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1장 - 신입 1일차 중고 스트리머(5)
어쩌면 노골적으로 힌트를 주고 있었다.
피를 버리라니, 어차피 루트를 타면 피를 흡수하지도 않는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7년간 똥겜을 전전한 내 감각이, 그 힌트 자체가 답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잘 생각해 보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직도 플레이어가 피를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이 딱 하나 있으니까.
'그게 무기의 강화를 위한 피 아이템이지.'
즉, 무기의 강화를 해제해서 피를 버려야 한다.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어, 저게 저렇게 되는구나? 일단 제 말이 맞죠?"
이제 촉수가 무작정 재생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가 촉수를 잘라내자, HP바의 색상이 바뀌더니 '제압률'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 뇌지컬ON
- 이게 진짜네
- 이렇게 다 까고 보니까 블엠 갓겜이네
- 또라이 같은 패턴만 아니면 갓겜ㅇㅈ
- 여기서 또 새로운게 나오네
아까 패턴에 익숙해진 덕에 상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물론 패턴 자체는 가장 어려운 편이지만, 워낙 당한 것이 많은 덕에 실수만 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었다.
"좋아 페이즈 변경"
- 엔딩 가즈아
- 마력 관리 잘하네
- ㄹㅇ 나였으면 낭비 엄청함
- 아까 초반에 꼴아박으면서 당연하게 쓰네
2페이즈가 시작되자, 바닥에 있던 피의 웅덩이에서 피로 만들어진 나비가 날아올랐다.
그리고 원래의 촉수들 대신, 피 웅덩이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촉수들이 공격해왔다.
"집중하자 집중"
나비는 평범한 오브젝트지만, 일정 시간이 흐르면 유도 탄환으로 몸을 바꾸고 공격해온다. 이건 마법을 사용한 패링으로만 저지할 수 있다.
나비에게 패링을 하면서 나에게 달려드는 촉수까지 패링할 수는 없다.
나비는 패링하고, 촉수 공격은 회피한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꽤 까다로운 패턴이었다.
물론 내가 피지컬이 미친 듯이 좋다면 쉽게 가능할 수도 있다.
아니, 쉬운 것을 넘어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평범하니까 정석 그대로 해결하는 것이 맞다.
"여기서 패링, 그리고 회피!"
- 아까는 여기서 죽었는데
- 적응 빠르네
- 와 언니 최고야
- 뉴비치곤 개잘하는거지. 심지어 켠왕인데.
- 어쩌다보니 켠왕가네
"아, 씨!"
원래는 회피하고 타격을 입혔어야 했는데헛손질을 했다.
아무리 집중해도, 피지컬과 판단이 밀리는 이상 실수가 나왔다.
'방금 실수에 너무 연연하면 안 돼, 신경 쓰지 말고 다음 패턴에 집중하자'
어느 정도 패턴을 진행하자, 이번에는 나비들이 연속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설마 저거 전부 한 번에 날아오는 거야?
"뭐?"
처음 보는 패턴이었다. 여기부터는 임기응변으로 대응해야 했다.
일단 마법을 통한 방어막은 뚫린다. 방어막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고 들었지만, 연습이 필요한 일이라 지금은 늦었다.
아니면 패링으로 한 번에 모든 나비를 격추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건 지금의 내 피지컬로는 불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계속 생각만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본능적으로 방금 날아온 초탄을 패링하고, 후속타가 날아드는 것을 보자마자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아 미친"
나비는 격추 전까지는 유도탄인 만큼, 금방 방향을 꺾어 따라왔다.
그리고 그걸 패링으로 쳐내는 사이 다른 새로운 탄환이 날아들었다. 이번엔 일반적인 회피로는 피할 시간이 없어서 마법을 사용해서 피했다.
조금이라도 밀리면 죽는다. 마력을 쏟아부어서 쳐내고 피하기를 미친 듯이 반복했다.
"헉, 헉"
- ㅗㅜㅑ
- 방금 개쩔었는데?
- 개잘했음ㄷㄷ
- 검신은 걍 검 한번 긋더니 오는거 다 패링해버리던데
- 원래 이게 공략임
- 그건 검신이 이상한거야
- 검신 이야기 좀 꺼내자 마라
- ㄹㅇ 니들은 눈치도 없냐
나비가 다 사라지자, 바닥에 고인 피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아니 패턴이 또 있어?"
