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
하남 숭산에 위치한 소림사.
경건하고 조용해야 할 그곳이 소란스러웠다.
사람들은 저마다 누군가를 찾아 애타게 헤매고 있었다.
“여기도 없습니다!”
“장경각에는? 그 녀석이 제일 자주 가는 곳이 아니더냐!”
“거기도 없습니다.”
“아니, 그럼 어디로 갔단 말이냐!”
소림사 방장이 결국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 이마를 짚으며 불호를 계속 외쳤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그런 방장의 모습에 눈치를 보며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무언가를 들고 다급하게 달려오며 외쳤다.
“서신입니다! 서신이에요!”
“서신? 그놈이 남긴 것이냐?”
“그렇습니다. 산문으로 불공을 드리러 오시는 분께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어서 이리로.”
방장은 서신을 향해 금나수를 펼쳐 뺏어 들었다.
방장의 손에 넘어간 서신에는 그토록 찾던 이의 글이 남겨져 있었다.
서신에는 화룡지체와 천무지체가 있는 운가장에 자신이 직접 가서 그들을 경험하고 오겠다고 적혀 있었다.
요즘 계속 운가장에 보내 달라고 떼를 쓰길래 삼천 배를 시켰더니 하라는 절은 올리지 않고 냅다 튄 것이었다.
“으드득! 이놈이…….”
방장 손에 들려 있는 서신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방장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뭣들 하느냐. 당장 추격조를 보내라! 운가장에 도착하기 전에 잡아라.”
“네!”
무승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지스님, 운가장에 이미 도착을 했으면 어쩌죠? 그놈이 경공 하나는 끝내주는 놈이라.”
“끄응. 운가장에 도착을 했다면 빼 오기 힘들겠지?”
“그렇죠. 안에서 버틴다면 저희로서는 억지로 데려오기도 난감합니다. 더욱이 그곳이 운가장이라면 더더욱……. 아시지 않습니까? 그곳이 어떤 곳인지…….”
무승의 말에 방장이 이마를 짚으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끄응!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번민 덩어리가 왔을꼬.”
방장은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연신 불호를 외우다가 앞에 있는 무승에게 말했다.
“서신을 하나 써 줄 터이니 운가장주님께 전해 드리거라.”
“서신요?”
“끄응, 이왕 갔으니 잘 부탁한다고 전해야 할 것이 아니냐. 잡아 오면 다행이지만 못 잡았을 경우도 생각해야 하니 일단 서신을 전하자꾸나.”
“알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곳은 천하제일인이 있고 삼황이 있는 곳이 아닙니까. 중원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아닙니까. 어찌 보면 여기보다 더 안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는 한데…… 괜히 가서 화룡지체하고 분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 그러지. 그놈이 헛된 생각에 빠져 있어서 화룡지체는 악이라 생각을 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닌가.”
“그래서 직접 경험을 하겠다며 간 것이군요. 허 참.”
“화룡지체를 보자마자 벌하겠다며 덤비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 그건 큰일 아닙니까? 혹여라도 잘못해서 운가장에 피해라도 간다면…….”
“삼황께서 우리 소림사로 쳐들어오시겠지……. 하아, 내 업보로세, 업보야. 아미타불! 아미타불!”
“주지스님…….”
“일단 방으로 가세. 서신을 적어 줄 테니. 그리고 좀 쉬어야겠네.”
계속 앓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방으로 힘없이 걸어가는 방장이었다.
그런 방장을 안쓰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무승이었다.
***
오행체 중의 한 명이 금강지체(金剛之體) 원각.
그가 바로 소림사에서 탈출한 문제의 중이었다.
그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는 운가장 앞에 섰다.
‘저곳이군. 내가 직접 그 실체를 까발리겠다. 화룡은 예로부터 재앙의 화신이었다. 그것을 세상에 알리고 말겠다. 그래서 스승님께 내 말이 맞다는 것을 알려 드리고 말겠다.’
각오를 다지고 운가장의 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데 어디서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마음이 평안해지는 기운.
자꾸만 불공을 올리고 싶은 기운이었다.
원각은 자신도 모르게 그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한 청년이 해맑게 웃으며 합장을 하고 있었다.
“이곳엔 무슨 볼일이 있어서 오셨습니까? 스님.”
