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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화 (186/200)

186화

무언가 찝찝했지만 그래도 천룡이 잠에서 깰까 봐 답설무흔(踏雪無痕)까지 써 가며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무광이 조심스럽게 천룡의 입가에 귀를 대 보았다.

안정되지 않은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재빨리 손목을 낚아채서 맥을 짚어 보는 무광이었다.

뒤를 이어 들어온 천명과 태성도 심각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형, 왜 그러십니까?”

심각한 표정의 무광을 보며 천명이 물었다.

그런 천명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무광이 재빨리 천룡에게 자신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아버지! 일어나 보세요! 아버지!”

무광이 다급하게 천룡을 깨우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천룡에게 저런 무례를 저지른 적이 없는 무광이었기에 천명과 태성은 놀랐다.

그만큼 상황이 다급하다는 소리였다.

“사형! 사부님이 어찌 되신 겁니까? 네? 말씀 좀 해 보세요!”

“기, 기가 느껴지지 않아!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사제들의 말은 모두 무시하고 연신 천룡에게 자신의 기운을 불어넣는 무광이었다.

“닥쳐! 집중하게 좀 조용히 해!”

무광의 말에 천명과 태성이 입을 다물었다.

무광이 끊임없이 기운을 불어넣고 있음에도 일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천룡.

무광의 표정은 점점 울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버지! 일어나세요! 아들 왔어요!”

무광의 간절한 외침이 들렸던가.

천룡의 눈이 힘겹게 떠졌다.

“광이구나…….”

“아, 아버지……?”

말하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천룡이었다.

갑작스럽게 모든 기운이 봉인되어서 몸이 적응을 못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힘겨워하는 것이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제자들은 일제히 천룡에게 달라붙어 울먹거렸다.

“이, 이게 무슨 일이에요. 저희랑 헤어질 때만 해도 팔팔하셨잖아요…….”

“사부! 아픈 겁니까? 의선, 이 새끼가 사부가 아프신데!”

태성이 으르렁거리며 일어서려 했다.

그런 태성을 천룡이 말렸다.

“괜찮다. 내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이리되었다. 관천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 말씀해 주세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주화입마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수련하다 이리되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 다만 남들과 좀 다를 뿐이지.”

“주화입마요? 아, 아니, 아버지 같은 경지의 고수가…….”

“나는 사람 아니냐. 욕심을 부렸나 보다.”

천룡이 그렇다는데 뭐라 하겠는가.

수척해진 천룡을 보니 세 사람의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 왔다.

“아버지가 이리 아프신지도 모르고……. 조금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불초 소자가 또…….”

“크흐흑! 사부님!”

“사. 사부! 제, 제가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라도 꼭 건강하게 만들어 드릴게요……. 크흑!”

고개를 숙여 우는 제자들을 토닥이는 천룡이었다.

“울지 마라. 이놈들아, 누가 보면 내가 죽기 직전인 줄 알겠다. 힘만 빠졌을 뿐 다른 것은 전혀 이상 없다. 왜? 힘 빠진 사부는 필요 없느냐?”

농담으로 한 말인데 제자들이 기겁했다.

“네? 그, 그 무슨 말씀이세요! 서, 설마, 어떤 새끼가 그딴 소릴 아버지한테 했습니까? 아버지 힘없다고 나간답니까? 누가요?”

“정말입니까? 으드득! 누굽니까!”

태성은 이미 이름만 나오면 곧장 그자에게 달려갈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살기등등한 얼굴로 당장이라도 잡아서 찢어 죽일 기세였다.

쿨럭-! 쿨럭쿨럭-!

제자들의 살기에 천룡이 충격을 받은 듯 기침을 했다.

그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자신들의 기세를 당장 거두었다.

“헉! 아, 아버지!”

“사형! 거기서 그렇게 살기를 내보이면 어찌합니까!”

“나, 나는 그저…… 아, 아버지…….”

죄스러운 얼굴로 천룡을 바라보는 무광이었다.

“괜찮다. 힘이 사라지니 이런 번거로움이 있구나. 하하. 내 자식들 기세도 못 받아 주다니…….”

천룡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크흐흑!”

“크흐흑!”

결국, 울음이 터진 세 사람이었다.

세 사람은 한참 동안 천룡 곁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치다가 천룡이 쉬고 싶다고 말하니 정성을 다해 침상에 눕히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뒤에 무광이 사제들에게 말했다.

