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13장 - 대부분은 실력입니다(5)
'포카님이 밀릴지도 모른다고?'
마법만 보면 1대1로 포카님을 이길만한사람은 이제까지 없었다.
당장 로메가 마법이 전부인 게임이었다면, 포카님은 검신과 같은 취급을 받았을 테니까.
'그런데 순수하게 마법으로 포카님에게 저런 소리를 듣다니.'
- 두 번째 마왕?
- 존나쌘데
- 아니ㅋㅋㅋㅋㅋ
- 프로 대회에서도 못보는 장면ㄷㄷ
- 언제부터 여기가 마계였냐고
- 마왕 쟁탈전ㅋㅋㅋㅋ
- 마계전ㄷㄷㄷㄷ
포카님이 공격을 멈추고, 날아오는 마법들을 막아내며 몸을 추슬렀다.
"드디어 제대로 붙으시려는 것 같은데."
물론 방금까지도 제대로 힘을 준 싸움이었지만, 가지고 있는 카드를 다 사용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지금 상대는 없고, 포카님에게만 있는 게 있다.
"하지만 말이야. 우리는 지금 로메를 하는 거지, 마법으로 승패를 겨루는 것이 아니거든."
포카님이 거기까지 말하자, 마력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포카님의 캐릭터인 쿠파의 궁극기 '마력 해방'이다.
"이상한데."
하지만 그런 간단한 것을 상대가 몰랐을 리가 없다.
스트리머로써 자신이 마왕급 마법 사용자라고 알리기 위해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
그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데?
"흡!"
포카님의 뒤에서 수많은마법이 휘몰아치더니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게 포카님이 쓰는 궁극기다.
쿠파의 '마력해방'은 '지속시간 동안 마력량이 미친 듯이 늘어난다.'라는 아주 심플한 효과라서, 이런 상황을 연출하기 쉬운 편이었다.
"이걸 어떻게 막아."
여러 명이 대응하는 것이 아닌 이상, 저걸 혼자서 막아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상대에게 궁극기가 있으면 모를까.
"말했잖아요. 생각만큼이라고."
하지만 상대는무표정하게 그 마법들을 바라보다가, 머리위로 손을 들고는 작게 손가락을 튕겼다.
'트리거?'
마법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믿는 힘이고, 그러다 보니 그 생각의 안정성을 위해 발동 트리거를 암시해놓곤 한다.
기합이나 키워드인 경우도 있지만, 저렇게 특정 손짓인 경우도 있다.
나도 처음엔 저런 트리거에 의존을 많이 했지.
"뭐?"
그리고 그 손가락을 튕기는 것과 동시에, 아주 잠깐 궁극기의 이펙트가 나타났다.
오버라이팅으로 궁극기 게이지를 일부 사용했다는 의미다.
지금 상황에선 지극히 정상적인 대응이지만, 그 뒤에 나타난 현상이 비현실적이었다.
하늘을 수놓고 있던 포카님의 마법들과 비슷하게, 그녀또한 비슷한 수준의 마법들이 우르르 나타났으니까.
- ???
- ㅗㅜㅑ
- 이걸 이렇게 하네
- 이론상으론 가능한데
- ㅋㅋㅋㅋㅋㅋㅋ
- 아무튼 가능함ㅋㅋㅋ
- 대체 뭐임 저게
- 이거 로메 아니지?
"저 짧은 시간 동안에, 저 분량을 단번에 뽑는다고?"
솔직히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사람이 저런 수준의 사고를 할 수 있다고?
물론 이론상으론오버라이팅을 하는 순간만큼은 마력량이 늘어나니 할 수 있겠지만....
"마력을 다루는 방법이 너무 구식이네요. 뭐, 당연하겠지만."
그렇게 말한 그녀가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이번에 일어난 일은 아까 일어났던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었다.
"...미친?"
포카님이 만든 마법들의 움직임이 일순간에 멈췄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는지 포카님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 ????
- 어캐했냐고
- 버그임?
- ??아니 뭐 핵도 아니고 뭐야
- 저런게 가능해?
- ??????
- 뭐야시발돌려줘요
- 엥??
그리고 포카님이 만든 마법을 포함해서, 하늘을 수놓고 있던 수많은 마법이 그대로 포카님에게 날아들었다.
최대한 포카님은 마법을 사용해 막으려고 했지만, 도를 넘은 마법의 화력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했다.
['포카버터칩'이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눈치챘을 때는 내가 필드에 소환되고 있었다.
"맞다, 다음 차례가 나였지."
너무 구경에 집중해서 잊고 있었다.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포카님도 졌는데 내가 저 괴물을 어떻게 이겨.
"이번에는 별이, 아니 하얀별님이시네요."
"아, 네."
의외로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이제까진 한마디도 안 걸었던 것 같은데.
'잠시만, 저거 뭐야?'
이제까지는 워낙 싸움에 집중하느라 눈치채지 못했는데, 상대의 머리 위에 이름이 표시되고 있었다.
