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6장 - 라스트 발렌타인(5)
일단 진정해보자.
저 후원 메시지가 진짜일 확률은 낮다.
설화님이 하필 지금내 방송을 보고 저런 미션을 걸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
- 가즈아
그렇게 행복회로를 돌리던 나는, 채팅창에 보이는 진짜 설화님의 채팅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이게 왜 진짜지?
"아니 설화님이여기서 왜 나와요. 그리고 아무리 3만원을 준다고 해도 누가 민초를 먹습니까?"
['월화의 뜨거운 발가락'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그럼 2만원 추가
- 민초충들 지랄났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5만원! 5만원 나왔습니다!
- 5만원 주면 민초 먹을만 하지ㄹㅇㅋㅋ
- ㄹㅇㅋㅋ
"전 자본주의의 노예가 아닙니다. 5만원 준다고 민초를 먹진 않아요. 그리고 슬라임 젤리도."
- 슬라임ㅋㅋㅋㅋ
- 단호한거봐ㅋㅋㅋ
- 슬라임 젤리는ㅋㅋ
- 민초 맛있거든요?
- 그건 좀....
- 슬라임 젤리는 맛있음
- 그건ㅇㅈ
"응 아니야. 슬라임 젤리도 똑같아. 제발 그딴 것 좀 먹지 마세요."
그 말에 채팅창이 불타기 시작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지켜야 하는 선이 있지. 슬라임 젤리는 그걸 넘어섰다고.
['후원빌런'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5만원 추가ㅋㅋㅋㅋㅋ
"아니 미친 인간들아! 그만 올려!"
- 10만원ㅋㅋㅋㅋㅋ
- 눈 꼭 감고 민초 먹으면 10만원
- 이건 해야지
- 10만원은 어쩔 수 없지
- 미치겠네ㅋㅋㅋㅋ
솔직히 솔깃하긴 했다. 10만원이면 라면이 몇 개인데.
물론 이게 방송의 재미를 위해 설화님이 도와주는 거라는 것을 알기는 했다.
그래도 앞에서 소연이는 맛있는 디저트를 먹을 텐데, 나는 민초를 먹고 있다?
그건 좀....
['설화월화'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두 가지 시켜 먹으면 5만원 추가ㄱㄷㄱ
"어라 잠깐만, 15만원이면 이야기가 좀 다른데."
- 라고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돈이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민초 먹으면 15만원? 흠ㅋㅋ
- 이건 날먹 미션이지ㅋㅋㅋ
- 여기에 15만원을 거네ㅋㅋ
그래 15만원이면 어쩔 수 없지.
"하, 간다. 여기 민초 아이스크림이랑 민초케이크. 체크 했습니다. 가즈아!"
상호작용을 위해 소연이를 만지자 선택지가 나타났다.
역시 저것도 선택지에 있었구나.
[난 뭐 먹을까.]
[이제 주문하자.]
일단 저것 때문에 소연이가 죽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굳이 확인하지 않고 넘어가도 괜찮겠지.
정말 위험하면 다시 돌아올 수도 있고.
「이제 주문하자.」
「나는 여기 베리베리 스트로베리 스페셜 세트」
「그거 들을 때마다 어마어마한 이름이라고 생각해.」
이름만 들어도 딸기에 숨이 막힐 정도의 이름이었다.
물론 이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인만큼 인기가 있긴 했다.
특히 여기 딸기가 맛있기도 하고.
벨을 울리자 주혁이가 와서 주문을 받았다.
그는 주문을 확인하다가 내 메뉴를 보더니, 표정이 굳어졌다.
「윽, 넌 메뉴가 왜 이러냐.」
- ㅋㅋㅋㅋㅋㅋㅋ
- 게임 캐릭터도 민초는 질색하네
- 솔직히 조금 그렇지ㅋㅋ
- 민초 맛있는데ㄹㅇ
- 다들 맛알못임
- 민초단 다 쳐내
「왜 이게 어때서.」
「평소에 이런 건 안 먹지 않았어?」
「먹을 수도 있지.」
「뭐, 그건 네자유지만....」
나도 먹기 싫어! 하지만 먹으면 15만원 준다는데 너라면 안 먹겠어?
