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8장 - 매운맛 스트리머의 은밀한 비밀(4)
"아,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나온 겨울님을 보자마자 설화님과 굉장히 닮았다고 생각했다.
큐브 모델링이랑 현실의 모습이 거의 차이가 없네.
'분명 설화님이랑 나이 차가 꽤 난다고 들었는데.'
생긴 것만 보면 쌍둥이라고 말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후우, 안녕하세요."
그런데 겨울님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데, 표정은 뭔가 반가우면서 반갑지 않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주 옅은 노랑색인가.'
그리고 그녀의 이름이 흰색에 가깝지만 살짝 노란색이 가미된 느낌으로 변해있었다.
아마 안녕하지 않다는 의미겠지.
"왜 그러세요?"
"아, 별거 아니에요. 현실에서 보는 건 처음이니까 신기해서 그래요. 혹시 만질 수 있나?"
겨울님은 그런 농담을 하면서 내 손을 붙잡더니, 갑자기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서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방금 잠깐 노란색이 진해진 걸 보면, 방금 저 말도 거짓말 같은데."
"괘, 괜찮으세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진짜긴 하네요. 느낌이 이상하다."
겨울님이 왜 저러는 건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루냐님이랑 설화님은요?"
"오빠는 큐브 안이고, 언니는 방에 있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음, 방이 좀 많네.
방금 지나친 방은 방음부스 셋팅이 되어있는 걸 보면 방송용 방 같았다.
"언니? 야 정봄! 하얀별님 왔어. 좀 나와봐."
"힉? 아, 아니. 꼭 나, 나도 만나야 할까?"
나는 방문 사이로 들리는 말에 조금 기시감을 느꼈다.
뭐야, 설화님이 저렇게 말을 버벅거리며 하셨던 적이 있었나?
"문 연다?"
"아, 안대!"
그리고 겨울님이 방문을 열었을 때 보인 것은, 나를 바라보면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설화님이었다.
원래도 작지만, 오늘따라 더 작아 보이는 것 같네.
'근데 저게 설화님이라고?'
물론 외모 자체는 맨날 보던 설화님 그대로지만, 분위기는 아예 다른 사람 같았다.
솔직히 누구냐는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은 오히려 역효과가 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대로 삼키기로 했다.
"역시놀라시네. 그럴만하죠. 언니는 방송을 끄면 완전 다른 사람이 되니까요."
"확실히 좀 격차가 심한데요?"
꽤 분위기가 다를 거라는 건 예상을 하고 왔다.
페르소나 증후군이 의심될 때는 대부분 그 모습의 차이가 어지간하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하니까.
계속 침대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설화님이 답답했는지,겨울님이 나서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냥 방송한다고 생각해. 물론 쉴 필요는 있지만, 그 상태론 이야기 진행이 안 되잖아."
"으, 으응. 후우...."
설화님이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갑자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루만이네요. 하얀별님. 아, 진짜 부르지 말자고 했는데 겨울이가 소원권까지 써서 불렀어요."
이제야 내가 아는 설화님 같은 느낌이었다.
방송할 때는 이렇게 가면을 쓰고 진행하는 거구나.
"뭐, 타로에서도 이야기가 나왔고.... 저는 원래 찐따중에서도 씹찐따인 성격이거든요. 원래 처음 보는 사람이랑은 대화도 못 해요."
"그렇게 심해요?"
"네, 그래서 방송할 때만 미리 잡아둔 성격을 연기해요. 방송에 대한 피로도가 높긴 한데, 제 원래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죠."
그럼 이제까지 방송하면서, 항상 연기를 하는 기분으로 진행했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방송 시간이 긴 편이 아니셨구나."
"네, 언니는 방송할 때 금방 지치니까요. 언니 본 모습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가족뿐이죠."
"구 아발론 크루원도 몰라요?"
"모르죠. 현실에서 만날 때에도 항상 연기를 했으니까요. 아마 가족 외에서는 제 원래 모습을 본 건 하얀별님이 처음이에요."
하지만 내가 이런 방식을 더 진행하면 위험할 것이라고 지적했고, 그것에 대해 논해 보자는 이유로 불렀다는 소리였다.
"일단 뭐라도 마시면서 이야기하죠. 하얀별님은 녹차랑 커피 중에 뭐가 좋아요?"
"평소엔 커피인데, 오늘은 녹차가 나을 것 같아요."
고개를 끄덕인 겨울님이, 차를 내오기 위해 방을 나갔다.
그리고 설화님이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처음 방송을 시작한 계기는 오빠새끼 때문이었어요. 이제는 아시겠지만, 그 방 시청자들이 좀 정상이 아니잖아요. 흔히 말하는 병동."
그런 느낌이 있긴 하지.