“특급 비상이다. 중원이 멸망한대도 이보다 큰 절망감이 들진 않을 거다.”

“맞습니다. 일단 사부님의 힘이 사라진 것을 알면 세상이 시끄러워질 테니 최대한 감춰야 합니다.”

“사부가 힘이 없다고 함부로 대하는 문파나 세력은 제가 가만 안 두죠.”

“인마! 그건 당연한 얘기고! 감히 아버지가 힘이 빠졌다고 기어오르는 놈이 나오면 내가 직접 온몸의 뼈를 박살을 내 버릴 거다.”

“저도 돕겠습니다!”

“저도요! 아주 갈아 마실 겁니다!”

“자, 자! 그런 당연한 얘긴 그만하고, 아버지 경호를 어찌할 것인지 고민해 보자.”

“그래서 이놈들이 회의실에서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군요.”

“어서 가시죠. 가서 우리도 같이 회의를 해야죠.”

“그래! 아주 긴 시간 동안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다.”

세 사람은 서둘러서 회의실이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회의실에 들어가자 여전히 무거운 공기가 회의실 내를 뒤덮고 있었다.

그 모습에 무광이 손뼉을 치며 환기시켰다.

“자, 자! 주목! 아버지 돌아가신 거 아니다. 다들 인상 펴!”

“그래! 이럴수록 사부님께서 부담 갖지 않게 우리가 편한 모습을 보여야 하네!”

무광과 천명의 말에 다들 고개를 들었다.

제갈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저희가 이럴수록 주군께선 더더욱 부담스러워하시겠죠. 힘이 사라지셨을 뿐이지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니까요.”

“맞습니다. 힘이라는 게 돌아올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니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셔도 되고요. 제가 가진 모든 역량을 다 동원해서 최고의 영단을 만들겠습니다!”

관천까지 나서자 무광이 고개를 흔들었다.

“됐다. 천령신단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그거 드시게 하면 돼.”

“그럼 보약을 꾸준히 올리고 매일 와서 진맥하겠습니다!”

저것까지 말리진 못할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주군 곁에서 철통 경계를 하겠습니다!”

조방의 말에 무광은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우리가 지킨다. 그러니 너희는 조금이라도 더 강해져라. 알고 있지? 진정한 괴물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그를 상대하려면 강해져야 한다. 우리도 오늘부터 돌아가면서 훈련을 할 것이다.”

무광의 말에 다들 잊고 있었던 존재를 떠올렸다.

바로 천룡의 호적수이자 천룡의 힘이 사라진 현재 이 세상 최강자.

마진강의 존재를 말이다.

두려움보다 자신들이 천룡을 지킬 수 있을지가 더 걱정이었다.

다들 결연한 표정이 되었다.

자신들의 목숨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천룡만은 지키겠다는 마음뿐이었다.

무광은 천령신단을 모두에게 나눠 주기로 했다.

한 명이라도 더 강해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들도 하나씩 복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상황을 보아하니 오행체를 모으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현재까지 총 네 명의 오행체를 발견했고, 그중에 세 명이 운가장에 있다. 제갈군이는 빙궁에 연락을 해서 소궁주를 이곳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해라.”

무광의 뜻을 이해한 제갈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조치하겠습니다!”

“일단 저들을 우리 쪽에 모아 두어야겠다. 또한, 세상에 큰 위기가 왔을 때 그것을 극복하게 하늘이 내려준 인재들이라니 일이 생기면 큰 힘이 되겠지. 정말로 마진강 때문에 그들이 세상에 나왔다면 더 큰 힘이 될 테고.”

“마지막 한 명이 정말 세상에 나왔을까요?”

그 말에 구석에 조용히 있던 손문이 손을 들어 말했다.

“저…… 알고 있습니다. 한 명.”

손문의 말에 다들 시선이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어찌 알아?”

“절 찾아왔었습니다. 위험하다고 자신과 함께 가자더군요.”

“너의 능력을 보고 찾아온 것이냐?”

“네. 아무래도 제가 오행체인 것 같다며 자신과 함께 소림으로 가자고 하더군요. 저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기에 거절했고요. 나중에라도 위험해지면 소림으로 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소림?”