- 막보는 3페이즈임
- ㅋㅋㅋㅋㅋㅋㅋㅋ
- 여기서 죽으면 존나 억울하겠다
- ㄹㅇ 방금은 잘했는데
- 이거 마법 방어막 유지해야할텐데
"아니 방금 그거 뽀록이에요. 다시 하라면 못해!"
물론 보스는 내 말을 기다려 주고 있지않았다.
기괴한 울음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할 정도로 울리더니, 부글부글 끓던 피 웅덩이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와 진짜 딱 봐도 마시면 안 되는 연기네"
- 마시는걸 넘어서 닿으면 죽음
- 대신 공격력이 강한건 아니라 방어막으로 막아짐
- 훈수모드ON
- 마력 좀 아슬아슬한데
- 1페이즈 처럼 촉수만 조지면 됨
- 가즈아ㅏㅏ
채팅창을 보고 방어막을 만들어서 대응하긴 했지만, 확실히 마력이 위험했다.
2페이즈 마지막에 너무 많이 소모한 것이 원인이었다.
"긴장하지 마, 긴장하지 마."
이번에는 방어막이 까다로운 것이지, 패턴 자체는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다시 살아난 1페이즈의 촉수만 처리하면 되니까.
물론 그 방어막을 유지하며 싸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2페이즈의 나비 난사 패턴보다는 쉽겠지.
숨을 참아가며 촉수를 베어내는 것에 집중하다가,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온 다른 촉수를 향해 반사적으로 패링을 했다.
"흡!"
- 깜짝이야.
- 이젠 본능적으로 패링하네
- 우리 뉴비 어디갔어
- 블엠이 하루만에 사람을 썩혔어
- 어떻게 하루만에 썩은물이 되냐
열심히 딜링에만 집중하다 보니, 금방 남은 마력이 끝에 도달했다. 곁눈질로 확인하니 제압률은 0에 가까웠다.
딱 한 번 찌를 마력이 부족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마자, 마음을 비우고 방어막을 해제한 뒤 마력을 흡수했다.
내가 방어막이 없어서 죽기 전에, 내 공격이 먼저 닿으면 이길 수 있다.
"으하아압!"
파직!
창날이 촉수에 닿았다고 인지한 순간, 몸의 제어권이 사라졌다. 컷 신이었다.
- 주모!!!!!!
- ㅊㅊㅊㅊㅊㅊㅊㅊㅊ
- 남은 마력 봤냐? ㅅㅂㅋㅋㅋㅋㅋ
- 이 집 방송 잘하네ㅋㅋㅋㅋ
- 실패하는 줄 알고 존나 똥줄탐
- 내가 다 신나네 와ㅋㅋ
- ㄹㅇ이게 방송천재지
- 빨리 클립 따라
['진찐자라'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여기 박으려고 충전한건 아닌데, 안줄수가 없었다.
['눈송이달송이'님이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설화 주려던거 여기 넣고 갑니다ㅋㅋ루ㅋㅋ
'컷 신일 때는 말을 못 하네.'
그게 불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주인공 캐릭터가 보스에게 뛰어들더니 핏덩이를 갈라냈다.
주인공이 보스에서 핏덩이를 다 떼어내자, 보스가 완전히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당신은?」
주인공은 보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뒤에 이제까지 싸웠던 몹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저는....」
주인공은 자신을 따라온 이들을 조용히 바라보더니, 곧 뒤돌아서 바깥으로 나가는 문을 창으로 후려쳤다.
콰강!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부서지고 그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아니, 나는 이름이 없다.」
「우리는 이름이 없는 자들이다. 고독을 만들기 위한 재료로써 소모되는 소모품. 그게 우리다.」
「하지만 정말 그것으로 괜찮은가?」
- ㅗㅜㅑ 연출
- 애들 살아있네ㅠㅠ
- 두번째 보스는 없는데?
- 이걸 보기 위해 밤 샜다
- 앗 아아....
- 와 이건 내가 아는 블엠이 아닌데?
「나는 그런 인생을 거부할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살겠다.」
「이제부터 내 이름은 천마다.」
「너희들은 어떠한가, 여전히 이름 없이 살아갈 것인가?」
- ????
- 천...마?
- 이게 천마네
- 그럼 이름 없는 무공은 천마신공이냐고
- 천마가 뭔데 씹덕들아
- 여기서 천마가 왜 나와
- 와 천마!
