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8장 - 매운맛 스트리머의 은밀한 비밀(3)
'일단 몰아붙이기만 하는 건 여기까지.'
선을 지키지 않으면 오히려 다시 가면을 쓰는 쪽으로 도망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유형을 상대하는 것이 어려운 거고.
"자, 자 채팅방 조금만 조심해주세요."
과열된 분위기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워낙 평소에 쌓인 것이 많았는지 시청자들의 반응이 난리였으니까.
이 정도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청자가 많다면, 해결해야 할 이유가 더 늘어나겠네.
"과몰입하시는 건 좋은데요. 그게 오히려 설화님한테 부담이 될 수 있잖아요. 선 지키지 않아 주시면 겨울님한테 목 따여요."
"이미 다 땄어요."
"어우야."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빠른 처리
- 집행검 ON
- 이게 매니저지ㅋㅋㅋ
- 티아인줄 알았네
- ㄹㅇ봇만큼 빠르네
- 저게 매니저?
"설화님한테 방송의 컨셉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건 아닙니다. 그걸 시청자들한테 감당하라고 하는 이야기도 아니구요."
"그럼요?"
조금 싸늘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그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이름의 색이 녹색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녹색은 고민하는 중이라는 뜻이었지.'
이 능력 실제로 경험해보니까 엄청나게 도움이 되네.
"그냥 알려주세요. 나는 사실 이렇게 행동하는 때도 있다. 방송에서 그러지는 않지만, 사실 이렇게 행동할 때가 더 편하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나아질 수 있다.
본래의 자신이 드러난다고 해서 대부분의 애청자들이 변하지는 않으니까.
'오히려, 배려한답시고 너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위험하지.'
나는 그걸 지독하게 경험해본 당사자니까 잘 알고 있었다.
시청자가 감정의 쓰레기통은 아니지만, 때로는 시청자들에게 터놓고 털어놔야 할 때가 존재하는 법이다.
"오히려 지금 설화님이 이 이야기를 터놓고 하지 못하면, 시청자들은 설화님을 믿지 못하게 돼요."
침묵은 예상을 부르고, 그 예상은 오해와 잘못된 정보를 불러온다.
그리고 그 정보들은 본래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현실을 좀먹어버린다.
"타로에서 말하는 위험성은 그걸 말해요. 현재 설화님의 멘탈에 안 좋은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 설화님의 상태에 의문을 품는 시청자들이 너무 많아졌잖아요."
설화님은 이런 주제를 꺼내지 않는 것이 시청자들을 배려하려는 생각이겠지만, 오히려 애청자들에게는 그것이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그들은 스위치의 시청자이기 이전에 설화님을 좋아하는 팬들이니까.
"언니...."
"알겠습니다.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볼게요."
나는 설화님이 제대로 고민해 보고 답을 주기로 선언하고 나서야 다음 타로 질문으로 넘어갔다.
"음, 그럼 다음은...."
"언니는 좀 쉬자. 이번에는 제 타로를 봐주세요. 음, 제가 생각하는 사람이 나중에 행복할 수 있을지?"
"진지한 표정인 걸 보니, 소중한 사람인가 봐요?"
"네, 엄청요."
"나 말하는 거지?"
"아니니까 좀 꺼져."
불쌍한 설화님.
겨울님이 뽑은 카드들은 다행히 전체적으로 밝은 계열의 카드들이었다.
[열개의 컵/정방향]
[다과회]
[편중/균형]
"일단 첫 번째 카드는 열 개의 컵. 보기만 해도 밝은 분위기죠?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그런 미래가 오겠네요."
"오,행복한 미래."
"그리고 다과회가 나온 걸 보니, 일상이 즐거울 거라네요. 마찬가지로 밝은 내용이죠?"
내 설명에 겨울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마지막 카드가 좀 마음에 걸리네.
"그런데, 그 행복이 약간 편중되어있어요."
"편중되어있다고요?"
이걸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잠시 머리를 굴려보다가 괜찮은 표현이 떠올랐다.
"자기 자신은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이 보기엔 아닐 수 있어요. 그래도 본인이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저는 좋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 언니다운 생각이네요.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대상: '정겨울'이 특성: '상담 에프터 서비스(S)'의 목록에 등록됩니다.]
'이게 정확히 어떤 시점에서 등록되는지는 잘 모르겠네.'
겨울님의 이름을 확인하자, 아까부터 보라색을 유지하는 설화님과 다르게 하얀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얀색은 딱히 특징이 없을 때.'
이 능력에서 색이 발현되는 감정은 대부분 나쁜 감정이라서, 좋은 감정만 품고 있을 때는 이렇게 아무 색도 나오지 않는다.
"이제 뭘 봐야 하나, 설화님과 다른 스트리머들의 케미?"
"아, 그럼 일단 하얀별님이랑 볼래요."
