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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화 (194/200)

194화

단목천이 사라지자 상태가 이상했던 사람들의 정신이 멀쩡하게 돌아왔다.

“어? 내가 왜 여기에 있지? 나는 밖에서 경계를 하고 있었는데?”

다들 밖에서 주변을 정리하거나 경계를 하던 무인들이었다.

어리둥절해하는 그들을 보며 천룡이 말했다.

“아무래도 저들 중에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는 자가 있었는가 보군.”

천룡의 말에 제갈군이 그의 곁으로 와서 대꾸를 하였다.

“주군께서 놓칠 정도면 그 능력이 대단한 자인가 봅니다.”

제갈군의 말에 천룡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보다 기척을 없애는 기술도 있는 것 같은데……. 순식간에 내 앞에서 사라졌어.”

“아무도 그가 사라지는 것을 느낀 자가 없습니다. 어찌 된 것일까요?”

“모르겠다. 오늘 일은 정말인지 황당하군.”

그런 천룡을 제갈군은 미소 지으며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제갈군의 뜨거운 시선을 느낀 천룡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왜? 잘하면 내 얼굴 뚫어지겠다.”

“네? 하하, 주군. 말솜씨가 엄청 좋아지셨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겼더니 이렇게 됐나 보다. 그래도 힘을 되찾아서 다행이다. 하마터면…….”

천룡은 말을 하다 말고 주변을 천천히 돌아봤다.

그곳에는 자신과 인연을 맺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뒷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알아들었다.

“저희야말로 주군께서 이리 건강하게 돌아오셔서 너무 기쁩니다.”

제갈군의 말에 장천과 여월, 조방 그리고 울지랑이 천룡의 앞으로 달려와 연신 눈물을 흘렸다.

그런 이들을 토닥이며 달래 주고 구양진과 은백광에게 다가갔다.

“사돈,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을 한 것인데요. 이곳은 제 딸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은백광의 말에 천룡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옆에 있는 구양진을 바라보았다.

내상을 입어서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천룡이 구양진의 손을 감싸 쥐며 말했다.

“고맙다. 너에겐 큰 은혜를 입었구나.”

“그, 그 무슨 말씀입니까? 저희가 받은 은혜에 비하면 아직 멀었습니다.”

“아니다. 고맙다. 이들은 내 전부다. 네가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말 고맙다.”

천룡의 진심이 담긴 감사에 구양진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천룡의 따스한 기운이 구양진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너무나도 포근한 기분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아 버렸다.

서서히 무너지는 구양진을 천룡이 조심스럽게 감싸 안은 뒤에 수하들에게 말했다.

“조심해서 침상으로 옮겨라.”

“네!”

백무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천룡과 구양진을 번갈아 바라보자 천룡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말아라.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 내 활인기를 몸 안에 넣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전보다 더 쌩쌩하게 움직일 게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하고 구양진이 사라진 방향으로 달려가는 백무위였다.

천룡은 어수선한 장내를 정리하고 수하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 * *

찰싹-! 찰싹-!

“이보게! 정신 차리게! 단목천, 이 친구야! 정신 차려!”

만금충은 기절한 단목천을 연신 흔들었다.

잠시 후에 눈을 뜬 단목천은 만금충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자네, 기억이 안 나나?”

만금충의 말에 갑자기 이마가 아파 왔다.

“윽! 이마가 너무 아프네. 무슨 일이지? 여긴 어딘가?”

정말로 기억을 못 하고 있었다.

엄청난 충격에 기억을 잃은 듯했다.

“이 친구야! 자네 간신히 살아왔어! 여기는 내 방이고!”

“내가? 그러고 보니 나는 운가장에 쳐들어갔었는데…….”

서서히 돌아오는 기억에 단목천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 그렇군. 겨우 살아 돌아온 게 맞았군.”

“이제 기억이 좀 돌아왔는가?”

만금충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주위를 끄는 동안 자네가 공간 이동 부적을 사용했기에 망정이지, 자네나 나나 그곳에서 세상 하직할 뻔했네.”

“그, 그렇지. 기억이 나네. 그 와중에도 부적을 찢어서 탈출할 생각을 한 내가 대단하군.”

“나도 거기 무인들에게 최면을 걸고 그 자리에서 부적을 찢었네. 안 그랬으면 잡혔을 거야.”

“그래도 마진강 그자에게 받은 부적이 요긴하게 써먹혔군.”

