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7장 - 가스라이팅(1)
나는 새로운 에피소드가 시작되었음에도, 한동안 진행하지 못하고 고민에 빠져있었다.
에피소드5 다음에 에피소드7로 연결되는 이상한 상황 때문이었다.
[2020년 2월 13일]
- 아ㅋㅋㅋㅋㅋ
- 되돌려서 고쳐 보실?
- 어디서 틀린거야ㅋㅋ
- 능지겜에서 연애겜 되었나 했더니
- 아ㅋㅋㅋㅋ
- 아무도 틀린 부분을 몰라
- 사람이랑 대화? 어떻게 하는 거죠?
"일단 내일이 디데이니까 엔딩 하나 볼까요?"
배드엔딩이더라도 일단 보고, 고쳐 가면서 새 엔딩을 보면 되니까.
물론 엔딩이 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시스템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거기서 방송을 끊고, 내일 처음부터 다시 하면 될 터였다.
"음, 이번 에피소드는 이름만 보면 소연이가 발렌타인 초콜릿을 만드는 걸 도와주는 내용 같은데."
- 누구 주는 초콜릿이지
- 주혁이?
- 주인공 아닐까
- 주혁이 주면 NTR이지ㅋㅋ
- 사실 NTR엔딩이었던 거임
"다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그렇잖아.
은근히 존재감이 없었던 주혁이가 갑자기 소연이를 채간다고?
그건 좀 아니지. 이제까지 나랑 소연이가 얼마나 많이 엮였는데.
내가 식탁에 앉아있는 소연이에게 다가가자, 소연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준비되었습니다. 선생님!」
「너무 오버는 하지 마. 일단 간단하게 생초코부터 하는 걸로 하자.」
나는 식탁에 올라가 있던 재료 몇 개를 들고 주방으로 갔다.
그리고 초콜릿을 녹일 준비를 시작했다.
「바로 초콜릿을 끓이면 타니까, 우선 물을 끓이고 그 위에서 중탕해서 녹여야 해.」
「이렇게? 좀 느리네.」
「너무 마음이 급하면 망치는 거야. 그리고 한 쪽에는 생크림을 살짝 끓여.」
그리고 그 생크림을 아까 녹인 초코에 섞는다.
그렇게 완성된 생초코를 사각 틀에 넣고 굳히는 게 기본적인 방법이다.
출처는 당연히 인터넷.
「뭐야 생각보다 간단해서 맥이 빠졌어.」
「내가 말했잖아. 굳이 내가 안 도와줘도 인터넷만 봐도 될 거라고.」
「다른 것도 만들어 볼래. 귀여운 틀도 있으니까.」
그 이후에는 생초코가 아니라, 그냥 초코를 녹였다가 다시 틀에서 굳히는 것도 만들었다.
이런 건 모양을 꾸미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짠!」
「그건 좀 귀엽다. 뭐야, 의외로 잘 그리네.」
「요즘 그림 그리는 것도 연습해봤거든. 피아노 치는 것도 좋지만, 그림 그리는 것도 재밌더라.」
나는 소연이의 뺨에 묻은 초콜릿을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이건 또 언제 묻은 거야?
「뭐, 뭘 먹는 거야!」
「초콜릿.」
「아니! 그, 그거 내 뺨에 묻어 있던 거잖아!」
「아까 너도 비슷한 거 했잖아.」
「그건 내가 한 거잖아! 얀별이가 해주는 건 다르다니까!」
소연아, 그 논리가 엄청 이상하다는 건 스스로도 알고 있지?
당환한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럴 때는 역시 강아지 같다니까.
"아니, 넌 좀 부끄러워해라!"
- ㅋㅋㅋㅋㅋㅋㅋㅋ
- 주인공 대담ㅗㅜㅑ
- 본인이 본인한테 태클ㅋㅋ
- 주인공 너무 능글맞아짐
- 데쟈뷰 느껴지네ㅋㅋ
어느새 초콜릿을 모두 완성해서 냉장고에 넣어 식히기 시작했다.
