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미소를 지으며 서서히 희미해지더니 천룡의 눈앞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춘 사부.
천룡은 하염없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제자 운천룡. 반드시 사부님의 말씀을 받들어 영웅문의 문규를 지키며 살아갈 것입니다! 하늘에서 꼭 지켜봐 주십시오.”
그리고 천천히 온 정성을 다해 사부가 사라진 곳을 향해 큰 절을 올리는 천룡이었다.
그 순간 천룡의 모든 신체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제석천의 힘을 머금기 위해 신체가 다시 재구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참 동안 사라지고 재생하고를 반복하더니 온몸의 세포가 황금빛으로 변했다.
금빛은 서서히 사라지고 다시 살색으로 돌아왔고, 그때 천룡의 몸이 땅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땅에 착지하고도 한참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천룡.
천룡의 눈이 떠졌다.
눈에서 잠시 금빛의 기운이 감돌았다가 사라졌다.
천룡이 천천히 일어났다.
그때 동굴 밖에서 제자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들어왔다.
“아버지! 괘, 괜찮으세요?”
“사부님!”
“사부!”
그 모습에 천룡은 이제야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제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달려왔다.
“아, 아버지! 이제 괜찮으신 거죠?”
“사부님! 변하신 것 같습니다.”
“사부! 사부! 우와! 예전보다 더 강해지신 것 같아요!”
무광의 말에 천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궁금하더냐?”
천룡의 말에 세 세자의 고개가 격하게 끄덕여졌다.
그 모습에 천룡이 피식 웃었다.
천룡이 잠시 자신의 힘을 개방했다.
후웅-!
아주 살짝 힘을 개방했을 뿐인데 엄청난 기의 폭풍이 그곳을 뒤덮었다.
“우왓!”
“헉!”
“으아악!”
아주 살짝 보여 준 힘에 제자들이 기겁을 했다.
“우와, 이게 뭡니까? 새로운 경지로 올라서신 겁니까?”
“와! 거기서 더 올라갈 경지가 있습니까?”
“사부 따라 가려면 얼마나 더 살아야 할지…….”
제자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천룡을 바라보았다.
천룡이 그런 제자들을 못 말리겠다는 눈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힘이다.”
“네에?”
“이곳은 우리 영웅문이 만들어 논 일종의 대피처? 그런 곳이었고. 그리고 나는 세상을 멸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제석천의 현신이었다.”
천룡의 말에 세 제자가 두려운 눈으로 천룡을 바라보며 울먹거렸다.
자신의 사부가 하는 말이 너무도 무섭고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아버지.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갑자기 무섭게…….”
“그, 그래요. 사부님! 세, 세상을 멸하기 위해 오셨다니요. 그런 농담은 하지 마세요.”
“제자들 심장 떨어지는 꼴 보고 싶으신 겁니까?”
다들 공포에 빠진 눈으로 천룡을 바라보았다.
천룡이 세상을 멸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막을 사람이 없다.
전의 천룡이어도 막을 수 없는데, 하물며 지금은 상상도 못 한 경지에 올라간 천룡이다.
그야말로 정말 재앙이었다.
“사실이다. 그래서 오행체가 세상에 나온 것이고. 사실 오행체는 나를 막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보조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지. 그리해서 내가 그 체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고.”
천룡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충격과 공포였다.
“그, 그러니까 아버지는 세상을 멸하기 위해 내려온 존재고, 오행체는 그런 아버지를 보조하기 위해 나온 존재들이라고요?”
“그렇지.”
“그, 그럼?”
오들오들 떨면서 천룡을 바라보는 세 제자.
그 모습에 천룡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내가 이겼다. 세상을 멸할 제석천은 없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무광의 말에 천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지. 이렇게 사랑스러운 내 새끼들이 사는 세상을 내가 어찌 파괴를 한단 말이냐? 지키면 지켰지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거라.”
천룡의 말에 다들 안색이 활짝 펴지며 안심했다.
“그, 그렇죠? 저는 아버지를 믿고 있었다고요!”
“사형이 제일 덜덜 떨었어요.”
“뭐? 인마? 내가 어, 언제!”
“지금도 오들오들 떨고 있잖아요.”
“그러는 너는? 너 인마, 오줌 지렸어!”
무광의 말에 천명이 자신의 가랑이를 보니 옷이 희미하게 젖어 있었다.
“이, 이건 그, 그러니까…… 시, 식은땀입니다! 식은땀!”
“지랄하네! 야! 냄새나! 으! 지린내…….”
“어휴, 사형들 사부를 얼마나 못 믿었으면 그럽니까? 저처럼 담대하게 믿고 그랬어야죠.”
태성의 말에 다들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태성아…….”
“네? 왜요. 저는 떨지도 않았고, 오줌도 안 지렸습니다.”
