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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화 (188/200)

188화

처음에는 죽일 듯한 기세를 올리더니 천룡과 인연이 있다는 말에 이리 돌변한 것이다.

빙궁주의 말에 교주와 군사가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다 자세를 바로잡고 포권을 하며 인사를 받았다.

“그, 그렇소? 나는 천마신교의 교주 구양진이오. 여기 이놈은 우리의 군사 백무위라 하오.”

“하하, 우리 사돈과 어떤 인연이신지 모르겠으나 이렇게 만난 우리 또한 인연이 아니겠소?”

“사돈요?”

구양진이 놀란 얼굴로 묻자, 옆에 있던 은여랑이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곳 장주님의 며느리인 은여랑이라고 합니다. 여기 이분이 제 아버지세요.”

천룡과 한 가족이라는 말에 이들을 향한 호감도가 정점까지 올라간 구양진이었다.

“하하하하, 그렇습니까? 장주님과 가족이시라니. 정말 부럽습니다.”

구양진의 말에 은백광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허허허, 제 딸이 복이 많습니다.”

“아버지도 참. 여기서 이러지들 마시고 안으로 들어가세요. 오늘은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은여랑의 안내에 따라 다들 하하 호호거리며 운가장 안으로 들어갔다.

***

광동성(廣東省) 광주(光州).

단목천은 세가가 무너진 것을 확인하고 운가장으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운가장은 자신 혼자 힘으로 어찌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천룡이라는 존재가 단목천의 발길을 붙잡았다.

결국, 단목천은 이곳 광주에 있는 황금천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왔다.

“쯧쯧. 재수도 없군그래. 어찌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만금천의 말에 단목천이 분을 참지 못하고 연신 씩씩거리며 답했다.

“비열한 것들! 내가 자리를 비운 때를 노린 것이야! 으아아악!”

분을 참지 못하겠는지 연신 소리를 질러 대는 단목천이었다.

‘쯧쯧, 네놈이 자리를 비울 때 노렸겠어? 그들이 뭐가 무서워서…….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겠지…….’

물론 속으로만 생각했다.

말로 했다간 저 지랄 같은 성격에 뭔 난리를 피울지 몰랐으니까.

“옥영이에겐 연락했는가?”

만금천의 물음에 단목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답장이 없네. 항시 내가 서신을 보내면 급행으로 답장을 보내던 그녀인데…….”

단목천의 말에 만금천이 뭔가 불안한 눈빛으로 단목천에게 말했다.

“옥영이도…… 당한 것이 아닐까?”

“뭐?”

“그렇지 않은가. 곽정이 당했는데 옥영이라고 무사하겠는가? 다음은 우리 차례일 수도 있네. 생각해 보니 지금 운가장이 문제가 아니구먼.”

“그, 그게 무슨 소린가!”

“지금 우리 목숨이 더 중하게 생겼네. 일단 살아야 뭘 하든지 할 것이 아닌가. 당분간은 이곳에서 지내시게. 내 정보를 알아볼 테니.”

단목천은 지금 당장이라도 운가장을 쳐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만금충의 말도 맞기 때문이었다.

“알겠네. 하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천하의 군자회가 어쩌다가…….”

“너무 능력을 맹신한 대가 아닌가. 차라리 수련을 더 열심히 해야 했네.”

단목천은 그런 만금충의 말에 수긍은 못 하고 그저 자신의 앞에 있는 술만 들이켰다.

그 모습을 쓸쓸히 바라보던 만금충은 심각한 표정으로 계속 생각했다.

‘정말로 주군인가? 주군께서 우리를 지우시는 건가? 아니면 도대체 누구인가? 그런 마기를 지닌 자가…….’

보이지 않는 공포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

군자회의 유일한 여성 옥영은 지금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다.

누군가가 자신의 영역을 파괴하고 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살아남은 사람이 없기에 누군지 정체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쾅-!

“도대체 누구란 말이야!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도 모를 텐데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벌이는 거야!”

옥영이 씩씩거리며 자신의 의자를 내려쳤다.

“궁주님, 어찌할까요?”

이미 이화궁에는 모든 비상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방비하고 긴장을 유지한 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더 짜증이 났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밖에서 서신이 날아왔다.

도와달라는 단목천의 서신.

옥영이 손톱을 깨물었다.

누구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단목천의 도움을 외면해야만 하는 이 심정은 정말 그녀에게 최악의 기분을 선사해 주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해 주겠다.”

그 시각.