"저요? 음, 이미 증명되긴 했지만.... 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 자신감ㅋㅋㅋ
- 근데 잘 맞긴 했지
- 맞아. 뭔가 설화는 맞아야 제 맛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니 그 맞는게 아니잖아ㅋㅋ
미리 카드별로 의미를 정해둔 후에 카드를 뽑기 시작했다.
아마 내 예상에는 별로 이상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하긴, 오늘은 굉장히 예상 밖의 결과가 많이 나왔으니까.'
[네개의 검/역방향]
[불타는 회로]
[다과회]
[불운/행운]
"어, 뭐야. 아니 설화님 너무하시네요. 정말."
"제가 뭘요.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음, 그러네. 카드 설명은 하고 말했어야지.
"설화님이 뽑은 카드가 이거거든요? 불운 카드. 저랑 만난 걸 불운이라고 생각하셨군요...."
"쳇 들켰나? 아, 아니 무슨 소리예요. 아닌데? 진짜 아닌데요."
사실 그것보다는 오늘 일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특히 저 카드를 회전시킬지 굉장히 고민하시는 모습이 보였으니까.
- ㅋㅋㅋㅋㅋㅋㅋ
- 하긴 최근에 많이 맞았지
- 설화님 정말 너무하네요
- 월화야ㅜ어떻게그럴수있어
- 실망입니다ㅋㅋ
- 부정하는거 개 웃기네ㅋㅋ
"푸하하하. 아, 그리고 제가 뽑은 카드는.... 어? 이거 힘드니까 헤어지자는 뜻인데?"
"아니 뭐야. 단물만 쪽 빨아 먹고 버리려고 했던 건가요?"
"아, 아니에요. 제가 그런 짓을 왜 해요."
- 얀별님 해명해
- 해
- 명
- 명
- 해
- ㅋㅋㅋㅋㅋㅋ단합
- 개 웃기네ㅋㅋㅋ
물론 농담을 한 것이지, 정말로 그런 카드는 아니었다.
이 카드는 네 개의 검이 역방향이니까 재활이라는 뜻이 가장 강하다.
'내가 방송을 다시 시작하는 날, 많은 도움을 주셨으니까.'
방송 초기에 설화님이 도와주셨기에, 계속 은인이라고 생각했던 점이 반영된 것 같았다.
"...그리고 케미는 불타는 회로랑 다과회, 매운맛과 달달한맛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방송을 할 수 있는 거죠."
- ㅇㅈ
- 그 휙휙 바뀌는 재미가 있긴 해
- 설화가 표정이 좀 이상하네
- 아까부터 타로에 과몰입해서
- 과몰입 밴
- 그럼 여기 방장부터 밴해야함ㅋㅋ
- 맞네ㅋㅋ
"아, 과몰입 이야기 좀 하지 마세요. 찔리니까."
그리고 슬슬 다음 차례를 골라야 할 때가 되었다.
음, 그럼 누구부터 보는 게 나으려나.
그러다가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어서 추천했다.
"다음은 루냐님 어때요?"
"...그 인간은 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곧 설화님은 한숨을 푹 쉬더니 카드를 뽑기 시작했다.
저번에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니까,평범한 남매의 느낌이었는데.
"이건 돌리고, 끝."
"어?"
하지만 나는 실제로 나온 카드들을 보고, 조금 놀라서 침음을 냈다.
"아니, 어어?"
설화님의 말대로, 그리 추천할 수 있는 조합은 아니라고 나왔다.
하지만 그 이유가 조금 특이했다.
[여섯개의 검/역방향]
[쇠사슬로 묶인 상자]
[무능/능력*]
"묶인 상자에 여섯개의 검...."
여섯개의 검의 역위치는 기본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이별을 의미한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있는데, 바로 고백이라는 뜻으로 사용할 때다.
'쇠사슬로 묶인 상자는 자신이 감추고 싶은 비밀이고.'
즉, 두 카드를 합치면 비밀을 고백해 버린다는 뜻이 되겠네.
"상대가 중요한 비밀을 고백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주의해야 하는 합방이네요."
내 설명에 설화님의 눈빛이 흔들렸다.
심지어 이름의 색이 불안을 뜻하는 주황색에 가까워지기도 했다.
'그 비밀이 설마 원래의 설화님의 성격인가?'
아까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하여튼, 제생각이랑은 다르게 합방이 좋다는 답은 나오지 않았네요."
"으으, 나는 그 인간이랑 합방하면 답답해서 못 살아."
"너무 오빠한테 그러지 마."
"...알았어. 그래도 안 맞는 건 어쩔 수 없잖아."
루냐님이 약간 천연스러운 면이 있지.
설화님은 그 성격이 답답한 모양이었다.