“네 표정 인마…… 귀신이라도 본 거 같아. 표정이라도 풀고 말해.”
그 말에 황급히 표정을 풀어 보려 했지만 어찌나 놀랐는지 굳은 채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그 모습에 천룡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호라…… 그러니까 이 사부를 믿지 않았다?”
천룡의 말에 다들 격하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아버지! 오, 오해십니다!”
“사, 사부님. 이, 일단 진정하시고…….”
“진정? 날 안 믿었다는데 진정?”
“아, 아버지.”
“사부님…….”
“앞으로 말 잘 들어라. 알겠지? 안 그러면…….”
마지막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무엇인지 알 거 같았다.
고개를 정신없이 끄덕이는 세 사람.
그 모습에 천룡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하!”
즐거움이 가득한 웃음이었다.
그제야 제자들은 천룡이 장난친 것을 깨닫고 조용히 천룡의 곁으로 다가가 그를 안았다.
“다시 돌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셋의 마음이 담긴 말에 천룡이 그들을 꼭 안아 주며 말했다.
“우리 아주 오래오래 함께 지내자꾸나.”
“네! 두말하면 입 아픈 말씀이십니다.”
“그 말을 기다렸습니다!”
“당연하지요! 제발 좀 떨어지라고 할 때까지 붙어 있을 겁니다!”
“야…… 그건 좀.”
천룡이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다들 행복한 표정으로 웃었다.
***
콰콰쾅-!
평화롭던 운가장에 거대한 폭음이 들려왔다.
“와아아아!”
“모조리 죽여라!”
“싹 쓸어 버려!”
수천에 달하는 무인들이 일제히 운가장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땡땡땡땡땡-!
종이 깨질 정도로 요란하게 울렸다.
“비상! 적이다!”
“비상! 비상! 습격이다!”
“막아라! 적들이 운가장 안으로 들어가게 해선 안 된다!”
엄청난 소란에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일이야? 적이라니?”
“습격? 아니 중원 천지에 운가장을 습격하는 미친놈들이 있다고?”
조방과 진천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잠시 지어 보이다가 인상을 찡그리며 달려 나갔다.
“어느 미친놈들인지 모르겠지만 혼쭐을 내주겠다!”
“나도 동감이다!”
달려 나가는 둘의 뒤로 원각과 은천상이 따라붙었다.
“같이 가세!”
그 말에 조방이 말했다.
“손님은 들어가시지? 손님들 손까지 빌릴 정도로 우리 운가장은 약하지 않아!”
“어느 미친놈이 운가장이 약하다더냐? 그래도 우리까지 가세하면 더 금방 끝날 테니 돕겠다는 거지.”
이들은 엄청 친해져 있는 상태였다.
원각 역시 친구가 되어 이렇게 어울리고 있었다.
특히 자신이 가장 경계했던 조방과 가장 친해져 있었다.
정문 앞에 도착하니 이미 운가장의 무인들과 정체 모를 무인들이 한판 붙고 있었다.
“뭐야? 저 미친놈들은?”
“엄청나게 몰려왔는데?”
“장주님께서 자리를 비운 것을 노리고 온 것 같다! 다들 나가자.”
조방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전투에 가세했다.
전설의 신체들답게 무지막지한 공격력으로 적들 사이에서 종횡무진(縱橫無盡)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설상의 신체라는 오행체들이 가세하자 적들이 크게 당황했다.
“크윽! 뭐, 뭐냐! 어린 것들을 보아 칠왕십제는 아닌데.”
“강하다! 제길. 운가장은 어린놈들도 강한가?”
“크윽! 뭣들 해! 저 애새끼들부터 잡아!”
그렇게 말하는 상대도 약하지 않았다.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지만, 백중지세로 맞붙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란이냐!”
구양진과 은백광의 등장이었다.
그 뒤를 이어 장천과 여월, 울지랑이 가세했다.
“으드득! 감히 이곳이 어딘 줄 알고, 습격이라니! 용서치 않는다!”
이들까지 전투에 뛰어들었다.
구양진과 은백광은 상황을 지켜보았다.
손님으로 온 상태이기에 함부로 나설 수는 없었다.
지켜보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가세하기로 했다.
그때 저쪽에서 다섯 명의 강한 무인들이 등장했다.
“크크크! 이런 싸움이라니 재밌다! 재밌어!”
“그만 웃고 각자 한 명씩 맡아!”
“네놈이 대장이 아니다! 명령하지 마라!”
“흥! 유치하기는!”
그들은 각각 장천과 여월, 울지랑의 앞을 막아섰다.
나머지 둘은 운가장의 무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네놈들은 뭐냐!”
“너희와 같은 칠왕십제다. 크크크. 명왕. 붙어 보고 싶었다. 내 소원을 이리 풀게 되다니. 흐흐흐.”
