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10장 - 히든 루트를 찾는 1가지 방법(6)
설화님은 바닥에 널브러진 상태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음, 저렇게 단단하게 묶여있는 모습으로 대화하니까 이상한 기분이 드는데.
"그러니까, 릴리스의 오빠인 라이즈가 설화님을 묶어놓고 갔다고요?"
"그, 그렇다니까요."
역시 아까 보라돌이, 아니 바이올렛이랑 이야기했던 부분이 어느 정도는 적중했다.
굳이 설화님을 사용하지 않고 여기에 가둬놓았다는 건 반지만으로도 하얀색 마력을 쓸 수 있다는 거겠지.
"배신하더니 꼴좋네요."
"아니, 진짜 잘못했어요! 풀어줘요...."
"그치만, 릴리스는 배신자잖아?"
물론 스토리 진행상 우리도 하얀색 마력을 사용해야 하니까, 설화님을 데려가긴해야 한다.
그래도 여기서 그냥 넘어가면 재미가 없는데....
"풀어주면 뭐 해주실래요? 전 방치 플레이도 좋아해요."
"오우야. 아니 이게 아니지. 뭘 원하시는 거예요? 호, 혹시 제 몸?"
- ㅗㅜㅑ
- 몸이라니
- ㄱㄴ
- 넘 야해
- ㅗㅜㅑㅗㅜㅑ
- 몸ㄷㄷㄷㄷ
이런 상황에도 매운 드립을 놓치지 않는 설화님 덕분에, 다시 채팅방이 불타기 시작했다.
하긴 지금 릴리스가 묶여있는 모습부터가 맵긴 하지.
"호오, 나쁘지 않네요. 몸으로 받아 가야겠다."
"네?"
설마 내가 액면 그대로 받아칠지는 몰랐는지, 설화님의 표정이 붉게 물들었다.
나도 이제 이런 소리를 자연스럽게 하는구나....
한 달 사이에 우리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몸으로 주시는 것 아니었나요?"
"아, 아니.... 그게."
설화님은 제대로 당황했는지 어느새 원래의 성격으로 돌아왔다.
아니면 성격을 이용해서 날 막아내려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네.
다만, 오늘 이미 한 번 당했는데 또 당할 수는 없지.
"지금 설화님은 거미줄에 잡힌 먹잇감이라고요. 잘 생각해 보세요."
"히, 히익!"
그리고 그 상태로 나는 그녀에게 뭘 뜯어내면 좋을지 고민을 시작했다.
물론 방송적으로 재미있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싶은데....
'역시 그다지 생각나는 것이 없네.'
지금은 대충 넘어가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래도 나중에 생각이 날지도 모르니까....
"소원권 하나. 콜?"
"에, 에엑?"
"안 하면 전 그냥 갈 건데."
"이, 이걸 협박각을 봐요?"
저 성격으로도 이제 할 말은 다 하는구나.
생각보다 금방 적응하시는데?
"싫으면 말고. 전 그럼 이만 가볼게요."
"너, 너무 마이페이스잖아! 현실적으로 같이 가야 깰 수 있잖아요!"
"음, 아시다시피 아인은 세계 최강 마이페이스의 달인이라서요."
"아."
내가 이렇게 진행해서 배드엔딩이 나올지는 몰라도, 딱히 스토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물론 정말로 데려가지 않을 생각은 없었지만.
"후, 알았어요. 대신 선 넘는 소원은 안 돼요!"
"아니, 방송에서 할 건데.... 선 넘는 걸 하면 제가 매장되죠."
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물론 방금 분위기가 여러모로 이상야릇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스트리머 본인까지 과몰입하면 안 되지.
'어라, 내가 할 말은 아닌가?'
나는 워낙 게임에 과몰입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설화님 그거 마법으로 못 풀어요?"
"불발되던데요?"
하지만 내가 발동하는 마법은 자연스럽게 발동했다.
설화님을 묶고 있는 저 쇠사슬의 영향인가?
"혹시 모르니까 챙기죠. 이제 가봅시다."
우리는 주변을 경계하면서 건물을 죄다 뒤졌다.
별다른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냥 병사들을 조심하면서 열쇠로 다른 열쇠를 찾는 형태였다.
"이제 확인하지 않은 방은여기가 마지막인데."
"아마 여기가 보스 방이겠죠?"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자, 컷씬이 시작되었다.
역시, 시나리오상 여기가 마지막이구나.