모든 시청자가 그런 성향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후원으로 여러 섹드립이 다 날아오는 방이니까.
'예전 세상에서도 그런 방은 여럿 있었던 것 같은데.'
심지어 그게 대기업이 되면, 이미 만들어진 분위기에서 탈피하기도 어렵다.
애초에 그 분위기를 깨는 것 자체가 방송에 너무 큰 타격이기도 하고.
"우리 가족은 그 당시에 굉장히 몰려있었거든요. 부모님은 갑자기 돌아가시고, 오빠가 할 생각이 없던 방송이라도 해서 생계를 유지하기 시작했어요. 그 이상한 애들을 상대하면서요."
설화님이 연기가 힘든지 잠시 머리를 붙잡았다.
다음 이야기는 찻잔을 들고 들어온 겨울님이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니는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자신이 방송으로 돈을 벌어서 오빠가 스트리머를 그만하게 할 생각이었대요. 그런데 언니가 원래는 방송할 성격이 아니거든요."
설화님은 자신의 성격이 스트리머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억지로 만들어낸 캐릭터를 연기하기 시작한 건가?
"제가 오빠처럼 캐릭터성이 특별하지도 않았고, 결국 신체가 로리급인 로리콘이라는 설정을 밀고 나갔어요. 뭐 귀여운 건 원래 좋아하기도 했고...."
음 엄청난 설정이네. 그런 설정이 있었구나.
나는 설화님 방송을 오래 보던 시청자가 아니라서 거기까지는 몰랐다.
"하여튼, 어그로를 끌기 위해서 특별한 캐릭터로 잡았던 건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설화님은 이야기를 하다가, 힘이 드는지 심호흡을 하면서 차를 들이켰다.
"죄송해요. 오늘 방송을 했던 직후라서, 상태가 영좋지 않네요."
"괜찮아요. 천천히 말씀하셔도."
급할 필요는 없다.
아직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고, 정말 늦으면 집에 가는 길에 짧게 야외 방송이라도 하면 되니까.
솔직히 말하면 연기를 하는 설화님이 지치는 것이 눈에 띌 정도라서 그쪽에 더 신경이 갔다.
"그러다가 스수들이 농담으로 스수를 먹는다는 밈을 밀었고, 어차피 연기하는 김에 로리콘콘이라는 설정도 추가했어요. 그렇게 설화랑 월화가 나뉜거죠."
"월화가 로리콘콘이라는 무지막지한 설정이었어요?"
난 이제까지 그냥 설화는 귀여움, 월화는 섹시를 담당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여튼 그렇게 해서 이중인격 캐릭터가 생긴 거구나?
"근데 오빠는 따라갈 수가 없더라고요. 평균 방송 시간도 짧을 수밖에 없고, 생각보다 방송이 성장하는 것도 어려웠어요. 사실 처음에는 연기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서, 사운드 채우는 것도 애먹었지만요."
사실 사운드 채우는 것은 대부분의 뉴비 스트리머들이 어려워하는 일이다.
그걸 잘 해내는 것이 쉬운 일은아니지.
그래서 라디오 방송보다는 게임 방송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아 한계다. 죄, 죄송해요."
"괜찮아요. 연기하지 말고 편하게 있으세요."
물론 저 정도로 낯을 가리면, 원래 성격으로 방송을 하는 건 무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렵네요. 하지만 굳이 그걸 숨겨야 할 사유가 될까요? 시청자들도 대충은 알죠?"
"원래 모습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 거예요. 하지만 이 정도로심할 거라곤 생각 하지 않겠죠?"
그나저나 이런 이야기는 차라리 더 친할 수증기님한테 말하는 편이 좋았을 텐데.
물론 타로 방송이 있긴 했지만, 민감한 문제라서 좀 의외였다.
"그런데 겨울님. 왜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신 건가요? 수증기님도 있었을 텐데."
"언니는 수증기님을 잘 알지만, 저는 모르니까요. 오히려 불안했어요."
"...그 말은 꼭 저는 잘 아신다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내 말에 겨울님이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고 이름에 노란색이 보이는 것도 아니니까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게 아니고! 그래도 이번에 타로 방송도 같이 했고.... 수증기님이랑 다르게 여성분이기도 하잖아요?"
뭐야, 변명하기 시작하니까 급격하게 노란색이 되는데?
답변 자체는 되게 상식적인 선이지만, 거짓말로 하는 소리라는 점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크흠, 그래서 결국 설화님은 지금 상태를 유지하고 싶으신 거죠?"
"언니는 그렇다는데, 저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언니가 너무 힘들 것 같아요."
매 방송에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늘어날 거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본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은 계속 떨어진다는 점이다.
"하, 하지만 이 상태로 방송을, 하기엔...."