“뭐? 이곳이 어딘지는 알고 온 것이냐?”
“알지. 아주 잘 알지. 소문에 천하제일이라던데 장주는 어디 갔느냐? 겁먹고 도망을 간 것이냐? 크하하하. 삼황은 또 어디에 있느냐?”
능글거리며 도발을 하는 상대에게 장천이 이를 악물고 주먹을 날렸다.
“어이쿠! 놀라라! 크하하!”
가볍게 날렸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저리 가볍게 피할 공격은 아니었다.
장천이 의심의 눈초리로 남자를 바라보자 남자가 한껏 웃으며 말했다.
“크크크크. 영약의 효과인가? 네놈은 상상도 못 할 내공이 내 몸 안에 있다.”
자신감의 원천이 바로 저것이었다.
어쩐지 내공이 무식하게 많은 것 같더라니.
장천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겨우 그것을 믿고 이곳을 온 것이냐? 그리고 겨우 그것을 믿고 나를 도발한 것이고?”
“흐흐흐, 왜? 두려운 것이냐?”
“하하하하. 두렵다고? 미쳤구나? 이거나 받아 보고 얘기해라!”
장천이 주먹을 휘두르자 엄청난 풍압이 상대를 덮쳤다.
“호월봉신권(弧月封神拳)!”
그런데 흐릿한 잔상과 함께 상대의 신형이 사라진 것이다.
장천의 호월봉신권은 잔상을 흐트러뜨리며 뒤로 날아가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었다.
쿠콰콰쾅-!
“크크크, 어딜 보나? 나는 이곳에 있는데?”
“환영? 환영마제(幻影魔帝)더냐?”
“크크크, 그렇다. 본좌가 바로 그 유명한 환영마제니라.”
“흥! 무공이 약하니 어설픈 사술(邪術)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놈이 말이 많구나.”
장천이 비웃으며 말하자 환영마제가 발끈하며 자신의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크크크. 이 막대한 내공을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다니. 좋다! 내 진정한 힘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두고 보자!”
환영마제가 꺼내 든 것은 부적이었다.
그가 부적을 사방에 뿌리자 부적이 이상한 괴수로 변하며 장천에게 덤벼들었다.
크아아아앙-!
“어차피 환영이겠지.”
슈악-!
장천이 주먹을 휘두르자, 환영이라 생각했던 괴수들의 실체가 느껴졌다.
“어? 환영이 아니야?”
“크크크크. 멍청한 놈! 나의 기술은 환영을 넘어섰다! 그놈들은 지옥에서 소환한 지옥 마수들이다! 어디 한번 당해 봐라!”
크르르르르-!
장천의 주변을 둘러싼 거대 괴수들.
으르렁거리며 장천의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크하하하! 겁먹은 것이냐? 아까처럼 깐죽대 보아라! 명왕, 명왕 하더니 별거 아니군.”
환영마제가 자신을 비웃자 장천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겁? 지금 그거 나한테 한 소리야? 신기해서 잠시 쳐다본 것뿐이다.”
장천의 몸에서 막대한 내공이 뿜어 나왔다.
고오오오오-!
“이따위 똥개들쯤이야.”
말과 동시에 잔상만 남기고 사라진 장천.
푸학-! 푸학-! 푸학, 푸학-!
사라진 장천의 신형이 자신의 주변에 있는 괴수들 앞에 나타날 때마다 폭죽 터지듯이 괴수들의 몸이 터져 나갔다.
“뭐, 뭐야? 이, 이럴 수가! 이렇게 쉽게 처리한다고?”
믿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저들은 지옥 괴수야! 지옥 괴수라고! 지상의 힘이 통하지 않는 괴물들이라고!”
경악하는 환영마제의 귀로 장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엄청 별 볼 일 없는데?”
“닥…….”
퍼억-!
“커허헉!”
장천의 주먹이 환영마제의 복부에 꽂혔다.
“너도 별 볼 일 없고. 내가 아까 말했지? 이런 잔재주로는 우리를 어찌할 수 없다고.”
콰당탕탕-!
방금 전의 공격으로 힘없이 구석으로 날아간 환영마제였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뒤에 경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렇게 차이가 날 리가 없다……. 이럴 리가 없어! 나의 내공은 무적이다! 그, 그래! 내가 방심한 것이다! 으드득!”
환영마제가 벌떡 일어나 이를 악물고 장천을 향해 달려갔다.
그의 몸에서 붉은 빛이 감도는 기운들이 넘실거렸다.
“만천랑마수(滿天狼魔手)!”
환영마제가 현란한 손놀림으로 춤을 추듯 흔들자 여기저기서 수십 개의 뿌연 강기들이 늑대 형상으로 변형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