이건 먹는 것이 남는 거야.
「이렇게 둘이 카페 오는 것도 오랜만이네.」
「오랜만인가? 저번 주에도 온 것 같은데.」
아, 그런가.
솔직히 돌아오기 전에 사고에서 잃은 기억이 있어서 날짜 개념이 서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발렌타인데이에 소연이가 죽는다는 사실 뿐이다.
「그냥 체감이 그래.」
「그렇게 나랑 놀고 싶었어?」
「어.」
내 말이 이상했는지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계속 소연이가 문병을 오긴 했지만, 밖에서 노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너 무슨 일 있는 것 아니지? 평소라면 놀고 싶은 건 나 아니냐고 구박했을 텐데.」
- 허, 교주님 실망입니다
- 어떻게 소연이를 구박하죠
- 우리 소연교단은 방장에게 해명을 요구합니다
- 소연교단은 또 뭔데ㅋㅋ
- 소연 여신님을 모시는 교단이야!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해줄까?」
「그건 아니구. 히히.」
「아무튼, 이러고 있으면 충분히 편안하고 좋아.」
나는 그녀의 손을 낚아챈 후, 양손으로 꾹 잡고 있었다.
작게 느껴지는 맥박과 함께 따스한 온기가 전해져 왔다.
「어, 어? 얀별아?」
「왜 그렇게 놀라. 평소에 너도 자주 스킨쉽 하면서.」
「그거야 내가 하는 거고! 받는 건 좀 달라....」
살짝 얼굴을 붉히고 있는 소연이는 신선한 느낌이었다.
참, 내가 대충 살아온 모양이었다. 예전엔 왜 항상 받기만 했을까.
나도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었을 텐데.
「앞으로는 자주 해줄게.」
「어? 어....」
「뭐야 이거, 이건 또 무슨 분위기야? 너희들이 주문한 거 나왔다.」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응, 아무것도....」
주혁이가 다가오자, 소연이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내가 했던 말이 그렇게나 당황할 내용이었나?
- 귀여워
- 이렇게 한 사람이 씹덕사합니다
- 아 진짜ㅠㅜ
- 소연이 너무 귀엽다
- 무조건 산다 이 게임
- 소연이최고다 소연이 최고!
"아, 진짜 소연이 너무 귀엽다. 이거 어떻게 하지? 아, 내가 이미지만 아니었으면 설화님처럼 막 섹드립 치고 그럴텐데. 소연이 너무 좋다."
컷씬이 끝나고 담아두고 있던 말을 내뱉자,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물음표로 채팅창을 도배했다.
- ?
- ??
- ?
- ????
"아니 왜요. 저 정도면 순한 맛 스트리머죠."
나 정도면 별로 안 맵잖아.
설화님 같은 경우가 진짜 매운맛 스트리머지. 나 정도면 정말로 순한 맛이다.
['익명'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음성 녹음)
「사실 저는 야한 아이예요.」
「우리 스수들」
「자꾸 그러면 다 혼내준다?」
왜 자꾸 저런 것만 모아서 음성 파일을 만들어 두는 거야?
심지어 마지막 건 오늘 말한 것 같은데.
"후.... 자꾸 그러면 찾아서 죽인다? 부검하는 수가 있어 내가."
말은 부검한다고 했지만, 대충 어떤 시청자인지는 알고 있었다.
항상 저런 음성 파일을 만들던 시청자가 있었으니까.
- ㅗㅜㅑ
- 매운맛 방송ㄷㄷ
- 드디어 매운맛이 되기로 하셨군요
- ^^7
- 목소리 개 좋아
- 이거지
['마교신도'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그래서 소연이는 언제 덮치는 거죠? 교주님?
"지금 당장이라도 그러고 싶.... 아니, 그게 아니지. 여러분 제가 소연이를 왜 덮쳐요."
아, 시청자들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네.
