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15장 - 텅 빈 일기장(4)
이 인형이 게임 초반에 루나가 킁킁거렸던 인형이지?
방금 뭔가 걸리는 느낌이 있었는데.
"살살 만져보면 그냥 푹신한 인형인데."
꾹 누르면서 만져보니까 뭔가 딱딱한 것이 걸렸다.
평범하게생각하면 인형의 일부겠지만....
'무슨 종이를 접어놓은 것 같은데?'
그 형태가 인형에 있기에는 너무 이질적이었다.
이거 혹시안에 뭔가 있는 건가?
"가위가 식탁에 있었을 텐데."
인형을 자세히 살펴보니까 실로 꿰맨 흔적이 있었다.
아마도 여길 뜯으면 방금 그 이질적인 걸 확인할 수 있겠지.
- 와 이걸 찾네
- 이걸 어떻게찾아ㅋㅋㅋ
- 위치 미쳤네
- 미쳐버린 게임
- 진짜 꽁꽁 숨겨놨네
- ㄷㄷㄷㄷㄷ
"그러게요. 이번에는 진짜 운이 좋았다."
인형을 뜯어보자 예상했던 대로 접혀있는 종이가 하나 나왔다.
들키지 않기 위해서인지 엄청 작게 구겨져 있었다.
"도와주세요?"
종이에는 도와달라는 글자와 함께 단편적인 단어가 몇 개 적혀있었다.
"이게 무슨 말이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데."
그나마알아볼 수 있는 건 편의점 이름 정도?
MR 편의점이라....
- 뭐지 이게
- 건물 이름들 같은데
- 혹시 갇힌 곳에서 본 건물들 아님?
- 오
- 오?
- 그러네
- 그런가?
"아, 그러네. 님들 천재임?"
이게 진짜 소희가 쓴 메시지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보는 것이 맞겠네.
갇힌 곳의 주소를 알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 주변에 뭐가 있는지를 적었구나.
"바로보내자."
종이에 적힌 내용을 사진으로 찍자, 상호작용으로 매니저에게 보낼 수 있었다.
이러면 위치를 찾을 수 있겠지.
"어, 되게 빨리 전화가 왔네."
「방금 보낸 거 뭐야?」
「주변 건물 위치 같은데, 그거로 위치 찾을 수 있겠어요?」
「어디서 난 건데?」
「루나 방에서 나왔어요. 소희 글씨체 같거든요?」
「오케이, 지금 바로 위치 찾고 있어. 데리러 갈 테니까 기다려.」
「저도 같이 가요?」
「혹시 루나가 보복할 수도 있잖아. 지금부터는 같이 행동해야지.」
"신경 써주고 있긴 하네."
하긴 나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못 했겠지.
그나저나 이제 남은 건 루나를 잡는 것뿐인가?
「오셨어요?」
「대충 위치 찾았어. 각도상 가능한곳들 추려놨고.」
「어디에요?」
「자곡동」
「그리 안 머네요.」
자곡동이면 강남인가?
여기 배경이 강남이었어?
「어, 애초에 자곡동일 거라고 예상했었어.」
「네?」
「루나가 자주 자곡동에서 사라졌으니까.」
「아, 미행하는 거였죠?」
「어, 매번 놓쳤지만 말이야. 하여튼 네 덕분에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지.」
매니저와 함께 자곡동으로 이동했다.
남은 문제라면 정확한 주소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는 건데....
「어, 그 목록에서 좀 최근에 계약된 것 없어? 오케이.」
최대한 후보를 줄인 뒤에 그곳에 있는 CCTV를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경찰들이 잠입해서 감시도 병행하기 시작했다.
"어, 저거 아니야?"
루나랑 비슷한 체형의 사람이 모자를 푹 눌러쓴 채로 지나가는 장면이 녹화되어 있었다.
심지어 후보였던 집에 들어가는 모습까지 보였다.
「빙고. 근데 이거 어제 영상인데?」
「오늘은 없어요?」
「오늘은 안 왔어. 일단 가장 의심스러운 건 여기니까 가보자.」
우리가 초인종을 눌렀지만, 집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하긴 납치당했으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겠지.
「경찰입니다.답이 없으셔서 들어가겠습니다.」
「...인님?」
"어? 저거 소희지?"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는 토끼귀 잠옷을 입고 있는 소희가 있었다.
그런데 왜 저렇게 자유롭게 있지?
「에? 누구세요? 주, 주인님은?」
「소희야!」
- 주인님이래 ㅗㅜㅑ
- 저거 잠옷 루나랑 같은거네
- ㄷ?
