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화 〉2장 - 진짜 방송 레전드네(1) (7/182)



〈 7화 〉2장 - 진짜 방송 레전드네(1)

머리에 짙은 두통이 깔려있었다.
술 방송을  다음 날에 숙취로 고생할 때의 감각과 비슷한 느낌이네.
머리맡에 두고 잤던 휴대폰을 집어 들고 날짜와 시간을 확인했다. 오늘은 첫 방송의 다음 날인 4월 5일, 시각은 오전 7시였다.

"대체 몇 시간을 잔 거야?"

샤워가 끝나고 몸을 말린 후에 죽은 듯이 잠이 들었으니, 거의 17시간 정도는 잔 것 같았다.
어제 방송을 14시간이나 하면서 좀 무리한 점이랑 내 생각보다 큐브를 사용할 때 오는 피로감이 높았던 것이 원인이겠지.
방송하는 동안 그 피로를 눈치채지 못했던 이유는, 당연히 방송으로 인한 흥분감 때문이었다. 지난 7년간 항상 하고 싶었던 방송이 이런 방송이었으니까.

"시청자가 많을 때는 천명도 넘어갔었네."

대시보드를 켜서 시청자 그래프를 보니 놀라운 수준이었다.
7년 동안 본 적이 없었던 수치를 보고 있자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 배고프네...."

그러다가 어제 방송을 시작한 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수액을 사용하면 큐브에서는 어느 정도 영양분을 보충할 수는 있지만, 큐브 밖에 나와서 잠을 잤으니까.
어차피 집에 있는 것이라곤 죄다 즉석식품이라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냉장고에서 괜찮아 보이는 제품을  개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이제야 좀 사람이 사는 것 같네."

밥을 먹고, 간단하게 세수를  뒤에 밖에 나가서 짧게 조깅을 했다.
몸 관리는 어느 정도 해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세계에서는 전염병이 퍼지지 않았기 때문에 밖에 나갈 때에 마스크를 굳이 챙길 필요가 없었고, 그 덕에 운동도 더 상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간단하게 씻고 몸을 정돈한 뒤에 컴퓨터를 켰다.

"맞다, 큐브온에도 영상을 올려야 하는데."

녹화된 저번 방송 파일을 꺼내서  편집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리 커미션이나 외주를 통해 받아둔 이미지를 써서 자막을 다는 식으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하이라이트만 몇 개 뽑자"

대충 기억을 더듬어서 중요했던 부분을 묶기 시작했다.
다만 추가로 효과음을 넣거나 이펙트를 넣는 건 시간 관계상 패스.
그래도 7년간 해왔던 작업이라,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대충 필요한 부분들을 묶은 다음에는 연습을 위해 재도전하는 내용을 스킵해서 최대한 분량을 줄였다.

"근데 진짜 빠르네."

이 세상에서 아직 적응이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좋은 컴퓨터 성능이었다.
초고화질 편집 영상을 추출하는 것이 이렇게 빠르다니.
심지어 이전 세상에서는 방송을 위해 컴퓨터를 두 개 사용해야 했는데, 여기서는 워낙 성능이 좋아져서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물론 두 개가 필요하다고 해도, 나는 큐브 게임 위주라서 하나만 있어도 충분했겠지만.

"업로드는 했고...."

물론 처음 올리는 영상이니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터였다. 이따가 스위치 소개에 링크 달아놔야지.
아, 이제 슬슬 방송을 켜야겠는데?

"오늘은 게임 말고 대화모드로 할까...."

대화모드, 예전에 사용하던 플랫폼에서의 저스트 채팅이라는 카테고리와 비슷했다. 게임이나 특별한 설계 없이 시청자와소통하는 방송을 할 때 사용하는 스위치의 카테고리다.
큐브 방송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게 아니니까 일단은 익숙한 컴퓨터 방송으로 진행할 속셈이었다.

"일단 방송을 켜고 이야기하면서 생각할까...."

스위치를 켜고 방송들을 둘러보니,  많은 방송이 블러드엠페러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방송 제목들에 천마루트 라는 말이 많이 적혀있었다.
와,설마 어제 새로운 루트 발견되었다고 이러는 거야?
스위치 추천 방송 목록을 스크롤하다가, 대화모드 카테고리에 보이는 설화월화라는 스트리머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 호스팅 해주고, 미션까지 걸어주신 그분이구나."

감사 인사를 할까 싶어서 방송 섬네일을 보자, 캠이 귀여운 외모를 비추고 있는 모습이 나왔다.

"...어?"

여성 스트리머였구나. 심지어 엄청 예쁜데?

'너무 편협한 생각이었나?'