손문이 지나가다가 운가장 앞에서 서성거리는 원각을 보고 다가온 것이다.
원각은 손문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기운에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이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기운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역시나 자신이 아는 이가 그곳에 서 있었다.
“아, 아니! 시주께선 어찌 이곳에 계십니까?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원각이 반가움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역시 예전에 저를 찾아오셨던 스님이 맞으시군요. 저는 잘 지냈습니다. 저기 초지의문이라는 의문에서 의원이 되기 위해 공부 중이지요.”
손문의 말에 원각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오! 역시. 이런 기운을 가지셨으니 중생을 구제하시는 일을 하시는 것이 어울리겠지요. 하하, 소승이 오늘 아주 귀한 인연을 다시 만난 것 같습니다.”
“하하, 저 역시 스님을 이리 뵈니 정말 좋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선 여긴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아, 운가장에 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저랑 같이 들어가시지요.”
“운가장과 연이 있으십니까?”
“하하, 여기 장주님이 저의 주군이십니다.”
손문의 대답에 원각이 정말로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네에?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게 놀랄 일입니까?”
“운가장의 장주님에 대한 소문만 들어서……. 그것보다…… 시주님은 오행체 중에 한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하하하, 오행체가 뭐 대숩니까? 저희 주군께서는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지요. 그분의 품 안에 있으면 세상 걱정 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지요.”
“그 정도입니까?”
“물론입니다.”
“하하하, 그럼 오늘 뵐 수 있는 것입니까?”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물어보는 원각이었다.
“음, 지금 주군께선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아쉽지만 당분간은 주군께 스님 소개를 해 드리긴 힘들 것 같군요.”
손문의 말에 원각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운가장주 천룡에 대한 소문을 그도 들었다.
모든 이가 인정한 진정한 천하제일인.
삼황이 그의 제자고, 칠왕십제가 수하였다.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차기 천하제일인이라는 화룡지체까지 수하였다.
거기에 천용지체인 손문까지.
이쯤 되니 더더욱 천룡이 보고 싶은 원각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원각은 운가장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손문을 따라갔다.
저 멀리 수련장에서 익숙한 기운들이 느껴졌다.
자신과 같은 오행의 기운이었다.
그런데 두 명이 아니었다.
자신이 알기로는 천무지체와 화룡지체가 이곳에 있다고 했는데 또 다른 한 명이 같이 대련을 하고 있었다.
“저, 저자는?”
원각이 놀란 얼굴로 손가락을 가리키자 손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저기 저분은 북해빙궁의 소궁주이십니다.”
“부, 북해빙궁요? 그, 그곳에서 어찌?”
“북해빙궁도 주군의 품 안에 있는 곳입니다.”
“그, 그게 무슨? 말도 안 됩니다! 새외에서 알아주는 강자인데 어찌?”
원각이 경악을 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 소리에 대련하던 세 명의 이목이 쏠렸다.
“잠시 쉬었다 하세. 흥미로운 기운이어서 말이지.”
소궁주가 원각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방과 진천 역시 원각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모두 모인 것이다.
다섯 명의 오행체가 말이다.
원각은 대번에 은천상의 기운을 알아챘다.
그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이럴 수가! 서, 설마 그대도?”
원각이 북해빙궁의 소궁주 은천상을 바라보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무엇을 묻는 것인지 대충 짐작이 되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원각이 자신 주변에 있는 이들을 하나하나 되짚어서 보기 시작했다.
“마, 맙소사! 이곳에 전부 모였어. 오행체가 전부…… 이게…… 무슨?”
두려웠다.
세상에 어떤 재앙이 오려고 그러는 것인지 너무도 두려웠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원각을 손문이 치유의 기운으로 보듬어 주었다.
“진정하세요.”
청아한 기운이 몸속으로 들어오자 안정이 된 원각.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합장을 하며 용서를 빌었다.
“소, 소승이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전설의 오행체가 이리 다 모였다니 사실 저도 속으로 무척 놀라고 있습니다.”
“하하하, 오행체가 다 모인 것도 놀랍지만 그 장소가 운가장이라니. 그것도 다 장주님과 인연이 있는 자들이라는 게 더 놀랍지 않습니까?”
그랬다.