우물쭈물하는 설화님의 모습을 보면, 뭔가보호 본능이 싹트는 느낌이다.
설화님이 이 상태로만 방송하는 건 쉽지 않겠지.
그렇다면 오히려 회복기의 의미로 섞어준다면 어떠려나?
"설화님, 아니 정봄 씨에 대해서 설화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네, 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오늘따라 귀엽게 느껴지는 설화님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은 다음에, 아까 생각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까 설명하신 바에 따르면 '설화'라는 캐릭터는 미소녀를 좋아하는 약간 변태인 스트리머라는 설정이죠. 맞나요?"
"네."
"그리고 제가 보기에 충분히 그 스트라이크 존에 정봄이라는 사람이 들어간다고 봐요."
"하얀별님, 설마 해서 묻는 건데요. 지금 언니한테...."
이걸 세간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자공자수 컨셉으로 갑시다."
"와, 정말 엄청난 생각을 하고 계셨구나."
겨울님은 살짝 기분 나쁜 오타쿠를 쳐다보는 느낌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서 뭐라고 반박을 할 수가 없네.
잠시 심호흡을 하던 설화님이 연기를 시도했다.
"...말도 제대로 못 붙이는 합법 로리라니. 가능, 십가능."
그리고 아까까지 나에게 쏘아지던 겨울님의 혐오는 설화님에게 옮겨갔다.
저번에 들었을 때, 겨울님은 얼마 전까지 스위치도 잘 모르는 일반인이었다고 했던가?
"심지어 월화라는 캐릭터는 따지자면 시청자를 케어해주는 캐릭터죠. 이렇게 셋이면 충분히 방송을 진행하는 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해요."
연기하던 캐릭터들은 유지하지만, 본래의 모습으로도 방송을 진행한다면 상시로 연기를 유지하던 예전보다 피로도가 낮아질 것이다.
그리고 설화님의 원래 모습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이 생겨난다면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에도 도움이 되겠지.
"제가 보기에 원래 성격을 방송에서 보여준다면, 오히려 시청자들은 좋아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설화님은 연기를 하지 않으면서 방송을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요."
"너무 간단하게 말씀하시는 것 아닌가요?"
겨울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너무 낙관적인 소리긴 하다. 모든 게 그렇게 쉽게 흘러가면 얼마나 좋겠어.
"말로는 간단해도 그걸 실제로 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잘 될 거라는 보장도 없고요. 그리고 저는 조언만 하는 거고, 결정은 자기 몫이니까요."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고, 진행하는 것은 본인이어야 한다.
그래야 조언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그대로 따라가도록 하면 그건 조언이 아니라 조종이 된다.
"시, 시청자들이 나, 나 같은 걸 좋아할까요?"
"본인이 연기한 캐릭터도 그렇다고 했잖아요. 결국 시청자들도 비슷한 생각일 테니까요."
연기를 한다고 해도, 실제로 이제까지 방송을 연결하고 이어가던 것은 그녀 본인이다.
익숙해지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잘 진행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중인격을 넘어서 삼중인격 스트리머가 되겠네."
겨울님은 황당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설화님은 나쁜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아까부터 뭔가를 계속 메모하고 있었다.
"녹차 맛있다. 이건 어디서 산 거예요?"
"잘 몰라요. 오빠가 팬들한테 받은 거라서."
그렇구나. 이쪽 세상에도 크리에이터에게 선물을 전해주는 시스템은 있었지.
이름이 팬박스였나? 나도 등록해야 하는데 잊어먹고 있었다.
"가능성은 추,충분히 있을 것 같아요. 아이디어 감사합니다."
"아, 진짜 느낌이 이상하네. 설화님이 저러니까 괜히 막 껴안고 싶고 그래요."
그래도 아직 내가 남자였던 기억 때문에 그런 짓은 함부로 못 하겠다.
게임인 라스트 발렌타인에서도 이런 행동에 익숙해지는 것에 시간이 꽤 걸렸으니까.
"이, 이렇게요?"
설화님이 떨리는 팔을 양쪽으로 벌렸다.
흔한 허그 자세긴 한데,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그러고 있으니까 좀 파괴력이 강했다.
"...그대로 안으면 잡혀갈것 같은데."
"잘 아시네요."
어째서인지 카메라를 켜고 있는 겨울님 때문에 설화님을 안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뒤쪽에서 문소리가 들리더니, 내 뒤에 있던 방문이 열리면서 나를 밀어버렸다.
"악!"
그 덕에 나는 중심을 잃고 넘어졌고, 바로 앞 침대에 있던 설화님 쪽으로 쓰러졌다.
"어?"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나에게 깔린 채로 울먹이고 있는 설화님의 얼굴이 엄청나게 클로즈업된 상태로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