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3장 - 류지한(4)
어떻게든 아리아를 데리고 피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넘어졌다.
곧 넘어져 있는 우리를 향해 켈베가 달려들었다.
급하게 마법을 사용해서 켈베를 밀어냈지만, 당연하게도 유효한 피해를 입히는 것에는 실패했다.
"지금!"
그나마 지금이 도망칠 기회라고 생각해서 아리아를 안아 들고 뛰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다리가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들더니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 조졌네
- 어그로 너무 튀었다
- 마법 쓰기 시작했네
- 켈베는 ㄹㅇ 너무 까다로워
- 얼었네
- 차가움 당했네
"이게 뭔...."
정말로 다리가 새하얗게 얼어붙어있었다.
이거 설마 켈베가 공격으로 이렇게 만든 건가?
그렇게 우리가 발이 묶인 사이에 다시 우리 앞까지 다가온 켈베가 불을 뿜어냈다.
급하게 마법을 써서 몸을 밀쳐내는 것으로 회피했다.
"미치겠네."
당장은 어떻게든 피했지만, 아직 엘리베이터까지는 거리가 있었다.
이거 위험한데....
"언니!"
그리고 그 순간 아리아가 엄청난 수준으로 마력을 폭발시켰다.
그것으로 몬스터에 피해는 입히지 못했지만, 마법의 여파로 우리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바닥에 부딪히는 충격에 아리아를 놓쳤고, 아리아는 그대로 벽으로 날아가 머리로 부딪혔다.
"아리아!"
나는 급하게 아리아를 안아 들고 엘리베이터로 달렸다.
파티창에서는 이미 위험할 정도로 아리아의 HP가 줄어들어 있었다.
아니, 출혈 때문인지 남은 HP까지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치료, 치료되라고...! 치료!"
능력을 사용해서 치료했지만, HP가 회복되는 것보다 줄어드는 속도가 더 빨랐다.
출혈 때문이라는 생각에 손으로 어떻게든 지혈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엘, 엘리베이터다."
엘리베이터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에 아리아를 눕히고, 회복 능력을 사용했다.
그리고 탑에서 나가기 위해 0층을 눌렀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염원이 담긴 반지'가 지급됩니다.]
"이, 이 반지가 힐러용이라고했죠?"
- ㄷㄷㄷㄷㄷㄷ
- 어떻게 함;;
- 네
- ㅖ
- 레벨 낮아도 착용 됨
- ㅇㅇ
- 제발
반지를 급하게 끼고 다시 회복 능력을 사용했지만, 여전히 마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언니는 상냥하네요. 언니라면...."
"말하지 마!"
아리아는 희미하게 눈을 뜨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이야기를 했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계속 치료에 집중했다.
"제발, 치료되란 말이야!"
하지만 마력도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았고, 치료 효율도 좋지 못했다.
어떻게든 상태는 유지하고 있었지만....
'마력이....'
하지만 결국은 내 마력이 0이 되었고, 그녀의 HP가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안 돼, 설마 이대로 죽는 건...."
HP를 보여주는 붉은 막대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아리아의 몸이 빛의 파편이 되어서 흩어졌다.
"...어? 아?"
나는 바보 같은 목소리를 냈다. 방금, 죽은 거야? 정말로?
이렇게 허무하게?
[탑이 정산을 시작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느낌이었다. 지금 정말로 죽은 거야?
"욱, 우윽...."
차라리 NPC가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몰랐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과몰입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아리아는 방금까지 내가 대화하고 소통하던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사람이 내 눈앞에서 죽었다고?
"아?"
엘리베이터가 열렸는데도, 난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나가지 않고 있었다.
"하아, 하아...."
눈앞에서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 솔직히 아까까지만 해도 별생각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어질어질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당장이라도 큐브를 종료하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 괜찮아요?
