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9장 - 너의 마력이 보여(3)
"잠깐만."
나는 게임의 컷씬을 보면서,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단 이 새하얀 마력이 나오는 건 좋은데 말이야.
'조작이 안 되는데?'
게임 스토리상 발견해야 하는 주인공들의 특별함은 이 새하얀 마력이 틀림없다.
그런데 왜 이 마력은 내가 조작할 수가 없는 거지?
'이거, 내 마력이 아니네.'
마력에는 크게 내 마력과 다른 사람의 마력이 있다.
그런데 내 손에서 흘러나오는 이 마력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아까까지 느껴지던 내 하늘색의 마력도 내가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러면 마법을 아예 사용할 수가 없다는 소리였다.
'내가 착각하는 건가? 컷씬이라서 마법 금지?'
아니면 지금 각성한 하늘색 마력의 효과가 이렇게 다른 모든사람의 마력 스펙트럼을 훔쳐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미 마력이 효과를 다 하고 있어서 마법으로는 사용할 수 없나?
'그럼 대체 이 흰색의 마력은 왜 나온 거야?'
내가 의문을 해결하기도 전에, 게임의 스토리는 계속해서 진행되기 시작했다.
「나를 무시하다니. 쓰레기 주제에!」
그리고 아까 릴리스를 공격하던 여성이 손을 펼치자, 그 주위로 붉은색의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력이 그림처럼 모여드는 장면은 아주 아름다웠지만, 그만큼 위험하다는 판단도 빠르게 내렸다.
이걸 막아야 했다.
"뭐야 이거 어떻게 막아! 피해야 하나?"
"제, 제가 하고 있어요! 제가마법을 써서 막아볼게요!"
방금은 컷씬이 아니라 설화님이 말한 것 같았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깨닫게 된 점이 있었다.
"...설화님 지금 시야에 뭔가 보이는 게 있나요?"
"아, 아뇨? 마력 스펙트럼이라는 것도 이제는 보이질 않아요."
"아 망했다."
- ㅋㅋㅋㅋㅋㅋㅋ
- 깨달음ㅋㅋ
- 하지만 늦었죠?
- 이거 클리어는 가능함?
- 여기서 패배하고 배드엔딩?
- 에반데ㅋㅋㅋㅋ
- 가능성 있어
'이거 눈 역할과 몸 역할로 나누어진 게임이네.'
눈인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마력 스펙트럼을 훔쳐볼 수 있지만, 실제로 마법은 사용할 수 없도록 봉인 당한다.
몸인 설화님은 자신의 마력 스펙트럼도 볼 수 없지만, 그 새하얀 마력을 다룰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즉,설화님이 마법을 써야 한다는 소리네.'
이건 확실히 협력게임이 맞다.
한 명은 눈이 되고, 다른 한 명은 몸이 되어야 하는 정신 나간 방식의 협력게임.
"이, 일단 아까부터 저 녀석이 불 마법을 썼으니까 여기서는 물로...."
가장 큰 문제는 설화님의 마지컬이 절망적일 정도로 취약하다는 것이다.
아직도 블러드엠페러의 노멀엔딩을 보지 못하셨을 정도니까.
"괘, 괜찮은 것 맞죠?"
"아, 아마도요."
그래도 무리가 가는 수준은 아니었는지, 설화님이 발동한 물로 만들어진 방어막이 불꽃 마법을 막아냈다.
「막았다고?」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 상황에 당황하고 있는 여자를 보며, 릴리스가 비웃음을 날리며 도발했다.
「그 쓰레기 같은 F급에게 공격을 막힌 기분은 어때?」
「쓰레기가, 기고만장해선!」
본래라면 제대로 보이지 않았겠지만, 내 눈에는 조심스럽게 하늘로 움직여서모이기 시작한 붉은 마력이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설화님 하늘! 다음 공격은 하늘에서 떨어져요!"
"네, 네?"
이번에 날아오는 공격은 지난번과는 마력을 사용하는 방식이 달랐다.
조심스럽게 움직여서 급습하는 느낌.
물론 실제로는 사람이 쓰는 것과 같은 마법이 아니라 유사하게 재현해둔 것이겠지만, 그만큼 정직하게 마력의 흐름이 드러났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강해요! 마력을 좀 더!"
- ㅋㅋㅋㅋ답답
- 얀별님이면 이미 상황 끝인데
- ㄹㅇ마왕도 아니고 교주님 선에서 컷
- 랜덤이 이렇게 나온게 레전드임
- 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래도 뭐가 되긴 하네
새하얀 마력이 좀 더 밝아졌다.