「호오, 보고는 받았지만 정말로 올 줄이야. 그냥 도망칠 것이라고 생각했다만.」
「반지는 돌려받아야죠.」
「학생에게는 과분한 물건이야. 애초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애송이들이 아닌가.」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지금 손을 잡은 상태가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아마 마법을 사용하는 것 같은데.
그리고 거기까지 진행된 순간 컷씬이 풀렸다.
"꺄아악!"
"어, 뭐야!"
그 순간 분홍색 빛이 눈에 비친다 싶더니, 나에게 마법이 날아왔다.
지금 설화님이 날 공격한 건가?
"저기, 설화님?"
설화님은 나랑 멀리 떨어지더니, 계속 나에게 마법을 던져가며 공격했다.
물론 마법이 너무 조잡해서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었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가? 아니면 아직도 컷씬?'
그래도 아까 소리를 지른 목소리는 컷씬보다는 설화님 본인의 목소리 발성 같았는데?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 어우ㅋㅋ
- 이건 좀
- 갓겜ㅋㅋㅋㅋㅋ
- ㄴㅇㄱ
- 아니ㅋㅋㅋㅋ
- 이건 공격할만 했다
"자꾸 여러분만 아는 이야기 하실래요?"
저런 반응을 하는 것 보면, 혹시 설화님이 볼 때의 내가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건가?
'예전에 공포 게임에서 비슷한 녀석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럴 때 가장 위험한 것은 서로를 적으로 생각해서 공격한다는 점이었다.
즉, 여기서 서로를 적이 아니도록 인식하게 할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다.
'내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을 테니까, 설득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즉, 설화님이 직접 보고 깨달을 수 있는 힌트를 줘야 한다.
그리고 그건 이 게임에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손을 잡으면 끝나는 패턴이네."
그럼 하얀색 마력이 튀어나올 거고, 설화님은 그 원인을 생각하면서 방금까지 적이라고 생각한 것이 나라는 것을 깨달을 거다.
"아, 이리 좀 와요!"
내가 다가갈 때마다 기겁하면서 도망치는 설화님의 모습이 가관이었다.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나?
"설화님, 정신 차려요."
내가 손을 붙잡는 것에 성공하자, 설화님이 금방 정신을 차렸다.
마지막까지 패턴이 퍼즐 같은 느낌이네.
"아, 진짜 무서웠어요...."
"푸흡...."
물론 나는 당한 쪽이 아니라서 웃을 수 있는 거겠지만, 잔뜩 놀란 설화님의 모습이 귀여워서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내가 당했으면 설화님을 마법으로 퇴치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호오, 그런 방법으로 피할 줄이야. 역시 한쪽은 처리해야겠는데....」
「오빠, 그만두고 반지를 돌려줘!」
「음, 너무 반항적인 태도는 좋지 않아. 조금 교육이 필요하겠는걸?」
손을 놓고 싸우자니, 하늘색 마력으로는 영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을 잡고 싸워도 설화님의 마법 운용으로는 영....
"역시 무리인가?"
- ㅠㅠㅠㅠㅠ
- 설화 때문에 지네
- 이걸 지네
- 설또발
- 설또발은 또 뭔데
- 설화 또 발목잡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던 도중에, 확실히 설화님의 마법이 게임 초기보다는 좋아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도 어렵다는 건, 이 루트 자체의 난이도가 높은 거야.'
즉, 내가 하얀색 마력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면 가능성이 없다.
하긴, 여기에 오려면 바이올렛을 이기고 랭킹 1위가 되어야 하니까 어렵게 책정되어 있겠지.
"설화님, 혹시 하얀색 마력의 권한을 넘겨줄 수 있어요?"
"...네?"
하얀색 마력은 결국 시스템 엔진의 설정, 다른 말로는 게임의 규칙을 부수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는 마력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하얀색 마력을 사용하는 주체도 게임의 설정이란말이지?
"어렵지 않아요. 애초에 하얀색 마력은 그런 것들을 하라고 만들어진 물건이니까요."
"으, 으음...."
설화님이 전부 해줄 필요는 없다.
일단 설화님이 조금씩 나에게 하얀색 마력의 권한을 주기만 하면....
"오케이. 계속 유지해 주세요."
그렇게 받은 마력을 이용해서 나도 권한을 바꾸는 방향의 마법을 사용한다.
그럼 어렵지 않게 나에게 하얀색 마력의 통제권이 넘어온다.
'아니, 넘어오는 것보다는 서로의 권한을 바꾸는 방향이 효율이 높네.'
설화님이 마력 스펙트럼의 시야를, 내가 하얀색 마력을 사용할 권한을 가지는 것이다.
