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화 〉3장 - 류지한(6) (18/182)



〈 18화 〉3장 - 류지한(6)

모니터를 켜서 확인하니 스위치의 방송 시작 알림이었다.

['유나'님이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유나님이 방송을 켜셨구나."

팔로우 목록을 확인했지만, 다른 아는 분들은 대부분 방송이 꺼져있었다.

'이거라도 잠시 보다가 방송을 켜면 될 것 같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유나님의 방송을 모니터 한 편에 고정해 두었다.

"다들 안녕하세요. 솜털 여러분 안녕~ 솜하 솜하. 오늘은 정규 방송은 아니지만, 얼마 전에 예고한 대로 사연 라디오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 융하
- 유하
- ㅎㅇㅎㅇ
- 드디어 사연라디오다
- 스위치 넘어오고는 처음이네
유나님 안녕하세요
- 융하

"어, 하얀별님 안녕하세요. 전에는 호스팅 정말 감사했습니다. 나중에  번 은혜 갚기로 호스팅 가야 하는데."
- 아니에요. 좋은 방송이니 추천해주고 싶었어요.
"다시보기 보니까 하얀별님 방송도 재밌던데요? 저도 우리 솜털이들에게 좋은 방송 소개해야죠."

역시 성격이 참 좋은 분이다. 그리고 방송을즐긴다는 게 눈에 보여서 나까지 즐거워지기도 하고.

"사연은 여기 이메일 적어 놓은 것 보이죠? 여기다 보내주시면 됩니다. 원래는 커뮤니티에 비공개글로 하려고 했는데, 그럼 완전익명이 어렵게 되잖아요? 그래서 익명 메일을 만들 수 있는 이메일로 변경했어요."

- 그럼 사연  때까지는 뭐해요
- 그러네
- 지금부터 쓰려면 시간  걸릴텐데
- 다른 컨텐츠 있? 영상후원도 닫혀있고.

"없는데요? 그냥 노가리 깔거에요. 다들 오늘 밥 뭐 드셨어요?"

- 맨날 먹을거 이야기해
- 그만 좀 먹어
- 뜨끈한 국밥
- 그렇게 먹으면서 몸은 어떻게 유지하는거야
- 저 오늘 치킨 먹음

"아닌데? 그렇게 많이 했나?  뭐 먹었냐는 것 정도는 물어볼 수 있지."

- 그거로 30분동안 이야기 하잖아
- 저번엔 채팅이 3분동안 밀린 상태로 대화했으면서
- ㄹㅇ 그건 좀 레전드였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분명 생방송인데 실시간 소통이 불가능한 방송
- ㄹㅇㅋㅋ

"히히, 아니 진짜 그때는 한 명씩 다 보다 보니까 그랬죠."

유나님의 느긋한 저 말투가 확실히 편안함을 주는 것 같았다.
나는 답답해서 저런 발성은  하겠던데.

"어, 지금 사연 들어왔네요. 좋아  번째 사연 가겠습니다."

그냥 내 방송을 해야겠다 싶어서 유나님의 방송을 끄려는데, 유나님의 방송에서 예상치 못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사연 제목은 '이상한 사연이라 죄송해요.' 보내주신 분은 아연님이네요."

아마 그냥 이름이 같을 뿐이겠지.
아연이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이니까. 예전 세상에서는 엄청난 피지컬의 스트리머가 그런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했었다.

"아연님 사연 감사합니다. 정말 이상한 사연인지는 읽어보고 판단할게요?"

하여튼, 너무 과민 반응이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방송을 끄지 못하고 계속 듣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진성스수인 아연이라고 합니다. 항상 유나님의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오, 일단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내 심장은 아플 정도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저는 희귀병, 그것도 그 영향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아 죽음만을 기다리는 처지였습니다."

- 시작부터 개무거운데
- ㅠㅠㅠㅠ
- 첫타부터 엄청 쌔다
- ㅜㅜㅜ
아....

"아니, 시한부?"

