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9화 〉11장 - 로스트 메모리즈(2) (59/182)



〈 59화 〉11장 - 로스트 메모리즈(2)
두근, 두근.
심장소리가 들린다.
분명 자연스러운 감각이지만, 지금은 무엇보다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신경 쓰일 만큼 강해진 심장 소리의 파동은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저릿한 고통을 주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아찔한 감각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제대로 초점이 잡히지 않는 시야로, 눈앞의 글자를 어떻게든 읽어 내려갔다.

"아, 리아."

담담하게 읽어 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잘 열리지 않는 입으로, 세 개의 글자를 다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에게 그날의 사건은 아직도 온전히 극복하지 못한 물건이었다.

- 방장님 ㄱㅊ?
무리면 쉬고 오자
- 겜 끄자
- 에반데...
- 로메는 역시 트라우마가 문제네
- PTSD유발게임임 진짜
- 아리아가 나올 줄은 몰랐다.
 니들만 아는 이야기함
- ??

"별거 아닙니다. 심플월드의 NPC에요."

어떻게든 말을 내뱉었지만, 실제로는 충격이 컸다.
심플월드에서 아리아를 죽게 했던 사건은 가볍게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것이었으니까.

'...단순한 NPC라.'

내가 한 말이지만 어설픈 이야기였다.
심플월드의 AI는 단순한 NPC라고 부르기 어려운 존재다.
실제로 살아가고, 유저와 마찬가지로 사고하는 존재니까.
나는 그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아직도 아리아라는 이름 하나에 마음을 쓰는 거겠지.

"제가 눈앞에서 구하지 못했던 NPC, 아니지 사람이에요."

내가 약해서, 그리고 계획이 어설퍼서 구하지 못했던 아이.
물론 그녀의 죽음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쯤은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구해내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니까.'

눈앞에서 누군가가 죽었다는 건, 생각보다 나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방송과 관련된 사건들 이외에는 굉장히 평탄한 삶을 살아왔으니까.
그나마 나의 인생에서 비슷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연씨의 죽음 정도였으려나.

- 왜 심플월드를 안하나 했더니
- 아ㅜㅜ
- 근데 심플월드에서 자주 있는 사건임
- 심플월드에서 NPC랑 결혼하는 사람도 있고
- 너무 사람이랑 똑같으니까
- ㄹㅇ너무 사람 같음

나는 몰려오는 구토감을 참아가면서 계속 텍스트를 읽고 있었다.
캐릭터의 이름이 아리아라면, 그런 이름이 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운명의 검은실: 검은색 실 형태의 공격. 대상을 묶거나 벤다.]
[최종 선고: 운명의 검은실에 닿은 대상은 회복 불가.]
[붉게 물드는 실: 운명의 검은실이 매우 튼튼해진다. 유지 시간에 비례하여 쿨타임이 늘어난다. 궁극기 게이지기 100%라면, 쿨타임이 10초로 고정된다.(지속:1~10초, 쿨타임:10~100초)]

"...회복 불가라."

트라우마를 가지고 가서 저런 스킬을 만들다니.
확실히 악랄한 게임이었다.
오히려 이런 게임이 어떻게 그렇게 인기를 끈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다가 나는 마지막에 적혀 있는 내용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 게임은 트라우마만 재현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구나.

[아리아의 기도(궁극기): 현재 사망한 아군을 되살린다. 시전자 본인이 사망할 경우, 살아난 아군도 함께 사망한다.]

- 부활기ㄷㄷ
- 서포터네?
나쁘지 않은데
- 궁극기 안써도 좋네
- 조커픽으로 좋아보임
- 부활ㄷㄷ

"부활이라. 꽤 맘에 드는 궁극기네요."

궁극기가 이런 형태를 한 이유는 내가 아리아를 구하고 싶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어찌 되었든 궁극기 만큼은 마음에 드네.

"일단 게임 할게요. 하, 아리아라...."

캐릭터의 디자인은 그렇게 아리아와 닮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연씨를 닮은 느낌이네.
하긴, 꼭 하나의 트라우마만 캐릭터에 들어간다고 하지는 않았구나.

'일단 게임부터 진행하자.'

방금까지 너무 정신을 놓고 있느라 방송 진행이 멈춰 있었으니까.
그나마 이렇게 멘탈을 잡을 수 있는 건, 힘들면 쉬라고 하는 시청자들 덕분이었다.

"와, 오늘따라 힐러가 많네."

['시련발아'님이 2,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아니 형 무리하지마. 뭐라 안할게.

