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6장 - 라스트 발렌타인(2)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구나. 설마, 그래서 세이브랑 로드가 없나?"
애초에 작품 내에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굳이 작품 외적인 요소로 과거로 돌아갈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이런 시스템을 채용한 것이 이해가 간다.
- 아그렇구나
- ㅋㅋㅋㅋㅋ
- 그러네
- 큰그림이었네
"일단 아까 대화를 보면 주인공이 일부분 기억상실인 것 같은데, 그 기억을 찾아가는 건가 봐요."
지금까지 얻은 정보를 정리하면, 주인공이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는 점과 2월 14일에 뭔가가 일어난다는 것.
"다른 건 없나?"
앱을 하나씩 실행하다가 카메라를 켜보고 놀랐다.
카메라가 실제로 동작하네?
"이거 카메라 쓸 수 있어요. 찍으면 저장된다?"
- 엌ㅋㅋㅋㅋㅋ
- 메모장도 쓸 수 있대요
- 게임 내에 이런 걸 넣어놨네
- 이거 꽤 본격적으로 동작한다던데
- 큐브스토어 접속해서 설치도 가능하네
- ㄹㅇ?
- ㅋㅋㅋㅋㅋㅋ
"정말요? 어 진짜다. 심지어 내 계정이네."
그래서 큐브톡 대신 스토리톡이라는 이름의 앱이 따로 깔려 있었구나.
이게 스토리 진행용 큐브톡 같은 느낌이겠지.
"이게 스토리 진행용 맞겠지?"
스토리톡을 실행하자 이전에 대화했던 내용이 일부 남아있었다.
[이소연: 사고 났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얀별이 너 괜찮아?]
[정주혁: 나도 내일쯤에 병문안 갈게]
"두 명이네. 답장은 클릭해도 아무것도 안 나와요."
저 정주혁이 남자 캐릭터인가? 아마 이렇게 두 명이 주연인 모양인데.
"스크린샷도 찍을 수 있어. 이런 기능들까지 필요하긴 해?"
하지만 인터넷을 들어가면 게임 내부 인터넷이 아니라 밖의 인터넷이 연결되어 버린다.
이러면 신문 기사 같은 걸로 세계관을 파악하는 건 힘들겠네.
"이 이름 없는 어플 말고는 다 봤네요."
혹시나 해서 실행했더니, 지문인식을 하라는 메시지가 나와서 지문을 인식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뭐야 이거? 아, 카메라구나?"
화면에 있는 촬영 버튼을 고르고, 카메라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곧 알림음이 들리더니 이름을 입력하라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음,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 맞나?
"어플에 사용 방법이 없네."
- 뭐지
- 뜬금 없음
- 설명 같은게 있을 것 같은데
- 뭐하는 앱이지
- 그냥 휴대폰 여는 지문 등록 아님?
- 그건 설정에 있는데
그렇게 등록된 지문의 이름을 클릭했더니, 갑자기 휴대폰 뒤쪽에 일부분이 볼록하게 튀어나왔다.
"뭐야 이거"
튀어나온 부분을 만져보자 마치 손가락의 지문이 재현된 것 같았다.
설마 내가 촬영한 지문을 재현한 건가?
[새로운 단서: 지문 수집]
소연이가 밖으로 나간 후에 처음으로 나타난 메시지였다.
아까 시간여행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을 때도 이런 메시지는 없었는데?
일단은 이 어플로 지문을 모아야 하는 것은 알 것 같았다.
"이거로 지문을 훔쳐야 하겠지?"
- 누구를?
- 다른 두 캐릭터?
- 문 따고 그러는 건가?
- 다른 캐릭터 휴대폰도 살필 수 있겠다
- 오ㅋㅋ
"그런 것 같아요. 이제 휴대폰은 다 봤고, 아 몸이 묶여서 못 일어나"
생각해 보니까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고 했지, 이거 다리가 부서진 건가?
그나마 내 손이 닿는 범위는 침대 옆에 있는 협탁 뿐이었다.
저기에 뭔가 쪽지가 있는 것 같은데.
"조금 거리가 애매한데. 어라닿는다."