이상해.
같은 이름인데 거기까지 똑같은 건 뭔가 이상하잖아. 누가 일부러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좋은 사고로 가족도 전부 죽고, 홀로 남아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스위치를 통해 어떤 스트리머분의 방송을 보게 되었어요."

"꿈, 인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야?"

갈수록 숨을 제대로  수가 없어서 억지로 심호흡을 했다.
아연씨는 죽었다. 그래서 이 세상으로 넘어올 수 없었고, 갈 곳이 없었던 내가  몸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연씨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그런 것이 가능한 거야?

"그분이 그때 희망이 되는 말을 많이 해 주셔서 저는 바뀌었어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야, 아니에요. 저는 그냥...."

나는 그냥 평소처럼 했을 뿐이었다.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그래서 제 인생이 바뀌었어요. 특히 매일 같이 스위치를 보게  것도 그 덕이네요. 그러다 유나님의 방송도 알게 되었고요. 와, 저도 그분에게 감사해야겠네요?"

- 인방의 순기능ㄷㄷ
- 이걸 스트리머가
- ㅋㅋㅋㅋㅋㅋㅋ
- 일단 이 방송 이야기는 아니었던 걸로
내용  좋다
분명 사연라디오인데 북리딩 같아
- 훈-훈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야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 내용을  사람은 내가 아는 아연씨가 맞았다.
이 세상 어딘가에 아연씨가 있다. 아연씨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의 방송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방송이라 믿어요. 하지만 방송이 좀처럼 잘 안 되어서, 혹은 나쁜 일들이 있어서 그만둘까 고민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마치, 자신은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계속 방송해달라고.

"오랜 시간 동안 그분의 방송을 보면서, 혹은 매니저 일을 하면서 옆에서 봐왔습니다. 융통성도 정말 없고, 바보처럼 착하던 사람이었죠."

예전에 아연씨가 매니저였던 시절에 나와 이야기하듯 적은 그 말들이 하나하나 울컥하는 감정을 생기게 했다.

"저는 그분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방송은 그 방송밖에 없거든요. 대체할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저를 위해서라도 포기하지 말고 방송을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이 세상에 날아오기 전에, 읽었던 아연씨의 편지가 떠올랐다.
여전히 그녀는 나를 지탱하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도 그러고 있었다.

"제 몸은 여전히 좋지 않지만, 그래도 그분이 힘을 내서 계속 방송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응원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아 몸은 여전히ㅠㅠ
- 갑자기 현실이 들어오네
- 아ㅠㅠㅠ
 슬퍼
- 차라리 주작이면 좋겠다

사연이 끝나고 나서,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아연씨가, 이 몸에 있는 것이 나라는 걸 알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

그래서 일부러 사연을 보냈을 것이다. 내가 이 방송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나는....'

방송을 켜서 텐션을 계속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핑계를 대면서 방송을 계속 미루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도망치고 있었구나."

그리고 아연씨의 몸이니까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며 쓸데없는 것에 너무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연씨가 바라는 것은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방송을 계속해달라는 것이 전부였는데....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홀린 것처럼 인터넷을 켜서 익명의 이메일을 하나 만들고 있었다.

"일단 몸 최대한 건강하시길 빌어드리겠습니다. 사실 방송이 잘 되게 하는 방법이라는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아쉽습니다. 저도 스트리머다 보니, 이런 이야기는  안타까워요."

- 결국 돈이 문제라
- 돈이 안되면 지속할 수가 없지
어떻게 보면 직업이니까
- 스트리머가 누구인지는 안써있나

"그래도  스트리머분이 만약 듣고 있다면, 저런 팬 분이 있으니까 조금 더 힘내셨으면 합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바람이에요."

"아연씨...."

평소라면 부를  없는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사연이라면 닿을  있다.

"신청곡은 위클리의 계속 사랑하는 나. 틀어드릴게요?"

어떻게든 각색해서 내 이야기를 완성했다. 아마 아연씨 만큼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하겠지.

