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10장 - 히든 루트를 찾는 1가지 방법(2)
설화님이 한 이야기를 이해하기까지 잠깐 시간이 걸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게 가능한가?
큐브에서 진행하는 게임은 현실과 비슷하다고는 해도 분명 다른 점이 존재한다.
게임에 미리 준비된 것이 아니라면 그런 행동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 게임에서 굳이 생리현상을 구현할 필요가 있어?'
큐브의 게임들이 리얼리티를 꽤 살리는 편이긴해도, 결국 '너와 맞잡은 손'은 정해진 스토리를 따라가는 스토리 게임이면서 던전의 퍼즐을 풀어나가는 퍼즐 게임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기능을 넣을 필요가 없는데.'
생리현상은 리얼리티를 극적으로 추구한다는 심플월드에서나 넣는 기능이지.
"설화님이 착각하셨겠죠. 너맞손에 그런 기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 ㄹㅇ처음 듣는데?
- 그게 가능함?
- 애초에 생리현상 구현하는 게임이 더 드물지
- 그런 기능 없음
- 당연히 없지
- 대체 그럼 뭘 했다는 거임?
- 그러게?
- 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도 설화님의 말에 당황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게임에도 그런 기능이 없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아무리 생각해도 설화님이 착각해서 한 말이겠지.
그때는 워낙 마법에 집중했기 때문에 착각했을가능성이 있다.
"...진짠데. 잠시 체험모드 끌게. 확인할 게 있어서."
"서, 설화님?"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프로그램을 조작했다.
대충 그녀가 하려는 것을 예상한 나는 멍하니 지켜보다가, 그녀를 말렸다.
"굳이 그걸 확인해야 할까요?"
"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설화님의 행동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설화님은 말없이 자신의 손을 치마의 안쪽으로 가져갔다.
"역시, 착각이 아니라니까요."
"저는 왜 굳이 본인의 추태를 늘리려는 건지가 이해가 안 돼요."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요. 잘 생각해보니까 더 부끄러운 말도 평소에 많이 했더라고요."
그렇다고 지금의 상황을 그렇게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나?
'정말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보라색으로 물든 설화님의 이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설화님은 분명 연기를 하고 있겠지, '설화'라는 캐릭터라면 이런 반응을 보여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설화님이 나를 툭 건드리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별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채팅의 반응이나 하얀별님의 반응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어요."
"뭘요?"
"...명백히이상하잖아요. 게임 엔진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행위를 성공시키다니."
물론 그건 이상하긴 했지만, 마법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잠깐만.'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 포카님, 그게 아니더라도 나였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맞았다.
하지만....
"설화님이 그 정도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나?"
아무리 최면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결국 최면에 대한재능과 마법에 대한 재능은 거의 같은 것이다.
마지컬이 나쁜 사람이, 첫 최면에 그런 결과를 내는 것이 가능해?
'아니야, 불가능해.'
하지만마지컬이 나빠도 그런 어려운 마법에 성공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단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게임의 엔진에서 보조해주는 경우.'
"뭔가 다른 요소가 있나?"
"설화님 이건 어디까지나 가설이고, 그럴듯하게 들려도 너무 진지하게 듣지는 마세요."
나는 방금 뇌리를 스친 생각을 조심스럽게 설화님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인과 릴리스가 사용하는 이 하얀 마력이, 전설로 내려오는 신성마력일 가능성이 있다는 설정이 있었죠?"
"네. 신성마력 맞다고? 야, 스포하지마."
"아무튼, 이 마력이신성마력이 맞으면 신성마력에 다른 요소가 있지 않을까요?"
"다른 요소요?"
내가 생각한 것은 이렇다.
신성마력이 노란색 마력과 비슷한 효능을 가지고 있고, 충분히 강한 것도 맞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전설'을 표하기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하얀색 마력이, 기존의 시스템과 엔진을 무시하는 길을 열어주는 마력이라면 어떨까요."
"죄송한데, 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못 했어요."
"일반적으로 게임 시스템을 바꿔버리는 마법은 어렵긴 해도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실제로 저와 포카님은 게임 내 스킬의 쿨타임도 바꿀 수 있고요."
그러니 이미지만 잘 할 수 있다면, 이 게임에 존재하지 않는 것도 구현해서 동작시킬 수 있다.
즉, 시스템을 건드리는 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런데 문제는 설화님이 이 마법을 다룰 마지컬이 없다는 점이에요."
"그렇죠?"
"아예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라서, 실제로 마법으로 충분히 물을 만들었죠. 그게 이제까지 본 설화님 마법 중에서는 가장 효율이 높았어요."
하지만 그 마법조차 시스템에 생리현상 기능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얀색 마력에 보정이 걸려있는 겁니다. 시스템을 무시하는 마법을 쉽게 사용하게 해준다는 보정이요."