- 왜 저렇게 자유롭게 있지?
- 납치된거 아니었음?
- ??
"그러게요. 납치된 거 아니야? 아니, 애초에 구해달라고 쪽지도 남겼잖아."
그랬던 소희가 왜저러고 있는 건데.
심지어 나를 못 알아보는 것 같은데.
「어, 루나 찾았다고? 잡아서 여기로 데려와. 지랄 말고 내가 책임질 테니까 당장 끌고 와!」
「루나? 주인님 말하는 거예요?」
- ㅇ0ㅇ
- 설마 소희가 말하는 주인님이 루나임?
- 뭐가 어떻게 된거지
- ?????
- 아니 뭔데
- 세뇌...조교...윽 머리가
- ㄷㄷㄷㄷㄷㄷㄷ
"아니 게임 진짜 미쳤냐고."
설마 루나가 말한 시간이 이건가?
납치한 소희를 세뇌해서 자기 거로 만들 시간?
'완벽하게 세뇌가 되었으면 납치를 유지할 필요도 없게 되리라 생각했구나.'
애초부터 대역을 만든 이유도 이걸 고려했을 가능성이 컸다.
세뇌를 끝낸 소희가 돌아갈 자리는 남아있어야 했을 테니까.
「주인님! 주인님 소희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어요! 상, 상주세요!」
「소희 언니. 괜찮아? 이 새끼들아, 언니한테서 손 안 때?」
"진짜 점심 나가서 먹을 것 같아."
마치 자기가 소희의 보호자라는 듯이 경찰을 위협하는 루나와 그런 루나를 주인님이라면서 따르고 있는 소희의 모습.
어떤 미친놈이 이런 시나리오를 통과시킨 건데?
「루나, 아니 아모리씨. 당신을 민소희씨 납치, 감금, 학대 및 하얀별씨 살인 교사 미수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얀별 언니, 언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내가가만히 있을 것 같아?」
「조용히 하시고요. 당신은 묵비권 행사 및 변호사를 통한 변호 권리가 있습니다. 체포구속적부심사도 청구할 수 있고요.」
「아아악! 다 나가! 여긴 나랑 소희 언니의....」
짜악!
내가 루나의 뺨을 후려치자 좀 조용해졌다.
어우 시원해. 이게 게임이지.
- 사장님 나이스샷
- 루나 우는데?
- 교주님이 울렸어
- ㄹㅇ얀별님이 울렸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건 맞지
"울라고 해요."
진짜 상상도 못 한 범죄 현장을 목격하고 나니까 정이 뚝 떨어졌다.
이건 좀 심하잖아.
「경장님, 성적 학대 혐의나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도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거 완전히 미친 새끼였구먼?」
「이거 안놔?」
"어우, 진짜 미친년이었네."
집 안을 조사할수록 새로운 불법 행태들이 계속 드러났다.
심지어 소희의 몸에는 묶어두거나 때린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고생했어.」
「네, 그리고저도 체포하셔야죠?」
「.......」
매니저는 한숨을 쉬더니, 수갑을 꺼내 들며 말했다.
「하얀별씨 당신을 하라 리미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제가 죽인 것이 맞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렇게 아모카고의 멤버 셋은 모두 체포되었다.
유명한 아이돌 그룹이었던 만큼, 이 사건은 언론에서 대서특필되었다.
"아니, 근데 이거 너무 레전드다. 기자가 기사를 어떻게 써야 할지 감도 오지 않을 듯."
루나가 소희를 납치해서세뇌 및 조교를 하기 위해 가짜 소희를 만들고, 대중은 물론이고 팬들까지 속여왔다.
심지어 그것을 얀별에게 들키자 얀별을 죽이고 다른 대역을 세우려고 했다.
이걸 그대로 쓰면 기자한테 영화 좀 그만 보라는 말이 날아오지 않을까?
'뭐, 실제로 영화는 아니고 게임 시나리오긴 하네.'
그나저나 진짜 개판이네.
이게 재판이 맞나?
「너무 사랑해서 그랬습니다. 소희 언니와 더 깊은 관계가 되고 싶었습니다.」
"세기의 명언이네."
사랑해서 사람을 납치하고 감금해서 세뇌하고 조교하고, 심지어 그 과정에 마약까지 쓰냐?
진짜 정신이 아득해진다.
