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8장 - 매운맛 스트리머의 은밀한 비밀(2)
- 아 그럼....
- 전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까요?
"넵, 아연님이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 봐 드리겠습니다."
방송이 어설프고, 심지어 메인 컨텐츠인 타로를 보는 것도 아직 어색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아무것도 없던 허접한 방송에 시청자가 찾아왔으니, 나는 신나서 그 시청자의 타로를 봐주겠다고 했었다.
"일단 탑 카드가 나왔네요. 그림에서 무너지는 모습이 보이죠? 파괴를 뜻하는 카드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응원부터 해드릴게요. 지금 많이 힘드시겠네요. 최근에 갑작스럽게 나쁜 일이 많이 일어나셨을 것 같아요."
- 네 맞아요 신기하네요
"그리고 두 번째 카드가 별 카드. 지금의 힘든 현실을 극복해 어떤 결과에 도달하려면 희망이 필요할 것 같아요."
- 희망이요?
"네. 그 희망은 지금 보고 있는 타로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아연님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꿈이나, 혹은 아연님을 도와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잘모르겠어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면서 찾아보시면, 아연씨에게 희망이 될만한 것이 분명 있을 겁니다."
이때의 아연씨는 뭔가 많이 지쳐있는 것 같았고, 나는 그런 그녀가 조금이나마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자, 마지막 카드는 광대 카드. 바보 카드라고도 불러요. 이 카드는 순수함이나 어리석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나타내기도 해요."
- 가능성이요?
"전체적으로 연결해보죠. 아연님이 만약 희망을 찾고, 지금의 불행을 이겨낸다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어요."
- 미래라니 어려워요
-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제가 해야 하는 일인데요."
- 그런데 타로 같은 건 돈을 내야 하지 않나요?
"돈은 괜찮아요. 팔로우 한번 눌러주시고 다음에 생각날 때 다시 보러 와주시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광대는 조커 카드를 의미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의 인생에서 판을 뒤집는, 마치 조커 카드 같은 사람.
- 그럴게요
나에게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 ☆ ☆ ☆ ☆ ☆ ☆
잠시 고민하던 겨울님이 카드 하나를 회전시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할게요."
[악마/역방향]
[괴물이 쏟아지는 게이트]
[행운/불운*]
난 나온 결과를 보며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용 자체는 확실하게 잘 나온 상태였다.
"일단 악마 카드는 그림을 보시면 알겠지만, 묶여있죠? 속박을 의미합니다. 뒤집혔으니까 반대로 석방을 의미해요."
"석방이라...."
"그리고 게이트는 새로운 시작이나 기회를 의미해요. 악마 카드와 비슷한 면이 있죠? 혹시 카드를 뽑을 때, 미래 계획에 대해 고민한 것이 있나요?"
"네. 있어요."
"그 계획이 기존의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는 새로운 시도가 될 거예요. 그리고 이 시도가 행운이 된다, 성공할 거란 이야기네요."
- 좋다는 거네.
- 대체 계획이 뭘까
- 흠ㅋㅋ
- 그건 사생활이잖아
-그래도 궁금하긴 하지ㅋㅋ
- 설화는 아는 모양이네
채팅을 보고 설화님을 바라보자, 설화님이 이쪽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긴 자매니까 그런 고민은 알고 있겠지.
"알겠습니다. 이건 생각을 해 봐야겠네요. 미리 잘 부탁드릴게요."
"네? 뭘요?"
"제가 고민했던 장래가 스트리머거든요. 미래의 선배한테 인사해야죠."
"아, 진짜요?"
겨울님까지 방송을 시작한다고?
설화님이랑 루냐님이 있으니까, 저 집안에스트리머만 3명이 되는 거네?
- ?????
- 이걸ㅋㅋㅋㅋ
- 정씨 집안은 다 스트리머네ㅋㅋ
- 스트리머가 3명 있는 집ㅋㅋㅋ
- 엌ㅋㅋㅋㅋㅋㅋ
- 생각도 못하고 있었네
- 와ㅋㅋㅋㅋ
"솔직히 좀 특별한 컨셉을 잡을 거라, 준비가 끝나려면 시간이 좀 걸려요. 그때까진 언니 매니저나 해야죠."
"우리 연약한 겨울이가, 험한 스트리머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언니는 불안해. 악, 알았어. 때리지 마!"
"쿡큭큭"
설화님과 겨울님이 몸의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면서 살짝 웃었다.
확실히 까칠한 모습이 있긴 하지만, 겨울님도 충분히 방송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사실 혼자 하는 건 아니라서, 엄청나게 긴장되진 않아요. 아예둘이서 한 스트리머를 하려고 하거든요."
"둘이서요? 아예 같은 채널로?"
"네, 맞아요."
한 채널을 여러 스트리머가 함께 운용하는 경우다.
그렇게 시작해서 길게 함께하는 채널도 있지만, 어느 정도 큰 다음에는 찢어지는 채널도 있다.
겨울님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응원해 봐야겠지.
"아무튼, 나중에 시작하면 말씀드릴게요."
"바로 가서 설립자 노려야겠네요. 설화님도 제 첫 구독을 가져가셨으니, 저는 겨울님의 첫 구독이라도...."