- 아 이해했다
- 그럴듯한데
- 진짜인가?
- ㅈㅁ위키보고온다
- 그거 하나에서 여기까지 도출하네
- ㄷㄷㄷㄷㄷ
"그러니까 실제로는 불가능한 마법인데, 보정을 받아서 발동했다는 건가요?"
"맞아요."
사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만약 이 추측이 정말이라면 치트키를 가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만약 정말로 그런 기능이 있다면, 굳이 퍼즐을 풀지 않고도 문을 열어버릴 수 있을 거예요."
- ?
- 치트에반데
- 듣고보니 그렇네
- 아니 그럼 노잼아님?
- ㅋㅋㅋㅋㅋㅋㅋ
- ㄴㅇㄱ
- ????
물론 정말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해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잠깐만요."
그런데 설화님이 나를 멈추더니, 다른 아이디어를 냈다.
"던전 좀 살펴봐 줄 수 있어요?"
"던전이요?“
"저랑 하얀별님 시야가 다르니까요. 하얀별님은 어떻게 보여요?"
"이 중앙에 있는 문에 여러 색의 마력 스펙트럼이 그림처럼 그려져 있어요. 저기연결된 퍼즐을 다 해결하면 열리는 구조겠죠."
다만 거기 이어진 스펙트럼들이 꽤 많은 방에 이어져 있었다.
꽤 퍼즐의 분량이 많을 것으로 예상이 갔다.
"가장 마력 스펙트럼이 많은 것 말고요. 혹시 마력 스펙트럼이 없는 방 있어요?"
"마력 스펙트럼이 없는 방이요? 아, 저거요. 하지만 잠겨 있을 텐데."
거기까지 말한 후에야, 설화님이 나에게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눈치챘다.
그래, 분명 이상한 일이다. 마력 스펙트럼이 없다면 저 방은 어떻게 열어야 하지?
"최초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뭔가 찾은 것 같기는 하죠?"
- ??
- 뭔소리지
- 아ㅋㅋ
- 이해했다
- ㅁㅊ그러네?
- 저 문 여는거 본 적 없었네
- 또 히든임?
- ㄷㄷ
채팅방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보면서, 확실히 이번에 설화님이 한 건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네요. 이걸 오줌이...."
"아니, 굳이 그거에 집중하지 마세요."
내 말을 신경질적으로 끊어버린 설화님이, 다시 내 손을 잡고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새하얀 마력이 그녀의 손을 따라서 빙글빙글 돌았다.
파앗!
그리고 그 마력은 문고리에 스며들었다.
설화님이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렸고, 부드럽게 문이 열렸다.
"빙고."
"이걸 여기서 또 히든을...."
이번엔 내가 찾은 것이 아니라 설화님이 찾은 것이지만.
나는 히든을 발견했다는 이유로 큐하를 외치고 있는 채팅방을 보면서 작게 웃었다.
['진찐자라'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최초 맞는 것 같은데? 찾아봐도 안 나옴
"오케이, 큐하큐하."
설화님의 손을 잡고 문 안으로 들어가자, 자연스럽게 컷씬이 시작되었다.
「여긴 또 뭐야? 아, 벌써 머리가 아파진다.」
「나는 방금 그 미로 같은 장소보단 훨씬 나은 것 같은데?」
한숨을 내쉬는 릴리스를 보며, 아인이 고개를 으쓱하면서 앞장섰다.
「진짜 너는 생각이 깊은 건지, 아니면 없는 건지....」
"오, 바로 스토리로 이어지네."
"퍼즐 게임인데 퍼즐을 스킵당했네. 다행이다."
"그거 무슨 뜻이에요?"
"크흠...."
- ㅋㅋㅋㅋㅋㅋㅋ
- ㄹㅇㅋㅋ
- 설화 마지컬 끌고 퍼즐 풀뻔 했잖어~
- 시청자의 치아 건강을 신경쓰셨네
- 솔직히 퍼즐보단 히든이지
- 와 근데 이런 루트가 아직도 남았네
- 갓겜ㄷㄷ
우리가 잡담하는 사이, 아인과 릴리스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도착한 곳에는 제단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고, 제단의 중앙에는 책 한 권이 빛을 뿌리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불안한데 막 건드리진 말자. 내 말 듣고 있어?」
「응?」
릴리스가 말렸지만, 아인이 대답한 것은 책에 손이 닿은 이후였다.
그 순간 책이 입자가 분해되듯 하얀색 빛으로 바뀌더니, 하늘색과 분홍색으로 나뉘어서 날아다녔다.
「아, 깜짝이야.」
「정말, 상의 좀 하고 움직이라고!」
「어, 음. 미안.」
그리고 분홍색 빛은 아인의 손에, 하늘색 빛은 릴리스의 손에 날아들더니 그 자리에 작은 반지로 변해 있었다.