- 아리아ㅜㅜㅜㅜ
- 앗 아앗
- 일단 끄고 쉬세요
- 진정하고 게임부터 꺼요
시청자들도 그렇게 하기를 추천하고 있었다. 시청자들이 보기에도 내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나는 방송을 급하게 종료하고, 큐브에서 나와 화장실에서 헛구역질을 했다.
머리가 어지럽고 구토감이 심하게 몰려왔다.
'만약, 풀다이브로 접속했다면 아리아를 살릴 수 있었을까.'
그걸 확실히 아는 방법은 없었다. 이미 늦어버린 것이니까.
하지만, 풀다이브쪽이 아리아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컸다는 것만 생각해도....
"왜 세미다이브로 접속한 거야!"
그렇게 소리 지른다고 해도, 이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 때문이야.'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은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내가 조금 더 잘했다면 죽지 않았을 거라고 인정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정산을 시작합니다.]
[방송으로 7시간이 추가됩니다.]
[팔로워 보상으로 21시간(214명)이 추가됩니다.]
나는 시야에 나타난 메시지를 치워버리고는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을 감자마자 아까의 상황이 스쳐 지나가듯 떠올랐다.
"망할...."
딱딱한 화장실 바닥을 주먹으로 몇 번 내려쳤다.
워낙 힘이 약한지 제대로 때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내 살갗만 찢어져서 상처가 나서 피가 묻어나올 뿐이었다.
"후우, 후우...."
일단 심호흡하며 진정하고, 화장실 한쪽에 있었던 샤워기를 틀었다.
그리고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찬물에 머리를 가져다 댄 채로 머리를 식히기 시작했다.
옷이 젖어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멍하니 화장실의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나은 것 같긴 하네.'
차가운 물에 머리가 식으니까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리아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악감은 여전히 나를 죄이고 있었다.
"미치겠네."
최근방송이 잘 풀리고 있어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었다.
두 번째 방송을 마친 지금의 성적이, 이미 내가 기존에 했던 방송을 훨씬 넘어서는 성적을 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사건 때문에 자존감이 훅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하긴 내가 뭐 그렇지."
심지어 지금의 성적도 내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솔직히 아연씨가 방송을 했어도, 지금보다는 느리더라도 충분히 성공했겠지.
'아연씨는 꽤 재밌는 분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하얀별은 과연 류지한이라는 나 자신이 이루어낸 스트리머가 맞을까.
아연씨의 몸이라는 반칙을 써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닐까.
그런 방식으로 여기까지 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류지한이라"
벌써 어색해진 내 이름이었다.
내가말하는 목소리에도, 내가 움직이는 몸에도 그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이름: 신아연
잔여시간: 4,714
특성: 초심자의 행운(A)]
심지어 시스템에서도 류지한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생각하면 할수록 생각의 방향이 이상한 쪽으로 가는 것 같았다.
"차라리 방송을 다시 켜는 건...."
하지만 금방 고개를 휘저었다. 방송은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시청자들은 내 감정의 분출구가 아니야."
그 정도의 프로의식은 아직 잊지 않았다.
때론 자주 놓쳐버리는 것이지만, 그래도 지키려고 노력은 해야 하니까.
"망할, 망할...."
혼잣말이 늘어나고 있었다.
원래 방송을 시작하면서 늘어났던 혼잣말이었지만, 지금은 허공에 사운드를 채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관념에 허공에 말을 채워 넣고 있었다.
마치 아까 마력을 쏟아부으면서 아리아를 치료하려고 했던 것처럼,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 진짜. 무슨 별 필요도 없는 생각을 하는 거야...."
한동안 샤워기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이후에야 물기를 닦고, 옷을 갈아입었다.
"아, 생리대."
생리대를 하나 꺼내서 원래 사용하던 생리대를 쉽게 떼어내고 새로 착용했다.
'조금 잘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생리대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 직후 생리혈이 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하"
난 이것조차도 제대로 못 하는구나.