"오케이. 충분하겠는데."
"어, 보인다! 이쪽이에요!"
설화님의 리드를 따라 공격을 피하면서, 나는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얀색 마력이 있다면, 그 하얀색 마력을 물리치기 쉬운 마력도 있을 거야.'
다만 적이 그런 마력의 존재와, 하얀색 마력에 마력의 색을 변환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아야 했다.
"뭐, 그렇게 빡빡한 게임은 아니겠지."
내가 그렇게 처음 사용하는 마력으로 변환하자, 설화님이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투, 투명한 색?"
"...그런 색이 있어요?"
아마 맑은 물처럼 아지랑이 같은 마력이 흐른다는 뜻이겠지만, 나는 보이는 상황이 아니라서 모르겠다.
"일단 쏩니다!"
그리고 그대로 마력을 무시하고 꿰뚫는 창을 떠올린다.
가속하고 또 가속해서 라이즈의 심장을 순식간에 터트릴 수 있는 창.
"흡...!"
그렇게 내 공격이 닿는 순간, 다시 컷씬으로 전환되었다.
아마 방금은 성공적으로 데미지를 입힌 것 같은데?
혹시 다음 페이즈가 있나?
「이런, 방심했군.... 애송이들이 아니었어.」
「치료해줄까?」
아인의 말에 라이즈는 비웃으면서 답을 했다.
「아니, 어차피 전부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뭐?」
「어차피 우리는 꼭두각시 같은 존재잖아?」
「무슨 말이지?」
「하얀색 마력은 많은 것을 알게 해주더군. 그만 어설픈 연기는 그만둬라.」
「오빠, 무슨 소리를 하는....」
「축하한다. 그리고 너희들을 저주한다. 이방인들이여.」
그 순간 라이즈로부터 터져 나온 하얀색 빛으로부터 주변이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회로가 깨져나가는 것처럼 배경이 깨지는 장면은 소름 돋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 ?????
- 이건 또 뭐야
- 버그인가
- 설마 연출인가?
- 간지ㅗㅜㅑ
- 그냥 평범한 악역인 줄 알았는데
- 뭐야ㄷㄷㄷㄷ
나도 지금일어나는 상황에 많이 당황한 상태였다.
다만 그것이 실제 상황이 아니라 게임의 연출이라는 걸 깨달은 것은 엔딩 직후에 떠오른 수집 메시지 덕분이었다.
[엔딩: 깨져나가는 벽(87)]
[첫 번째 엔딩 클리어를 축하드립니다. 클리어한 엔딩에 관한 정보는 엑스트라에서 다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방금 뭐야?"
"어안이 벙벙하네요."
아마 엔딩의 이름과 상황을 볼 때, 제작진이 만들어둔 제4의 벽을 깨버리는 엔딩일 것이다.
유일하게 이쪽 루트가 하얀 마력을 타인에게 빼앗기기 때문이려나.
'스토리상 논리 오류가 없는 것이 더 무서워.'
새하얀 마력은 시스템 엔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럼 NPC가 플레이어의 존재와 이곳이 게임이라는 진실을 알게 되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겠지.
"와, 마지막에 소름 돋게 만드네."
"아 놀라라.... 그냥 엔딩이구나."
우리도, 시청자들도 당황한 마음을 추스르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그나저나 87번? 엔딩이 정말 많은 모양이네.
"이거 대체 엔딩이 몇 개에요?"
"100개는 넘는다던데요?"
확실히 오래 플레이하는 사람이 많아질만하다.
나처럼 엔딩 하나만 보는 성격의 사람도 있지만, 모든 엔딩을 다 수집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유저가 만드는 던전도 있다고 했지.'
그런 유저맵 기능까지 있다면, 굉장히 게임을 오래 즐길 수 있게 되니까.
"아, 벌써 시간이 꽤 지났네요. 슬슬 방송 종료할까요?"
"그러죠.... 오늘 꽤 오래 했네요."
"오늘 시청해주신 분들 정말 고생했어요. 어떻게 엔딩을 하나 봤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방송이 길어졌던 만큼, 그냥 큐브 내에서간단히 잡담만 하고 방송을 종료했다.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정산을 시작합니다.]
[방송으로 14시간이 추가됩니다.]
[팔로워 보상으로 95시간(951명)이 추가됩니다.]
나는 정산되는 정보를 보면서, 굳어있는 몸을 풀었다.
오늘은 꽤 알찼네.
"으, 피곤해. 슬슬 잘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하니, 전화를 건 것은 수증기님이었다.
"뭐야, 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