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14장 - 저, 아이돌이 됩니다(5)
"이게 뭐 하자는 상황이지? 방금 선택지 잘못 골랐으면 죽는 거죠?"
- 그런듯?
- ㄷㄷㄷ 암살시도
- 저거로 죽었으면 개억울하겠네
- 와 진짜ㅋㅋㅋㅋ
- 이게 게임이냐?
- 화분맞아서 죽는 엔딩ㅋㅋ
- 어이가 없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뜬금없잖아.
여기서 갑자기 선택지로 데드엔딩을걸어버려?
'심지어 되게 평범해 보이는 선택지였어.'
일부러 수집할 엔딩의 수를 늘리려고 만든 엔딩인가?
확실히 그런 식으로 엔딩 개수를 늘리는 스토리 게임도 있긴 한데....
'제발 그건 아니었으면 좋겠다.'
겨우 그런 이유로 이런 선택지를 만들어 놓는다니.
정말 그런 거라면 로메 스토리보다 더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뭐, 뭐야?」
「괜찮아?」
주인공도 많이 당황했는지 살짝 주저앉은 채로 떨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소희가 너무 차분해 보였다.
'설마?'
소희는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알고 있었던 건가?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반응이 없을 수가 없는데?
[사, 사고인가? 빨리 숙소로 돌아가자.]
[경찰에 신고....]
"아, 여기서 선택지가 또 나오네."
여기서 선택지를 잘못 고르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다.
가능하면 배드엔딩은 보지 않고 싶은데.
- 신고하는게 정상 아닌가?
- 어 음
- 그렇긴한데
- 소희가 너무 수상한데
- 돌아가면 소희랑 같이 가는 거잖아
- 신고가 맞는듯
"그쵸? 역시 여기서는 신고를 하는 게...."
잠시만.
만약 소희가 범인이라고 치자.
그럼 신고를 한다고 하면 소희가 가만히 있을까?
'반대로 그냥 돌아가더라도, 위험한 것만 피해내면 살아남을 수 있잖아.'
방금 화분도 선택지를 통해서 회피했다.
그것처럼 내가 선택해서 피할 수 있는 편이 더 안전할 수도 있잖아?
"아뇨. 신고 없이 갈게요. 신고하면 오히려 범인을 자극해서 회피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죽일 것 같아요."
아마 지금은 최대한 범인을 특정하기 어렵게 사고사로 유도할 생각이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그런 방법을 사용할 때 일부러 당해주는 것이 나았다.
"일단 진행하기 전에 위험한 걸 미리 생각해보죠."
사고사로 위장하기 좋은 살인 방법이라.
추락사나 교통사고, 혹은 대형재난에 휘말리는 것 정도네.
'굳이 한 명 죽이겠다고 재난을 일으킬 리가 없으니까, 후보는 교통사고나 추락사인가?'
"트럭에 박혀서 이세계 날아가는 엔딩은 피하고 싶은데."
- 트럭은 ㅇㅈ이지
- 트럭ㅋㅋㅋㅋ
- 환생트럭이냐고
- ㄴㄷㅆ
- ㄹㅇ로드킬각이긴해
- 과연....
아, 몰라.
해보다 보면 감이 잡히겠지.
"이제 시작할게요."
「사, 사고인가?빨리 숙소로 돌아가자.」
「그래, 그러자.」
나는 소희에게 딱 달라붙어서 숙소로 향했다.
이러면 꽤 노리기 힘들지.
"와, 긴장돼서 미치겠네."
문제는 중간부터 컷씬이 꺼졌다는 거다.
여기부터는 직접 조종하라는 의도겠지.
'소희한테 집중하자.'
높은 확률로 소희가 범인이니까, 그럼 위험하기 직전에 소희한테 반응이 있겠지.
"어?"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순간, 갑자기 소희가 뛰기 시작했다.
아직 손을 놓치지 않았으니까 그대로 따라가면....
'아니지. 그건 소희가 이미 예측했을 거야.'
주인공의 성격상, 그렇게 당긴다고놓아줄 리가 없으니까.
그럼 따라가는 편이 소희의 의도대로니까 더 위험하겠지?
"손 놓을게요. 느낌이 안 좋아."
그리고 내가 손을 놓은 직후에 뒤늦게 급브레이크를밟는 트럭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만약 급브레이크도 밟지 않았다면, 지금 소희가 있는 위치를 그대로 치었겠는데?
"뭐야, 방금 따라갔으면 나랑 소희랑 둘 다 치이는데?"
소희가 범인인데, 소희까지 같이 죽인다고?
그건 조금 이상하잖아.
"아오, 답답해.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힐링 리듬게임이었는데.
어쩌다가 장르가 스릴러가 된 거지?
"다행히 무사히 도착했네."
