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7장 - 가스라이팅(2)
"와, 솔직히 이건 예상외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까 주혁이 방의 위치도 대화에 나왔었지.
그러니까 굳이통화를 하지 않고 직접 찾아가는 것도 이상한 대응은 아니었다.
"일단은 가야겠다."
시야가 움직이더니, 자연스럽게 다른 방 앞으로 이동했다.
나는 207호라고 적힌 문을 가볍게 노크했다.
「어라, 누구세요.」
「나야.」
「어, 어 얀별아? 아니 잠깐만....」
내가 온 것에 놀랐는지, 주혁이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왜 저렇게 놀라지? 당황했다는 것이 티가 나는 목소리였다.
['브금술사'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음성 녹음)
「왜 나는 너를 만나서」
「난 이리 고통 받는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불륜 발각의 현장
- 브금만 들어도 보인다
- 아ㅋㅋㅋㅋㅋㅋ
- 소연아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 있어
- 언제적 노래야ㅋㅋㅋ
「드, 들어와. 응.」
「왜 그렇게 긴장해. 소연이도 있는 것 아니었어?」
「나? 나 있어. 응....」
역시 분위기가 이상하다.
둘이 나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어떻게 하지, 시간을 돌릴 각오를 하고 이야기를 꺼내 봐야 하나?
「둘 다 뭔가 숨기고 있구나.」
「그런 거 없어 얀별아.」
「아니, 소연이 너는 잠시만 조용히 해봐. 주혁이 네가 보기에도 이 상황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주혁이는 내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반응만을 보일 뿐, 어떻게 된 일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소연아, 아까까지 한 이야기는 없던 걸로 하자. 역시 좀 아닌 것 같아.」
「주혁아? 주혁아 잠깐만!」
주혁이가 대충 짐을 싸고 나가자, 소연이가 뒤를 따라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소연이의 손목을 잡아챘다.
「소연아.」
소연이는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시선을 피하며, 이를 악물고 있는 소연이를 보자 자꾸 불안감이 커지려고 했다.
나는 그 이상한 불안감을 숨기기 위해, 그대로 소연이를 껴안았다.
따스한 소연이의 온기가 느껴지자,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왜 그러는 건지 말해줄 수 있어?」
「미안해, 미안해 얀별아. 조금만 더 기다려 줄래?」
소연이는 그 뒤로, 아무 말 없이 흐느끼며 울었다.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 울지마ㅜㅜㅜ
- 니가 왜 우냐고ㅜㅜ
- 느낌이 안 좋다
- 처음엔 그냥 살인 사건이나 자살인 줄 알았는데. 가면 갈수록 분위기가 이상하다?
- 세드엔딩은 안된다....
- 절대해피엔딩이어야 됨ㅜㅜ
"아, 끝났다."
컷씬이 끝나자, 다시 빠른 속도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시야가 바뀌자마자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청 시끄러운 것 같은데, 여기 어디지?"
그리고 시야가 밝아지자, 드디어 상황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꽤 많은 사람이 돌아다니는 주변과, 시끄러운 음악....
"놀이공원!?"
[에피소드6: 데이트]
이제까지 주혁이와 소연이만 나와서 이런 장면은 구현하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이게 되네?
심지어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전부 구현되어 있었다.
물론 랜덤 옵션을 걸어놓았는지, 얼굴이 약간 비현실적으로 중구난방이긴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퀼리티였다.
「얀별아, 뭐해! 들어가자.」
그리고 내 눈앞에서 소연이가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 놀이공원ㄷㄷ
- 정석중에 정석
- 어, 뭐 나오네
- 새로운 기능인가?
- 이제와서?
[지도에 놀이기구별 대기시간이 적혀 있습니다. 놀이기구를 선택해, 정해진 데이트 시간 동안 원하는 코스로 즐겨보세요.]
"이거 한 번으로는 전부 해보지 못하게 하려는 생각이구나. 근데 과거로 시간을 돌릴 수 있으니까 의미가 없잖아....“
소연이의 손을 잡자, 아까나온 설명처럼 놀이공원의 지도가 나타났다.
그런데 좀 무서워 보이는 놀이기구는전부 비활성화되어 있었다.
혹시나 해서 터치해 보니, 짧은 상호작용이 있었다.
「얀별아, 그건 좀 많이 무서울 것 같은데....」
「알았어. 무리는 하지 말자.」
소연이가 무서운 놀이기구를 못 타는구나.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겠지.
그나마 좀 무서운데 활성화되어 있는 것은 바이킹뿐이니까, 이거라도 타 봐야겠다.
- 애랑 놀아주는 느낌인데
- 하지만 소연이는 귀엽지
- 소연이 최고야ㅜㅜ
- 근데 이렇게 놀고 있어도 괜찮나
- 소연이만 즐거우면 괜찮겠지
몇 가지 놀이기구를 타보고, 밥을 먹거나 군것질도 실컷 했다.
