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5장 - 영원한 전쟁(2)
반사적으로 마법을 사용해 빠르게 이동해 구석에 숨었다.
바로 주위를 살피며 귀환을 사용한 뒤 채팅방을 봐도 다들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뭐였지?"
- ????
- 머임
- 은신인가?
- 적에 은신 스킬 없는데
- 대체뭐에 맞은 거임
- 마법? AI니까 아닌데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 심플월드가 아니면 마법은 AI가 사용하지 못한다.
물론 마법으로만 대응할 수 있는 공격을 몬스터의 마법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게 정말 마법인 것은 아니다.
마법은 결국 인간의 믿음으로 발생하는시스템이니까, 애매한 성능의 AI는 절대 사용할 수 없다.
"으, 마력 이상한데?"
영 느낌이 좋지 않아서 귀환을 취소하고 궁극기를 켰다. 그리고 마법으로 주위를 경계했다.
그런데 정말로 감각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조금 흐릿하긴 했지만, 충분히 의심할만한 정도였다.
"이해가 안 가네. AI가 마법을 사용할 리가 없는데!"
깡!
내가 휘두른 검이 튕겨 나오며 쇳소리가 났다.
"뭐야, 들켰네?"
그리고 방금 공격을 막아낸 쪽 허공에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했어!?"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영전의 AI는 말을 하는 기능이 없었다.
물론 나는 뉴비니까 잘못 알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채팅창의 반응은 나와 비슷했다.
- ???????
- 뭐야 미친
-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지
- 아니 AI 사이에 사람이 있는 건가?
- 아니 뭔데
- 영전 AI전 많이 하는데 이런거 처음봄
- 버근가?
['진찐자라'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목소리ㅗㅜㅑ
기습했던 적은 마력 소모가 신경 쓰였는지 은신을 풀고 덤벼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피지컬 자체가 나와는 수준이 달랐다.
[컴퓨터J]
"대체 누구세요? 왜 AI전에서 사람이 튀어나오는 건데!"
"AI니까 AI전에서 튀어나오겠지. 내가 사람은 아니거든."
- 잠깐만 목소리가 익숙한데
- ?????
- 주현이임?
- 아니 검신이 왜 여기서 나와
- 검신 실종 된거 아님?
- 근데 말투는 완전 다른데?
- 원래 주현이는 나긋나긋한데
공격에 대응하려고 해도, 이미 내 행동을 파악한 듯 검로가 바뀌어 나를 찔러왔다.
허탈해져서 싸우길 포기하고 싶어질 정도로 나와 실력 차이가 심했다.
- 영전의 이벤트 인가?
- 그냥 목소리 변조한 유저일수도
- 유저가 왜 AI로 나옴
- 버그?
- 버그 걸린 사람이 저런 컨셉질 까지 한다고?
- 아니 근데 컴퓨터J라고 되어 있는데
- 컴퓨터가 J가 어딨어 E가 끝인데
심지어 궁극기의 지속시간이 끝나자, 캐릭터 자체 스펙도 수준이 밀렸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있는 것도 상대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봐주는 느낌이 강했다.
"아 망했다...."
결국은 검신이라 추측되는 AI에게 간단히 사망했다.
사실 죽은 것도 죽은 거지만, 대체 지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숨을 쉬면서 부활 쿨타임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메시지가 나타났다.
[익명으로 미션이 도착했습니다.]
[미션: 성불(1)
조건: 이번 게임에서 승리하기
보상: ???]
'이건 또 뭐야?'
놀란 마음에 소리를 입 밖으로 낼 뻔했다.
혹시나 해서 채팅방을 살펴봐도, 이건 나에게만 보이는 메시지 같았다.
진정하고 천천히 살펴보자, 이 창은 일만 시간의 법칙 시스템과 같은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일만 시간의 법칙 시스템으로는 미션도 걸 수 있는 건가?
하여튼 간에 지금 상황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오히려 그렇게 인정하고 나니까 마음이 후련해졌다.
"아, 몰라.상대가 검신이던 누구든 이기면 되잖아."
- 그 발언
- ㅋㅋㅋ진짜 검신이면 불가능
- 근데 싸움 스타일이 검신 맞는거 같은데
- 그나마 다행인건 정글이네
- ㅇㅇ주현이는 정글 안하지
- 근데 진짜 저거 뭘까?
호기롭게 말하기는 했지만, 게임의 이해도부터가 너무 심하게 차이가 났다.
사실 이해도가 같더라도 마지컬이나 피지컬에서 밀릴 것 같은 것이 더 문제지만.
['후원빌런'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이번 판 이기면 10만원. 킹전자산 가자.
