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13장 - 대부분은 실력입니다(2)
"최근 큐브온 채널이 잘 되는 건, 전부 주현씨 덕분이겠죠. 고마워요."
"글쎄요. 저도 스트리머를 했었지만, 그건 하얀별님이 방송이 재밌어서 그렇죠."
"......."
간단하게 큐브온 이야기를 꺼내며 대화를 시작했지만, 본론을 꺼내기가 조금 어려웠다.
물론 오늘 그 본론을 물어보기 위해서 온 것은 맞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꽤 민감해 보이는 주제라서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아직 많이 친해진 사이가 아니기도 했고.
아, 모르겠다.
"솔직히 궁금했어요. 왜 잠적하신 건지."
"잠적이라.... 사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말이죠."
"네?"
"일이 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사고를 당했고, 그 뒤로는 방송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어렵더라고요. 방송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무섭다라.
무슨 의미에서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쥐고 있는 왼손의 주먹이 새하얗게 질리는 것을 보고 그가 진심이라는 것만은 납득했다.
"너무 무책임한 말이겠지만, 다시 시작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하얀별님이라면 가능하겠어요?"
"네?"
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계속 큐브 게임 스트리머였던 사람이, 큐브 게임을 사실상 하지 못하는 몸으로 방송에 돌아갈 수 있겠어요?"
"큐브 게임을 하지 못한다고요?"
나는 돌아갈 수 있다고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방송의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자기 자신이 견딜 수가 없을 수도 있다.
기존에 자신이 하던 방송을 다시는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해야죠. 그런 나라도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도망치면 안 된다는 걸, 이제는 배워서 알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입을 열 수 있었다.
"그렇네요. 이런 저라도 기다려 주는 사람이 많았죠. 제가 연약해서 포기한 거였네요."
"아뇨. 충분히 어렵게 느껴지실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씁쓸하게 웃는 것을 보며, 나는 참지 못하고 다음질문을 꺼내 들었다.
"주현씨가 방송을 그만둔 이유는 알겠어요. 그럼 대체 왜 크루원들에게도 말없이 잠적했던 거죠?"
"미안해서 볼 낯이 없었어요. 제 독단 때문에 실패했으니까. 뭐, 다 핑계고 제가 너무 약했죠. 다시 일어나는 것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어요."
미안해? 실패?
대체 뭘 실패했다는 거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문스러운 표정을 그를 바라보고 있었더니, 그가 한숨을 쉬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하얀별님, 혹시 리트라이라는 이름의 게임을 아시나요?"
그리고 그의 이야기에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여기서 리트라이가 나온다고?
리트라이가 주현씨랑도 관계가 있는 거야?
나는 놀란 감정을 최대한 숨기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일단 리트라이가 자세히 뭔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아는 척을 할 수는 없었다.
"...잘은 모르겠는데요."
"하긴, 그렇겠죠. 잊어주세요."
그 뒤로 몇 번 그를 떠봤지만, 리트라이에 관한 이야기는 더 하지 않았다.
그나마 리트라이가 게임의 일종이라는 걸 알아낸 것은 큰 수확이긴 한데....
'시스템에서 보상으로 주는 것이 게임의 입장권이라. 뭔가 의심스럽긴 하네.'
"여전히 크루원 분들이랑 만나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제가 잠적한 초창기에 하던 일이 있어요. 한 번은 실패했지만.... 다시 뭐라도 해보려고 방법을 찾고는 있죠. 그 실마리를 잡으면, 그때라면...."
"혹시, 그 일이라는 게 리트라이라는 게임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햐얀별님, 꽤 끈질기시네요."
"제가 궁금한 건 좀 못 참아서요."
빙고, 관련이 있구나.
리트라이라는 게임이 주현씨의 잠적과 중요한 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심플월드의 미션을 빨리 깨야 할 이유가 생겼네.'
물론, 내가 억지로 주현씨를 구 아발론 크루의 멤버들과 만나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주현씨의 의지가 아니라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니까, 함부로 그렇게 강요하긴 어렵다.
"그럼 조금은 알려드릴게요."
"어, 정말요?"