“자, 자네 이제 완전히 등을 돌리기로 마음을 먹었는가?”

“거기서 느꼈네. 자네도 느끼지 않았는가? 운천룡이라는 자의 힘을.”

“나는 정확하게는 못 느꼈네. 그저 자네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보고 짐작만 하는 게지.”

만금충의 말에 단목천이 욱신거리는 이마를 부여잡고 말했다.

“괴물이네. 마진강과 똑같은 괴물.”

“그 정도인가?”

“그러네. 그런 자에게 우리를 던진 걸세.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우리를 버렸다는 뜻일세.”

“우리는 정말로 버림을 받은 것인가?”

“버림? 하하하, 버림이라. 우리는 버림을 받은 게 아니고 원래 버려져 있었어. 이제야 그것을 깨달은 것이지.”

“…….”

만금충이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럴 때가 아닐세. 어서 정리해서 숨어야 하네. 언제 저들이 우리를 찾아 이곳으로 올지 모를 일이네.”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만금충에게 말하는 단목천이었다.

“그, 그렇군. 내가 이렇게 정신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일단 자네는 쉬고 있게.”

“아니네. 나도 돕겠네. 같이 나가세.”

 * * *

“흐음, 뭐지? 권능을 가진 영혼들이 나를 배척하는 느낌이 드는데?”

마진강이 인상을 찡그리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영혼 각인을 해 놓을 걸 그랬나? 일일이 찾아다니려니 귀찮군.”

마진강의 말에 옆에서 조용히 움직이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소신이 찾아보겠습니다.”

그의 말에 마진강이 고개를 저었다.

“네놈은 느낄 수 없다. 그나저나…… 마기가 광동 쪽으로 이어지는구나. 그곳에 누가 있더라?”

“그곳은 만금충의 영역입니다. 주군.”

“아! 그놈이 거기에 살던가? 그럼 그곳으로 가자. 얼굴도 볼 겸 잠시 휴식도 취할 겸…….”

“알겠습니다.”

남자는 곧바로 수하들에게 황금천으로 방향을 잡으라고 명했다.

마차가 방향을 바꿔 이동을 시작했다.

마진강은 마차 밖의 풍경을 보며 사색에 잠겼다.

한참을 그리 이동하다가 마진강이 나직하게 말했다.

“이제 이곳 풍경을 보는 것도 멀지 않았군.”

마진강의 중얼거림에 앞에 있던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주, 주군. 멀지 않았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쯧, 왜 남의 혼잣말을 엿듣고 그러느냐?”

“소, 소신이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니옵고…….”

“크크, 되었다. 말 그대로다. 중원 생활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이지.”

“어디를 가십니까?”

수하의 말에 마진강이 조용히 그를 바라보다 말했다.

“가야지. 내 고향으로. 오랫동안 기다려 온 순간인데.”

마진강의 말에 수하는 입을 다물었다.

고향으로 가겠다는데 더 이상 뭘 말한단 말인가.

“소신이 끝까지 모시겠습니다.”

우직했다.

그런 수하를 보며 마진강이 웃으며 말했다.

“너는 내가 원망스럽지 않더냐? 너희들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항상 방관하는 나를 말이다.”

마진강의 말에 남자가 손사래를 치며 황급하게 말했다.

“그,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신은 단 한 번도 주군을 원망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남자의 말에 마진강이 웃었다.

“고맙다, 수야. 내 고향에 있을 때 네놈 같은 수하만 있었어도 심심하진 않았을 텐데.”

“신! 독고수! 반드시 그 고향에 소신이 꼭 따라가 주군을 끝까지 보필할 것입니다.”

독고수의 답에 마진강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창밖의 풍경을 조용히 감상하기 시작했다.

 * * *

광동성(広東省) 광주(廣州).

사람들은 수많은 중원 요리 중에서도 광주 요리는 언제나 최고로 쳤다.

그 광동 요리의 중심이 바로 광주였다.

광주의 식당가는 한 명의 남자로 인해 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들어가는 집마다 어마어마한 양을 먹어 치우며 그 가게의 몇 달분의 매상을 올려 주고 있었다.

그 덕에 광주의 모든 가게에서 그자를 모셔 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대인! 저희 가게로 오십시오! 팔보채가 아주 맛있습니다!”

“대인! 저희 가게는 오장향육이 끝내줍니다! 한번 맛보시면 이해를 하실 겁니다!”