"넵, 이기면 10만원."
일단 상황을 정리하면 내가 정글에서 솔킬을 따였다. 일반적이라면 정글 차이 소리 들어도 할 말이 없겠네.
하지만 상대의 피지컬을 보면 오히려 내가 이제까지 1킬만 당한 것이 다행인 상황이다.
"루트 봐야지"
다시 정글에 복귀하자 금방 5레벨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제는 상대 정글 노선을 훨씬 더 신경을 썼다. 확실히 아까까지는 평범한 AI라고 생각해 정석적인 루트만 생각했으니까.
계속 경계를 하니 기습에 취약해지지는 않았다. 다만, 거의 갱을 가지 않는 나와 다르게 상대는 계속 아군을 괴롭혔다.
"아, 이거 아군한테 너무 미안한데. 정글 차이 오지네."
- 그건 맞지ㅋㅋㅋㅋㅋ
- 다 썰고 다니네
- 이러는데 라인이 버티는게 더 용하다
- 아아 이게 검신이라는 거다
- ㄹㅇㅋㅋ
다행히 상대팀 AI들이 약해서 다행이었다. 물론 상급이 엄청 쉽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팀에는 그럭저럭 경험자가 많았으니까.
만약 우리 팀에 죄다 뉴비만 있었다면, 벌써 밀려서 게임이 종료되었을 것이다.
"일단 만렙만 찍으면 반격할 수 있겠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걸 정글이 말하네
- 그래도 지금 랩업 빠르긴 함
- 곧 10렙인데? 오우
- 가즈아
- 과연 가능할까ㅋㅋ
"궁 3렙, 이제 궁키면 꽤 강하다."
목표했던 유니크 아이템도 전부 구매했다. 이제 궁극기 쿨타임이 30초에 몹을 잡으면 10초가 줄어드니까, 절반은 궁을 키고 다닐 수 있었다.
- 와 이젠 몹을 아주 학살하네
- 쿨 10초ㅋㅋㅋㅋㅋㅋ
- 계산해보니까 지금부턴 계속 저 상태네
- 마력 넘치니까 아주 대놓고 순간이동ㅋㅋ
- 이거 포카가 써도 괜찮아 보이는데?
- 포카는 피지컬 때문에 못 써....
- 앗....
"아군이 갱 당해서 밀리는 만큼 적 정글 몹 뺏어 먹는다는 마음가짐으로...."
혹시 적 정글이랑 마주치겠다 싶으면 빠른 속도로 몸을 피했다.
교전을 피하고 정글링으로 이득 보는 것이 오히려 낫다.
정글에는 본인만이 아니라 아군 전체에 보상을 주는 몬스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아군이 좀 튼튼해지니까 잘 버텨주겠지.
"어후, 위험했다."
물론 그래도 저 AI검신이 라인을 직접 밀려고 하면 바로 문제가 생기겠지만, 그럴 때는 지원을 하러 가서 최대한 적 미니언만 녹여서 라인이 밀리지 않게 방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 상태에서도 AI검신이 그대로 진입해서 희생당한 포탑이 벌써 한 개 있었다.
[아군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이제 둘이네.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슬슬 정글 몬스터들이 레벨이 올랐는지, 궁극기를 켜지 않으면 유효한 공격을 입힐 수 없었다.
물론 궁극기 쿨타임이 사실상 10초인 지금 와서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악! 왜 여기 있어. 뭐야 잠깐만 살려줘요!"
그러던 와중에 아직 궁극기가 쿨타임인 상태로 AI검신과 마주쳤다.
쿨타임이 끝날 때까지 남아있는 마력으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역시나 어림도 없었다.
"자꾸 도망가면 슬퍼지는데 말이야."
- 목소리 간지ㅋㅋ
- 주현이 목소리가 이런 느낌도 있구나
- 맨날 친절하고 나긋나긋해서 몰랐음ㅋㅋ
- 새로 알게 된 그의 매력
- 와 근데 진짜 무섭다
- 이거 사실 공포게임인가
- 근데 원래 영전에서 주현이는무서워
내가 AOS를 하는 건지 술래잡기를 하는 건지모르겠네.
그래도 방금 15렙은 찍었다. 만렙까지는 단 5레벨,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친애하는 아군 여러분.
[ZN_prayer(정글)님이 사망했습니다.]
원래라면 지금 평범한 아이템을 사서 스펙을 끌어올려야 하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내가 죽은 상태라서 라인 하나 정도는 그냥 밀릴지도 모른다.
[아군 방어기지가 파괴되었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지."
방어기지는 롤의 억제기와 비슷한 오브젝트로, 최소 하나는 부숴야 최종기지에 피해를 줄 수 있다.
