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7화 (187/200)

187화

***

은마성과 내면의 자아는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 갔다.

내면의 또 다른 자아에게 마현(魔現)이라는 이름을 지어 줬다.

자아는 매우 만족하며 그 이름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끝끝내 자신의 정체는 말해 주지 않았다.

상관없었다.

강해지기만 하면 되니까.

은마성은 중원으로 여행을 떠났다.

생각해 보니 중원을 가 본 지가 언제였는지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은마성의 심상 속에 자리 잡은 마현은 신이 났다.

자신이 살던 세상과는 완전 다른 세상이었기에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그런 마현의 기분을 느낀 은마성이 피식 웃으며 중원의 음식 맛도 보여 주겠다고 하자 마현의 기운이 요동쳤다.

‘그렇게 좋나?’

-당연하지! 오는 길에 맛본 음식들도 훌륭했다!

‘그건 평범한 음식들이다.’

-그게 평범한 것이라니! 크하하! 아주 기대가 된다!

‘웃는 건 좋은데 기운은 좀 자제해 줄래? 아직 몸이 감당을 못 한다고.’

-그런가? 큭크크. 아직 나와 완전히 융합되지 않아 그렇다.

‘일심동체가 되어야 하는 건가?’

-일심동체?

‘너와 내가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크크. 그렇지. 한 몸이 되어야지.

‘한 몸이 되면 내 자아는 어찌 되나.’

-지금처럼 지내게 된다. 그때가 되면 내 모든 기억이 너에게도 열릴 테니, 굳이 힘들게 날 설명할 필요가 없지. 너 역시 마찬가지고.

‘그렇군.’

마현이 자신의 몸을 빼앗는데도 어쩌겠는가.

이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은마성의 마음이 느껴졌는지 마현이 웃으며 말했다.

-크크 걱정 마라. 네 몸을 차지할 마음은 없으니. 너랑 지낸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즐거워질 줄 몰랐다. 크크크. 인간과 이렇게 마음이 맞다니. 내가 지금까지 큰 편견을 가지고 살았군.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날 좋게 봐줘서 고맙군.’

-크크, 영광으로 알아라. 내가 누구인지 알면 넌 깜짝 놀랄 테니.

‘누군데. 그 보다 알아도 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며. 네가 사는 세상을 모르는데 내가 놀랄 일이 있을까.’

-하나가 되면 모든 걸 공유하게 되니 그때 알게 되겠지. 놀라는지 아닌지.

마현의 말에 은마성이 피식 웃었다.

처음에는 살짝 두려웠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마현 말대로 둘은 정말 잘 맞았다.

천생연분처럼 말이다.

‘일단 중원에서 음식이 가장 맛있다는 광동으로 가 보자고.’

맛있는 음식이라는 소리에 마현의 기운이 다시 꿈틀댔다.

-가자! 가자!

그러던 서서히 몸이 떠올랐다.

‘어어? 무슨 짓이야.’

-걸어서 어느 세월에 가냐! 방향 어디야! 날아서 가자.

마현의 말에 은마성이 자신도 모르게 한곳을 바라봤다.

-오옷! 저기ㅤㄴㅑㅅ! 간다!

‘헉! 자, 잠까…….’

은마성이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마현은 순식간에 몸을 떠올려 은마성이 바라본 방향으로 빗살처럼 날아갔다.

***

천룡은 조용한 방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몸이 약해진 뒤로 꾸는 꿈이 뒤숭숭해서 자꾸 신경이 쓰인 것이다.

‘꿈에 사부님이 나오셔서 선유동에 관해 말씀하셨다. 그저 꿈이려니 생각하려 해도 계속 마음에 걸리는군. 그것도 며칠째 똑같은 꿈이라니…….’

꿈에 자신의 사부가 나와 자꾸 선유동으로 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었다.

‘일단은 가 봐야겠군. 계속 찝찝한 것보단 낫겠지. 혹시 또 알아? 의외로 그곳에 해결책이 있을지.’

생각을 정리한 천룡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천룡은 뒷짐을 진 채로 천천히 운가장을 구경하며 걸어 다녔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를 생각했다.

자신의 제자들이 이제 같이 살 집이라며 호들갑을 떨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 후에 제자들과 세상을 돌아다니던 일들과 그 과정에서 생긴 수많은 인연까지.

가슴 한쪽이 따뜻해졌다.

비록 힘은 사라졌지만 행복했다.

걱정이 있다면 마진강에 관한 것이었다.

이렇게 살아도 딱히 상관은 없었지만, 마진강이라는 적이 있기에 힘을 되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며칠 동안 명상도 해 보고 영약도 먹어 보고 다 해 보았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최근에 꿈에서 사부가 나와 선유동으로 가라고 자꾸 그러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도착한 곳은 제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었다.