그나저나 내 앞에 놓은 민트와 초코의 콜라보인 디저트들은 어떻게 하지.
"나 이제 민트초코 먹어야 한다고요. 다들 좀 진정해봐요...."
반대편을 바라보자, 소연이는 딸기가 가득한 파르페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저거 엄청나게 크네. 그래도 굉장히 맛있어 보인다.
그에 비해서 내 것은 보기만 해도 좀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다 먹을 수나 있겠지?
"윽, 으윽.... 아이스크림에서 치약맛나."
- 허어 존엄한 민트초코에게 치약맛이라니
- 민트가 치약맛이 아니라 치약이 민트맛인 겁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와 정.말.맛.있.겠.다.
- 민초 먹방 개웃기네ㅋㅋㅋㅋㅋ
- 한입 먹자마자 표정 개썩었어ㅋㅋㅋ
치약맛이 아니면 이게 무슨 맛인데.
애초에 치약이 민트맛인거랑 민트가 치약맛인거랑 차이가 있긴 한 걸까.
결국 치약 먹을 때랑 같은 맛인데.
"아, 아니야 넌 할 수 있어 하얀별."
그래도 초코 부분은 맛있었다.
민트 맛에 상당수가 가려지긴 했지만, 나한테는 순수 민트보다는 오히려 민트초코가 먹기 괜찮은 것 같은데.
「얀별아.」
소연이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아이스크림을 뜨려던 숟가락을 잠시 내려놓았다.
「응?」
「아 해봐.」
소연이가 딸기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퍼서 나에게 들이밀었다.
먹여주기라니, 게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이런 경험은 거의 없으니까.
[먹는다.]
[거부한다.]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위쪽 버튼을눌렀다.
거의 본능적인 선택이었다.
「아앙.」
「히히.」
상황이 끝난 뒤에야, 이걸시청자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깨닫고 쪽팔림이 몰려왔다.
이 정도로 부끄러워질 줄은 몰랐는데,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그, 그나저나 민트초코 먹다가 이거 먹으니까 왜 이렇게 맛있지?
여기가 딸기 디저트 전문점이라 그런 거야? 아니면 민트초코의 힘인가?
- ㅗㅜㅑ
- 씹덕사ㄱㄴ
- 이래서 사람이 씹덕새끼가 되는구나
- 와ㅋㅋㅋㅋㅋ
- 방장님 왜캐 부끄러워 하세요
- 귀엽도르ㅋㅋㅋ
"아, 아니 부끄럽지 당연히! 그 와중에 저거 엄청 맛있어."
아, 이 맛있는 걸 먹은 입에 다시 민초를 넣는다는 것이참 슬픈 일이었다.
「어때?」
[맛있네. 고마워.]
[맛있어. 나도 한 입 줄까?]
"선생님들! 선생님들 이건 솔직히 후자 해도 인정 아닙니까?"
- 될리가 없죠?
- 선 넘네
- 그럼 후자하고 시간돌리던가ㅋㅋ
- 아 그러면 되네
-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예. 그러시겠죠. 하아...."
나는 그나마 먹을 만한 민초 케이크를 최대한 초콜릿 쪽으로 뜬 후에 아래를 골랐다.
우리 소연이는 최대한 맛있는 부분으로 줘야지.
어차피 시간 되돌려서 돌아올 건데.
「맛있어. 나도 한 입 줄까?」
「응!」
내가 준 케이크를 먹고 빙그레 웃는 소연이를 보니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아직 첫날이잖아. 너무 긴장하지 말자.
「히히, 맛있다.」
- 와 귀여워
-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 얀별님 표정ㅋㅋㅋ
- 흐뭇해하는거봐ㅋㅋ
- 솔직히 우리도 표정 똑같지
- 아ㅋㅋㅋ
그리고 정말 아쉽지만, 컷씬이 끝난 이후에시간을 돌려서 없던 일로 만들었다.
내가 자본주의의 노예라서 미안해 소연아.
['설화월화'님이 8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아 너무 흐뭇하다. 보기만 해도 맛있네.