먼저 최종기지가 파괴된 쪽이 패배하는 만큼, 방어기지는 잘 지켜야 하는 오브젝트다.
물론 우리 팀은 벌써 터졌지만.
[기회의 물약(200골드)
쿨타임 5분, 1분간 궁극기 쿨타임 10%감소]
더럽게 비싸니까 어지간하면 사지 않으려고 했는데, 당장 안 사면 게임이 터지겠네.
- 저러면 쿨 얼마임?
- 계산 좀 해봄
- 몹 잡으면 0이네
- 와ㅋㅋㅋㅋㅋ
- 궁 쿨타임이 0이라고?
쿨타임이 0이라고? 아니다 시청자들은 아직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0에 가까운 건 맞지만 쿨타임이 정확히 0인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일단 미니언은 쓸어버려서 라인 초기화! 아직 밀리면 안 되니까."
그리고 쿨타임이 끝나기 전에 정글로 들어가서 몬스터를 잡았다.
궁극기가 끊어지지 않도록 연속해서 사용하면서 정글링을 미친 듯이 달렸다.
특히 마력량이 여유롭게 변하니, 마력만을 사용해서 원거리의 정글 몬스터를 잡는 것까지 가능했다. 이러면 정글링 자체가 거의 독점되어버린다.
"그리고 신검합일 4레벨이면 이제 도망은 자신이 생기거든요?"
물론,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은이미 게임이 터지기 직전이다.
당장 가장 중요한 우리팀의 최종기지의 체력이 반토막이 나서 무너져가는 중이었으니까.
[레벨이 올랐습니다. 에델 20이 지급됩니다.]
[궁극기 '신검합일'이 lv5가 되었습니다.]
- 오 드디어!
- 와 만렙!
- 근데 진짜 잘한다
- ㄹㅇ 이정도면 배치 보면 바로 골드지
- 그 검신한테 이만큼 비비다니
- 본인인지도 확실하지 않으니까 설레발ㄴ
드디어 검신인지 뭔지 하는 AI에게 복수할 때가 되었다.
물론 영전이 피지컬 게임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내가 컸다면 비빌 수 있겠지.
나는 곧바로 상점으로 귀환해서 아이템을 구매했다.
[망각의 샘물(150골드/유니크)
획득할 때 모든 소비 아이템의 쿨타임을 초기화한다.]
그리고 아까 구매했던 기회의 물약을 다시 구매했다.
역시 계속 궁극기가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니까.
"1분 안에 결과를 못 내면 내가지는 거야."
"드디어 제대로 해볼 마음이 들었어?"
"이제까지는 싸울 준비를 했던 거죠."
일단 빠른 속도로 적의 미니언을 증발시켜서 최종기지를 지켰다.
그리고 10초가 지나기 전에 정글 쪽으로 마법을 통해 원거리 공격을 날려서 쿨타임 감소를 발동시켰다.
"스킬 써먹는 방식이 비상하네. 그런 부분은 배워야 할 필요가 있겠어."
"그래봐야 전 범인이라 이 정도로 사기 쳐야 간신히 비비거든요?"
그래도 이번에는 충분히 싸울만 하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신검합일은 초반 성능은 별로여도 최종 성능은 강하다고 유명한 궁극기니까.
"뭐!?"
하지만 자신 있게 부딪힌 내 검이 오히려 밀리고 있었다.
다른 것없이 순수하게 검과 검이 부딪히는 것인데, 1600%로 강화된 공격력에 마력을 전부 쏟아도 밀려?
심지어 상대가 궁극기를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마력의 활용이 조잡해. 검을 쥐는 방법도 형편없어."
어떻게든 받아쳐내고는 있지만, 명백히 내가 밀리고 있는 그림이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심한 피지컬과 마지컬의벽에 짜증이 밀려왔다.
- 와ㅅㅂ
- 이걸 버틴다고?
- 아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 심지어 저거 정글링 계열 셋팅인데
- 이래서 검신 검신 하는 거네
"알고 있어요. 그런 것쯤은"
내가 피지컬이 부족한 것은 잘 알고 있다. 내가 마지컬이 부족한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그냥 객기지. 다른 말로 표현할 것도 없다.
'하지만 가끔은 객기를 부리는 것이 나을 때도 있어.'
"그거 아십니까 자칭 AI씨."
나는 내가 예상했던 방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정신을 집중했다.
모든 마력을 검의 위력에 무식하게 때려 박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저 검을 이길 수 있는 강함.
그래, 아주 강력한 순간적인 화력.
"가끔은 미친 새끼가 뭔가를 보여준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내 공격이 AI검신에게 먹혀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