「혈교의 더러운 피를 버릴 수 있는자만 나를 따라라.」
「나는 이제 죽어버린 피가 아니라, 맥동하는 살아있는 피를 위해 살겠다.」
「우리는 살아있는 피, 마를 숭상하는 마교다.」
[진 엔딩: 마교 건설 완료]
메시지가 나타나고, 주변이 어두워지더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와 드디어 끝났네. 진찐자라님 1만원 후원 감사합니다. 눈송이달송이님 5만원 후원 감사합니다. 이거 어쩌다보니 켠왕을 해버렸네요."
- 진엔딩ㄷㄷ
- 혈교에서 마교가 나온다는 설정인가?
- 이게 끝임? 뭔가 허무한데
- 근데 원래 결말도 이런 열린 결말임
- 암튼ㅊㅊㅊㅊㅊ
"다들 감사합니다. 와, 몇 시간을 한 거지?"
- !업타임
- 봇 없나?
- 지금 대충 14시간 정도 됨
- ????ㅁㅊ
- 벌써 시간이 그렇게 갔다고?
- 분명 밤에 시작했는데 지금 점심임
"아, 저 봇 아직 안 넣었어요. 뭐 넣을지 고민 중이라서요. 14시간이요? 와, 나 미쳤나 봐."
- 슬슬 방종각 잡아야겠네
- 게임도 깼으니깐
- 슬슬 쉬어야 할듯
- 큐브 처음인데 14시간 달렸으면 엄청 지쳤을텐데
"그러게요. 어지간하면 나가서 대화 모드로 이야기 좀 하다가 가려고 했는데.... 14시간이면 여기서 방종해야겠네요."
- ㅂㅂㅂㅂ
- 스바ㅂㅂ
- 바위바위
- 나도 슬슬 자야지
- 별바
- 지금 잔다고?
- 방송 처음부터 다 봐서 이제라도 자야함
"어지간하면 내일도 방송 켜겠습니다. 팔로우해 주신 분들, 채팅 쳐주신 분들, 후원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스바~"
[생방송 OFF]
큐브를 끄자, 몽롱한 느낌과 함께 정신이 들었다.
질척질척한 기분 나쁜 감각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이거 수액 때문이구나.
버튼을 누르자 바닥에고인 수액이 빠져나가더니, 체온에 맞게 물이 나와서 대충 몸을 헹구어줬다. 갖춰둔 수건으로 물기를 대충 닦고 큐브 밖으로 나왔다.
"어우...."
살짝 현기증이 나서 넘어질 뻔했다.
방송 중에는 워낙 방송이 잘 진행되고 있어서 방송만 생각하느라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 엄청나게 피곤한 상태였다.
"흐흐, 흐흐흐...."
확실히 내가 방송에 미친놈인 건 확실했다. 어라, 나 방금 확실하다고 두 번 한 것 같은데.
"아, 정신 차리자 정신...."
욕실로 가서 샤워기로 물을 틀었다.
일단 이 끈적거리는 수액을 닦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진 물이 머리를 훑고 지나가자 좀 정신이 들었다.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정산을 시작합니다.]
[방송으로 14시간이 추가됩니다.]
[팔로워 보상으로 327시간(3274명)이 추가됩니다.]
"와 3274명이었어? 그나저나 팔로우도 시간을 주는구나. 10명당 1시간인가?"
그럼 세계개변을 하려면 약 1천만 명을 팔로우시켜야 한다. 그 정도면 거의 업계 톱인데?
아니지, 큐브온의 팔로우도 같이 정산되는 거라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겠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간단한 이펙트와 함께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처음으로 방송을 완료했습니다. 방송의 패턴을 분석해서 보상이 주어집니다.]
[특성 '초심자의 행운(A)'을 습득합니다.]
첫 번째 방송을 마쳐서, 게임에서의 튜토리얼 보상처럼 준 것이라고 이해하면 맞으려나?
"패턴을 분석해서? 설마방송에서 히든 루트를 발견해서 이걸 준 건가?“
[초심자의 행운(A)
처음으로 진행하는 게임에서 특별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커집니다.
하지만 꼭 그것이 긍정적인 방향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특별한 일은 어떤 걸 말하는지,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지, 특성의 설명만으로는 정확한 의미를 알기어려웠다.
하지만 만약 저것이 이번 방송으로 인해 주어진 것이라면, 다른 게임을 할 때도 오늘 같은 경험을 할 가능성을 올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타당했다.
"이런 것이 특성이란 말이지."
어떤 식으로 동작하는지는 잘 예상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특별한 일이 벌어진다는 말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게임에서 특별한 일이 벌어진다는 건, 방송의 재미를 늘려주는 거니까."
솔직히 나는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방송만 잘 되면 그걸로 행복할 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