하지만 내 손이 협탁에 닿는 순간부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거 설마 컷....
「어라?」
손이 엇나가서 협탁에 놓여있던 물건을 밀어버렸다.
그 덕분에 위에 있던 물건들이 바닥에 후드득 떨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비닐봉지를 들고 병실로 들어온 소연이가 놀라서 나에게 달려왔다.
「괜찮아?」
「응, 이것 좀 주워 줄래?」
바닥에 떨어져 있던 메모지를 주운 그녀가, 나에게 건네주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빠르게 메모지를 채간다]
[기다린다]
"이번 선택지는 좀 중요해 보이는데?"
- 전자는 의심을 살 듯
- 일반적으로는 후자가 맞는데
- 아 능지겜 너무 어려워
- 선택장애오지네ㅋㅋ
"근데 후자는 내용에 따라 메모를 못 볼 수도 있어요."
왠지 저 메모는 꼭 확인해야 한다는 낌새가 느껴지는데.
사실 결과를모르는 이상 고민해도 소용이없다.
이럴 때는 그냥 쿨하게 골라야지.
"그냥 가져올게요. 느낌이 안 좋다."
나는 급하게 그녀의 손에 있던 메모지를 낚아챘다.
가져온 메모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먼저 떠나서 미안해 소연아.]
"뭐야, 이거 내가 쓴 건가?"
내 필체랑 굉장히 유사한데.
설마 이런 것까지 게임으로 구현한 거야? 몰입감 미쳤네.
그나저나 저런 내용이면 설마 자살을 시도했던 건가?
아까 휴대폰의 메모에서도 주인공 멘탈 상태가 나빠 보이던데.
- 과몰입 만드는 게임ㄷㄷ
- 저거 전에 보여준 얀별님 필체인데
- 어캐했누
- 저거 뭐지 자살시도였나
- 기억 읽었네
"기억이요? 기억을 읽어?"
- 얀별님 기억 읽는 기술 몰라요?
- 아까 게임 실행 약관에 있었는데
- 약관을 누가 읽음ㅋㅋ
- 로메나 MOF도 다 기억 읽는데
- 이럴때만 뉴비티를 낸다니까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로스트 메모리즈에 그런 기술이 들어있었구나?
나는 로메가 포카님이 주로 하는 게임 중 하나라는 것 말고는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신기하네. 그래서 그 기억 읽는 기술을 활용해서 이렇게 구현된 거구나."
기억을 읽는다니, 솔직히 좀 신기했다.
「그게 뭐기에 그렇게 급하게 가져가?」
「별거 아니야. 좀 창피한 내용이라서.」
「흐음, 조금 의심스러운데.」
그러게, 내가 생각하기에도 참 허접한 변명이긴 했다.
하지만 저 메모를 소연이에게 보여줬으면 지금보다 더 상황이 나빠졌겠지.
「여기 사이다.」
「땡큐.」
나는 그녀에게 받은 사이다캔을 뜯어서 그대로 쭉 들이켰다.
「크으....」
- 여긴 사이다네?
- 다른 곳은 콜라던데
- 이거도 기억 쓰네ㄷㄷ
- 아니 디테일ㅋㅋㅋㅋ
- 개발진을 얼마나 갈아 넣은 거야?
"진짜요? 이걸 차이를 뒀어? 내가 사이다를 좋아하긴 해."
그럼 이거 계속 소연이가 내 취향을 알고 챙겨주는 건가?
그건 좀 무서운데.
그러면 자기를 잘 알고 챙겨주는 엄청난 애인이 나오는 거잖아.
"악마 같은 게임...."
「일단 좀 쉬어. 내가 계속 병문안 올 테니까.」
「그래.」
사실 사라진 일부 기억 때문에 조금 불안하긴 했다.
소연이는 내가 불안해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조용히 나를 껴안았다.
그리고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괜찮아. 별것 아니야 얀별아.」
- ㅗㅜㅑ
- ㅗㅜㅑㅗㅜㅑ
- 갓겜 미쳤다
- 소연이 최고다
- 귀르가즘ㄷㄷ
"어?"