'이지아?'
당연하게도 게임 닉네임은 아니었다.
그녀의 게임 닉네임은 큐브온 활동명과 같은 시리엘이었으니까.
'상담 에프터 서비스지?'
내가 상담을 진행했던 사람의 생각이 이름의 색으로 나타나는 특성이었다.
그런데 내가 시리엘님의 상담을 진행해준 적이 있었나?
'애초에 이 특성에 등록되면 메시지가 떴었는데?'
버근가?
아니, 특성에도 버그가 있나?
"대체 뭔...."
"후, 빨리끝낼게요. 저항하지 마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자마자 대놓고 마법을 만들어서 나를 공격하려고 했다.
'노란색?'
그런데 잠깐이지만 거짓말을 뜻하는 색으로 이름이 물들었다.
저 공격이 페이크라고?
"어?"
그리고 정말로 방금 그 마법은 눈가림용이었다.
그녀가 진짜로 노린 것은 근접해서 휘두른 검이었으니까.
나는 어떻게든 궁극기 게이지를 써서 공격을 튕겨내는 것에 성공했다.
"저항하지 말아 주세요. 빨리 끝내고 싶으니까."
"아니, 대회인데 어떻게 저항을 안 해요!"
물론 내가 질 건 확실하긴 한데,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잖아.
아니,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거리를 벌리고는 마법을 쏘아내서 날 공격했지만, 대부분이 그리 강력하진 않았다.
이건 아마도 내가 소환되면서 그녀의 궁극기가 풀린 것 때문이겠지.
"흡!"
"아, 씨."
깡!
내가 순식간에 접근해서 검으로 내려치자, 그녀는 어렵지 않게 공격을 막아냈다.
이런 순수 피지컬까지 좋다니, 포카님보다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도 거짓말이야.'
이름의 색을 통해 속임수를 미리 파악할 수 있었던 덕분에, 그럭저럭 대응하면서 버틸 수가 있었다.
"후우...."
남은 궁극기 게이지를 확인하면서 숨을 돌렸다.
그나마 제대로 타격을 주려면 이 방법 말고는 없겠네.
"큭."
일단, 최대한 위력이 약해 보이는 공격에 고의로 맞아주었다.
나는 예상보다 빨리 떨어지는 HP를 보면서, 이를 악물고 궁극기 게이지를 때려 박았다.
'제발, 닿아라.'
내가 그런 애매한 공격에 맞을 거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는지, 그녀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런데 나를 찌른 그녀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왜 저러는 거야?'
고개를 숙이고 뭔가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죽이는 거에 트라우마가 있었나? 하지만 이제까지는 계속 멀쩡했는데?
"아, 맞다."
지금은 거기에 신경을 쓸 상황이 아니었다.
'이 정도로 근접한 상태라면 가능할 거야.'
궁극기 게이지로는 HP가 0이 되지 않도록 순간적인 버팀목을 세운다.
그리고 어차피 찔리면서 사망에 가까워진 몸을 최대한 오버라이팅으로 화력으로 끌어와서 터트린다.
'장거리라면 어렵겠지만, 이 정도 거리라면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거야.'
이런다고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도전해보는 것이었다.
['시리엘'이 서버와의 접속이 끊어졌습니다.]
[경기에서 승리했습니다.]
"...뭐?"
그런데 내 공격이 나가기도 전에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좀처럼 보기드문 메시지가 나타났다.
- ?
- 아니 뭐 이상한 일만 생겨
- 왜 저럼?
- 과몰입?
- 아까까진 잘만 죽이던데
- ㄹㅇ뭐지?
- ???
'뭐야 대체.'
공격에 집중하느라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마지막에는 그녀의 이름이 주황색을 넘어서 검게 물들고 있었다.
'잠시만, 당황을 뜻하는 주황색이야 그렇다 치고 검은색은....'
죽고 싶다.
자살을 마음에 담을 정도로 멘탈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드러나는 색이다.
방금 거기서 그 정도로 멘탈이 나갈만한 상황이 있었나?
"이거 진행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일단 우리가 우승으로 뜨긴 했는데. 이건 좀...."
우리가 지금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황하자,평범님이 오셔서 설명했다.
"아, 괜찮아요. 당연히 저희가 진 겁니다. 대회 규정상으로도 그렇고요."
"그나저나 시리엘님은 괜찮으신가요? 마지막에 상태가 좀 안 좋아 보이셨는데."
"매니저가 휴식을 취하게 한 모양이에요. 몸 상태가 급격하게 안 좋아서 강제 종료했다고 하네요."
"하얀별님 진정해요. 로메에선 종종 있는 일이잖아요."
"....."
로메가 트라우마를 사용하는 게임이라, 종종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고 듣기는 했다.
그래도 이렇게 이기는 것을 원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깔끔하게 지는 편이 마음이 편했을 것 같은데....
'다른 것보다 검은색이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네.'