싱글거리는 소연이를 볼 때까지는 기분이 좋았는데, 내일 날짜를 보니까 다시 불안감이 몰려왔다.
일단 소연이는 전날인데도 저렇게 밝은 걸 보니 아직은 별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소연아, 집에 있는 잠겨있는 문 말이야....]
[정리하고 좀 쉬자.]
"드디어 이거 질문 나왔다."
- 오
- 가즈아
- 제발
- 아직 해피엔딩각 가능한가
- 문 때문에 스킵 된건 아닌가 보네
- ㄱㄷㄱ
「소연아, 집에 있는 잠겨있는 문 말이야....」
「아 거기? 우리 안 들어간 지 오래되긴 했네. 열쇠 잃어버리고 가본 적 없었지.」
[새로운 단서: 사라진 열쇠]
소연이라면 그 문에 뭐가 있는지 알 것 같아서 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소연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어? 으응. 오랜만에 들어갈까 해서 물어본 거야.」
「굳이? 아 맞다. 나 어디 좀 나갔다 올게. 여기 정리는 내가 할 테니까 물에만 담가줘.」
「어디 가는데?」
「주혁이랑 PC방 가기로 했는데, 완전히 잊고 있었어.」
「그래. 다녀와.」
소연이가 집에서 나가고 나자, 뭔가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느낌이네.
그리고 역시 그 방에 무엇이 있는지 신경 쓰였다.
"아, 이러면 열쇠도 찾아야 하잖아...."
분명 집을 뒤져봐도 없었는데.
혹시 연구실에 열쇠가 있었나? 아니야 연구실도 남는 열쇠는 없었는데?
오히려 열지 못한 문이 하나 있었지.
- 예상 밖이다 소연이도 모른다니
- 모르는 척 하는 것일 수도 있음
- 주혁이 만나러 간게 너무 신경쓰인다
- 이건 무슨 게임인가요
- 느낌 영 안 좋은데
- 배드엔딩의 냄새가 난다
"진짜 뭐지, 집을 더 뒤져봐야 하나? 아, 이 게임은 라스트 발렌타인이라는 스토리 게임이에요."
혹시나 해서 집안을 확인해 보려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시간이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뭐야, 이번 챕터는 왜 이렇게 짧지?
"아까부터 느끼는 거지만 이렇게 짧으면 뭔가 놓친 게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이번에는 빼박 배드엔딩 각이네.
그렇게 생각하고있는데, 시야가 바뀌더니 엔딩 메시지가 나왔다.
[노멀엔딩: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어, 뭐야. 노멀이네?"
엔딩이라는 메시지가 나온 후로, 갑자기 주변의 감각이 확 바뀌었다.
그리고 마치 영상을 보는 듯, 3인칭 모드로 변경되었다.
「너무 급하게 결정해서 미안해. 얀별이랑도 같이 고민했어야 했는데.」
「아니야, 어쩔 수 없지. 나중에 꼭 연락하고.」
「주혁이도 같이 가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
「그래.」
영상 속에서 나와 소연이는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마치 소연이가 멀리 갈 것 같은 모양새인데? 주혁이랑 같이 간다고?
그리고 소연이가 탄 것으로 보이는 비행기가 날아가는 연출이 지나갔다.
뭐야 이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연출은?
"아니 엔딩이 뭐 이래?."
그 뒤에는 허공에 사진이 나타나더니 눈앞에서 멈췄다.
소연이와 주혁이가 함께 찍은 사진, 배경이 우리나라는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진이 옆으로 지나가더니, 그다음에 나타난 것은 주혁이와 소연이가 함께 찍은 웨딩사진이었다.
- 진짜 NTR이네
- ??? 아니 쓰레기겜
- 아ㅈㄹㄴ
- 에바야
- ?????