갑자기 시야가 흐릿해지더니, 시야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거, 마치 주위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 같은....
[2020년 2월 15일]
모든 변화가 끝난 이후에는 나 말고는 병실에 아무도 없었다.
"방금 뭐야? 시간이 갑자기 2주일 흐른 거야?"
- 어 발 붕대 풀었네
- 퇴원하는 날 같은데
- 짐도 싸져있네ㅋㅋㅋ
- 이걸 시간 스킵하네
"급발진 게임 오반데."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그쪽으로 시야를 돌리자, 병실에 마련되어 있던 TV가 켜져 있었다.
「어제 펜타임 빌딩 옥상에서 추락해 사망한 여성의 신원이 5년 전 실종된 이혁진 박사의 딸인 이소연씨로 밝혀졌습니다. 경찰은 이 사건이 자살일 가능성을 우선으로 두고 수사 중이며....」
- ????
- 소연이 죽었어?
- 왜 죽었어
- 설마 2월 14일?
- 얀별님이 죽였다ㅜㅜ
- 왜 그러셨어요
"설마 발렌타인데이 되면 소연이가 죽는 거야? 아니야, 내가 죽인 거 아니라고."
['소연'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나 왜 죽였어
"아니야, 내가 안 죽였어!"
물론 프롤로그에서 소연이가 했던 말이 걸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죽인 것이 되는 건 아니잖아.
시청자들에게 변명을 하고 있는데, 휴대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정주혁]
"이거 받아야 하나? 아니면 끊어?"
- 받자ㄱㄱㄱ
- 받으면 컷 씬 시작할 듯?
-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름
- 걍 교주님 꼴리는데로
역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호흡이 거칠어진 남성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들려왔다.
「얀별아, 너 왜 이제야 받아!」
「퇴원 수속받고 있었어.」
「뉴스 봤어? 너 뭔가 아는 것 있지. 있으면 말해!」
대화를 나눌수록 나도 숨이 가빠진다.
그녀가 죽은 건 나 때문이다.
내가 실패했기 때문이야.
전부 내 잘못이야.
「미안, 잘 모르겠어.」
「너 뭔가 아는 것 맞지. 야, 하얀별!」
「미안해.」
더는 이야기를 나눌 자신이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끊어 버리고, 비행기 모드로 바꾸었다.
"헉, 허억...."
아까부터 느끼는 거지만, 이 게임의 컷씬은 이상할 정도로 몰입도가 높다.
아까까진 생각도 못 하던 죄책감이 내 안에서 휘몰아쳤다.
- 쟤도 아무것도 모르네
- ㅠㅠ
- 울분에 차 소리지르는 거 봐
- 와 진짜 같음ㄹㅇ
- 심지어 주인공 캐릭터까지ㄷㄷ
"전화는 끊었으니까, 이제 계속 진행할게요."
휴대폰은 확인해 봐도, 크게 바뀐 것이 없었다.
뭔가 힌트가 있긴 할 텐데.
그래서 열심히 주변을 뒤져봤다. 하지만 그렇게 10분 동안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 으득으득
- 아 뭐해요!
- 언제까지 뒤지고 있을거야
- 아무것도 없자너
- 제발ㅜㅜ
"아니, 그럼 어떻게 해요. 밖에 나가려고 하면, 뭔가 잊어버린 것 같다고 하면서 못 나가고...."
['치과선생님'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선생님 아까 메모지 떨어진게 두개였어요.
"메모지? 그럼 그게 어디 갔지? 침대 옆이었잖아. 설마 침대 아래?"
혹시나 해서 손을 뻗었더니, 정말로 종이가손에 잡혔다.
뭐야, 난 이제까지 이걸 못 찾아서 그 난리를 쳤던 거야?
- 잃어버린 우리의 10분
- 이걸 찾는데 이렇게 오래걸리네
- 이건 능지도 아니잖아
- ㅠㅠㅠㅠㅠ
- 아ㅠㅠ
"하하, 죄송해요. 제가 일부러 못 찾은 건 절대 아니에요. 제 마음 알죠?"
['천마신도'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교주님 다 죽일까요?
"살육의 시간이다. 다 밴 때려! 농담이에요."
