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7장 - 가스라이팅(4) (39/182)



〈 39화 〉7장 - 가스라이팅(4)

방금 일어난 당황스러운 상황 때문에 머릿속이 뒤죽박죽되고 있었다.
이 게임에 마법 기믹이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타이밍을 보면 수집률 100%가 마력 해금의 조건이었겠지.
하여튼, 그렇게 마력이 해방된 상태에서 열쇠가 있다고 믿었기에 열쇠가 만들어졌다는 소리가 된다.

"하, 하하...."

솔직히 어이가 없긴 했지만, 누가 봐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특별한 루트를 발견한 것은 확실했다.

- 뭐야 실화임?
- ?????
- 나 지금 뇌정지 왔어
- 방금 그거 마법임?
-  열쇠가 마법 요구네
당황스럽다 진짜ㅋㅋ
- 이게 되네

"후우, 열게요."

바닥에 있는 문을 천천히 당기자, 어두컴컴한 구멍이 드러났다.
아래로 내려가는 사다리가 있구나? 여기도 연구실 일부인가?
아래로 한 걸음씩 천천히 내디디며 내려가자, 최종적으로는 다른 연구동과 비슷한 느낌의 방이 나왔다.
그나마 다른 부분이 있다면, 구석에 유리로  거대한 욕조가 있다는 점이었다.

"뭐야, 전기는 켜져 있는데.... 절전모드라고?"

컴퓨터를 켜자, 절전모드라는 메시지만 나타나고 아무것도 동작하지 않았다.
그때 연구동A와 연구동B는 전력을 한쪽만 켤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건 연구실에서 사용하는 전원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고, 그래서 이 방에 전력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소리겠지.
아까 찍어둔 차단기 사진을 확인하자, 차단기에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버튼이 하나 있었다.

"이게 숨겨진 연구동에 연결되는 전원인가?"

그럼 이 연구동에 전기를 지금보다 많이 보급하려면, 연구동A와 연구동B의 차단기를 내리고 이걸 올려야겠네.

"지금 전기가 부족해서, 연구동B 차단기를 내리고 와야 할 것 같아요."

- ㅇㅎ
- 그런데 그러면 연구동B는?
- 어떻게 들어와 그러면
안열리잖아
- 그건 문 강제로 열어두면 
- 아 그러네ㅋㅋ
- 이 게임이 자유도가 너무 높아서 가끔 생각이 안닿음
- 아ㅋㅋ

"아까 생일 선물상자로 대충 고정해놓고, 가서 차단기 내리고 올게요."

자동문인 만큼, 물건이 있으면 문이 닫히지 않는다.
아마 이번에도 이런  이용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라는 거겠지. 슬슬  게임의 방식에 익숙해졌다.
사실 그것도 그거지만, 지금 희망이 생긴 덕에 다시 머리가 팍팍 돌아가고 있었다.

[시스템 가동 중...70%]
[올 그린, 프로젝트 환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프로젝트 환생?"

환생이라, 굉장히 신경 쓰이는 용어가 나왔네. 특히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나에게는 더 신경 쓰이는 단어다.
물론 프로젝트의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으로 소연이를 살릴 수 있느냐지.

[현재 자동실행 예약 건이 있어 실행합니다.]

그리고  메시지가 나타나자, 아까부터 신경쓰이던 욕조 모양의 유리벽에 불이 들어왔다.

"...뭐야"

그리고 그 욕조 안에는 알몸상태의 소연이가 누워 있었다.
물론 빛이 중요한 부위를 가리고 있기는 했지만.

- ㅗㅜㅑ
이거 클론 그런건가?
- 진짜 공상과학 게임이었네
- ㄴㅇㄱ
- ㅗㅜㅑㅗㅜㅑ
- 설마 이거로 몸을 교체?
- 그런 방식인가?

"소연이? 혹시 이거...."

[남겨져 있던 메시지를 재생합니다.]

「2015년 10월 8일. 죽어가는 소연이를 살리기 위해 시작했던 프로젝트 환생이 완성 직전에 도달했다.」
「하지만 슬슬  생명이 끝에 도달해 간다. 물론 시간을 되돌리면 연장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는시간이 더 필요했다.  5년은 더 지나야 소연이의 기억과 충돌하지 않을 만큼 클론이 성장할 수 있으니까.」

"아버님...."

소연이와 아버님은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한 아버님은, 소연이만큼은 살리기 위해서 이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그런 스토리구나.