- ㅅㅅ
- 살았다
- 판단 ㅆㅅㅌㅊ
- 이걸 사네
- ㄹㅇ뇌지컬은 좋아
- 피지컬도 좋잖아ㅋㅋ
- 그냥 다 잘하지
그런 일이 있었던 덕에 술자리는 금방 마무리가 되어버렸고, 그대로 일기장 연출로 넘어갔다.
역시 일기장에도 이 사건들이 적히네.
"뭐야 왜 날짜가 안나오.... 꺄악!"
쾅!
그때 굉음과 함께 시야가 밝아졌다.
이런 연출 심장에 안 좋은데.
[6월 5일]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주변을 살펴보는데, 시야가 뿌옇게 느껴지고 매캐한 냄새가 올라왔다.
지금 불난 거야?
"숙소에 불이 난다고?"
- ㅔ?
- 이걸 태워죽이네
- 레전드다 진짜
- 여기 숙소 맞음?
- 숙소 아닌데?
- 갑자기 분위기 탈출
- 와 연기 자욱하네
채팅창을 보고 나서야 여기가 숙소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당황했네, 조금만 진정하자.
"일단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고, 빠져나가지 못하면 그대로 구워지겠는데?"
이세계 엔딩을 피하려고 했더니 이번에는 오븐구이 치킨이 되게 생겼네.
이거 완전히 미친 게임 아니야?
"일단 문은 꿈쩍도 안 하고."
혹시나 해서 창문을 깨봤다.
다행히 여기로는 나갈 수가 있네.
"어우, 조금이나마 환기가 되니까 살겠다."
문제는 창문으로 내려가는 방법이다.
이불이 있긴 한데, 얇은 거라서 길게 연결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이 길이면, 그냥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건 되나?"
단번에 끝까지 내려갈 수 없다면, 아래쪽에 창문이 있는 층으로 들어가면 된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 봤더니 바로 아래층에도 같은 창문이 존재했다.
'그 아래부터는 형태가 바뀌어서 좀 멀리 있네.'
바로 아래층까지는 창문이 위층 창문의 바로 아래 있지만, 다른 층은 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진입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일단 시간제한도 있을 테니까 빨리 움직여야겠네.
"이불을 최대한 묶어서 걸어놓고."
묶어놓은 이불에 의지한 채로 아래층 창문까지 타고 내려간다.
그리고 힘껏 창문을 내리쳐서 깨버리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 ㅗㅜㅑ
- 피지컬 퍼펙트
- 사실 마력 썼죠?
- 아ㅋㅋ 폰마력이나고
- 그거 어캐쓰는건데
- 여기서 마력을 어캐써
"하, 진짜마력 줬으면 좋겠다."
물론 이런 세계관의 게임에서 마력을 줄 리가 없지.
특이한 경우였던 라발렌에서도 히든엔딩의 트리거로만 썼으니까.
"여기는 문 열린다."
제대로 길을 찾은 건지, 아래층에서는 방문이 문제없이 열렸다.
오늘은 뭔가 이런 선택 하나하나가 성공적이네.
"콜록, 어우 연기."
문 안으로 들어가자 연기가 자욱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불도 잔뜩 옮겨붙어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이러면 길이 죄다 불로 길이 막혀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선택지가 하나만 남게 된다.
"그럼 복도 쪽으로 가야겠네."
그래서 어떻게든 복도까지뚫고 왔는데, 여기도 그리 상태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 복도는 더 심하네
- 이거 나갈 수 있음?
- 저쪽이 계단 같은데
- 와 불길 계속 차오르네
- 스토리게임이라며ㅋㅋㅋㅋ
- 난이도 왜이러냐
그러니까 말입니다.
스토리 게임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종합피지컬 게임이었어.
"빨리, 빨리."
불길은 점점 거세졌고,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불에 휘말릴 만한 상황도 자주 발생했다.
그걸 다 참아가면서 계단을 다 내려온 내가 레전드다.
"적당히 좀 해라."
혹시나 해서 발로 차서 문을 열었더니, 내부가 완전히 불로 가득 차 있었다.
평범하게 열었으면 불로 샤워할 뻔했네.
"여기는 아니라는 거지."
다행히 옆에 있던 다른 문은 정상이었다.
오, 이제 조금만 더가면 탈출할 것 같은데?
"콜록, 어우 연기 너무 마셨나? 슬슬 캐릭터 휘청거린다."
거의 출구 근처까지 도달했지만, 몸에서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커흑, 콜록콜록.」
「얀별아!」
시야가 암전되고, 그 직후에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방금 매니저지?"
- ㅔ
- ㅇㅇ
- 매니저였음
- 매니저가 살리나 보네.
- 오....
- 이게 산거였네
- 실력ㄷㄷ
지지직!
"아, 씨. 깜짝이야."
시야를 비롯한 모든 감각까지 페이드아웃한 순간.
이상한 소리와 함께 주변의 광경이 바뀌었다.
"뭐야, 프롤로그네?"
이번에는 영상이 아니라, 실제로 체험하는 형태였다.
그나저나 여기는 또 어디야?
"공장?"