예상하지 못한 현실에 당황해서 멈칫했다. 어제 채팅이나 후원의 스타일 때문에 당연히 남성 스트리머라고 생각했었다.

"아 정말 아는 게 너무 없네, 새싹위키라도 보고 와야지."

뭐라도 정보가 있어야 실수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가 다른 스트리머에 대해 모두 알 수는없다.
하지만 최소 친해질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실수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는 알아둬야겠다는 판단이었다.

"설화월화.... 본명은 정봄, 22세의 여성 스트리머."

방송하는 플랫폼은 건빵TV에서 영구정지를 당한 이후로 스위치TV로 이적. 소속사는 캔디박스, 크루는 아발론?

"크루 부분에 취소선이 있네."

크루는 스트리머들끼리 모여서 만드는 팀이랑 비슷한 것이다. 비슷한 성향의 스트리머가 모인 모임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취소선이 있다는 것은 이제 아발론 크루 소속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항상 이런 부분이 언급하기 위험한 문제인데....

"해체했네?"

아발론 크루의 멤버는 '강주현', '포카버터칩', '루냐', '수증기', '콘소메', '설화월화'로 6명이었다. 해체 이유가....

"크루장인 검신 강주현이 방송을 접고 잠적?"

 채팅에서 본 검신이라는 사람이 이 스트리머구나?
크루원도 잠적 이유를 모른다. 결국 크루는 해체했지만, 여전히 이전 크루원들끼리의 사이는 좋다.

"검신이라는 분의 언급은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네."

어제 채팅 때문에 물어볼까 생각했었는데 큰일  뻔했네.
항상 논쟁거리가 될만한 주제는 피하는 것이 좋았다.

'그나저나 수증기님이 여기에도'

한동안 스위치를 통해 방송을 보면서, 내가 아는 스트리머들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런 스트리머를 발견하자 꽤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수증기님은 원래 세상에서 나를 많이 도와줬던 스트리머였다.
혹시나 해서 문서를 확인하니, 내가 아는 수증기님이 맞았다.

"기회가 되면 방송 봐야겠다."

일단 수증기님은 지금 방송 중이 아니었다.
지금은 아까 봤던 설화월화님 방송에 인사를 드리는 것이 먼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설화월화님의 방송을 클릭했다.

"아 개 꼴려, 섹스...."
- ?

나오는 소리에 놀라서 본능적으로 물음표를 타이핑했다.
그 뒤로도 뇌가 정지해서 몸이굳었다. 내가 잘  들은 건가? 뭐지, 잠시만....

야스ㅋㅋㅋㅋ
- 월화 오늘 불타는거 봐
- 뭐야 하얀별님 찐임?
- ㅁㅊ찐이네
- ㅋㅋㅋㅋㅋㅋ하필 이 타이밍에
- 물음표ㅋㅋㅋㅋㅋㅋ

"아 미친, 하얀별님 오해에요. 아니 그러니까.... 아, 아무튼 하얀별님 어서 오세요."

오해 아니죠?
- 자기 자신이 변명을 포기했네
- 물음표 왜캐 웃겨ㅋㅋㅋ
- 오늘 정지각 보나 했는데 이걸 브레이크거네
- 저분 누구임? 스트리머인가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여기 방송 뭐지? 원래 여캠 스트리머가 이렇게 방송하던가?
내가 가진 기존 사고관이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목소리나 외모랑은 다르게 엄청난 분이시네.

-  죄송합니다. 좀 놀라서요ㅎㅎ
- 어제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며 채팅을 보냈다.
뭐, 맵긴 하지만 그게 방송 스타일이면 내가 터치할 부분이 아니었다.
어제 나를 도와준 걸 생각하면 나쁜 분도 아닐 거고.

"아뇨 저도 스수로 놀러간 거니까요. 앗 하얀별님 팔로우 감사합니다. 영원히 함께해요?"

네?

"팔로우 리액션이에요! 아니, 눈송이 달송이들 조용히 안해?"

- 우리가 왜 조용히 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탄압보소
- 의ㅡ심
평소에 안하는 팔로우 리엑션을 굳이?
솔직히 좀 무섭지
- 켜자마자 야스가 나오는 방송
- 영원히 함께라니 후덜덜

['스수 먹방'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스위치 클립)

「하, 오늘따라 달송이들 개 꼴리네」
「먹고 싶다」

"야, 앞뒤  자르고 저거만 보여주면 오해하잖아!"

- 월화ㅗㅜㅑ
- 오해?
오해가 어디 있는데
- ??????
- 님 원래 저런 사람이잖아요
- 이걸 일코각을 보네?

