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3장 - 류지한(1)
진정하고 지금 상황을 잘 파악해 보자.
방금 나는 방금 피가 섞인 슬라임을 낳았다. 아니 나 뭐래.
"시발?"
분명 이게 뭔지는 알고 있었다. 여성들이 마법에 걸렸다고 표현하는 그것, 생리겠지.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혹시 몰라서 생리대도 사다가 창고에 구비해 놓았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물론 그게 오늘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아...."
아직방송이 켜져 있는 것을 머릿속으론 생각하고있는데도, 좀처럼 큐브 밖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않았다.
그곳을 통해 조금씩 피가 흘러내리는 생소한 감각이 걸리적거려서 영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그대로 큐브에 들어가서 방송할까?"
가상현실 상태에서는 현실에서의 감각이 차단되니,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질 것이다.
다만 현실에는 지금 이 상태를 방치해야 한다.
'피 냄새가 진동하네.'
일단 왜 여자들이 생리 때마다 기분이 나빠 보였던 것인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계속 거슬리는 감각이 있으면 사람이 짜증이 날 수밖에 없지.
"일단, 방송은 마무리해야지."
이대로 방송을 진행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의자에 앉으려다가 멈칫했다. 이대로 앉으면 의자가 난리가 나겠네.
일단 일어선 상태로 마이크만 켜기로 했다.
"저 왔어요. 뭐야 다들 뭐 했어요?"
- ^^7
- ^^7 ^^7
- 영
- 차
- ^^7
그 사이에 채팅방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활발한 채팅창을 보니까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
겨우 채팅을 본다고 기분이 왜 좋아지냐고 하겠지만, 하얀별이 아니라 류지한이라는 이름으로 방송할 때는 이런 채팅방을 보기 힘들었으니까.
"다들 미안해요. 원래는 대화모드로 계속하려고 했는데, 일이 생겨서 오늘은 이만 방종 해야 할 것 같아요."
- 아 방금 왔는데
- 아쉽
- 그래도 오늘 재밌었다
- 오뱅알
- ㅇㅂㅇ~
- 오늘ㄹㅇ레전드였네
"잠시만요. 호스팅 할 분들 좀 찾아볼게요. 맞다 포카님한테 보내드릴까요?"
설화님이랑 루냐님은 조금 전에 이미 방송을 종료하신 상태였다.
그럼 오늘 합방한 사람 중에 남은 건 포카님 뿐이니까.
- 그건 좀
- 아니다 이 마귀야
- 거기 진혼곡중인데
- 다른 곳 찾아보죠
- 가능하면 목소리 좋은 여스로다가ㅎㅎ
"에이 포카님도 여스인데?"
- ?
- ????
- ??
- 오늘 들은 말 중 가장 황당하네.
- 아 화나네?
- 갈고리 수집 실력 보소?
"큽,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대충 추천 방송 채널들을 둘러봐도 잘 모르겠다.
내가 팔로우한 채널들도 대부분 오프라인이고....
"어? 이분은...."
[월요일 ASMR 정규 방송: 잠 못 드는 밤]
유나님이었다. 여기서도 방송을 하고 계셨구나.
이전 세상에서도 스트리머셨는데, 여기서도 같은 이름으로 스트리머를 하고 계시는 모양이었다.
'유나님도 계셨구나.'
이전 세상에서 알던 스트리머 중에서 지금 세상에서 스트리머 활동을 하는 것이 확인된 사람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리고 그 두 분이 모두 기존에 나를 많이 도와주셨던 스트리머라는 점이 조금 신기했다.
"오케이. 그럼 조용한 방으로 보내드릴게요?"
호스팅 명령어를 미리 입력해놓고, 인사를 시작했다.
"오늘 방송 봐주신 분들, 팔로우해 주신 분들, 구독해주신 분들, 후원으로 즐겁게 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스바!"
- 별바~
- ㅂㅂ
- ㅂㅂㅂㅂ
- 별바별바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엔터를 눌러서 호스팅을 연결했다.
그것과 동시에 나도 유나님의 방송화면을켰다.
"어, 뭐야. 하얀별님 362명 호스팅 감사합니다. 뭐야, 여긴 어떻게 오셨지? 난하난하."
- 안녕하세요. 다들 목소리 좋은 여스분 찾길래 유나님 보내드렸어요.
"아 정말요? 하얀별님 감사합니다. 오늘 방송 수고하셨어요. 아 우리 방은 조용하게 ASMR 하는 방송이에요."
- 오 목소리 좋다
- ASMR?
- 먹방 다음은 ASMR이냐고
- 다들 환영합니다
- 난하난하
- 여기 분위기 엄청 잔잔하네
['융구리당당융당당'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이걸 이렇게 오네? 융하~
"안녕하세요 융당당님. 솜하~ 뭐야 지금 호스팅 타고 오신 거예요?"