극도의 자기혐오가 밀려오는 것을 억지로 삼키고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했다.
"왜 별것 아닌데 이렇게 화가 나지?"
심호흡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일단 생리대 착용 방법을 찾아보자.
이런 정보도 인터넷에 나와 있겠지.
"아, 팬티에 고정해서 입는 거라고?"
진작 알아보고 입었어야 했는데....
어제는 그럭저럭 고정된 상태로 있길래 제대로 한 줄 알았다. 그냥 우연히 잘 붙어 있었던 것뿐이구나.
"후우...."
생리대를 착용했음에도, 피가 흐르는 감각이 계속 느껴져서 엄청나게 거슬렸다.
"배고프네. 오늘 나 제대로 된 것도 먹은 게 없었지."
일어났을 때 대충 때우기 위해 먹었던 즉석식품이 전부였다. 배가 고플 법도 하다.
'그런 일이 있어도 식욕은 생기는구나.'
그렇다고 또 즉석식품을 먹고 싶지는 않아서,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뭐 먹지"
일단 밖으로 나왔지만, 생각보다 열려 있는 음식점이 없었다.
나오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지금은 죄다 닫을 시간이구나.
"어 여기 아직 하네."
흔한 고깃집이었다. 솔직히 지금 고기를 구워 먹을 정신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뭐, 선택지가 없으니까."
혹시나 해서 주변을 더 살펴봤지만, 이 시간까지 열려 있는 음식점은 없었다.
오히려 유일하게 연 음식점이 고깃집이라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여기 삽겹살 일 인분만 주세요."
고기가 구워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태워 먹을 뻔했다.
슬슬 혼잣말은 끝났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정신은 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 든든하게 먹고.... 정신 차려서 내일도 방송해야지."
그러다가 메뉴판에 있는 소주가 눈에 들어왔다.
술이라도 마시면 좀 기분이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병을 주문했다.
"...감사합니다."
소주병을 따서, 물컵에다가 가득 따라버렸다.
솔직히 술을 마시면서 즐기고 싶은 마음보다는 조금이라도 빨리 취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생각해보니까 이렇게 되고 나서는 처음으로 마시는 거네.'
아연씨의 몸에 들어오기 전에는 집에서 가끔 마셨었다.
다만 아연씨 몸이 된 이후로는 아예 생각도 하지 못했었지.
"어우, 이게 이렇게 썼나."
겨우 소주인데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이 몸 진짜 심각한데....
"크...."
처음에는 고통스러워서 손이 안 갔는데, 조금씩 취기가 올라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벌컥벌컥 마셨다.
'꼴사납네, 정말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도망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웃음이 나왔다.
"결국, 나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구나."
아연씨의 몸을 빌려서 방송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도망치려 했던 놈이니까.
"의외로 금방 사라지네"
소주를 들이켤 때마다 조금씩 생각이 비워지고 있었다. 아 머리 띵하다.
소주 한 병만으로도 충분히 취기가 올라왔다고 생각해서, 그 이상의 주문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계산이요"
겨우 한 병에 제대로 취했는지 몸이 잘 컨트롤 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돈을 지불하고, 집으로 가려고 음식점 밖으로 나왔다.
"아, 왜 이렇게 시야가 뱅뱅 돌지"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분명히 이 정도 갔으면 집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물론 아직 지리에 익숙하지 않아서 착각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그래도 지금 내가 제대로 가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여긴 또 어디야"
나는 이미 이상한 곳에 도착해 있었다.
심지어 이제 발을 딛을수록 시야가 핑하고 돌았다.
"어우, 어지러워."
바닥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자, 반짝이는 별이 참 아름다웠다.
나랑은 다르게 이쁘구나.
"뭐야, 괜찮으세요?"
그 뒤로는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그리고 누가 나를 업고 가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던 것 같다.
반쯤 추측성 발언인 이유는, 내가 그 이후로 필름이 끊겨서 제대로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진짜 미친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