"우욱 너무 힘들어.... 설화님 미션비 정말 감사합니다. 저거로 진짜 맛있는 거 사 먹을게요."
결국 내가 주문한 민초 디저트를 모두 처리하는 것에 성공했다.
대체 왜 민초 먹는 것에 큰돈을 거는 걸까?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어.
「얀별아 나 계산하고 올게.」
「어? 응. 어차피 같은 통장에 연결된 카드니까 누가 하든 상관없지 뭐.」
얘들은 그냥 동거하는 걸 넘어서 이미 부부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에 테이블에 올라가 있는 소연이의 휴대폰에 시선이 갔다.
"이거 각인데. 몰래 휴대폰 살펴보기 가능?"
혹시나 해서 확인해 보니, 소연이의 지문은 이미 저장되어 있었다.
그래서 소연이의 휴대폰을 가져와서 잠금을 해제했다.
"특별할 건 없는데. 대화 내용도 대부분 나랑 주혁이고.... 딱히 메모도 별로 없네."
다만 나와는 다르게 채팅 내용과 갤러리가 전부 살아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1년은 넘는 분량 아니야?
이걸 일일이 만들어 놓다니, 이 게임 얼마나인력을 갈아 넣은 거야?
"와 진짜 게임 퀄리티 미쳤네."
- ㄷㄷㄷㄷ
- 진짜 갈아 넣었네
- 자연스러움 무엇ㄷㄷ
- 이건 진짜 갓겜이다
- 와 사진 개이뻐
- 괜히 2달을 미룬게 아니네ㅋㅋ
- 게임 시스템상 사진 빼올 수 있을 듯
소연이의 휴대폰은 이상한 어플리케이션도 없고, 전체적으로 평범했다.
그나마 특이한 점은 내 휴대폰이랑은 다르게 큐브스토어 등의 실존 앱 사양이 없다는 것.
「얀별아 지금 뭐 해?」
「어? 어, 그러니까.」
[휴대폰을 바꿨더니....]
[미안해.]
아, 깜짝이야.
이거 휴대폰 계속 보고 있으면 걸리는구나?
이런 건 아예 걸리지 않는 쪽이 나을 것 같은데?
[되돌리기]
일단 시간을 되돌렸다.
혹시 무조건 휴대폰을 봐야 진행되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만약 시간제한이라 걸린 거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겠지.
「다녀왔어. 이제 가자.」
"휴우...."
- ㅋㅋㅋㅋㅋㅋㅋ
- 이걸 시간을 돌리네
- 근데 선택지가 둘 다 지뢰 같긴 했음ㅋㅋ
- 이러면 선택지가 꽤 많아지네
- 이게 되네?
- 저거 휴대폰 바꿨다고 변명하면 사진 몇개 보내줌
- 사진 좀 아깝다
"사진? 무슨 소리예요. 사진은 나중에 기회가 될 때 다시 켜서 싹 복사해 올 건데."
일부만 받는다는 애매한 선택지는 오히려 내 쪽에서 사양이다.
아까 대충 훑어본 것만으로도 욕심이 엄청나게 생겼다.
힘들어도 그거 전부 다 가져올 거야.
- ㄴㅇㄱ
- 욕심쟁이 수준
- ㅋㅋㅋㅋㅋㅋㅋ
- 그걸 다?
- 와 진짜ㅋㅋㅋ
- 생각도 못한 정체
모든 상황이 끝나자 다시 엄청난 속도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또 시간을 스킵 하는 상황인가? 하긴 이거 없으면 이 게임 하다가 늙어 죽겠지.
잠시 시야가 어두워졌다가, 살짝눈부신 느낌에 눈을 떴다.
이 익숙한 느낌은 자고 일어났을 때인 것 같은데?
"어? 읍."
나는 놀라서 말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본능적으로 틀어막았다.
아, 이거 게임이라서 그럴 필요 없구나.
"어우, 놀라라."
눈을 뜬 순간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반쯤 속옷 차림인 채로 곤히 잠들어 있는 소연이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