- 여기서 통수를 친다고?
"아 에바야. 아니 이렇게 과몰입을 시켜놓고 NTR을 한다고?"
그런데 아직 엔딩 장면이 끝나지 않은 듯, 다시 장면이 바뀌었다.
어두운 배경에서 걸어가던 남자가, 몸을 돌리더니 바닥에 주저앉았다.
뭐야, 저거 주혁이잖아?
「소연아. 나 왔어. 요즘 얀별이한테 연락이 워낙 와서 죽겠다. 슬슬 변명하기도 지치고 있어.」
해가 떠서 주위가 밝아지면서, 주변의 광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이 엔딩의 정체를 깨달았다.
"묘지잖아 시발. 아 죄송합니다."
주혁이가 앉아있는 곳은 묘지였다.
그리고 묘지에 있는 묘비에 소연이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역시 실패였구나.
- 야발ㅋㅋㅋㅋ
- 통수에 통수였네
- 소연이 죽은걸 속이려고ㄷㄷ
- 착한 야발ㅇㅈ
- 또 1킬 적립
- 얀별님 또 죽이셨나요
- ㅜㅜㅜ
「네가 처음이 계획을 이야기했을 때. 내가 했던 말 기억하지? 왜 그렇게 나한테 가혹한 부탁을 하냐고.」
「그런데 이제는 알겠더라. 어쩌면 이건 내가 아니라 얀별이한테 가장 가혹한 일이야. 나, 더는 못하겠다.」
「내가 널 좋아하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친구니까 너의 부탁을 들어준 거야.」
「하지만 얀별이도 내 소중한 친구고, 더는 진실을 숨기고 싶지 않아.」
그리고 주혁이는 휴대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동시에 영상이 흐려지며, 가까이에서 휴대폰의 진동소리가 울렸다.
[되돌리기/상세설정]
"아, 이게 이렇게 끝나는 거구나. 배드엔딩 맞네. 이게 무슨 노멀엔딩이야."
물론 예상했던 결과기는 했지만, 실제로 확인하니까 머리가 아파져 왔다.
소연이가 이렇게까지 한 것을 생각하면, 소연이가 자살하는 것이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첫 번째 엔딩에 도달한 이후로는 정보의 수집률을 알 수 있습니다.]
[수집률: 59%]
"이건 그거네, 선택지 같은 거 다 확인해서 100% 달성하는 업적."
엔딩 다 보고 나면 이걸 100%로 수집해 보라고 만들어 놓은 물건이겠지. 흔히 말하는 올클리어 판독기다.
물론,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아 머리 아파. 슬슬 꺼야 하는데, 이 엔딩만 보고는잠을 못 자겠지...?"
- ㅇㅈ
- 소연이 구하는 엔딩 봐야지
- 아ㅋㅋㅋ
- !업타임
- 13시간 27분
- 와ㅁㅊ
- 피곤할만 했네
- 벌써 아침이야
일단 상세설정을 써봐야겠다.
상세설정을 누르자, 내가 진행했던 이야기의 지점들이 이미지로 주르륵 나타났다.
아, 여기서 골라서 이동하는 방식이구나?
"일단 가장 걸리는 부분부터 합시다. 저는 아까 문을 확인 못 한 것이 좀 문제인 것 같거든요?"
그게 에피소드4였지.
나는 에피소드4 중에서 가장 초반 부분으로 보이는 사진을 클릭했다.
[되돌리기/설정변경]
"제발 이번엔 제대로 알아냈으면 좋겠다."
시간을 되돌리자, 익숙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 눈앞에 천사처럼 잠들어 있는 소연이가 누워있었다.
곤히 잠들어 있는 소연이의 모습을 보자, 자연스럽게 머리에 손이 닿았다.
나타나는 상호작용 버튼을 무시한 채 소연이의 머리를 계속 쓸어 넘겼다.
"이번엔 꼭 구해줄게."