물론 완전히 검게 변하기 전에 로그아웃되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승팀은 '마왕과 사대천왕'입니다.]
대회는 우리 팀이 우승 보상을 받으면서 대강 마무리되었다.
상대 팀은 그런 식으로 준우승한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자신들의 회식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영 찝찝한 상태로 끝났네...."
"어쩔 수 없죠.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팀원들과 인사를 한 뒤에 게임을 종료했다.
"하, 그래도 대회가 끝나긴 하네요. 당분간 로메는 못 하겠다."
- ㄹㅇㅋㅋ
- 고생하셨어요
- 마지막에 초를 치긴 했지만 재밌었음
- 벌써 별명 붙던데
- 오뱅알
- ㅇㅂㅇㅂㅇ
"별명이요? 누구요?"
그 뒤로 답변을 기다리니, 적팀 팀장이었던 '시리엘'의 별명이라는 답이 올라왔다.
왠지 모르게 예상이 가는 건 기분 탓인가?
"진짜네. 와 마신?"
마왕을 그렇게 쉽게 이겼으니, 마신이라는 별명이라니.
왠지 모르게 그런 별명일 것이라는 예상은 갔었는데.
"솔직히마지막에 좀 무섭긴 했어요. 님들이 포카님을 이긴사람 앞에 서봐. 당장 1대1로 포카님이랑 붙어도 무서운데."
- ㄹㅇㅋㅋ
- 개무섭지
- 마지막에 뭔가 노리시는 것 같았는데
- ㄹㅇ어캐 안쫄지?
- 아ㅋㅋㅋㅋ
- 그 와중에 뭔가 하려고 했던교주님은 대체
- 이게 천마다 희망편
- 암튼 이길거였음ㄹㅇㅋㅋ
"그러게요. 막판에 회심의 일격을 먹이려고 했는데, 뭔가 허무하게 끝났네요."
후원 기능도 다시 열고, 대회에 관한 이야기로 시청자들과 대화를 나누니 좀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역시 나는 방송을 할 때가 제일 마음이 편하다니까.
☆ ☆ ☆ ☆ ☆ ☆ ☆
"정신이 들어?"
"아, 주현 오빠?"
주현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녀석은 분명 괜찮을 거라더니....
"내가 강제로 접속 끊었다. 방송 중인데 어쩌려고 그래."
"하하, 아직도 못 이겨냈을지는 몰랐지."
그녀는 수액이 마르는 감각에 조금씩 정신을 차리면서, 큐브에서 몸을 일으켰다.
"옷이나 입어. 방송이랑 대회는 내가 대충 정리할 테니까, 가서 쉬고."
"응, 고마워."
"영상은 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편집할게. 하얀별님은 아직도 만날 생각 없어?"
"...만나서 어쩔 건데."
"뭐긴, 다 설명해야지."
주현은 진지하게 말했지만, 그녀는 그럴 필요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당장 대회에서 얼굴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흔들렸으니까.
'현실에서 보면, 역시 주체를 못 하겠지.'
"마왕 연락처나 놓고 가. 그쪽이나 만나게."
"포카는 왜?"
"말했잖아, 합방 진행해서 마법 이론 뿌릴 거라고."
"...그래. 내 이야기는 하지 말고."
"진짜, 내로남불 오진다니까. 나한테는 별이 언니 만나러 가라더니."
"하긴 그렇지."
주현은 정곡을 찔린 듯 쓰게 웃었다.
그녀나 주현 본인이나, 과거에 얽매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여튼 매니저? 편집자? 아무튼 그런 게 있으니까 좋긴 하네. 속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있는 것도 좋고."
"비슷한 인간끼리 돕고 살아야지. 어쩌겠냐. 그리고 리트라이 말이다."
"어, 그거 왜?"
"하얀별님이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어."
꽤 의외라는 듯, 그녀는 놀라서 반문했다.
"별이 언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 하냐. 본인한테 물어야지. 그리고 영전에서 내가 나타났다는 일도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으음.... 그거 진짜로 주현 오빠 아니었지?"
"애초에 나는 이제 그럴 수 없는 몸 상태잖아. 확실히 내가 봐도 나처럼 싸우긴 하던데...."
주현은 그녀가 깊게 생각해보려는 듯한 표정을 하자, 말을 돌렸다.
"하여튼 최대한 정보를 캐볼게. 넌 이제 뭐 할 거야? 마법 쪽을 포카한테 맡기면 시간이 남잖아."
"심플월드."
"응?"
"그냥 촉이야. 거기도 뭔가 있는 것 같거든. 주현 오빠도 거기랑 리트라이가 많이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했잖아."
"그랬지.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
주현과 대화를 마친 그녀가 침대로 가자마자 힘없이 누웠다.
그리고는 잠시 천장을 바라보다가, 기도하듯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반드시."
그녀는 돌아와서 몇 번이고 되뇌었던 말을, 맹세하듯 다시 내뱉었다.
"별이 언니를 지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