"겨울이의 처음은 제건데요. 넘보시지 마시죠?"
"언니는 제발 조용히 해."
- ㅋㅋㅋㅋㅋㅋㅋ
- 겨울이의 처음ㅗㅜㅑ
- 많은 사람들이 노리네
- 아ㅋㅋㅋㅋㅋ
- ㅗㅜㅑㅗㅜㅑ
겨울님은 말은 그렇게 해도, 뭔가 즐거운 생각을 하고 있는지 웃고 있었다.
잠시 그런 주제로 떠들썩하다가, 우리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저도 다음에 잘 될지 봐주세요. 음 지금 스트리머 활동이 이런 느낌으로 가도 괜찮을지?"
그리고 설화님이 뽑는 카드들의 조합을 보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러면 긍정적인 답을 주기는 어렵겠네.
[일곱개의 검/정방향]
[별똥별]
[괴물이 쏟아지는 게이트]
[만족/불만]
"안 됩니다."
나는 천천히 타로의 내용을 해설하기 시작했다.
"일곱개의 검은 일러스트를 보시면, 검 5개를 챙기고 가고 있는 사람이 보이죠? 그런데 손잡이가 아니라 날을 잡고 있어요. 위태위태하죠. 지금 그대로 가시면 머지않아서 사고가 날 가능성이 커요."
내 이야기를 들은설화님이 정말 조용해졌다.
아마 내가 말한 것이 뭔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별똥별이랑 게이트, 둘 다 변화를 의미하는 카드입니다. 두 장이나 나온 것을 보면 결국은 위태위태한 기존의 방식 때문에 문제가 생길 걸 예고하죠."
- 지금 처럼 하면 영정ㄷㄷ
- 아 그거였네ㅋㅋㅋ
- 그럴듯한데
- ㄹㅇㅋㅋ
- ㄹㅇㅋㅋ
'내 생각은 달라.'
이전에는 나도 농담 삼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가볍게 이야기할 주제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만족. 기존의 방법을 포기하고 새 길을 걸어가도, 충분히 설화님이 만족하실 가능성이 커요."
"어렵네요. 좀 고민해봐야 할 사항 같아요."
설화님의 진지한 표정을 본 겨울님이 한숨을 쉬더니,지금의 분위기를 환기하려고 시도했다.
"맞다, 전에 보니까 스수들이랑 타로 보는 것도 있던데요."
"맞아요. 아, 그거 한번 봐야겠다. 일단 설화님이 보는 눈송이 달송이들부터 보죠."
이번에 설화님이 뽑은 카드들은 전체적으로 평범했다.
[네개의 컵/정방향]
[뛰노는 강아지]
[다섯개의 동전/역방향*]
[불만/만족]
"이번엔 좀 간단하게 설명해 볼게요. 설화님이 볼 때 눈송이랑 달송이들은 일단 자신을 피곤하게 하는 존재야."
- ㅋㅋㅋㅋㅋㅋㅋ
- 스수특ㅋㅋㅋ
- 피곤하긴 하지
- ㄹㅇㅋㅋ
- 확실히 그렇긴 할 듯
- 설화님 우릴 그런 눈으로ㅜㅜ
"아, 아니야. 너희들은 내 소중한.... 소중한...."
"돈통?"
"아, 그거다."
설화님과 겨울님이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넘겼다.
- ㅋㅋㅋㅋㅋㅋㅋ
- 충격 설화 스수들은 돈통이다 발언
- 펙트: 펙트다
- 그건 맞지ㅋㅋㅋ
- 소중한 돈통ㅋㅋㅋㅋ
"그리고 나에 대해선 잘 모르는 주제에, 너무 오지랖이 넓어."
시청자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
그것이 나쁜 의도로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 가끔 스트리머로서는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럽지.
"암튼 그래서 전체적으로 불만족스러워. 오지랖 좀 그만 부렸으면 좋겠다는 거야. 그것보다는 자기가 생각한 방향으로 좀 흘러갔으면 좋겠어."
"흠, 맞아요. 저는 뭔가 딱 원하는 방향으로 못 가면 스트레스받는 성격이거든요."
"즉, 설화님은 철저하게 눈송이 달송이들은 내 비즈니스 상대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아니에요. 아까도 말했지만, 제 소중한 돈통인데 어떻게 그런 취급을 해요."
- 뭔가 이상한데ㅋㅋ
- 돈통이면 비즈니스 아님?
- 그건가? ATM기가 아니라 노예다
- 하긴 노예는 소중하게 다뤄야지
- 난 이야기를 따라갈 수가 없어ㅋㅋㅋㅋ
- ㅅㅂㅋㅋㅋㅋㅋㅋㅋ
"장난이에요. 하여튼 설화님은 시청자들이 오지랖 좀 그만 부렸으면 좋겠다는 거네요?"
"그렇게 되겠네요."
"오케이, 이번엔 시청자들이 보는 설화님."
이번 카드는 겨울님이 뽑아냈다.
하지만, 나오는 카드들을 볼 때마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져 갔다.