- 과몰입 ON
- 너무 과몰입 하시는데ㅋㅋㅋ
- 근데 진짜 좀 구하고 싶다
- 아 체험모드 나까지 과몰입하네
- ㄹㅇ이거 감정을 너무 흔드네
- 아까 묘지 보고 충격먹음
- NTR드립 치려고 후원 준비하다가 못했어
- 갑자기 유턴 오지게 함ㅋㅋ
일단 다시 집을 살펴봤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일기 말고는 정보가 없는데?
"새로운 단서가 상호작용이 바뀌는 거니까, 소연이를 깨워서 이야기해 봐야 하나?"
일단 그것도 고려해 봐야겠다.
잘 생각해 보니까 소연이 휴대폰을 다시 살펴볼 생각을 못 했네.
그럼 일단 내휴대폰으로 지문앱을 켜서....
"어?"
[열쇠공에게 전화한다]
내 휴대폰을 건드리자, 상호작용으로 선택지가 하나 나타났다.
이건 좀 생각하지 못한 전개인데?
- ????
- 아 이게 이렇게 되네?
- 열쇠공한테 전화해서 딴다고?
- ㄴㅇㄱ
- 열쇠를 찾으라는 편견을 버려라 이거야ㅋㅋ
- 상상도 못했네
- 와ㅋㅋㅋㅋㅋㅋ
"이거 이 게임 공략법을 다시 생각해 봐야겠는데요. 부숴서 되는 것도 신기했지만, 이건 좀 예상외의 방법이네."
「그래서 언제쯤 가능하신가요? 2월 13일이요?」
「알겠습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스케줄이 밀려서, 긴급 상황이 아니라면 2월 13일에 오겠다는 답이 왔다.
어차피 2월 13일에 방 내부를 확인하고,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니 알겠다고 했다.
"이거네. 원래 2월 13일에 이걸 확인할 수 있어서, 에피소드7 분량이 짧게 느껴진 거구나. 원래는 방 확인도 포함되는 챕터니까."
- ㅇㅎ
- 이번에 느낌 좋다
- 이제 실종된 에피소드6만 찾으면 됨
- 아 그것도 있네
- ㅋㅋㅋㅋㅋㅋㅋㅋ
- 이번엔 가능성이 보인다
그 뒤로도 기존처럼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다.
이미경험한 컷씬을 스킵하는 기능까지는 존재했기에,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런 편의 기능은 잘 되어 있어서 다행이야.
"자, 다시 온천 숙소인데. 여기서 뭔가 놓친 것 같아요. 밤에 대화할 때 초콜릿 만들자고 하면 바로에피소드7로 가는 것 같았는데."
온천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소연이가 방에 없었던 부분으로 돌아왔다.
앞의 선택지들은 해보지 않은 것들을 다 해봤지만, 영 느낌이 오는 것이 없었다.
"원래는 여기서 주혁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컷씬이 나왔는데...."
전화를 걸면 안 되는 건가?
일단 숙소를 자세하게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캐리어의 물건을 다 쏟아내 가면서 주변을 확인했다.
하지만 특별히 이상한 것은 없었다.
- 뭘 찾기만 하면 없어
- ㅠㅠㅠㅜ
- 머리 쓰는 건 잘하시는데
- 이럴 때는 루냐님이 그립다
- 루냐는 능지 때문에 더 이갈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련발아'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교주님 혹시 숙소 밖은 못뒤져보나요?
"거기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네요. 애초에 그렇게 맵이 클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 했어요. 하긴, 별 이상한 정답이 다 있는 게임이니까 가능성은 있겠네요. 한 번 가보죠."
후원에서 나온 이야기에서 가능성을 느끼고 숙소의 문고리를 잡았다.
다만 역시나 지나갈 수 없는 듯 문고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안.... 어!?"
[주혁이의 방으로 향한다.]
그런데 숙소의 문고리에는, 무려 맵을 이동하는 상호작용이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