- 아버지ㅜㅜ
- 위대한 유산ㄷㄷ
- 드디어 소연이 살린다
- 근데 이러면 저 몸은 소연이가 맞을까
- 소연이의 기억을 가진 타인일까, 소연이일까
철학적인 문제로 가면 머리아픔ㅋㅋ
- 그나마 가장 나은 엔딩인데도 찜찜하네
- 이런 엔딩이 있는게 어디야
그러게ㅋㅋ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어요. 너무 어려운 문제라서."

「따라서 5년 후에 누군가가 이 연구동C를 찾았다면, 연구동A를 통해소연이의 기억 데이터를 넣어주었으면 한다.」
「소연아, 힘든 경험을 하게 해서 미안해. 사랑한다  딸.」

기억 데이터라.
생각해 보면, 이 게임에서 시간여행을 하는 방식은 기억을 과거로 전송하는 형태인모양이었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와도 몸은 바뀌지 않았었지.

[프로젝트 대상 '이소연'의 기억 데이터가 이미 존재합니다. 프로젝트를 실행하시겠습니까?]

"아, 맞다."

일기장에서 소연이도 시간여행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저기서 말하는 기억 데이터는 그때 기록된 것이겠지.
물론 모든 걸 기억하는 소연이는 아니겠지만, 어차피 지금은 과거에 돌아온 초반부라 모든 것이 일어나기 전이다.
그리고 소연이만 살아날  있다면, 기억은 새로 하나씩 쌓아나가면 된다.

[기억 데이터를 불러옵니다. 1월 28일에 3건이 있습니다. 가장 늦게 기록된 기억 데이터를 불러옵니다.]

"3건? 소연이가 과거로 1번 돌아온 거면 2건 아닌가?"

처음 기계에 누울 때도 기억 데이터가 등록된다는 가정하에 2건일 텐데?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예상이랑 다르다는 것이 조금 찝찝했다.
곧, 클론인 소연이가 담겨있는 욕조의 빛이 하얀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빛이 파란색으로 바뀌더니, 안에 차올라있던 수액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자율행동 시스템이 시작됩니다.]

이건 아마도, 트루엔딩을 볼 때처럼 소연이가 실제로 말하고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반대로 말하면, 여기서 소연이가 깨어날 것이라는 뜻이지.

"후, 드디어 소연이를...."

- 가즈아
- 해피엔딩도달ㅜㅜ
- !업타임
- 25시간 47분
- 방송 레전드ㅋㅋㅋ
빨리 엔딩 보고 잡시다
해피 가즈아ㅏㅏㅏ

욕조가 옆으로 돌아가더니, 소연이가 누워있는 모습으로 바닥에 내려왔다.
그리고 욕조의 위가 문처럼 열리고, 벽에서 수건이 나와서 떨어졌다.
아까부터 반짝거리는 빛이 신경 쓰여서, 수건으로 알몸 상태인 소연이를 덮어줬다.

"...살릴  있었어."

나는 솔직히 많이 지친 상태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정신이 또렷했는데, 소연이의 얼굴을 이렇게 마주 보자 힘이 풀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마 방금까지 쥐고 있던 긴장이 풀린 탓이겠지.

"...얀별이?"
"그래 소연아. 정신이 들어?"
"이상하다. 꿈인가? 사후 세계?"
"무슨 소리야. 여기 연구실이야. 너 살았어."
"나 분명 떨어져서.... 연구실? 펜타임 빌딩 옥상에서 떨어졌으니 살아있을 리가 없는데."
"무슨 소리야. 펜타임 빌딩이라니?"

소연이는 두통이 있는지 머리를 부여잡았다. 기억에 좀 문제가 있는 건가?

"지금 과거로 돌아온 거야? 뭐가 어떻게 된...."
"과거로 돌아온 거긴 한데, 그건 원래 네 몸이 아니야 소연아."
"내 몸이 아니라고? 그러고 보니 나  알몸이지...."
"여긴 연구동C,  몸은 너희 아버지가 준비한 너의 클론이야. 이제는 시한부인 몸이 아니야."
"...어?"

 순간 소연이가 잠시 굳었다.
그런  상상하지도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나라도 그랬겠네.

[히든엔딩: 예상 밖의 결말]

"그렇구나.응, 그런 거였어. 내 생각이랑은 조금 다르게 흘러갔네."

- 후 드디어
히든엔딩 떴다
사실상 진엔딩ㅋㅋ
ㄹㅇㅋㅋ
- 이게 엔딩이지ㄹㅇ
- 뭐야 근데 분위기가 좀 이상한데
- 브금 왜 이럼
- ?? 뭐지

엔딩 메시지가 나온 이후로, 약간 분위기가 이상했다.
뭐야? 브금이 이상해.