“네. 원각. 그 이름이었습니다. 자신도 오행체라며 소림에 오면 꼭 자신을 찾으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음…… 원각이라고 하면 소림의 차기 항마승을 말하는 건가?”

무광의 말에 제갈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원각이라 불리는 중이 있는데 이미 금강불괴의 경지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믿지 않았습니다만……. 그자가 오행체 중의 한 명이라면 가능성이 있겠군요.”

“그럼 일단 서신을 보내. 정중히 초대하든 아니면 우리가 방문하든 하자고.”

“네! 제가 일단 초대 서신을 보내 두겠습니다.”

제갈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자! 지금 우리는 최대 비상 상황이다. 알지? 이제 강호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목숨을 걸고 쉬지 말고 수련해라!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의선은 최대한 영약을 만들어 주시게. 아무래도 삼세의 정예들도 모두 전력 강화를 해 두어야 할 것 같아.”

“알겠습니다! 손문아, 가자.”

“네! 스승님!”

관천의 제자가 된 손문이 재빨리 따라나섰다.

“장천은 개방과 협력해서 무림에 대한 정세를 세세하게 파악하고, 수상한 점이 보이면 바로 알려 줘.”

“네! 알겠습니다!”

장천도 달려 나갔다.

조방과 진천은 천령신단을 들고 폐관에 들었고, 무광과 천명, 태성은 순번을 정하고 수련을 시작했다.

언제나 평화로울 것 같았던 운가장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

단목천이 허무한 얼굴로 자신의 세가 정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 며칠이었다.

며칠 자리를 비웠는데 세가가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나 있었다.

“이, 이게 뭐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세가의 내부가 훤하게 보이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적막 속에서 단목천이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사방에 싸움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화려했던 건물들은 여기저기 무너져 있었고, 가주전의 현판은 떨어져 박살이 나 있었다.

“어떤 놈이냐…… 어떤 놈이 감히!”

가뜩이나 안 좋은 일을 경험하고 온 터라 기분도 좋지 않았는데 세가까지 이리되니 엄청난 살심이 치솟았다.

누구라도 보이는 즉시 즉결참을 할 것 같은 기세였다.

“누구냔 말이다!”

울분이 가득한 목소리로 고성을 질러 댔다.

그래야만 이 폭발할 것 같은 심정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드시 찾아서 그대로 갚아 주지. 그것이 누구든…….”

단목천이 힘없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어디론가 향했다.

그가 찾아간 곳은 하오문이었다.

퍼억-!

“크억!”

털썩-!

하오문 절강지부가 단목천의 살수에 재앙을 맞이했다.

엄청난 살기를 내뿜으며 자신 앞에 있는 하오문도들을 도륙하는 단목천.

그 모습에 하오문도들이 덜덜 떨며 공포에 빠져 있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잡혔다고 생각했는지 단목천이 매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냐…… 단목세가를 그리 만든 이가. 가장 먼저 말하는 놈만 살려 주겠다.”

단목천의 말에 서로 밀치며 자신이 먼저 말하겠다고 나섰다.

그 모습에 단목천이 그들을 향해 어떤 기파를 뿜었다.

후웅-!

기파가 지나가자 사람들이 얼음이 된 것처럼 멈춰 섰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달려 나오던 자를 허공섭물로 끌어내서 자신 앞으로 가져왔다.

“누구냐.”

남자는 덜덜 떨면서 말했다.

“우, 운가장……. 운가장입니다!”

“뭐라? 어디?”

“섬서에 있는 천하제일 세가. 운가장에서 그리 만들었습니다.”

순간 멈칫한 단목천.

“그놈들이란 말이지……. 운가장……. 오냐. 네놈들을 세상에서 지워 주지.”

“헤헤, 저, 저는 이제 살려 주시는 겁니까?”

그 말에 단목천이 피식 웃으며 남자의 뒤에 있는 다른 하오문도들이 있는 곳으로 손을 쓰윽 그었다.

푸하학-!

그저 단조로운 동작이었지만 그 결과는 끔찍했다.

절강지부의 모든 하오문도들이 한 수에 도륙된 것이다.

“그래. 너는 살려 주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절을 하는 남자.

그런 남자를 잠시 바라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내세에 다시 만나면 말이야.”

퍼억-!

절을 하는 남자의 머리를 밟아 터트리고는 고개를 돌려 섬서 쪽으로 몸을 날리는 단목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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