"시련발아님 2천원 감사합니다. 아니 괜찮아요. 솔직히 지난 일이기도 하고, 결국 이겨내지 못하면 제자리니까요."

아리아와 아연씨에 관련된 기억은 라스트 발렌타인의 플레이에서 내가 폭주한 원인이기도 했다.
결국 내가 이겨내지 못하면 그런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막 아리아 목소리가 나와서 절 괴롭히는 악몽도 아니잖아요. 그냥 게임인데 뭐."

- ㅠㅠㅠ
표정은 아닌데;
- 안쓰럽다 진짜
- 트라우마 게임이라
- 웃으면서 말하기는 힘들지
캐릭터  궁금하긴 

내가 게임을 시작하자 튜토리얼로 넘어갔다.
아마도 내 캐릭터를 사용하는 방법을 연습하라는 것 같은데?

"어, 몸 바뀌었다. 스킬이 이거구나?"

몇몇 게임의 스킬들은 마법과는 조금 다른 컨트롤 방식을 채용한다.
마법처럼 그냥 생각하면 발동하는 것도 있지만, 좀 복잡한 기술의 경우에는 기술이 자신의 몸 일부로 느껴지는 형태를 띤다.
그래서 그런지 약간 등 쪽에서 처음 겪는 감각이 느껴졌다.

'이게 아까 스킬에서 봤던 실이겠지?'

그런데 예상보다 더 컨트롤 하기가 어렵게 느껴졌다.

"처음 효과를 들었을 때는 손에서 실을 뿜을  알았는데."

물론 등을 통해서 뽑은 실을 손을 사용해 자세한 조작을 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래도 나중에는 바로 등에서 조작을 하는 것이 효율적일 터였다.

"연습이 좀 필요하겠네요."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고 있는데, 일단 이 실을 뿜을 수 있는 최대양은 정해져 있었다.
모두 사용하면 가장 마지막에 뿜은 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 타이밍을 잘 생각하면서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타이밍 말고도 다른 조작 방법이 가능할 것 같아서테스트를 해봤다.

'역시.'

실이 사라지는 우선순위를 바꿀 수 있었다.
특정실은 계속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테니, 이건 꽤 유용한 컨트롤이겠네.
그리고 실을 맵에 묶거나 붙일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고 등에서 당기는 식으로 비행과 유사하게 움직일 수도 있었다.

- 기동력ㅆㅅㅌㅊ
- 일단 기동력 합격
- 이건 운용하는 맛 오지겠네
- 오우ㅋㅋㅋㅋㅋ
- 갓캐릭이네
- 붉은실 켜니까 딜ㄱㅊ네
- 궁 채우면 딜캐랑 dps비슷하네

실은 무언가를묶거나 이동기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공격으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다만 확실히 데미지를 넣으려면 붉게 물드는 실을 발동해야겠네.

"이거 튜토리얼에서 딜량도 계산해주네? 캐릭터 비교하기 편하겠다."

확실히 캐릭터를 연구하기 좋은 식으로 게임을 만들어 놓았다.
가끔 캐릭터들의 성능을 비교하기 어렵게 꽁꽁 숨기는 경우가 많을 걸 생각하면, 굉장히 개방적인 스타일이었다.
이게 로메의 스타일인 거겠지?

"대충 감은 잡았네요. 뭐야 이 게임 스토리모드 있어?"


- ㅖ
- ㅔㅔㅔ
- 네 맞와요
- 있음ㅇ
깨면 캐릭터 무료 교환권 줌
- 아 맞음ㅇㅇ

영전의 시스템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나?
그나저나 이거 스토리모드에 멀티가 있네.

"뭐야 5명과 5명이 싸우는 게임인데, 왜 스토리모드는 2인 플레이지?"

물론 1인 플레이도 가능한  같지만, 오늘은 수증기님과 약속이 있으니까 2인 플레이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지만.

- 아 그거 ㅋㅋㅋㅋ
- 로메 다른 모드도 있음
- 1대1도 있지
- 스토리는  특이하긴 
- 뭔가 액션rpg비슷한느낌

시청자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려는데 영상 후원이 날아왔다.

['얀별리고'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큐브온 영상)

「로스트 메모리즈는 계속 업데이트되는 스토리모드를 사용하는 rpg모드. 그리고 대전 격투 게임에 가까운 대전모드부터....」

영상은 일종의 인터뷰 영상 같았다.
그나저나 대전모드도 있는 게임이었구나?
난 5대5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  개를 합쳐서 만든 배틀모드가 있죠. 로메의 가장 중요한 컨텐츠인 배틀모드는 5대5로 진행되는 게임이면서, 스토리모드에서 경험했던 맵의 특성이 담긴 미션으로 경쟁하는 모드입니다.」

"뭔 소리인지 잘 모르겠는데."