그렇게 말한 그는 잠깐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마도 나에게 말해줄 내용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방파제. 그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과는 꽤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게 게임이랑 무슨 상관이죠? 전혀 모르겠어요."
"자세하게 이야기하긴 좀 그렇네요. 언젠간, 기회가 된다면 자세하게 설명해 드릴게요. 하얀별님은 일단 눈앞의 대회에 집중하셔야죠."
"하아, 궁금증을 해결하러 왔는데. 궁금증이 오히려 늘었네요."
"죄송해요. 그리고 준결승 영상의 편집은 금방 업로드 가능할 것 같아요. 대충 편집점이 잡혔거든요."
"오늘 경기인데 벌써 시작하셨어요?."
"요즘은 대회 방송 시청이랑 편집에만 집중하고 있으니까요."
내가 해야 했으면 대회가 끝나고 나서야 느릿느릿 업로드되었을 텐데.
심지어 편집점까지 직접 잡아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이게 제 일인데요."
"과연 그럴까요? 이렇게 잘해주시는 편집자가 세상에 얼마나 더 있겠어요."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돈에 여유가 생기면 무조건 드리는 금액을 늘려야겠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고요. 아, 그리고...."
"네?"
"조금 이상한 애를 보더라도, 너무 미워하진 마세요. 착한 애일 가능성도 있잖아요?"
"어, 네?"
주현씨는 마지막에 꽤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솔직히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결승전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렇게 소득이 있으면서도, 별 소득이 없는 것 같은 만남이 끝이 났다.
☆ ☆ ☆ ☆ ☆ ☆ ☆
"오늘 잘해보죠. 준결승 영상 보니까 실력이 장난 아니시던데요?"
포카님이 그렇게 말하면서, 상대방 팀의 팀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만 그 팀장은 그 인사에 답하지 않고 조용히 무시하고는 게임 대기실에서 사라졌다.
- 싸가지ㄷㄷ
- 이쁘니까 용서가능
- 교주님 좀 닮은듯
- 숨겨 놓은 여동생 막 그런거 아님? ㅋㅋ
- 생방은 안한다더라
- ㄹㅇ큐리에이터네
"흐음, 처음 보는 사람인데. 날 싫어하나?"
"그건 모르겠고, 하얀별님이랑 좀 닮긴 했네요."
"네? 그래요?"
전혀 그렇다는 생각은 못 했는데.
물론 상대편 팀장이 은발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런 정도야?
"비쥬얼만 보면 약간 미니 햐얀별 느낌이 있지."
"설화가 있었으면 쿨로리 드립쳤을텐데."
"자연스럽게 네가 친 거 같은데."
"오늘따라 수증이 예리하네. 너 누구야. 수증기 아니지."
상대 팀 리더의 이름은 시리엘, 방송을 시작한 것 자체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것 같았다.
심지어 생방송은 준결승까지 켜지 않고 진행하다가, 오늘 처음으로 큐브온 라이브로 켰다고 했다.
생방송을 선호하지 않는 타입인가?
'하긴, 이건 큐리에이터라면 누구든 참가 가능한 대회니까.'
꼭 생방송을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말죠. 이길 계획이나 생각해봅시다."
서로 좋게 기억이 남아서 관계가 이어진다면 좋지만, 그게 아니라면 깔끔하게 대회의 상대로 남는 것도 괜찮다.
너무 신경을 쓸 필요는 없지.
"상대팀 전략을 모르니까 걱정이네."
"으음, 하긴 우리만 너무 정보가 부족하긴 하네요."
우리는 지난 준결승에서 꽤 패를 드러낸 것과 다르게, 상대팀은 너무 간단하게 올라와서 밝혀진 부분이 너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능력이 전부 공개된 상태로 진행되는 대회라는 거지.'
자신의 캐릭터 말고는 사용할 수 없는 대회 설정상, 마음대로 팀의 구성을 변경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미 우리가 작전을 계획할 때는 미리 상대 캐릭터들의 능력과 궁극기들을 고려해 두긴 했다.
[진행되는 시나리오: 에이트리아의 절망]
"에이트리아네요. 괜찮으려나."
[미션: 적이 모두 사망할 때까지 생존하라.]
미션만 보면 굉장히 심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맵들과는 차이가 많이 느껴지는 맵이었다.
