맛본 자는 유혹에 혹하고 넘어가던데.

‘너의 힘은 달콤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 자신을 포기할 수는 없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의 힘은 모두 회수할 수 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겠느냐?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힘이 없어져 평범한 이가 된다 해도……. 그래서 큰 고난이 온다 해도 난 후회하지 않는다.’

-…….

내면의 자아는 말이 없어졌다.

천룡은 조용히 기다렸다.

-자존심이 상하는군. 좋아. 어디 한번 겪어 보아라. 힘이 없는 설움을. 지금 이 순간부터 너는 그 어떤 힘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크크크. 부디 잘 견뎌 보아라.

“크으윽!”

엄청난 고통과 함께 순식간에 몸에서 빠져나가는 기운들.

텅 비어 버린 단전이 느껴졌다.

잠시 후 고통이 사라지고 몸에선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평범한 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언제까지 나를 찾지 않고 버티나 두고 보겠다. 크크크. 네놈의 발버둥을 보며 기다리지.

그 말을 끝으로 내면의 자아가 천룡의 심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천천히 눈을 뜬 천룡.

그의 몸은 식은땀으로 온몸이 젖어 있었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몸에 모든 기운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거였나? 힘없는 자의 느낌이…….”

그 와중에도 반성하는 천룡이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더니……. 아이들이 왜 그토록 강해지길 원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군.”

힘은 사라졌지만, 불사의 능력은 그대로였기에 겉모습은 그대로였다.

천천히 걸어 밖으로 나온 천룡.

그 앞에 역시나 운가장의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제 나오십니까? 아,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제갈군이 천룡의 안색을 보고는 당황하여 달려왔다.

관천 역시 당황스러운 얼굴로 달려와 다짜고짜 천룡의 팔을 붙잡고 진맥을 했다.

“이, 이럴 수가! 이, 이 어찌…….”

관천이 경악한 얼굴로 천룡의 얼굴과 팔을 번갈아 보자 제갈군과 주변에 있던 이들이 모두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무, 무슨 일이오? 주군께 큰일이라도 생긴 것이오?”

“다, 단전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자, 장주님. 이, 이게 어찌 된…….”

관천의 말에 다들 경악한 얼굴로 천룡을 바라보았다.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주군! 저, 저 말이 사실입니까?”

그들의 모습에 천룡이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되었다. 이제 평범한 인간이 되었지…….”

힘없는 천룡의 모습.

“이제 나에게 예전과 같은 강한 능력은 없다. 그러니 이런 나에게 실망한 자가 있다면 떠나도 붙잡지 않을 것이다.”

천룡의 말에 조방이 오체투지를 하며 소리쳤다.

“주군! 그 무슨 말씀입니까! 소신은 죽을 때까지 주군의 곁에서 주군을 모실 것이옵니다!”

제갈군 역시 눈물을 흘리며 엎드렸다.

“주군! 신 제갈군! 주군의 곁에서 백골(白骨)이 될 것입니다! 신에게 주군은 오로지 한 분뿐이십니다!”

울지랑도 방연도 장천도 모두가 엎드려 울부짖었다.

하는 말은 전부 같았다.

“주군! 신들은 백골(白骨)이 진토(塵土)가 된다고 하여도 주군을 모실 것이옵니다!”

“힘이 있으나 없으나 저희의 영원한 주군이십니다! 그런 말은 거두어 주시옵소서!”

천룡의 말에 다들 울부짖으며 합창했다.

그 모습에 천룡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다들…… 고맙다. 내가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그러면서 하나하나 손수 일으켜 세워 주며 안아 주었다.

울먹거리고 있는 수하들을 천천히 바라보다 천룡이 기침하며 말했다.

“미안하구나. 내가 지금 좀 피곤해서…… 쿨럭!”

“어, 어서 안으로! 제, 제가 모시겠습니다!”

관천이 호들갑을 떨며 천룡을 부축하고 나서자 다들 난리가 났다.

그야말로 운가장이 생겨난 이래 가장 큰 비상이었다.

지친 기색을 보이는 천룡을 침상에 눕히고 나온 수하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긴급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주군께서 갑자기 왜 힘을 잃으신 것인지 파악하셨습니까?”

조방의 물음에 관천이 고개를 저었다.

“혹, 수련하시다가 주화입마에 빠지신 건 아닌지.”

“아니다.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으셨다. 주화입마라면 기운이 요동을 치고 있어야 하는데……. 정말로 아무 힘도 남아 있지 않으시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제 주군을 보필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신중해야 합니다.”

조방의 말에 울지랑이 동의를 표하며 말했다.

“네 말이 맞다! 내가 주군 곁에서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키겠다!”

“저 역시 주군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천룡의 곁을 지키며 철통 경계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유국주님이 표국에 안 계셔서 말입니다.”

“그렇지. 한바탕 난리가 났을 테지. 그보다 삼황께서 오시면 아마 난리가 날 것일세.”

그랬다.

황제를 호위하기 위해 황궁으로 간 삼황이 돌아올 시간이 된 것이다.

그들이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오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내공을 모조리 경공에 투입할 위인들이었다.

“아직 그분들이 오시기까진 시간이 좀 있으니 그때까지 대책을…….”

대책을 세우려 했는데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저희 왔어요!”

“사부님!”

“사부! 사부! 저희 왔습니다!”

요란을 떨며 들어오는 삼황.

그 소리에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란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버, 벌써? 아니…… 북경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미친 듯이 경공만 써서 달려온 모양입니다. 저분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쾅-!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뭐야? 왜 여기에 다 모여 있어? 아버지는?”

무광의 물음에 다들 대답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세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야? 우리 없는 동안 무슨 일 있었어? 아버지한테 혼났나?”

“말들이 없는가? 말 좀 해 보시게! 사부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유국주님 뵈러 가셨나? 이상하네! 국주님 요즘 안 보이던데.”

“사부, 기운이 전혀 안 느껴지는데요? 여기에 안 계시나 봐요. 아! 폐관 들어간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아! 그런가 보네. 자식들, 아버지 안 계신다고 다들 시무룩해 있는구나? 귀여운 것들.”

“하하, 정말 사부님은 인복도 좋으십니다.”

상황을 모르는 세 사람은 운가장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연신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제갈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주군께서는 방 안에서 쉬고 계십니다.”

“응? 방 안에서? 아니, 아무런 기운이 안 느껴진다니까? 가만……. 아버지 방 안에 웬 일반인이 누워 있는데?”

“어? 정말이네요, 뭐야?”

“사부 방에 일반인요? 누구지?”

세 사람이 제갈군을 바라보며 설명을 요구했다.

“주군께선…… 그러니까 주군께서…….”

말을 해야 하는데 천룡의 상황을 다시 생각하니 눈물이 올라오는 제갈군이었다.

얼마나 힘드실까.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우실까.

그 생각에 다시 울컥하고 올라왔다.

울먹거리는 제갈군을 시작으로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무언가 심각함을 느낀 세 사람은 표정이 굳으며 제갈군의 어깨를 붙잡았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는 거냐? 아버지께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 말해! 어서!”

제갈군의 몸을 흔들며 재촉하는 무광.

그러다가 더는 기다리지 못하겠는지 천룡이 있는 방을 향해 달려가는 무광이었다.

무광이 서둘러 나가자 천명과 태성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뒤따랐다.

“아버지!”

벌컥-!

문을 세차게 열어 젖히고 방 안으로 들어간 무광은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침대에서 잠이 든 천룡을 발견했다.

‘이런 큰 소란에도 일어나지 않으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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