이화궁의 또 다른 지부에선 한 명의 여인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곳이 이화궁이 맞는가?”

한기가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그 앞을 지키는 여인 무사들이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여기가 이화궁이라는 것을 알다니! 네년은 누구냐!”

“요즘 우리 궁의 지부를 휩쓸고 다닌다는 년이 혹시 네년이냐?”

두 여인이 표독스러운 얼굴을 하며 묻자, 차가운 인상의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요즘 쓰레기 청소를 좀 하고 다니고 있긴 하지.”

그와 동시에 여인이 기세를 내뿜었다.

“준비하라고 해. 사신이 왔으니 죽을 준비를 하라고.”

여인의 정체는 유가연이었다.

기억을 되찾은 뒤에 그녀는 이를 악물고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다.

그 결과 과거 자신이 이룩했던 경지를 아득히 넘어섰다.

그 즉시 천룡에게 잠시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서신을 남기고 과거 검각을 멸문시켰다는 이화궁을 찾아 나섰다.

그녀는 제일 먼저 과거 검각이 있던 곳으로 향했었다.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대부분 사라졌지만, 곳곳에 남아 있는 과거 검각의 흔적이 그녀를 슬프게 했다.

그러던 찰나에 이곳을 감시하는 무인들을 발견했다.

그들을 제압하고 물어보니 누군가가 의뢰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 그 의뢰자를 찾아 방문했는데 그곳이 이화궁의 지부였던 것이다.

예전에 전부 소멸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이들이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이다.

유가연의 눈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세상에 다시 나왔다면 다시 지워 주지.’

그 길로 세 군데의 이화궁 지부를 박살 내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한편, 유가연의 선전포고에 이곳 지부는 비상이 걸렸다.

그전에 이미 비상이 걸려 있었던 참이었기에 수많은 무인이 무장을 단단히 하고 대기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우르르 나와 유가연을 포위하는 여인들.

무공 수위가 낮은 자들이 없었다.

유가연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 나온 것이냐?”

유가연이 묻자, 이화궁의 무인 중 한 명이 나와 말했다.

“나는 이곳 지부의 지부장인 화월이오! 그대는 누구이기에 이러는 것이오?”

이곳의 지부장이 묻자 유가연이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과거의 악몽이랄까?”

“그게 무슨 말이오?”

“검각.”

“거, 검각이라니! 서, 설마…….”

지부장의 표정이 굳었다.

아직도 과거에 존재했던 검각에 대한 공포가 남아 있기에 지금도 검각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없애고 있는 이화궁이었다.

이곳 지부에 내려온 명령 역시 검각의 흔적을 찾아 세상에서 지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검각이라 당당하게 말하는 여인이 나타난 것이다.

“거, 검각의 후계인가?”

그 말에 유가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내공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검각의 각주이자 검후라 불렸던 여인. 유가연이다! 그리고 너희들의 목숨을 남김없이 거둬 갈 사람이기도 하지.”

유가연의 살기 가득한 기운이 사방팔방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엄청난 살기와 내공이 이화궁 지부의 무인들을 덮쳤다.

“크으으윽!”

“이, 이게 무슨! 으윽!”

“미친! 이런 내공이라니!”

엄청난 압력을 받으며 다들 비틀거렸다.

그보다 놀라운 사실은 바로 유가연의 정체였다.

“거, 검후라니! 마, 말도 안 된다!”

“수백 년 전의 사람일 리 없다! 사실을 말해라! 검후의 후계냐?”

믿을 수 없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당시 검각이 무서웠던 가장 큰 이유인 검후라니.

이건 검각의 후예가 나타난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너희들이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내 기분을 풀 상대가 너희들이라는 것이지.”

유가연이 천천이 검을 뽑아 들었다.

월하천무신공(月下天武神功).

그녀의 성명 절기가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나의 복수는 이제 시작이다.”

유가연의 검이 횡으로 그어졌다.

검이 지나간 길에 있는 모든 것이 베어졌다.

건물도, 사람도, 모든 것을 베어 버렸다.

그렇게 그녀의 검이 이화궁 지부의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기억이 돌아온 그녀는 검각의 복수를 시작했다.

이화궁의 여인들이 이를 악물고 유가연에게 덤벼들었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거대한 호랑이에게 뛰어드는 토끼 떼들 같았다.

그녀의 검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수십 명이 날아갔다.

그녀의 검이 지나간 곳은 폐허가 되었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재앙이었다.

“수백 년 전의 은원이다! 이럴 필요까지 있느냐!”