- 네
- ㅋㅋㅋㅋㅋㅋㅋ
- 호스팅을 타고 본진으로 날아왔네
- 저분 여기 방송 설립자잖아?
- ㄴㅇㄱ
- 엌ㅋㅋㅋㅋㅋ
"저분 닉네임의 융이, 유나님을 말하는 거였구나."
그나저나 이 방송은 이쪽 세상에서도 분위기가 비슷하네.
하긴 ASMR은 가상현실이랑 큰 관련은 없는 장르라 그런가?
아니면 방송이 스트리머의 분위기를 따라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 계시면 다들 ASMR 해드리면서 재워드릴게요. 들으면서 주무시려면 착석하시면 됩니다."
- 저거 다 그짓말인데
- 자고 있으면 막깨우면서
- ㅋㅋㅋㅋㅋㅋㅋ
- 약을 줬다가 뺏는 사람
- ㄹㅇ융님 나쁜사람임
"아니 그건 여러분 잘못도 있어요. 맨날 안자고 같이 놀아주시니까, 이제 채팅 없으면 심심하다고요."
- 이걸 우리 탓을 하네
- 여기서 우리 탓을 한다고??
- 유나/인성/논란
- 여기 분들도 재밌으시네
- 융넴 채팅 쳐도 깨우잖아요ㅡㅡ
일단 방송도 종료했으니, 나는 이제 샤워하고 옷 좀 갈아입어야지. 피 때문에 찝찝해.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정산을 시작합니다.]
[방송으로 7시간이 추가됩니다.]
[팔로워 보상으로 68시간(681명)이 추가됩니다.]
"어라 그렇게 많이 팔로우가 많았던 것 같지는 않은데? 아 큐브온도 합산된 거구나."
큐브온 팔로우 수도 정산에 포함되었다. 대체 팔로우 기준이 어떤 기준일까.
이게 아무 사이트나 다 될 것 같지는 않은데.
아니지. 일단 그건 나중에 알아보고 지금은 좀 씻어야겠네.
"후우...."
샤워기에서 쏟아진 물이 몸을 적시자, 조금씩 기분이 나아졌다. 일단 지금은 내일 방송에서 뭘 할지나 생각해야지.
☆ ☆ ☆ ☆ ☆ ☆ ☆
방송을 켜자, 굉장히 빠른 속도로 차오르는 시청자 수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나저나, 세미다이브는 어느 정도 현실의 찝찝함이 남는구나.'
생리 때문에 풀다이브를 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서, 수액을 사용하지 않는 세미다이브로 방송을 켠 상황이었다.
- 어 별하
- 별하별하
- 큐브온 보고 왔어요
- 얀별님 안녕하세요
"스하, 다들 안녕하세요. 다들 반가워요. 안뇽안뇽"
간단하게 어제 방송을 소재로 이야기하던 도중에 영상 후원 하나가 날아왔다.
['그럼 노래부터 한 곡'님이 3,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큐브온 영상)
"노래부터 한 곡님 3천원 후원 감사합니다. 어 이거 심플월드예요?"
- 맞네 심플월드임
- ㅁㅊ
- 저분 진짜 잘하던데
- 개머싯서
- 버프 목록 올라가는거 뭐야
- 연주 개좋아
심플월드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내용이었다.
일단 심플월드의 연출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보는 사람을 압도시키는 무언가가 연주에 있었다.
"진짜 잘하신다. 너무 멋있어 저런 거."
- 역시 수준이 달라
- 진짜 심플월드는....
- 별 사람들이 다 있어
- ㄹㅇ싸우는 모습도 아닌데 개멋있음
- 노래 좋다
- 방장님은 심플월드 언제해요?
영상이 끝나자 자연스레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거짓 한 톨 없이 너무 좋은 연주였다.
"와 진짜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이거 진짜 치유된다. 저 심플월드요? 아, 어제 실컷 먹기만 하다가 끝났지."
그래도 게임을 시작했으니까 좀 더 해볼 필요성은 느껴졌다. 그럼 오늘은 혼자서 심플월드를 좀 해봐야겠네.
['눈치없음'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스위치 클립)
"눈치없음님 천원 후원 감사합니다. 누구클립이지? 포카님이네?"
「나의 마음이, 사랑이. 너를 따라가는걸~」
- 아
- 누구야
- 아ㅡㅡ
- 이걸 진혼곡을 가져오네
- 닉값오지네
- 눈치없는거봐
"흐흐, 나쁘지 않은데 다들 왜 그래요. 포카님 노래 꽤 잘 부르시네."
물론 음악을 메인컨텐츠로 두기에는 애매한 수준인 것은 맞았다.
그래도 서브 컨텐츠로 노래를 부르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 수준인데?
그냥 저 시청자들이 포카님 방송을 오래 봤으니 장난으로 나오는 반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트초코시러'님이 2,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스위치 클립)
"아, 민트초코시러님 2천원 후원 감사합니다."
