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프롤로그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부터 굉장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나와 가장 연이 깊었던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후....'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녀는 예전부터 몸이 좋지 않았으니까.
"아연씨."
물론 그녀가 겉으로는 그런 기색을 표한 적은 잘 없었다. 하지만 며칠씩 치료 때문에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었기에 알고는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연락이 닿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생각했다. 걱정은 되었지만,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었다.
"고마웠어요."
7년간 방송을 하면서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소중한 것은 방송 초기에 그녀를만난 것이었다.
내가 몇 번이고 방송을 그만두고싶었을 때, 매니저였던 그녀가 도와줬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제대로 수익이 나지 않는 방송을 7년이나 끌고 올 수 있었겠지.
"근데,아연씨. 전 역시 재능이 없는 것 같아요."
나는 손에 쥐고 있던 편지, 아니 유서를 힘껏 구겼다.
내 방송 덕분에 자신이 구원받았다며 자신이 없어도 계속 방송해달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장례식장을 나와서 집에 도착하자 밀린 공과금 봉투들이 눈에 들어왔다.
최근 터진 전염병 사태로 인해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해서 해결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런 내가 무슨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거야."
당장 자신의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패배자였다.
"방송을 그만둘까?"
방송을 그만두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솔직히 방송 외에는 마음이 동하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매번 아르바이트로 급한 상황만 모면해 왔던 거였다.
"이래서 사람이 부정적으로 되는 걸지도 모르겠네."
타로 방송을 하면서 시청자들의 상담을 받아주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 가끔 모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청자들이 있었는데, 지금이라면 그런 시청자들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것에도 자신이 없고, 다 포기하고싶어지는 기분.
어지간하면 괜찮다면서 애써 무시해온 현실이 눈앞을 가로막는 것만 같았다.
'그래, 끝내자.'
결국 방송이라는 건 나를 보여주는 것인데, 이런 상태의 나를 보여줘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하지만, 그만두더라도 마무리는 해야지.'
그건 이런 상황에서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 고집, 아니 아집이었다.
그만두겠다는 녀석이 이런 걸 생각하고 있는 건 우습게 짝이 없겠지만, 나는 원래부터 이런 인간이었으니까.
[시청자 0명]
방송을 켜고 10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도 시청자를 안내하는 숫자는 0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이런 방송이 무슨 희망을 준다고.'
아연씨는 말버릇처럼,류지한의 방송이 희망을 주는 방송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내가 너무 못난 놈이었다.
"안녕하세요. 류지한입니다."
시청자가 오지 않는다고 무작정 누군가가 들어오길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방송한 영상은 자동으로 저장되어서 남을 테니까.
"지금 방송을 켠 이유는 중요한 공지 사항 때문입니다."
사람이 없으니 채팅창도 조용했다. 나는 그걸 애써 무시하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부로 방송을 그만둘 생각입니다. 지난 7년간 방송을 하면서 정말 즐거웠고, 항상 여러분께 감사했습니다."
방송의 팔로우 리스트를 보고 한 명씩 이름을 읽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스트리머들의 이름도 몇 명 존재했다.
'수증기님이나 유나님한테는 따로 연락해야겠지.'
지금 와서는 스트리머의 대부분과 연락이 끊어졌지만, 그 둘은 지금까지도 연락이 되는 몇 안 되는 분들이었다.
"...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방송을 가장 길게 지켜봐 주신 아연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방송을 종료하려다가, 멍하니 내가팔로우한 스트리머들의 방송들을 바라보았다.
방송을 그만두려는 지금도 저기서 빛나고 있는 스트리머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최고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모습. 저들의 지금이, 이제까지 내가 계속 원해왔던 목표였으니까.
"다들 정말 감사했습니다...."
공지할 부분은 모두 끝났다고 생각해서 방송을 종료하려는데, 현재 시청자 수가 바뀌었다.
[시청자 1명]
그리고 곧 이상한 말이채팅창에 올라왔다.
- 방송 1만 시간 찍으셨네요.
"네?"
방금 들어온 시청자가 뜬금없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혹시나 해서 대시보드를 확인했는데, 정말로 조금 전에 1만 시간을 넘어선 차였다.
"정말이네. 1만 시간 찍었네요."
1만 시간의 법칙, 그렇게 불리는 말이 있다.
어떤 일에 장인이 되려면, 재능이 있다는 전제하에 1만 시간동안 진지하게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하하, 전 재능이 없었나 보네요."
- 재능이 있다면 달랐을까요?
"네?"
역시 아까부터 올라오는 채팅이 신경 쓰여서, 채팅창을 열어 시청자의 닉네임을 확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오류가 있는지 닉네임 부분이 깨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거 뭐야?
- 지한씨의 재능에 맞는 세상에 간다면, 그리고 지한씨에게 충분히 재능이 있다면, 이번에는 다를까요?
"모르겠네요. 하지만, 정말 그런 곳이 있으면 가보고는 싶네요."
- 그렇다면, 한 번 해보시죠.
시청자가 계속 이상한 채팅을 치는 것을 보고만 있다가, 역시 어그로성 채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방송을 꺼버렸다.
"어라?"
그런데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시야가 흐릿해지더니 세상이 빙빙 돌았다. 그리고 점점 몸을 가누기가 어려워졌다.
[성좌: '노력을 사랑ㅎ....
나는 정신을잃는 순간, 시야에 이상한 것이 보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 ☆ ☆ ☆ ☆ ☆ ☆
[당신이 '방송'에 쏟은 시간이 1만 시간에 도달했습니다.]
[시스템: '일만 시간의 법칙'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메커니즘이 '방송'으로 설정됩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시야를 가리는 반투명한 창과 병실의 모습이었다.
집에서 쓰러진 모양이었다. 최근에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 게 원인인가?
'눈앞에 이상한 게 있네.'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이상한 환각까지 보이는 거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병원에 오래 있으면 그것도 다 돈이다. 빨리 퇴원해야겠네.
"아, 망할. 어?"
심지어 목소리까지 이상했다. 감기에 걸린 건가?
몸도 전체적으로 찌뿌둥한 것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각이었다.
몸이 많이 안 좋은가? 나는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일으켜서 병실 한편에 놓여있는 거울에 다가갔다.
"...뭐야 이게"
새하얀 은발이 찰랑찰랑 흔들거린다.
비쩍 마른 왜소한 몸매에 자그마한 키, 그리고 창백한 피부를 가진 소녀가 거울 속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녀는 내가 하는 움직임을 따라 똑같이 움직였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니면 환각?
그렇게 병실을 방황하던 차에, 병실 침대에적힌 환자 이름을 발견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신아연 환자]
거기에 적힌 이름은 분명히 내가 아는 사람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