운가장 한쪽에 거대한 전각이 세 채가 자리 잡고 있는데 그곳이 바로 자신의 제자들이 사는 곳이었다.

세 명은 천룡이 오는 것을 느끼고 밖으로 나와 있었다.

“아버지, 무슨 일 있으세요?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아, 꿈을 꾸었는데 좀 뒤숭숭해서 말이다.”

“꿈요? 어떤 꿈이었는데요?”

“꿈에 사부가 나오셔서 자꾸 선유동에 가 보라고 하시는구나. 그래서 가 볼까 생각 중이다.”

천룡의 말에 무광과 제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가 보죠. 어차피 여기 있어 봐야 아버지 상태가 좋아지실 것 같지도 않고요. 그래도 선유동에 가시면 뭐라도 결과가 있지 않겠어요?”

“맞아요. 간 김에 거기서 수련도 좀 하고 오죠. 거기가 천지자연의 기운이 몰리는 곳이라 그런지 수련하기 정말 좋은 곳이에요.”

“사부! 가요! 바람도 쐴 겸. 기분 전환도 할 겸.”

천룡이 선유동에 가자는 소리에 제자들은 모두 환영했다.

“그래. 너희 말이 맞다. 가 보자.”

선유동으로 가기로 결정을 한 천룡은 운가장 사람들에게 집을 잘 부탁한다고 전달했다.

그러자 서로가 따라가겠다고 난리가 난 것이다.

다들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예전의 천룡이라면 아무런 걱정 없이 보내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천룡은 걱정하지 말라며 운가장을 잘 부탁한다고 말을 하고 길을 떠났다.

나머지 오행체를 부르는 것 또한 다녀온 뒤로 미뤘다.

천룡과 제자들이 선유동으로 길을 떠난 후에 손님들이 찾아왔다.

북해빙궁에서 궁주와 소궁주가 방문을 한 것이다.

“아버님은 어제 여행을 떠나셨어요. 미리 말씀 좀 하고 오시지…….”

빙궁주는 자신의 딸, 은여랑의 말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깜짝 놀라게 해 드리려고 몰래 온 건데 거참…….”

“그래도 잘 오셨어요. 딸 집은 처음이시잖아요.”

은여랑이 환하게 웃으며 빙궁주의 팔을 잡아 끌어당겼다.

그리고 장원 곳곳을 안내하며 소개를 해 주었다.

한편, 소궁주 은천상은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진천과 조방이 땀을 흘리며 수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진천과 조방은 쉴 새 없이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강하게 경지를 올려야 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오로지 천룡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진천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천룡에게 마음을 완전히 뺏긴 상태였다.

왠지 모르겠지만 자꾸 천룡에게 마음이 갔다.

진천 역시 천룡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수련에 열중했다.

그런데 자꾸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도 엄청 뜨거운 시선이.

잠시 수련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조방이 환하게 웃으며 달려갔다.

“자네 왔는가!”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조방을 은천상 역시 환하게 웃으며 맞이했다.

“하하하, 자네는 여전하군. 수련이 그리도 좋은가?”

“그러는 자네도 기세가 만만치 않은데? 얼마나 수련을 한 것인가?”

“강해져야 했으니까. 알지 않은가? 혈천교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말일세. 결국, 장주님께서 멸문을 시키셨지만.”

“이 사람. 아쉬워하는 것 보소. 자네 손으로 없애지 못한 게 한인가?”

“솔직히 좀 그런 게 없지 않다네. 하하하.”

둘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웃을 때 진천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이보게 조방, 나도 좀 소개해 주시게.”

진천의 말에 조방에 웃으며 말했다.

“하하, 물론일세. 이쪽은 북해빙궁의 소궁주 은천상이라 하네.”

“반갑소!”

은천상이 진천을 향해 포권을 했다.

“이 친구는 무당파의 진천.”

“나 역시 반갑소!”

진천 역시 포권을 하며 받아들였다.

“나와 친구니 둘도 친구 아닌가?”

“그, 그런가?”

진천이 당황하자 은천상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자네와 친구면 나랑도 친구지. 안 그런가? 진천?”

은천상의 말에 진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물론일세!”

만나자마자 순식간에 친해진 세 사람.

그 사람들 뒤로 빙궁주가 다가왔다.

“역시 젊음이 좋긴 좋구나. 이리 금세 친해지고 말이다. 허허.”

“호호호, 역시 오행체들이라 서로 통하는 게 있는 걸까요?”

“조방이 녀석하고는 같은 오행체니 통하는 게 있겠지.”