「아 제발요. 제가 잘못했어요.」
"아."
- 레전드 영상ㅋㅋㅋㅋ
- ㄹㅇ 이거 실시간으로 보고 뒤질뻔함
- 진짜 한참 웃었는데
- 개 레기드였음 진짜
「이리 와서 좀 먹어봐요. 생각보다 괜찮아요.」
「웁, 잠만요. 잠만!」
「어흐, 으아아」
「으헤, 으으....」
「어, 어라? 하얀별님? 우는 거 아니죠?」
「흡, 흐읍....」
그 뒤로 정신을 못 차리던 내가 슬라임 젤리로 인해 질식해 죽는 것으로 클립이 끝났다.
"아니 이걸 왜 보여줘요. 저 안 그래도 편집한다고 계속 봤는데."
- ㅋㅋㅋㅋㅋㅋㅋ
- 왜 재밌는데
- 오쪼라구ㅎ
- 우는거 너무 귀여워
- ㄹㅇㅋㅋ
- 이건 솔직히 평생 놀림거리지
나는 먹을 생각도 없었는데, 억지로 먹인 설화님이 잘못한 거지. 솔직히 좀 억울했다.
"하늘다람찌찌님 팔로우 감사합니다. 계속 함께해주세요."
['융구리당당융당당'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별하
"융당당님 안녕하세요. 스하!"
['알음알음'님이 '융구리당당융당당'님에게 구독권을 선물하셨습니다.]
아, 구독권도 선물이 가능했지.
그나저나 구독 리액션 생각을 안 하고 있었네. 마이크 옵션 켜야겠다.
"어, 뭐야. 알음알음님. 구독권 선물 감사합니다. 잠시만요.... 고맙습니다. 행복합니다. 사랑합니다."
- ㅗㅜㅑ
- 어 뭐야 소매넣기 당했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산타다 산타
- 오늘도 하나의 비구독자가 사라졌다
그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영상 후원이 하나 도착했다.
['난이도 최대로'님이 2,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스위치 클립)
"난이도 최대로님 감사합니다. 어라 블엠이네?"
「악! 아니 난이도 이상하잖아!」
「니들이 해봐! 마력이 안 늘어나는데 이걸 어떻게 깨?」
「진짜 뭔가 놓친 거 같은데.게임이 이럴 리가 없다니까?」
「뭐, 켠왕? 너 진짜 뒤질래?」
영상에서 포카님이 신경질을 내고 있었다. 이거 설마 무공을 안 받는 루트인가?
- ㅋㅋㅋㅋㅋㅋㅋㅋ
- 포카가 죽네ㅋㅋㅋㅋ
- 근데 저거 개빡세다리
- 지금도 하고 있음
- 포카가 고전할 정도면 심한데
- 지금 깬 사람 하나도 없음
"설마 저게무공 없는 루트에요? 뭐야 포카님이 저럴 정도면 얼마나 어려운 거야?"
- 적 쓰러트릴때 마력 추가 없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렇다고 장비 강화가 되는 것도 아니고
- 불살형이라 죽여도 안되고
"저거 세이브도 안 된다면서요. 난 절대 못 하겠네."
그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떠들고, 영상을 같이 보며 즐거워했다.
솔직히 지금이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방송의 분위기라서 그런지 굉장히 기분이 좋아졌다.
"음, 역시 심플월드를 다시 하기는 해야 하는데."
아직도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내 모습이 신경이 쓰였는지, 심플월드에 관한 영상 후원이 추가로 들어왔다.
'수금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하여튼 받은 영상에 집중해봐야지. 그러고 보면 아까 봤던 연주 영상도 엄청 좋았었지?
['광고시간'님이 2,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스위치 클립)
「암튼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래도 방송 시작해서 재밌다고 생각해. 응.」
초원 비슷한 곳에 누운 소녀가, 채팅창을 보며 시청자와 소통하는 내용이었다.
저렇게 심플월드에 접속해서 대화모드를 진행하는 것도 괜찮겠네.
「처음에 설명을 듣고 어떤 느낌이었냐고? 솔직히 별생각 없었는데? 흐음.... 유저들 어떻게 생각하냐고?」
「다들 알겠지만 내가 워낙 좆같은 일이 많았거든. 오히려 그때 날 구해줬던 건 유저였어. 그래서 나는 솔직히 원주민이 더 싫은데. 편견까지는 없지만.」
다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무슨 소리인지 내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원주민이라면 NPC를 말하는 거지?
"사실 내용이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설명 좀 부탁해요."
- 최초의 NPC스트리머가 또
- 아르카쨩ㅜㅜ
- 아르카였네
- 정보:NPC다
- 오우ㅋㅋ
- ㄹㅇ이상한 세상임
"그러니까, 심플월드의 NPC가 스트리머를 하고 있다고?"
나는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의 정보에, 잠시 사고가 정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