음, 좋아. 이번엔 그래도 예상했더니 버틸 만하다.그나저나 방금 그 클립에서는 목소리 톤이 다르네.

- 어,  힘내세요. 저는 방송 준비하러 가볼게요.
"아, 진짜  그런 사람 아니에요. 하얀별님!"

- 빤스런ㅋㅋㅋㅋ
- 도망친다ㅋㅋ
이건 솔직히 도망칠만 했다
- 스수도 먹고 타스도 먹는 스트리머

"아니야!"

일단 방송을 껐다. 절대 도망친 건 아니었다. 이제 슬슬  방송을 준비해야 해서 끈 것이었다.

"옷 괜찮나? 아 목도  풀어야겠다."

미리 준비해놓은 대화모드용 설정을 불러왔다.
캠을 다시 확인한 다음에, 팔로우나 후원 알림 등이  동작하는지 확인했다.

"어?"

그래서 방송을 시작하려는데, 스위치 계정에 쪽지가 도착해 있었다.
아까까지는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방금 도착한  같았다.

"인증 스트리머로 승급 제안?"

스위치에는 일반 스트리머, 인증 스트리머, 전속 스트리머로 나뉘는 단계가 있다.
처음에는 일반 스트리머로 시작하고, 인증 스트리머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정해진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 상태였다.

'인증 스트리머 조건에는 최소 방송일 수가 있으니까.'

나는 지난 방송 시간에 0시가 걸쳐서  2일이다.
즉, 이건 스위치에서 자체적으로 판단을 내려서 준 기회라는 뜻이다.
물론 일자만 채우면 금방 인증 스트리머가 되겠지만, 이렇게 미리 처리해준 것은 충분히 감사한 일이었다.

"이건 해야지."

수익과 관련된 서류들을 작성하고, 몇 가지 정보를 추가로 입력하자 금방 승인이 났다.

[인증 스트리머가 되셨습니다.]
[이제 광고 수익을 배분받습니다. 구독 기능이 오픈됩니다.]

"이제는 슬슬 방송 켜자."

[신입 스트리머 방송 훈수해주세요]

어차피 대화모드에서는 꼭 중점이 되는 컨텐츠가 필요하지는 않다.
대화모드는 기본적으로 시청자와 스트리머가 소통하는 것 자체가 컨텐츠니까.
하지만 아직 나는 고정 시청자가 없는 뉴비고, 어느 정도는 주제가 있는 것이 좋았다.

"의외로 방송 셋팅에 대해 잘 아는 스수들이 많을 거야."

시청자 활동도 하는 스트리머인 스수리머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방송셋팅이 대화모드의 소재로 나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런 소재로 자주 이야기를 했던 시청자들은,  세상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나보다는 더 가지고 있는 정보가 많을 터였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가 가진 정보를 알려주는 걸 좋아하고, 반대로 모르는 정보를 알아가는 것도 좋아한다.
그걸 노리고 정한 주제였다.

[생방송 ON]

- 어 켜졌네
- 별하
천마다 천마ㅋㅋㅋ
- 

"어, 생각보다 다들 금방 들어오시네요? 반갑습니다. 신입 스트리머 하얀별입니다."

- 외모ㅗㅜㅑ
- 어제 블엠에선 클립에서만 봤는데
-캠 화질 좋네
천하

"아, '예쁜스트리머만팔로우함'님 팔로우 감사합니다. 아, 천마 아니에요. 아니다 천마 맞나?"

닉값ㅋㅋㅋㅋㅋ
- 솔직히 어제 블엠이 여파가  컸음
- ㄹㅇ별님이 진짜 천마님이지
- 별하
생얼이시네 자신감ㄷㄷ

화장이 익숙하지 않아서 생얼로 방송을 켰다. 어제 이미 큐브 내에서 공개된 외모라서 크게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생얼은 제가 오히려 화장에 자신이 없어서 그래요. 어차피 어제 생얼 다 들켰는데."

- 그건 맞지ㅋㅋ
ㄹㅇㅋㅋ
- 생얼로도 충분이 예뻐요
- 자연스러워서 좋음
생얼이었음???

"하하, 입바른 소리 감사합니다."

나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아연씨의 외모는 당연히 이런 반응이 나올 만하다고 생각했다.
아연씨 정도의 외모면 굉장히 상위티어지.

- 여신님 하이
- 방제뭐지 오늘 뭐하나요?
- 오겜무
- ㅇㄱㅁ

"오늘은 바로 게임을 하지는 않을 거고요. 상황 보고 이따가 하겠습니다."

나는 잠시 목을 풀고는 시청자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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