[전송 완료]

차례가 되는 것에 시간이 좀 걸렸지만, 내 사연이 유나님의 방송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내 사연이 끝나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후에 내 방송을 켰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하얀별입니다!"

- 괜찮으세요?
- 오 키셨네
별하
ㅎㅇㅎㅇ
- 안녕하세요

아직 아리아 때문에 힘든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걸 이겨내고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한다.
아연씨는 물론이고, 시청자들이 내 방송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 ☆  ☆ ☆ ☆ ☆

소녀가 침대에서 휴대폰을 붙잡고 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송은  사연을 읽고 있었다.

"....역시. 아, 류지한님이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첫 사연에 나온 스트리머입니다."

- 이게 본인이 나와?
이걸 같이 보고 있네
- 아니ㅋㅋㅋㅋ
- ㄹㅇ오늘 레전드네
- 와ㅁㅊ

"아연 언니."

소녀가 이름을 불렀지만, 아연은 말없이 방송에 집중하고 있었다.
가끔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소녀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사연의 내용에 집중했다.

"첫 사연을 보내주신 분은 제 방송을 길게 지켜봐 주신 분입니다. 저와 그분의 신원을 밝힐 수는 없다는 점을 일단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융이의 사연 라디오는 익명성을 지켜드립니다."

신원이고 뭐고 전부 본명이잖아. 어디에 익명성이 있는데?
소녀는 태클을 걸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그것에 태클을 걸기에는 아연이 라디오에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제가 아연님과 처음 만난 건 제가 타로 방송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시청자였던 아연님의 타로를 봐 드렸었죠. 아연님의 건강이 그 정도로  좋은지는 당시에 몰랐어요."

"나 저거 5번은 들은 것 같은데. 지겹다 지겨워."

소녀는 볼멘소리를 냈지만, 그러면서도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 이후로 아연님은 계속 제 방송을 봐주셨고, 그러다가 아연님이  매니저를 해주시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아연님에게 많이 의지했죠."

- 매니저였구나
- 시청자가 매니저 하는 방송도 많지
- 건강도 안좋은데 매니저까지 했으면
- 진짜 그 방송 좋아하셨네
ㅠㅠ

"전 정말 방송이 좋았고, 그래서 계속 어떻게든 해나가려고 했었죠. 그런데 어느새 깨달아보니까, 제가 아연님에게 너무 많이 의지하고 있더라고요. 그걸 아연님이 일주일간 연락이 두절 되었을  크게 깨달았습니다."

- 일주일 동안 설마
- 앗 아아
건강이 아ㅠ
- 그런 일이....

"아연 언니 저거...."

아연은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는 웃었다. 아연은 역시 소녀가 상냥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병원에 찾아갔지만, 아연님은 이미 말을 해주실  있는 상태는 아니었죠."

유나는 사연이 진행될수록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아연님이 적은 편지를 전해 받았어요. 계속 방송해달라는 내용이었죠.... 아, 미안해요. 후...."

울지마....
- ㅠㅠ
- 융이 운다
- 이건 솔직히 울컥하지
- 자기가 쓰러질까봐 미리 편지를....
ㅠㅠㅠㅠㅠ

소녀의 눈가는 이미 젖어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나는  이러는 걸까. 소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흐르는 눈물을 훔쳐냈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유나님 방송에서 아연님 사연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답장을 씁니다. 아연님, 아연님이 지겹다고 말리기 전까지는 계속 방송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잠시 방송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멈추자, 소녀가 아연을 보며 말했다.

"언니, 고마워요.나랑 만나줘서. 저야말로 언니랑 만나서 행복했어요."

아연은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는 그것이 흘릴 것 같은 눈물을 억지로 틀어막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신청곡은 위클리의 계속 사랑하는 나. 처음과 같은 곡이네요. 틀어드릴게요."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는 방 안에서, 소녀는 모니터의 화면을 끄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연 언니는 정말 이걸로 괜찮겠어요?"

소녀의 말에 아연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각오를 다지듯 힘차게 말했다.
괜찮아. 이거면 충분해 겨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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