“대인! 대인!”

그가 가는 곳마다 주인장이 직접 나와 가게 안으로 안내를 할 정도로 광주에서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는 바로 은마성이었다.

-오늘은 저 집으로 정했다!

‘하아, 이제 돈이 떨어져 간다. 적당히 좀 하자.’

-돈? 돈은 만들면 되지! 세상에 널린 게 돈이다!

‘뭐? 훔치자는 소리냐? 나는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내가 그런 짓을 한 것을 알면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우습게 알 것인가.’

-크크. 오해를 했구나. 훔치자는 게 아니지. 나눔을 받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나눔?’

-어느 세상이나 뒷골목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으로 안다. 그놈들이 깨끗한 돈을 쓸리는 없고 조용히 가서 몇 대 쥐어박고 나누자고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나더러 지금 골목 건달들 돈을 뜯으라는 거냐? 이 나에게?’

-뭐 어때? 세상 사람들이 알 리가 없잖나.

‘절대 그럴 순 없다.’

-고지식하긴. 하아, 그럼 다른 방법이…….

‘있다.’

-있다고? 뭔데?

‘이곳에 내가 목표로 한 놈이 있다. 그놈을 처리하고 그자가 가진 재산을 빼앗으면 되지. 그자는 중원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진 놈이니 네가 중원의 모든 음식을 먹는다 해도 돈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오오오! 그거 좋은 생각이군. 하하하하. 어디냐! 당장 가자!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전부 개방해서라도 널 돕겠다.

마현의 말에 은마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 지금 가려고?

‘그럼?’

마현의 마음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방금 마현이 들어가자고 조른 가게다.

‘하아, 그래. 먹고 하자.’

-크크크크. 탁월한 선택이다. 자, 어서 가자! 어서!

은마성은 고개를 흔들며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운가장.

천룡은 오행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흠, 그들이 너희들을 찾는 게 확실하다, 이거지?”

천룡의 물음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왜 찾을까? 무슨 이율까?”

“자신에게 위협이 되니 미리 제거를 하려고 찾는 게 아닐까요?”

제갈군의 말에 손문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그들은 제가 다칠까 봐 항상 조심스러워 했습니다. 아마 그것은 아닐 겁니다.”

“그럼 뭐지? 수하로 만들려고 그런 건가?”

다들 이유를 찾아보려 고민했지만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됐다.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있으니 크게 걱정할 것 없다. 너희를 괴롭히는 놈들은 내가 다 혼내 줄 테니. 나만 믿어!”

천룡의 말에 다들 눈동자가 풀렸다.

선유동에서 알게 된 사실에 의하면 오행체 자체가 천룡의 수족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더 깊게 천룡에게 빠져드는 다섯 명이었다.

특히 원각은 천룡과 첫 대면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피어오르는 복종심과 존경심. 그리고 경외감이 그의 몸을 감쌌다.

자신이 모셔야 할 것은 대자 대비한 부처님이라고 생각하며 천룡을 향한 마음을 돌리려고 수도 없이 불호를 외웠다.

그러나 모든 게 허사였다.

점점 마음이 기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도 봐라.

자신도 모르게 눈이 풀린 채 천룡을 주시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충성심 가득한 수하의 눈이었다.

원각이 이럴진대 나머지는 오죽하겠나.

그중에 조방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주, 주군! 크흑! 저, 저희를 그렇게까지…….”

차마 말을 잇지 못하며 울먹거렸다.

조방에 이어 손문 역시 울먹거리며 말했다.

“주군…… 역시 제 운명은 주군의 품 안이었나 봅니다. 흑!”

“그, 그러니?”

손문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눈빛을 반짝였다.

손문의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고개를 돌리니 옆에 조방이 더 반짝거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은 천룡은 서둘러 이들을 내보내기로 했다.

“그, 그래.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다음에 또 뭔가가 나오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네!”

말은 또 엄청 잘 듣는다.

잘 듣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신앙 수준이었다.

애들이 다 나간 것을 확인한 천룡은 의자에 주저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오행체가 나가자 뒤를 이어 제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버지, 왜 그리 피곤한 얼굴로 앉아 계세요?”

“그럴 일이 있었다. 너희들은 어쩐 일이냐?”

“장천이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무슨 소식?”

“단목천에 관한 소식요. 광주에서 모습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광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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