「...반지?」
「각기 하늘색이랑 분홍색이네.」
- 반지ㄷㄷ
- 원래도 반지를 주긴 하는데색없음
- 맞네 반지에 색이 있네?
- 이것이 '히든'이라는 것이다
- 와 커플링! 와 우결각!
- 커플링ㅋㅋㅋㅋㅋㅋ
이상한 점은 원래 본인들의 마력 스펙트럼과는 다른 색상의 반지가 주어졌다는 점이다.
이것도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어?」
아인의 손을 따라서 새하얗게 빛나는 마력 스펙트럼이 흘러나왔다.
「이 반지가 있으니까 혼자서 이 마력을 다룰 수 있는데?」
「아, 이제야 마력 스펙트럼이 보인다. 이게 이런 색이었구나.」
그리고 반지의 정체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아인과 릴리스가 서로 손을 잡지 않고도 각기 하얀색 마력을 다룰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었다.
「이게 뭔, 아니 이런 게 가능해? 대체 이 던전은....」
「뭐, 나쁠 건 없잖아.」
아인은 하얀색 마력으로 몇 번 마법을 사용하며 장난을 치다가, 곧 릴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계속 유지되지 않으면 모를까, 유지되면 우리 둘이 서로 따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뜻이지. 네가 원했던 거 아니야?」
「그건 맞는데. 솔직히 이런 일에 말려드는 게 평범하진 않잖아.」
그녀의 말을 들은 아인이 웃으면서 그 말을 반박했다.
「우리가 언제는 평범하게 살았어?」
「그건.... 그렇네.」
특별한 재능이라고 칭송받다가, 하루아침에 쓰레기 취급으로 전락.
그리고 그걸 다시 특별한 재능이라고 알아차리기까지.
둘은 이제까지 평범이랑은 굉장히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다.
'그나저나 이 반지가 히든 루트의 주제인 모양인데.'
본래 하얀색 마력은 하늘색과 분홍색의 마력이 합쳐져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반지는 반지의 색에 맞는 마력을 공급해 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혼자서 하얀색 마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겠지.
"오, 커플링이네. 우결 각이다."
"아니 이게 무슨 커플링이에요."
이걸 우결각을 보네.
왜 반지에서 이야기가 거기까지 가는 거야?
농담이니 별 상관은 없겠지만, 우결에 대해서는 영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서 조금 당황했다.
'뭐 그래도 설화님이면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아, 이게 아니지. 게임에 집중하자.
「아, 출구다. 대체 이 던전은 뭐였던 걸까?」
「그러게. 몬스터 하나 나오지 않고, 이런 미로 같은 던전은 들어본 적 없어.」
「심지어 우리의 하얀색 마력이 무조건 필요한 곳 같았는데....」
캐릭터들이 던전 내부를 다시 살펴보았지만, 그 이외에 무언가가 있지는 않았다.
"정말로 던전은 끝인가 보네."
"그러게요."
곧 화면이 전환되더니 아까 던전으로 들어갔던 숙소에 도착했다.
「역시, 던전 밖에서도 잘 되네.」
「손을 안 잡아도? 그러게. 심지어 마력 스펙트럼도 보여.」
「어, 잠시만. 이거....」
아인은 뭔가 깨달았는지 갑자기 릴리스의 손을 붙잡았다.
그는 릴리스의 손을 붙잡은 채로 주변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반지를 쓸 때는 마력 스펙트럼이 보이질 않네.」
「응? 잘 보이는데?」
「우리가 손을 잡을 때는 본인의 마력 스펙트럼이 아니어도 볼 수 있잖아.」
"아, 그러네. 반지를 껴도 다른 사람 마력은 보이질 않네."
- 이야기 많이 바뀌네
- 오ㅋㅋ
- 이게 히든이지
- 스토리 많이 달라지려나
- 신규 엔딩 많으면 좋겠다
- ㄹㅇ루다가
"그러게요. 히든 루트에서도 엔딩이 여러 개로 갈릴지도 모르겠다."
「아, 맞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할 거냐니?」
「우리 둘을 다른 사람으로 재신청할 거야?」
아인의 질문에 릴리스가 잠깐 고민하더니 조심스럽게 대답을 내놓았다.
「아니, 일단은 숨기자. 그게 좋을 것 같아.」
「그래, 그러자. 어우 머리를 썼더니 피곤하네.... 가서 좀 쉴게.」
「응.」
휴식을 취하겠다고 한 릴리스가 방 안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
음, 여기부터는 다시 설화님이랑 시야가 달라지겠네.
- ??
- 와ㅋㅋㅋ
- 이게 이렇게 되네
- 뭔데??
- 아니ㅋㅋㅋㅋㅋ
-
"무슨 일이야.왜 또 니들만 아는 이야기 해!"
내가 그렇게 물었지만, 나에게 이유를 말해주는 시청자들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