별것 아니었지만, 나도 놀이공원은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꽤 즐거웠다.
「이번엔 바이킹 타보자.」
「음, 무서운데....」
「아니야 바이킹은 하나도 안 무서워.」
그렇게 소연이를 데리고 탄 바이킹의 결말은 약간 의외로 끝났다.
「소, 소연아. 괜찮아?알았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울지마.」
「흡, 흐읍.... 얀별이가 안 무섭다고 거짓말했어....」
- ㅋㅋㅋㅋㅋㅋㅋㅋ
- 아니ㅋㅋㅋㅋㅋㅋ
- 미치겠다ㅋㅋㅋ
- 이걸 울리네
- 해.명.해.
- 방장님 해명해
바이킹을 탄 소연이는 그대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를 원망했다.
솔직히 그 원망을 받으면서도 소연이가 너무 귀여워서 자꾸 입꼬리가 올라갈 것 같았다.
아, 그래도 참아야지.
「우, 우리 저기 가서 츄러스나 먹을까?」
「흐잉.」
어떻게든 소연이를 달래서 다른 놀이기구를 타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슬슬 꽤 어두워져 있었다.
내가 다음 놀이기구를 선택하자, 이번에는 소연이가 내 선택을 거절하고 다른 선택지를 제시했다.
「우리 관람차 타자.」
[그래.]
[다른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소연이가 먼저 제안한 건 처음인데?이거 무조건 중요 이벤트겠죠?"
- ㅇㅈ
- 가즈아
- 원래 관람차 고백은 국룰이지
- 이번 엔딩은 과연....
- 고백해! 고백해!
- 받아줘! 받아줘!
"뭘 벌써 고백 이야기를 해. 김칫국 오지시네요."
나는 큰 고민을 하지 않고 선택지를 골랐다.
당연하게도 관람차를 타자는 쪽이었다.
「그래.」
관람차가 올라가자, 약간 두둥실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소연이는 내 쪽을 바라보지 않고,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얀별아.」
「응 소연아.」
내가 소연이의 말에 대답하자, 그제야 소연이는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참 욕심쟁이야. 며칠 동안, 아무리고민해 봐도 이런 결론밖에 내릴 수가 없네.」
솔직히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가슴이 철렁했다.
지금이라도 소연이가 문을 강제로 열고 뛰어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소연아, 너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니지?」
「충분히 이상한 생각, 하고 있어.」
「다시 한번 생각을....」
「좋아해 얀별아.」
그녀의 말에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던 사고회로가 멈췄다.
설마 이상한 생각이라는 건, 뛰어내린다는 게 아니라....
「가족의 좋아한다가 아니라, 친구의 좋아한다가 아니라. 너라는 사람을 좋아해. 아니, 사랑해.」
- 고백 떴다
- ??여기서 고백이
- 아니 왜 죽냐고
- 고백 받아주면 안죽는건가?
- 못 사귀어서 자살한다고?
- 그건 좀....
- 본격 고백 당하는 연애게임
「소연아, 나는....」
「이상하다는 건 알아. 여자끼리 사랑이라니 이상하지?」
「나는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대답하지 말아줘.」
「어?」
소연이는 내 곁으로 다가와서, 손가락을 내 입술에 가져다 댔다.
쉿.
그렇게 말한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오늘 데이트도 했고, 정식 고백은 모레 2월 14일에 할 테니까 꼭 와줘. 장소도 빌렸으니까.」
소연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솔직히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무슨 고백이야....
「나는....」
「쉿, 스포일러는 금지.」
마음 같아서는 모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이냐고 추궁하고 싶었다.
대체 왜 갑자기 고백 같은 것을 하는 것이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소연이는 나에게 말하는 동안 계속해서 떨고 있었다.
저렇게 강한 척을 하고 있는 소연이를 보자, 추궁하려던 마음이 녹아버리듯 사라졌다.
「그리고 나 초콜릿 만드는 방법 좀 알려줘.」
「...초콜릿?」
「2월 14일은 발렌타인데이기도 하잖아. 나도 얀별이한테 초콜릿 주고 싶은걸?」
「초콜릿을 주려는 대상한테, 도와달라고 하는 건 좀 이상하잖아.」
「얀별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그 이전에 가장 친한 친구니까.」
오히려 평소의 소연이 같은 발언에 맥이 풀렸다.
대체 나는 왜 긴장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래, 2월 14일에 무슨 일이 있어도 갈게.」
「고마워.」
그리고 관람차가 바닥에 도착하는 순간, 약간 두통이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지금 일을 처음 겪는 것이 아닌 것 같은....