[아홉개의 지팡이/역방향]
[거울을 보는 소녀]
[전쟁/평화]
"뭐지?"
오늘 타로가 영 느낌이 이상했다.
분명 이런 소재는 약간 재미있는 쪽으로 하려는 건데, 엄청 진지한 답이 오네?
"뭐기에 그래요."
"아.... 아홉개의 지팡이, 설화님 시청자들은 설화님이 많이 지쳐있다고 생각해요."
"진짜요?"
설화님은 가만히 있었지만, 오히려 놀라면서 반응한 것은 겨울님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 말에 표정이 더 굳어졌다.
"그리고 그 고민의 원인은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설화님이랑 실제의 설화님이 달라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이번엔 설화님이 조금 화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하는 순간 겨울님이 설화님의 입을 틀어막았다.
"정신 차려."
"아, 응. 요즘 자꾸 이러네."
- 과몰입ㄴㄴㄴ
- 진정하세요
- 아ㅋㅋ
- 과몰입ㄴ
- 진정해
"마지막은 전쟁, 스수들은 이건 꼭 걸고넘어져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쯤 되면 나도 슬슬 어떤 상황인지 눈치를 챌 수밖에 없었다.
"설화님."
"...네"
"음, 휴식이 필요하신 것 같아요. 방송 시간을 좀 줄이고.... 아니지, 아예 휴방을 때리는 걸 추천해 드릴게요."
"네?"
- ㄷㄷㄷㄷㄷ
- 그치 힘들어 하는게 눈에 보이는데
- 갑자기?
- ㄹㅇ좀 문제있긴해
- 너무 무리하잖아
- 이건 맞지
- 솔직히 좀 쉬어야됨
[대상: '정봄'이 특성: '상담 에프터 서비스(S)'의 목록에 등록됩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메시지가 나타났다.
아마 완전히 상담을 종료하지 않아도 여기에 등록되는 모양이었다.
'역시.'
설화님의 이름이 진한 보라색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보라색은 회피하고 싶고, 현재 가면을 쓰고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색이 진한 건, 정도가 심하다는 거고. 이건 역시 내가 예상했던대로....'
페르소나 증후군, 흔히 가면 우울증이라고 부르는 병이다.
물론 나는 의사가 아니니까 제대로 된 진단은 아니다. 그냥 내가 느끼기에 그런 유형이라는 거지.
'원래 방송에서의 자신과 실제 자신은 다를 수 있지. 누구나 행동할 때는 장소에 맞는 가면을 쓰니까.'
하지만 그것이 그녀에게 너무 과한 부담을 준다면, 중단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알았어요. 쉴게요."
"쉬시는 것도 쉬시는 건데, 그거랑 같이 해결해야할 것도 있어요."
"네?"
"지금 설화님이 지쳐있으니까 당연히 쉬어야죠. 그런데 쉬고 나서 복귀하시면요? 또 무리하실 거죠?"
"......"
정곡이었는지 설화님은 대답 없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 아....
- 진짜 무리하는게 맞았네
- ㄹㅇ좀 쉬라고
- 힘든거 티나
- ㅠㅠㅠㅠㅠㅠ
- 제발 무리하지마
- ㄹㅇ말 겁나 안들어
"방송 운영에 대한 부분이니까 가능하면 터치하고 싶지 않지만, 솔직히 저도 걱정이 많이 됩니다. 겉으로는 지금 괜찮다고 하지만 사실은 죄다 엉망이잖아요."
"이 멍청한 언니야. 내가 티난다고 했지?"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원래 일을 하면 다 힘든거지...."
틀린 말은 아니다. 당연히 방송을 하다 보면 힘든 일도 있고 스트레스도 쌓이겠지.
심지어 스트리머를 전업으로 하고 계시니까.
"설화님 이거랑 그건 달라요."
하지만 일로 인해서 지치는 것과 자기 자신을 자책하고 몰아붙이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페르소나 증후군이네요. 지금 설화님이 방송에서 사용하는 이미지와 자신의 이미지 사이의 괴리. 이건 사실 많은 스트리머가 느끼는 부분이에요."
문제는 그 괴리로 인해 자기 자신이 열등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본래의 자신은 인정받을 수 없고, 따라서 자신을 숨기는 연기를 멈춰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쫓기게 된다.
"그렇죠. 저도 그냥 그런 거예요. 다들 너무 심각하게...."
"하지만 무엇보다 설화님이 그렇지 않다고 느끼시는 거죠?"
"......."
"본래의 자기 자신이 인정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시잖아요?"
"그건...."
"확실하게 말해 드릴게요. 그렇지 않아요. 설화님은 이미 인정받아 마땅한 분이세요."
가면을 쓴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 모든 것을 이뤄온 것은 설화님 본인이고, 그것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설화님이 쓰고 있는 그 가면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 가면을 만들어온 설화님이 중요한 거죠."
가면을 쓰고 방송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그 가면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본래의 자신을 자책하기 시작하면 위험하다.
"저...."
내 이야기와 시청자들의 반응에 설화님이 당황할 때마다, 조금씩 보라색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아직은 모자라다.
조금 더, 그녀가 만든 벽을 부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