「주인님, 아니 루나는 잘못 없어요. 다 제가 나쁜 거예요. 그러니까 루나는 풀어주세요.」
「소희 언니!」
「주인님! 주인님을 놔줘 개새끼들아!」
그 와중에 얼마나 심하게 세뇌가 진행되었으면, 진짜 소희는 계속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여러분 세뇌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 와 진짜 사람이 망가졌네
- 구해달라고 편지쓰던 사람이 저렇게 변하네
- ㄹㅇ진짜 불쌍하다
- 너무 무섭고
- ㄷㄷㄷㄷㄷㄷㄷㄷ
- ㅗㅜㅑ
"그 와중에 오우야 치는 당신, 사상검증이필요할 것 같은데요?"
- 살려주세요
내가 시청자 하나를 재판하는 사이, 루나의 재판도 슬슬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근데 혐의 대부분을 끝까지 가짜 소희인 서봄이 가져가서 문제네.
'형량이 제대로 나와야 할 텐데.'
심지어 살인 교사도 미수로 그쳐서 그렇게 형량이 쌜 것 같지 않았다.
물론 내가 법알못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고.
「검사 측. 최종 반론하세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 아모리는 많은 이들을 기망할 의도로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심지어 현재 피고측이 제시한 증인 민소희는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할 정도로 피고인에게 억압받아왔다는 점을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
판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결단을 내렸는지 입을 열었다.
「선고합니다. 피고인 아모리를 징역 20년에 처한다.」
"오, 이게 20년이 나오네?"
아무래도 연쇄살인급 범죄가 아니라서 형량이 낮을 거라고예상했었다.
이건 좀 사이다네.
「선고합니다. 피고인 서봄을 징역 15년에 처한다.」
그렇지, 이게 정의 구현이지.
게임 속 대한민국의 미래가 참 밝습니다.
"남은 건 하나네."
나도 판결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니까.
「피고인 하얀별은 5월 12일에 피해자 하라 리미의 살인 시도에 대한 정당방위 도중에 의도치 않게 하라 리미를 살해하였습니다. 이는 명백한 과잉방위이나, 피고인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유족과 충분한 합의를 거친 상태입니다.」
「검사 측 반론하세요.」
「피고인, 피고인은 하라 리미를 살해한 후에 이에 대한 후속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고 살해 현장을 떠났습니다. 맞습니까?」
「네, 그랬습니다.」
「변호인의 주장에 따르면 하라 리미를 살해한 것이 정당방위라고 하는데, 그 말은 해당 살해가 일종의 사고였다는 뜻입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정당방위로 인한 사고로 인한 살해인데, 그 현장을 아무런 조치도 없이 떠났다는 소리군요. 여기까지입니다.」
「피고 측 최종 반론하세요.」
「조금 전 검사 측의 주장은 이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입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인하라 리미는 성형을 통해 피고인과 같은 외모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비상식적인 상황에서 피고인이 상식적인 조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시체가 실존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피고인은 바로 자수했습니다. 사건을 묻으려 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와, 사실 내 재판이 더 치열한 것 같은데?"
- 자기 재판인데 팝콘 뜯으면서 보네
- 어차피 게임이잖아ㅋㅋㅋㅋ
- ㄹㅇㅋㅋ
- 그래도 이기는게 기분 좋을텐데
- 근데 솔직히 이건 정당방위지
- 살해계획까지 다 나왔는데ㅋㅋ
「선고합니다. 피고인 하얀별을 징역 3년에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5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음, 무죄는 안 뜨네."
그래도 앞에서 봤던 형량이 너무 커서 그런지, 집행유예는 평범한 수준으로 느껴졌다.
"오, 일기다."
오랜만에 보는 일기 연출이었다.
가짜 소희를 잡은 후로는 나오지 않길래 이제 나오지 않는 줄 알았는데.
[7월 7일]
"숙소로 돌아왔네."
숙소는 증거 확보를 한다는 이유로 물건을 엄청나게 뒤진 덕에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근데 왜 아직도 게임이 안 끝나지?
"뭐가 남았어?"
- 뭐지?
- ㄹㅇ끝난거 아닌가?
- 왜 게임이 안 끝나냐고ㅋㅋㅋ
- 범인도 다 잡았는디?
- 머임?
- ??
- ㄹㅇ뭐지
범인도 전부 찾았고, 소희도 구했으니까 끝나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좀 허무하긴 하지만....
"아, TV 보여주면서 끝내려나 보네."
TV에서는 교도소에 수감되는 루나의 모습이흘러나오고 있었다.
에필로그로 짜둔 파트인 모양이었다.
"뭔가 이 게임을 시작할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에필로그네."
누가 아이돌 게임 시작하면서 이런 엔딩을 상상하겠냐고.
한숨을 쉬면서 게임을 종료하려는 순간,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すべて を うしなった あなた の すがた が けっこう いい です ね。 しゃちょう。」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