"네 생각? 소연아 무슨 이야기를...."
"아무것도 아니야. 얀별아, 나 피곤하다. 조금만 잘게."
"응, 그래.  쉬어."

내가 너무신경 쓰는 건가?
왜 이렇게 기뻐야 하는 결말에 이런 브금이 있지?
브금 말고도 소연이의 말에 신경 쓰이는 것들이 조금 있었다.

"어, 가속한다."

가속 이펙트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이제는 두통이 오면서 어질어질했다.
이제 슬슬 방종해야겠는데?

[DLC기능이 해금되었습니다. 메인메뉴에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뭐야, 이런 기능도 있었네. 히든엔딩 보상인가?"

- 오ㅋㅋㅋㅋ
- 뭐야 뭐가 더 있어?
- 하긴 분위기가 이상하긴 하더라
- 후일담 같은거라도 있으려나
- 저건 좀 기대되는데

그리고 가속이 끝났을 때는 내가 잘 아는 천장이었다.
집으로 돌아왔구나. 천장이 보이는 것을 보면, 여긴 침대였다.

"얀별아."
"응, 소연아."
"사랑해."
"그래, 나도."

침대 옆에서 안겨있는 소연이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그래 이렇게 일상이 이어지는 엔딩을 원했다.
이 정도면 뭔가를 해낼 수 있었던 거겠지.

"읍?"

소연이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다가오더니 키스했다.
확실한 것은 지금 붕 뜨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응, 이렇게 부드러운 행복감 나쁘지 않아.

- ㅗㅜㅑ
- 침대에서ㄷㄷ
- 농후한 민달팽이
- 자리만 바뀌었는데 훨 야하네
이거 정지 안당하나
- ㄹㅇ이번 방송 줄타기 오지네
- ㅗㅜㅑㅗㅜㅑ

"후, 행복하네."
"오늘 2월 15일이야. 원래라면 내가 맞이하지 못했을 날. 그리고 내 생일이지."
"응, 정말 다행이야."
"내가 여기 있을 수 있는 건,  얀별이 덕분이야. 고마워."
"후후, 좀 더 칭찬해 줘도 되는데?"
"그럼,  좋은 걸로 칭찬해 줄까?"
"좋은 거?"
"아니야. 너무 갔다. 나도 좀 자제해야지."

내가 의문을 띄우자, 소연이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리고 나를 인형처럼 푹 껴안았다.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
"그렇겠지. 계속 이렇게 있자. 그리고 생일 축하해."

그리고 점점 감각이 페이드아웃하더니, 사진이 몇 장 떠오른다.
소연이와 바다에 가서 노는 사진, 웨딩드레스를 함께 입고 찍은 사진, 장난스러운 스티커사진까지 있었다.
그리고 곧 그 사진들과 함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 잠깐만 어지러운데."

- ?
교주님?
- 방장님???
- 뭐야 답이 없는데
- ??????
- ????
- 잠깐만 이거 위험한 거 아님?
- 얀별님??

채팅에 대답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질 않았다.
어라?

☆  ☆ ☆ ☆ ☆ ☆


정신을 차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밝은 빛의 형광등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는 것에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아, 뭐야. 나 방송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게임 내부인가?
워낙 오랫동안 게임을 했더니, 이젠 현실이랑 큐브 내부가 분간이 어려웠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시야에 큐브의 UI가 없다는 것 때문에 이것이 현실임을 깨달았다.

"병원?  병원에 와 있지."

몸을 일으켜서 지금의 상황에 의문을 떠올리는 사이, 익숙한 메시지들이 나타나서 시야를 가렸다.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정산을 시작합니다.]
[방송으로 26시간이 추가됩니다.]
[팔로워 보상으로 112시간(1123명)이 추가됩니다.]

일단 어제 방송이 어떻게 되었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맞겠지.
스위치 앱을 켜서 방송의 상태를 확인하려는데, 로그인에 실패했다.

"뭐야, 이거?"

그리고 어제까지는 없었던 메일이 와 있었다.
메일함을 열어서 확인해 보니, 스위치 계정이 48시간 정지되었다는 안내메일이 있었다.
아마도 어제 내가 방송을 하던 도중에 기절했고, 신고를 받아서 계정이 정지되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으로, 누군가의 신고로 큐브 안에서 꺼내져 온 것이겠지.

"어, 하얀별님. 정신이 들어요?"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수증기님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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