솔직히 말해서 마력의 유동만 봐도 얼마나 설화님의 마법이 비효율적인지 알 수가 있었다.
포카님이 평소에 다른 사람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답답하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딱히 마법을 잘 다룬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설화님의 경우엔 조금 심한 것 같은데.
"아, 망할."
어떻게든 공격을 막아내긴 했지만, 방어 마법이 부실했던 덕에 여파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도 설화님이 이런 대응에 대한 피지컬은 좋아서, 내가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여파가 없는 방향으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거기 그만. 그 이상 난동을 부리면 교칙 위반으로 전원 입건하겠다.」
「칫.」
아까 스토리 초반에 대화를 나누었던 교수님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는데.
「다들 자리에 돌아가서 식사하도록 하게. 구경하던 인원들도 자리로.」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지. 내 제자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교수님은 이상한 눈초리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음, 뭐지?
「F랭크로 강등당하기 전에는, 꽤 유망주라고 듣긴 했지만....실제로 실력이 상상 이상이군.」
이번에는 릴리스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 방금 있었던 사건을 마력의 사용 방법을 각성한 것보다는, 릴리스의 실력이 높았단 것으로 판단하는 모양이었다.
"진실을 알려주지 못해서 슬프다."
"조용히 하시죠?"
설화님에게서 아까랑은 다르게 날 선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마 연기를 시작했겠지.
그나저나 큰 문제가 없어서 눈치를 채지 못했었는데, 조금 전까지는 연기 없이도 방송을 꽤 잘 진행하고 계셨구나.
"와 근데 진짜 걱정이다."
"뭐가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설화님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설화님의 마지컬로 과연 이 게임을 무사히 클리어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관건이었다.
물론 클리어하지 못해도 방송은 재밌겠지만, 엔딩을 보고 싶은 것은 게이머의 기본적인 욕구니까.
"어, 이제 이동한다."
아인과 릴리스는 조용히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그렇게 둘만 남아서야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까, 대체 뭐였어? 그리고 넌 누구야.」
「내 이름은 아인. 너랑 마찬가지로 F랭크에 사용법을 알 수 없는 마력 색상을 가지고 있었어.」
「끙, 나는 릴리스야. 아까부터 느끼는 건데 말하는 방식이 엄청 마이페이스구나.」
「예전부터 듣긴 했지. 하여튼 중요한 건 우리가 드디어 우리 마력의 사용 방법을 찾아냈다는 거야.」
「역시아까 그 마력은....」
그렇게 말하면서 릴리스는 아인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하얀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스펙트럼은 보이지 않지만, 이 느낌....」
그리고 새하얀 마력이 빙글빙글 돌더니 아까 생긴 상처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오, 되게 예쁘다.
"이건 확실히 설화님이 사용한 게 아니네."
"어떻게 알았지?"
설화님이었으면 빛이 막춤을 추면서 달려들었을 것이다.
저렇게 정돈된 상태로 균일하게 움직일 리가 없잖아.
'물론 실질적인 마력의 유동만 봐도 사람의 마법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 수 있지만.'
하여튼 설화님의 마법은 대충 봐도 알 정도로 심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포카님의 마법을 이런 스펙트럼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얼마나 깔끔하고 이쁘려나.
「일단 치료나 방어의 성능이 올라가는 걸 보면, 노란색 계열인 것 같은데.」
릴리스는 한숨을 쉬더니 아인의 손을 놓았다.
방금까지 보이던 스펙트럼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하늘색 마력이 돌아왔다.
「이제 랭크를 다시 판정받을 수 있겠지?」
「아마도.」
「하,진짜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장학금이 꼭 필요해?」
「장학금보다는, 내가 적이 좀 많아서. 회색인 F랭크는 사실상 교내에서 노예 같은 취급이잖아. 그리고 난 학교를 꼭 졸업해야 하고.」
[이 학교를 꼭 졸업해야 한다고?]
[그래 그럼, 말 나온 김에 설득하러 가자.]
"어 뭐야. 선택지 처음 본다."
- 2번ㅋㅋㅋㅋㅋ
- 뭐라는거야ㅋㅋㅋ
- 진짜 개 뜬금 없네
- ㅋㅋㅋㅋㅋㅋㅋ
- 말이 이어지질 않는데
- 아니ㅋㅋㅋ
그러게? 갑자기 뭘 설득하러 가자는 거야.