“아버지, 저기 진천이도 오행체예요.”

“뭐? 누가 뭐라고?”

“저기 저 친구요.”

은여랑의 말에 빙궁주가 놀란 얼굴로 진천을 바라보았다.

은천상 역시 똑같은 얼굴로 진천을 바라보았다.

“자네도 오행체인가?”

그 말에 진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자네도?”

은천상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빙궁주가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세상에 한 명 나오기도 힘들다는 오행체가 셋이나 있다니. 그 세 명이 운가장에 모이고 말이야. 대단하군, 대단해. 허허허.”

“세 명이 아니에요. 네 명이죠.”

“그게 무슨 말이냐? 여기 얘들 말고도 또 있단 말이냐?”

빙궁주의 말에 은여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문이라고 또 있어요. 지금 열심히 공부 중이라 이곳에 없지만요. 가까운 곳에 있어요.”

“허어, 그게 무슨……. 자고로 예로부터 오행체가 나온다는 것은 세상에 정말로 큰일이 벌어질 징조라고 했는데. 네 명이라니.”

그래도 걱정스러운 얼굴은 아니었다.

“사돈께서 계시니 다행이구나. 아무리 큰 재앙이라 해도 사돈께서 계시는데 별일이야 있겠느냐?”

천룡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어 보이는 빙궁주였다.

은여랑과 조방, 진천의 표정은 살짝 굳었지만 찰나 간이라 빙궁주가 알아채진 못했다.

수련장에서 이들이 재회를 즐기고 있을 시간, 운가장 정문 앞으로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오오! 이곳인가? 드디어!”

“맞습니다! 이곳입니다! 저기 보십시오! 힘차게 운가장이라고 적혀 있지 않습니까!”

“허허허허! 그분께서 놀라시겠지?”

“흐흐흐흐, 놀라시겠죠? 연락도 없이 왔으니.”

“흐흐흐, 어서 가세.”

둘의 정체는 천마신교의 교주 구양진과 군사 백무위였다.

혈천교와 일전을 준비하던 차에 천룡이 혈천교를 멸문시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교를 정비하고 여유가 생겨 이리 찾아온 것이다.

수문위사에게 어디서 왔는지를 말하자 수문위가 화들짝 놀라며 경계했다.

“어, 어디서 오셨다고요?”

“천마신교에서 왔다네.”

“처, 천마신교? 그게 저, 정말로 존재하는 곳이었습니까?”

수문위사는 천룡이 천마신교와 인연이 있는지 알 리가 없었다.

이곳을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어찌 안단 말인가.

천마신교가 실존하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당황했다.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수문위사는 더듬거리며 기다리란 말을 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사람들 찾았는데 때마침 다들 자리를 비우고 아무도 없었다.

허둥지둥 대며 이곳저곳을 다녔지만,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수련장에 모여 있는 조방을 보았다.

수문위사가 조방에게 달려가 다급하게 말했다.

“처, 천마신교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수문위사의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빙궁주였다.

“뭐? 천마신교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그 저주받을 집단이 이곳에 왔다고?”

기세를 끌어 올리며 물어보는 빙궁주였다.

그런 빙궁주를 조방이 달래고 나섰다.

“주군과 인연이 있는 곳입니다. 기세를 거두어 주십시오.”

천룡과 인연이 있다는 소리에 바로 기세를 거두는 빙궁주였다.

“아, 사돈과 인연이 있어? 허허, 거참. 우리 사돈께서는 발도 넓으시지 마교는 또 언제 거둬들이셨대.”

인연이 있다 했지 거두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당연하듯이 말하는 빙궁주였다.

아무튼, 조방은 자신이 직접 마중 나가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나머지 사람들도 따라오는 것이다.

“아니, 왜?”

따라오냐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랬더니 다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얘기했다.

“천마신교라니. 어찌 안 따라가겠나. 어서 앞장서시게.”

빙궁주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조방이 실소를 지으며 다시 몸을 돌려 문으로 향했다.

문 앞으로 가니 정말로 천마신교 사람들이 와 있었다.

조방이 재빨리 다가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교주님! 오셨습니까!”

“오! 조방! 자네군. 그래. 장주님께서 안에 계시는가?”

“죄송합니다. 주군께서는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언제 오실지 기약이 없는지라.”

“뭐? 허어. 놀라게 해 드리려고 몰래 찾아왔는데. 그분의 놀라는 모습만 상상하며 그 먼 길을 왔는데…….”

어린아이처럼 시무룩해하는 교주와 군사였다.

그 사이로 빙궁주가 끼어들었다.

“오! 신교의 교주시라니……. 반갑소! 나는 북해빙궁의 궁주 은백광이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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