대충은 알겠는데, 확실하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에는 정보가 좀 부족했다.

- 일단 게임 해보면 암
- 스토리ㄱ?
- 1인 플레이ㄱㄱ
- 생각해보면 싱글 플레이는 얀별님이 잘하지
- 가즈아
 로메다

수증기님과 같이 게임을 하기로 했다는 설명을 하려는데, 곧바로 수증기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하얀별님, 우리 이 게임 하지 않는  어때요?"
"네?"

수증기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아직 방송을 끄지 않은 걸 봐서, 엄청 심한 상태는 아닌 모양인데.

"괜찮으세요? 무슨 일 있으셨나요?"
"흐, 캐릭터가  멘탈에 안 좋아서요. 심지어 저희가 나가는 대회는 구매한 캐릭터로는 참가할  없거든요. 지금 생성한 캐릭터로 해야 하는데...."

- ?
뭐야방장님 대회나가요?
- ㅁㅇㅁㅇ
- 뭔가 스포당한 느낌인데
- ㅋㅋㅋㅋㅋㅋㅋ
- 이걸 숨겼네
- 아ㅋㅋ

수증기님도 캐릭터 때문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솔직히 이해가  수밖에없다.
 게임은 트라우마를 사용하는 게임이니까.

"힘들면 그만두셔도 괜찮아요. 저는 일단 게임 해보게요."
"...하얀별님은 괜찮아요?"
"그건 아닌데...  어떻게든 참아 보려고요. 스토리모드가 있으니까 거기까지만?"

수증기님은 내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알겠다고 답했다.

"그나저나 이거 스토리모드가 여러 개인가요?"

- 메인스토리가 있음
- 메인스토리랑 맵별 스토리
- 별로 길진않아서
그냥 흔한 스토리라
- 게임에 익숙해지는데 좋아서 하는거임
- ㄹㅇㅋㅋ

"일단 연결할게요. 여러분 오늘은 수증기님과 함께 로메 메인스토리를 진행해볼게요."

큐브 계정을 통해 파티를 만들고, 스토리모드의 메인스토리를 선택했다.
스토리모드가 켜지자 약간 어두운 배경이 나타났다.

"수증기님?"
"아, 네. 하얀별님. 여기에요."

수증기님의 캐릭터는 수증기님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었다.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 주현이랑 닮았는데?
- 그러네ㄷㄷ
캐릭터 이름이 검신인거 아님?
- 진짜네 검신임 스토어에 올라옴
- ??
- 이게 왜 진짜임

아, 확실히 큐브온에서  검신 강주현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수증기님이 캐릭터 때문에 당황했구나.
그런데 검신이 수증기님의 트라우마가 될 정도였다고?
대체 얼마나 친한 사이였길래?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이 주변에 전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등으로 주위가 밝아진 이후에야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렸다.

"감옥? 와, 정석적이네."
"...음?"

[메인 시나리오 1: 감옥을 탈출하시오.]

정말로 심플하게 시작하는구나.
뭔가 컷씬이라도 나오면서 설명해줄 줄 알았는데.

솔직히 메인스토리가 가장 노잼임
- ㅋㅋㅋㅋㅋㅋㄹㅇ
- 맵 스토리는  재밌는데
- 진짜 구식임 스토리
그래도 스토리 자유도는 높더라
- 그건ㅇㅈ
- 그런가? 자유도 별로던데

"스토리 자유도가 높아요?"

확실히 그건 장점이다.
다만 평가가 갈리는 걸 보면, 사람마다 느끼는 체감은 다른 모양이었다.
그리고 평가 자체가 별로 좋지 않았다.
하긴 스토리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거겠지.

'그나저나 방탈출도 아니고, 갑자기 감옥을 나가라니.'

솔직히 좀 당황스러운 전개였다.

"이거 그냥 부수면 되는 거 아닌가요?"

포카님이나 할법한 말이라고 태클을 걸려고 했는데, 수증님이 검을 꺼내 들더니 쇠창살을 향해 내려쳤다.
파강!
수증기님의 검과 쇠창살이 부딪치는 순간 엄청난 굉음이 들리더니, 시야를 가릴 정도로 강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깜짝 놀라서 순간적으로 눈을 꾹 감았다.

"...어, 어라?"

수증기님과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수증기님의 앞에 있던 모든 것이 원형을 알아보기어려울 정도로 박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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