게임을 하면 할수록 캐릭터가 너무 마이페이스인데?
"무조건 두 번째 해."
- ?
- ???
- 저기요?
- ㅋㅋㅋㅋㅋ
- 미쵸
- ㄹㅇㅋㅋ
- 맞지ㅋㅋㅋ
「그래 그럼, 말 나온 김에 설득하러 가자.」
「뭐?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인데?」
「이제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는 마력이 있으니까,찾아가서 보여주면 랭크를 올려주지 않을까?」
"내 캐릭터인데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하여튼 일단 밀고 나가고 보는 성격이다.
그것 외에는 신경도 안 쓰고, 판단을 내리기 전에 깊게 고민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좀 힘들지 않을까? 일단 우리가 손을 잡으면 사용할 수 있는 이 마력부터 제대로 이해해야지.」
「그런가?」
「결국 이 마력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해. 혹시 넌 아까 그 마력 스펙트럼이 보였어?」
「어. 하얀색?」
「하, 하얀색?」
마력의 색을 듣자마자 경악한 릴리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했다.
「설마, 이거 역사에서 나오는 신성 마력이라는 건가? 이제는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글쎄. 그런 이야기는 잘 몰라서.」
「만약 신성 마력이라면 노란색 계열이랑 당연히 비슷하겠네.」
「그래?」
릴리스에게 그렇게 답한 아인은 작게 하품까지 했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아인은....
"이 새끼 관심 하나도 없는데?"
- ㅋㅋㅋㅋㅋㅋ
- ㄹㅇㅋㅋ
- 하품까지 하네
- 릴리스만 흥분함ㅋㅋ
- 아ㅋㅋ
- ㅋㅋㅋㅋㅋㅋㅋ
「애초에 신성 마력이라는 건, 노란색 계열이 극한이라고 여겨지는 마력이거든. 특징은 하얀색이라는 거랑 역대 영웅들이 지녔던 색이라는 거지.」
「영웅이라고?」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아인의 눈초리가 바뀌었다.
꽤 흥미로운 것을 들었다는 듯이 반짝거리는 눈이었다.
「그래. 우리가 지금 얻게 된 마력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거야.」
「좋아. 그럼 이제 무슨 마력인지 알았으니까 설득하러 가자.」
「뭐, 뭐? 아직 확정된 건 아니잖아!」
아인의 말에 릴리스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자 아인이 자신이야말로 답답하다는 듯 설명을 시작했다.
「이 학교에는 마력 색 측정기가 있어. 네 말대로 이 흰색이 그 정도의 가능성이 있다면 당장 몸값을 올려야지.」
「그런가?」
「그렇지.」
"이걸 설득당했네."
릴리스도 외모랑 다르게 좀 드센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워낙 아인이 마이페이스니까 계속 말려드는 느낌이었다.
결국 그대로 둘이서손을 꼭 잡은 채로 랭크 담당 부서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음, 진행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네.
"내가 고른 선택지지만 정말 이렇게 막무가내로 돌진할 줄이야."
"하얀별님 너무 과격해요."
"제가 뭐가요! 그거 컷씬이거든!"
- ㅋㅋㅋㅋㅋㅋ
- ㅗㅜㅑ
- 과격하대
- ㄷㄷㄷㄷㄷ
- 얀별님 나쁜여자였네
- ㄹㅇㅋㅋ
「하여튼 예외 상황이라 이거군요. 원래라면 인정할 수 없습니다만, 랭크가 변경된 것이 얼마 전이니까 아슬아슬하게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색상 테스트를 같이하고 싶어요. 우리 마력은 둘이서 하나거든요.」
「둘이서 하나? 꽤 예외 사항이 많네요. 제 선에서 처리 가능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충분히 저를 설득할 수준이면 교수님을 호출하죠.」
씩 웃은 릴리스가 마력 색 측정 도구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마력을 끌어올리는 모습까지는 나에게 보이는데, 도구는 움직이지 않았다.
뭐지?
「이제 마법을 사용하셔야죠.」
「사, 사용 중인데요?」
실제로 마력으로 만들어진 작은 빛이 하늘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데도 도구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려는 순간, 내 눈앞에 선택지가 떠올랐다.
[가만히 구경한다.]
[내가 손을 가져간다.]
그리고 나는 선택지를 보자마자, 왜 마력의 색이 드러나지 않는지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