근데 그건 그 방의 시청자들도 답답해하는 것 같긴 하더라,
- 확실히 루냐님은ㅋㅋ
- 답답하긴 해ㅋㅋㅋㅋ
- 사람은 착함
- ㅋㅋㅋㅋㅋㅋㅋ
- 솔직히 귀여운데
- 답답한건 맞지
"좋아 다음은 누굴 볼까요? 콘소메님?"
"왜 자꾸 이상한 것만 보자고 하는 거죠?"
- 이상한거ㅋㅋㅋㅋ
- 소메 이상한거였누ㅋㅋ
- 그 팝콘이 또
- ㅋㅋㅋㅋㅋㅋㅋ
- 콘소메맛은 어쩔 수 없지
아니, 그냥 그쪽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랬지....
"포카 언니나 봐주세요."
"어, 안 그래도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통했네요."
결과는 재미있게 나온 편이었다.
이 정도면 분위기 환기하기에는 충분하겠네.
[광대/정위치*]
[꺼져가는 불씨]
[잠자는 고양이]
[음란/인내*]
"일단 설화님이랑 포카님이 합방하면, 설화님이 자꾸 인내하지 못하고 음란한 방송을 만들어요."
- ㅋㅋㅋㅋㅋㅋㅋㅋ
- 섹드립 엄청 치긴 하지
- ㄹㅇ대단하긴 해
- 마왕 앞에서 그러기도 힘들텐데
- 맞으면서도 하더라
- 레기드 많이 찍었지
설화님이 변명을 하려는 듯, 잠시 생각하다가 뭔가를 깨달았는지 입을 열었다.
"아, 섹스. 확실히 포카 언니랑 방송하면 그랬던 것 같네요."
그리고 나는 살짝 웃은 후에 해석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이게 나쁜 의도는 아니에요. 설화님이 스스로 광대, 그러니까 재미를 위해 희생하는 부분이 있어요."
"어, 그거 영업 비밀인데. 그걸 말해 버리시네."
물론 가장 중요한 카드들이 남아있긴 했다. 어떻게 보면 이게 메인이지.
"그런데 포카님은.... 잠자는고양이에 꺼져가는 불씨. 그 분위기에 피로해서 지친 나머지 한계가 찾아왔어요."
"네?"
"한계를 넘으면 이제 설화님이 장렬하게 산화하겠지."
포카님에게 대가리 식힘 형을 처형받지 않을까?
음, 상세한 방식이야 그날 하던 게임마다 다르겠지만.
- ㅋㅋㅋㅋㅋㅋㅋㅋ
- 아 익숙한 데쟈뷰가
- 설화야 즐거웠어
- 잘가ㅋㅋㅋㅋ
- 아ㅋㅋ
- 죽을 때가 된 것
설화님은 짧게 두려움에 떨더니, 해결 방법을 생각해냈다.
"무조건 마력이 금지인 게임 해야겠네."
"조심하세요. 쿡쿡"
"수증기님이랑은 방송으로 봐서 알고 있고.... 음, 그 팝콘은 별로 안 내키는데."
"그래도 해야죠. 이번에는 콘소메님 봅시다."
[동전의 여왕/역위치]
[뛰노는 강아지]
[완성/불완*]
"동전의 여왕이 역위치, 설화님은 그 합방이 불안해요."
"불안하다고요?"
"왜 불안하냐면, 이 강아지 카드 보이죠? 자기가 외로운 걸 들킬까 봐 불안해요."
"말을그렇게 하니까 제가 소메님을 좋아하는 것 같잖아요. 제 취향은 차라리 하얀별님 쪽인데?"
"네? 아, 그러시구나. 그런데 이 키워드 카드를 보시면 불완전한 것이 완성되죠?"
- 자연스럽게 무시ㅋㅋㅋ
- 아.그.러.시.구.나.
- 완성되는거면 좋은거 아닌가
- 실제로 케미 좋잖음
- 하긴ㅋㅋㅋㅋ
- 취향ㅋㅋㅋㅋㅋㅋ
"왜 완성되냐면, 아까 그 불안함을 느끼시는 것 때문에 완성되죠."
음 정리하면....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잘 표현했다고 하려나.
"소메님이 설화님을 잘 파고드는 편이라서, 최소한의 선은 잘 지켜줘도 스스로가 조급해서 무서운 거야. 그런데 그 생각 때문에 또 합방의 재미는 증가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거죠."
"아하.... 근데 결국 제가 스트레스받는 합방이잖아요? 자, 쓰레기죠?"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항상 즐기고 계시던데.
오히려 너무 즐기는 탓에 위험하다고 느끼시는 걸지도 모르겠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재밌었어요."
"저야말로 재밌었어요."
"저도요."
그렇게 우여곡절이 많았던 타로 방송이 끝나고, 설화님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엉?"
상담하고싶은 것이 있다며, 가능하다면 집으로 놀러 와 달라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