한 여인이 울부짖으며 말했다.

그 말에 유가연의 표정이 더욱더 차갑게 식었다.

“그런 것치곤 검각을 꾸준히 감시하더군. 너희들도 겁이 났던 것이 아니냐? 보아하니 검각의 후예들은 모조리 죽인 것 같더구나. 겨우겨우 살아남은 아이들까지 모조리.”

“그, 그건!”

“이제 내가 너희들에게 벌을 내릴 차례다. 넌 특별히 살려 주지. 가서 알려라. 이제 벌을 받을 시간이니 목을 깨끗이 씻고 기다리라고.”

그녀는 자신의 말을 지키기라도 하듯이 방금 살려 주겠다고 한 여인을 제외하고 모조리 도륙했다.

이화궁 지부에 죽음을 내리고는 유가연은 천천히 몸을 돌려 어디론가 걸어갔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인은 유가연이 가는 방향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녀가 가는 방향은 바로 이화궁이 있는 방향이었다.

벌떡 일어나 이를 악물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경공을 펼쳐 날아갔다.

경공을 펼쳐 날아가는 여인의 얼굴은 공포에 물들어 있었다.

자신을 지나가는 여인을 보며 유가연은 검을 꼭 쥐며 중얼거렸다.

“가가…… 금방 돌아갈게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그녀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

황금천으로 한 가지 희소식이 날아왔다.

“이 서신의 내용이 정말이냐?”

만금충의 물음에 수하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직접 확인한 내용입니다.”

“으하하하. 어서 단목가주를 불러오거라.”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단목천이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들어왔다.

“기회가 왔네.”

“무슨 기회 말인가.”

“자네 가문의 복수.”

만금충의 말에 아무런 감정이 없던 그의 얼굴에 감정이 생겨났다.

최근에 연달아 벌어진 일로 축 처진 모습으로 지내던 단목천이었다.

“그, 그게 정말인가? 어떻게?”

“운가장의 장주와 그 제자들이 여행을 떠났다는군.”

“여행? 그, 그렇다면?”

“운가장에 그 괴물들이 없다는 소리지!”

만금충의 말에 단목천이 손뼉을 치며 환하게 웃었다.

“옳거니! 우리 가문도 내가 없을 때 그 사달이 났으니 나도 똑같이 갚아 줄 수 있겠군.”

“그걸세! 하지만 괴물들이 사라졌다 해도 그곳은 방심하면 안 되는 곳일세. 칠왕십제들이 아직 남아 있네.”

만금충의 말에 단목천이 인상을 찡그리며 언성을 높였다.

“흥! 그깟 칠왕십제따위는 내 상대가 되지 않네! 자네는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삼황도 나에겐 안 되네!”

“이 사람아! 그런 방심이 큰 화를 부르네. 신중 또 신중해야 하네.”

만금충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었기에 단목천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나도 돕겠네.”

“자네가? 자네는 무공이 약하지 않은가?”

“그, 그것을 꼭 내 면전에 대놓고 말해야 속이 시원한가?”

“미, 미안하네.”

만금충의 최대 치부 중 하나였다.

무공이 약하다는 것.

그렇다고 정말로 약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었다.

군자회의 사람들에 비해 약하다는 것이지 그들이 아닌 다른 자들과 비교했을 때 만금충은 칠왕십제급을 넘어선 존재였다.

또한, 군자회에서 약하다 해도 그를 무시하는 군자회 사람은 없었다.

그의 능력은 상재에서 발휘가 되었으니까.

상재로 등급을 매긴다면 그는 삼황급이라 할 수 있었다.

“조심하시게.”

“알았네. 그런데 어찌 돕는다는 것인가?”

“크크크. 돈으로 고수를 초빙해야지.”

“허허허, 이 사람이? 운가장을 치겠다는 고수가 있겠는가?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네 힘을 잘 알고 있네. 그대로 적들의 힘을 분산시키면 더욱더 쉽지 않겠는가.”

만금충의 말에 단목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지원은 자네에게 맡기겠네.”

“곧바로 준비하겠네. 이미 섭외해 놓은 고수들이 있으니. 크크크. 그들에게 서신을 전하기만 하면 되네.”

“고맙네.”

“고맙긴. 상황을 보아하니 자네와 나는 힘을 합쳐야만 하네. 알겠는가?”

“물론일세. 나 역시 자네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걸세.”

“하하하, 고맙네. 자, 자. 어서 준비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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