"자, 잠깐만. 왜 이런 식으로 끝나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간이 가속하기 시작했다.
마치 그럴 틈을 주지 않겠다는 것 같았다.
"이 쓰레기 같은 게임이...."
-ㅋㅋㅋㅋㅋㅋㅋ
- 벌써 죽음의 2단계가
- 아ㅋㅋ
- 좀 있으면 협상 하겠네
- 이렇게 해서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는구나
- 뭔가 겜이 용두사미 느낌이 있어
- 아까 엔딩도 좀 이상했음
[에피소드7: 초콜릿 만들기]
"아, 머리야. 진짜 이 게임 때문에 두통 올라온다."
왜 갑자기 뜬금없이 고백을 하지?
물론 사랑받는 기분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아까까지 주요하게 다루던 것은 분명 소연이의 죽음이었잖아.
"일단 진행 할게요."
혹시나 했는데, 소연이는 초콜릿을 다 만든 후에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피곤하다고 잠시 방에서 잔다고 했다. 이건 아까랑 다른 부분이네.
그리고 미리 약속했던 열쇠공이 집에 도착했다.
열쇠공이 잠시 자물쇠를 만지작거리더니, 필요한 것이 있다며 차로 돌아갔다.
「뭐야, 누구 왔어?」
「열쇠공.」
「응? 어디 문 망가졌어?」
「알잖아, 이 방 슬슬 열어야지. 부탁해서 열쇠도 만들고.」
내 말을 듣던 소연이의 표정이 경악으로 가득 찼다.
역시 이 방에 뭔가 있는 모양이었다.
「구, 굳이 그걸 열어야 할까 얀별아?」
「당연히 열어야지. 여기 공간이 아깝잖아.」
소연이는 내 눈치를 보면서, 열쇠공을 말리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열쇠공은 잠시 문을 만지작거리더니, 꽤 금방 문을 열어냈다.
"바닥에 뭔가 있는데."
[바닥의 종이를 빠르게 챙긴다.]
[방부터 살핀다.]
- 이건 너무 뻔한 선택지인데
- ㄹㅇㅋㅋ
- 너무 대놓고 있어서 아래가 정답 같을 정도
- 추리는ㅇㄷ감
- 추리 태그 미국갔음
나는 당연히 종이부터 챙겼다.
내가 종이를 챙긴 것을 본 소연이는,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대체 여기에 뭐가 적혀있기에 저런 반응이지?
"뭐야, 이거."
내가 주운 종이는, 1월 12일에 소연이가 적은 일기였다.
하지만 그 내용을 읽어 나가는 내내, 나는 그 내용을 계속 부정하고 싶었다.
"...1월 12일. 오늘은 병원에 갔다. 여전히 내 몸의 상태는 심각하다는 모양이다. 특히 최근 급속도로 몸이 망가지고 있단다.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나는 뭔가 잘못 읽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임 설정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져 있을 리가 없잖아.
[새로운 단서: 시한부]
- ?????
- 아니 십
- 원래 소연이는 죽는 거였네
- 설머 이대로 엔딩이라고?
- 그건 좀;
- 그딴 설정은 오바잖아
하지만 내 생각에 반박이라도 하듯, 새로운 단서창이 나타났다.
이게 정말이라고?
물론 저번 엔딩에서 이럴 가능성을 느끼긴 했지만, 그렇다고 충격적이지 않은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하, 미친."
박살 난 멘탈을 어떻게든 수습하려는데, 갑자기 시야가 바뀌었다.
이거 시간 스킵이랑은 분위기가 다르잖아?
오히려 저번 노말엔딩때 본 영상이랑 비슷한데?
"영상? 주인공인데?"
주인공이 옥상의 난간에 서 있는 모습이 영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주인공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구나.」
「미안해, 소연아.」
그렇게 말한 주인공이 난간 아래로 떨어졌다.
쿵!
곧 굉음과 함께 화면이 어두워졌다.
"악! 아니 왜 떨어져...."
다시 화면이 밝아졌을 때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병원 침대에서 화들짝 놀라며 일어난 주인공이 숨을 몰아쉬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거 컷씬이 다른 게임이랑 차원이 다르네. 방금까지 캐릭터랑 하나가 된 것 같았다니까?」
"이거 설마...."
- ?
- ???
- 뭐야 이거 맨 처음인데
- 이거 녹화되어 있었구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니 진짜 미쳐버린 게임
영상에나오는 것은,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나였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영상에서 왜 이런 내용을 보여주고 있는지 깨달았다.
[새로운 단서: 자살기도]
이 게임의 주인공은, 이미 진실에 닿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진실에서 도망쳐서 자살을 시도했고, 살아남는 과정에서 기억 일부를 잃었다.
그 시점에서 게임이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아니, 시발."
그저 그뿐인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