원각을 제외하고 나머지 네 명은 천룡과 큰 인연이 있는 자들이었다.
“이상하게 장주님만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드네.”
은천상의 말에 진천과 조방, 손문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심신이 안정되고 포근하고 그렇지.”
“맞네! 맞네! 하하하. 다들 같은 기분이었구먼.”
다들 격하게 공감을 하고 있는 와중에 원각만이 이해를 못 하고 있었다.
“하하, 스님께서도 주군을 뵈면 저희의 말을 이해하실 겁니다.”
조방이 말하자 원각이 조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왜 그러십니까?”
원각은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조방의 기운은 악기(惡氣)가 아니었다.
자신보다 더 깨끗하고 정기가 넘쳤다.
그랬기에 이리 놀라고 있던 것이다.
‘내가 크게 오해를 하고 있었구나. 아미타불. 내가 지금까지 본 그 누구보다 선한 기운이다. 그저 구전되어 오는 말에 현혹되어 그를 나쁘게만 생각했구나. 사부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생각과는 다른 조방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스님? 괜찮으십니까?”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조방을 보니 더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원각은 솔직하게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소승이 수행이 부족하여 그대를 크게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오해요?”
“소승은 화룡지체를 악한 기운의 정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소승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원각은 자신이 들은 내용과 그동안 세상에 나온 화룡지체가 한 일들에 대해 말을 하고는 자신이 왜 조방을 경계했는지 말을 했다.
그러자 조방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그러셨습니까? 제가 만약 정말로 그런 나쁜 행동을 했다면…… 주군께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조방이 웃으며 한 말에 조방과 원각을 제외한 세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그분께서 화를 내시면…….”
“세상이 무너지지. 안 돼. 절대로 그분을 화나게 해선 안 되지. 근래에 내가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 무서운 말이었네.”
“동감하네!”
진천과 은천상이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우리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지요? 나중에 보면 알게 될 거요.”
“그, 그렇습니까?”
“하하하, 이리 오시오. 우리 이럴 게 아니라 같은 오행체끼리 모임 하나 만듭시다.”
“모임 좋지요! 그럼 모임을 만드는 기념으로 술을 제가 사겠습니다.”
“저, 저는 주, 중입니다. 수, 술은…….”
“아! 정정합니다. 술 말고 곡주로 하시지요. 곡주.”
“그, 그것도 술…….”
“어허, 술 아니고 곡주라니까요. 아니다. 차가운 곡차. 스님께선 곡차를 드신 겁니다.”
“고, 곡차라면 뭐…….”
“하하하, 어서 갑시다!”
원각은 반강제로 끌려가다시피 이들의 손에 이끌려 움직였다.
***
“헉헉!”
천룡이 거친 숨소리를 내보내며 힘겹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아버지, 제 등에 업히세요.”
“됐다. 내가 무슨 환자냐?”
“그래도…… 너무 힘들어하시니까…….”
무광의 말에 옆에 있던 천명과 태성이 울컥했는지 울먹였다.
“사부님…….”
“사부…… 흐윽. 흐윽!”
“아! 이놈들이 진짜 내가 죽었냐? 어? 죽었어?”
“약해진 모습을 보니 제자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흑흑.”
천명의 말에 다들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괜찮다니까? 정 안 되면 뭐 처음부터 다시 수련하지, 뭐. 뭔 걱정이냐?”
천룡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 보이자 제자들 역시 억지로 인상을 펴며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지만.
아무런 힘이 없는 천룡은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다행히 몸은 튼튼했기에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해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그것이라도 어디냐며 감사하는 제자들이었다.
건강하시기만 하면 되었다.
자신들이 지키고 모시며 살아가면 되니까.
이렇게 고생고생하며 수십 일을 이동한 결과 목적지에 도달하였다.
“휴우, 결계를 치워 놓길 망정이지 하마터면 못 들어갈 뻔했다.”
이곳의 모든 물건을 옮기기 위해 결계를 부순 것이 이렇게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천룡은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선유동으로 들어갔다.
선유동은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옮긴 뒤여서 휑한 모습만 보이었다.
그래도 풍경은 그대로였기에 천룡은 고향에 온 기분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사색을 하며 이곳을 살펴볼 예정이다. 너희들은 야영 준비를 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