아무리 봐도 폐공장을 연출해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돌이 대체 왜 이런 곳에 있지?
- 분위기 오지네
- 근데 지금 이게 왜 나오지?
- ㄹㅇ 갑자기?
- 정신 잃어서 꿈꾸나
- 아 꿈인가?
- ????
그래 맞아. 이게 왜 여기서 나오는 거냐고.
이걸 꿈의 형태로 보여준다는 건 이해를 했어.
근데 보여주는 타이밍이 이상하잖아.
뭐, 이게 방금까지 목숨을 위협받던 거랑 관련이 있다는 소린가?
"윽!"
그때 눈앞에 있던 주인공이 나를 공격해왔다.
물론 막 마법이나 스킬을 쓰면서 공격한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주변에 있던 철근을 휘두른 것이지만.
"어우야."
철근을 휘두르는 아이돌은 그것대로 그다지 평범하지 않은 것 같긴 한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를 공격하는 주인공의 움직임이 매우 정직하다는 것이었다.
"너무 쉽네."
가볍게 공격들을 피하자, 자연스럽게 컷씬으로 넘어가면서 반격을 하기 시작했다.
"어라, 이걸 죽인다고?"
이긴 건 좋은데, 이걸 아예 죽여버리네.
아무리 꿈이라도 거기까지 가는 건 좀 꺼림직했다.
"하, 그래서 이게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어떻게든 요약한다면, 이 꿈은 내가 나를 죽이는 내용이다.
그래, 그런 내용인 건 이해했다.
근데 이걸 뭐라고 해석을 해야 하냐고.
'방금까지는 목숨을 위협받다가, 꿈에서는 내가 나를 죽인다니.'
진짜 의문스러운 일들 천지였다.
나 오늘 이 의문들 해소 못 하면 잠 못 잔다....
"어, 이제장면 넘어가나 보다."
워낙 갑작스럽게 상황이 종료돼서 그런지, 오늘은 일기장 연출이 나타나지 않았다.
[6월 6일]
「정신이 들어?」
「으윽, 머리야. 어, 매니저 언니?」
눈을 뜨자, 침대로 보이는 곳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매니저가 앉아 있었다.
"역시 매니저가 구해준 거네."
「아, 언니가 구해주신 거죠?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철컹.
"어라?"
철컹. 철컹.
내가 당황한 목소리로 손을 움직여 보지만, 손은 철컹거리는 무언가로 결박되어 있었다.
「자기소개를 다시 할게.」
「네?」
「서울 경찰청 형사 2과 소속 민아라 경장입니다.」
"예?"
- ?
- ????
- 걸그룹 매니저가 사실 잠복한 형사? 뿌슝빠슝
- 진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 근데 주인공은 왜 잡음?
- ㄹㅇ주인공이 죽을 위긴데
- 보호하는건가?
- 그럼 왜 결박하냐고ㅋㅋㅋㅋ
「당신은 하얀별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긴급 체포된 상태입니다.」
예?
그게 대체 뭔 개소리죠?
"진짜 그게 뭔 개소리야."
내가 하얀별이잖아, 그런데 내가 체포된 이유가 하얀별을 살해한 유력한 용의자라서라고?
- ?????
- 오....
- 진짜 무슨 개소리지
-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 어?
- 근데 죽인거 맞잖아
- ㄹㅇ 방금 죽였잖아ㅋㅋ
- ㄹㅇㅋㅋ
"아?"
그러고 보니 방금 꿈에서 내가 나를 죽이긴 했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야.
쳐 맞는 말.
"사실 이것도 꿈인 거지."
사실 내가 정신병이 있어서 좀 이상한 꿈을 많이 꾸나 봐.
그게 아닌 이상 갑자기 매니저가 잠복 형사였고, 그 형사가 나를 죽인 용의자로 나를 체포할 리가 없잖아.
['진찐자라'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라는 내용의 애니 추천좀
"시발, 그딴 게 세상에 어딨어."
아, 머리 깨질 것 같아.
여러분, 저 오늘 게임 잘못 고른 것 같아요.
「이거, 본인 맞으시죠?」
「어, 어라? 이걸 왜....」
이번에는 방금 꿈에서 나왔던 공사장의 사진이 나왔다.
물론 배경뿐만 아니라 나도 함께 찍혀있는 사진이었다.
「죽인 것 맞죠?」
「그, 그건....」
[맞아요. 제가 죽였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제가 저를 죽인다니, 말이 안 되잖아요.]
"오, 아래 선택지가 내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걸?"
아무리 생각해도 아래가 정상적인 선택지잖아.
이걸 누가 위쪽으로 답변을 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제가 저를 죽인다니, 말이 안 되잖아요.」
「후,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났잖습니까.」
「그러니까 그게 무슨....」
「시체가 나왔다고요. 당신이랑 똑같이 생긴 사람의 시체가 발견되었어요.」
[업적 '장르 변경'을 획득했습니다!]
오, 개발자 죽여버리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