말 그대로 먼저 전멸하는 쪽이 패배하는 것은맞는데, 각 팀의 플레이 공간이 나뉘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무조건 맵만 주구장창 파야하는 시나리오지.'
맵에 있는 장치들에 상호작용을 하면 진행률이 오르고, 진행률이 오를 때마다 상대 진영에 함정이나 공격이 추가되는 식이다.
상대 진영에서 만들어낸 함정과 공격을 피해가면서 우리 쪽 진행률을 빨리 올리면 승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진행률이 100퍼센트가 되면 상대쪽에 전멸기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오케이. 이런 패턴이면 차근차근 벽타고 장치 해결하면 되는 거 알지?"
어차피 형평성을 위해 양쪽의 디자인이 같은 것으로 이루어지게 되어있다.
그럼 최대한 속도가 빠르면서 아무도 죽지 않는 쪽으로 하는 팀이 이길 수밖에 없다.
"퍼센트 올라가는 속도 좋네. 이런 느낌이면 우리가 이기겠는데?"
- ㅋㅋ그 발언
- 이걸 플래그를 세운다고?
- 근데 진짜로 유리한 것 같은데?
- ?
- 너무 잘되는데
- 심지어 한 명 죽었네
- ㄹㅇㅋㅋ
이제까지 항상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상대 팀이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퍼센트 증가가 느렸다.
"오케이 상대 4명 남았네."
순조롭게 우리 팀이 승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이어지자, 포카님이 의문을 토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 에이트리아 치고, 위험한 장치나 함정이 너무 적어요. 적 팀의 진행률이 낮긴 하지만, 이 정도면 일부러 함정은 활성화하지 않는 것처럼..."
어지간한 실력 이상이 되면 함정이나 공격으로 전멸시키는 것은 어려워져서, 최대한 빨리 장치를 모두 활성화하는 것이 에이트리아의 기본적인 공략이다.
그리고 장치를 활성화했다면, 대부분 장치에는 능력이 있어서 우리 쪽에 함정이나 공격이 날아들게 된다.
그런데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상대팀의 함정으로 느껴지는 장치의 발동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최대한 속도를 높여보죠. 뭔가 이상해요. 분명 다른 노림수가 있는 것 같은데...."
그리고 아무리 노림수가 있더래도, 게임을 클리어하면 승리할 수 있다.
상대의 패를 모를 때는 이렇게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확실히 함정이 적어서 활동은 쉽네요. 루냐님 거기 왼쪽 하나 남았어요!"
수증기님과 포카님이 궁극기를 써가면서 빠른 속도로 장치를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장치를 찾아내면 100프로인데....
[장치 활성화 98%]
상대팀은 이제야 50프로에 근접한 것을 생각하면 아주 여유로운 수치였다.
하지만 역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속도를 냈다.
"오케이 하나 찾았고."
남은 장치는 단 하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실을 뽑으려는 순간 주변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함정? 이런 형태도 있었나?
[장치가 히든 코드를 확인합니다.]
[변경된 시나리오: 에이트리아의 갈망]
"이건 또 뭐야?"
로메를 해보면서 처음 보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에이트리아에 이런 기능도 있었어?
- ???
- ㅁㅊ
- 이런게 있었어?
- ㄹㅇ첨봄
- 아니 이거 뭔데
- 버그임?
- 뭐가 어떻게 되는거임
"다들 피해!"
시나리오가 변경되었다는 메시지가 나오자마자, 우리가 채우고 있던 진행률 표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 미친 듯이 함정과 공격이 쏟아져 나왔다.
[미션: 적이 모두 사망할 때까지 생존하라.]
'일단 미션은 동일해. 하지만 장치 퍼센트를 올려서 클리어하는 방식은 아니야. 그럼 뭐가 승리 조건이지?'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장치의 발동이라 보기엔 너무 강력한 공격이 눈앞에 쏟아졌다.
"흡!"
급하게 실을 사용해서 막긴 했지만, HP에 꽤 영향이 있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주변을 살폈더니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이걸 막으시네. 상대를 잘못 고른 느낌이 약간 있네요."
그리고 그건 딱 봐도 상대 팀 중 한 명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