- ㅋㅋㅋㅋㅋㅋㅋ
- 피해 피해
- ^^7
- ^^7
- 암것도 아닙니다 교주님
- ^^7
메모를 펼치니, 주소로 보이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서울시 설화구 공책로39번길 12-4. 뭐야 설화구는? 설화님 집인가"
- 설화님집ㅇㅈㄹㅋㅋㅋ
- 교주님 미쳤읍니까
- 이 회사 게임에는 자주 나오는 주소임
- 이제는 밈 같은 것
- 이야기를 말할때 설화래요
- 개드립 밴
아 회사 이름이 스토리 스토어라서 설화구인가?
음, 그런데 대체 저 주소가 어디길래 메모지에 적혀있는 거야.
[새로운 단서: 버려진 연구소]
"오, 새 단서로 취급되는구나. 연구소라니 중요한 건가 보다."
혹시나 해서 병실 문에 손을 가져가자, 아까와는 다르게 선택지가 나타났다.
[버려진 연구소로 향한다.]
"오케이, 가즈아!"
시야가 바뀌더니, 이번에는 어떤 건물 앞에 있었다.
꽤 외진 곳인지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에피소드2: 연구소]
"에피소드1 끝났구나. 보셨죠 여러분? 저 속도 빠르죠?"
- ㅗㅗ
- 법규법규
-다 괜찮은데 마지막이 좀
- ㄹㅇ 왜 그렇게 못 찾아요
- 수색 실력 하나는 진짜 구려
사실이라 반박을 못 하겠네.
아니 근데 진짜 그 넓은 공간에서 힌트 하나 찾으라는 게임이 이상한 거지.
그걸 못 찾는 내가 이상한 거야?
"그나저나 여긴 어떻게 들어가지. 지문인식 같은데, 나 지문 수집 못 했잖아. 망한 것 아니야?"
혹시나 해서 내 손가락을 가져갔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 미치겠네.
"아니면 이미 휴대폰에 등록되어 있을지도 몰라."
혹시나 해서 휴대폰을 꺼내서 지문앱을 켰는데, 역시 처음 등록한 내 것 말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 찍어둔 사진으로 하는 것도 있는데, 처음 봤을 때는사진이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휴대폰을 최근에 바꿨던 것인지 사진이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이 지문앱 때문에 휴대폰을 바꾼 것 같은데?
"어, 뭐야! 사진이 있네?"
처음에 살필 때는 사진이 없었는데, 지금은 나와 소연이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나와 소연이가 병실에서 손으로 브이를 그리고 있는 사진이었다.
- 이것도 놓쳤네
-아까 병실에서 한게 뭐야
- ㅡㅡ
- 교주님 정신 똑바로 차리십시오
- 빨리 소연이 살려주세요
"아 알았어요. 사람이 좀 실수할 수도 있지. 거참."
지문앱에서 소연이의 검지를 확대하자, 지문을 얻는 것에 성공했다.
오, 등록된다.
"휴대폰을 지문 인식기에 대면...."
띠리링 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역시 이렇게 하는 것이 정답이었네.
"아까 뉴스에서 소연이 아버지가 박사라고 했잖아요? 그럼, 여기가 소연이 아버지 연구소가 아닐까요?"
- 그런듯
- 무슨 연구소지
- 시간여행?
- 아 여기서 과거로 가나?
- 그렇게 진행되나 보네
"제 생각에도 그래요. 여기가 타임머신을 연구하는 연구소고, 시간여행을 통해 소연이를 구해야 하는 거죠."
[연구소에 들어간다.]
연구소에 들어서자 갑자기 주변이 밝아졌다.
온통 기계와 컴퓨터가 가득 들어차 있는 모습.
일반적으로 연구소라는 말을 들으면 떠올리게 되는 분위기의 디자인이었다.
"와, 이거 좀 간지난다. 그나저나 뭐부터 건드려야 하지?"
여기는 문과를 넘어서 고졸인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지막지한 공간 아니야?
파직!
"악!"
갑자기 왼쪽에서 전기 스파크가 튀었고, 나는 그 소리에 놀라서 넘어질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