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16장 - 심플월드(4)
"음, 어때요?"
"생각보다 이쁘네. 하얀별님은 하얀색 날개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검은색도 은근 어울리네요?"
포카님이 건네준 무기는 브로치 같은 형태였는데, 장착하자 날개의 색이 변화하는 식으로 영향이 왔다.
날개가 검은색이면 좀 칙칙하지 않나?
"그나저나 무기인데 액세서리 느낌이네요."
주사위는 그래도 손에 쥐고 있어야 했는데, 이 장비는 그럴 필요도 없었다.
물론 같은 계열의장비는 하나만 착용 효과를 받는 게임이니까 위치나 형태는그렇게 중요하지 않겠지만.
- 오
- ㅗㅜㅑ
- 누나 나 죽어
- 타천사ㄷㄷ
- 약간 미스매치인데
- 이쁜데
- 옷이랑 색이 안맞네
- 옷을 좀 바꿔야 할듯?
- 의외로 은발이랑은 어울림
"일단 설화 만나면 같이 옷도 사러 가요. 날개에 맞춰서 옷을 바꾸는 게 좋겠다."
"...옷이요? 지금도 평범하게 괜찮지 않나?"
방금 장비 사서 입었는데, 또 옷을 사야 한다고?
이 게임도 룩딸하는 게임이었구나.
"지금처럼 애매한 옷차림으로 어딜 다니게요. 이 게임은 장비 외형 변경 기능이 있어요. 그거로 룩 통일 좀 합시다. 무기는 그런 기능이 없으니 무기에 다른 옷을 맞춰야 해요."
"아, 그런 식이구나."
큐브 게임은 아니지만, 예전에 한 게임들에도 이런 방식이 자주 채용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럼 확실히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네요."
'다른 것보다 내가 옷 센스가 젬병이니까.'
남자 옷이라면 그럭저럭 평타는 칠 수 있다.
아니면 컴퓨터 게임들의 룩 정도야 내가 맘에 들게 맞추는 건 할 수 있지.
문제는 큐브 게임이 워낙 현실적이라서 이게 게임 코디인지 여성복 코디인지 헷갈릴 수준이라는 것.
그래서 게임 옷은 항상 시청자들한테 물어봐서 골랐었다.
"안 그래도 지금 시청자들이 난리가 났네요. 혼자 맞추다 망치지 말라고. 왜 다들 나에 대한 신뢰도가 그렇지?"
- 자신이 캠방할 때 입는 옷을 잘 생각해 봅시다
- ㄹㅇㅋㅋ
- 스수가 옷을 보내주는 방송이 있다?
- 아니 ㄹㅇ옷 좀 제대로 입어!!
- 패션 테러 종사자ㄹㅇ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솔직히 좀 억울하다.
그래도 테러까지는 아니지 않아?
나는 항상 신경을 써서 고른 옷들이었는데.
"확실히 하얀별님이 패션 센스가 영...."
"다들 너무해!"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이쪽이 손을 흔들면서 설화님이 걸어왔다.
그나저나 그 옆에 계신 분은 누구지? 설화님 지인인가?
"안녕하세요."
"오, 하얀별님 오랜만이네요. 오늘 안 그래도 심플월드 하는데. 포카 언니랑 같이 있길래 놀러 왔어요."
"옆에 분은 누구세요?"
"아, 푸흡...."
"하얀별님. 안녕하세요.... 아, 진짜 방종 마렵네."
"가을이 안녕. 아, 오랜만에 가을이 보니까 치유 오지네. 진짜로 개머꼴이라니까?."
"아, 제발...."
대화의 흐름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뭐야 저게 누군데.
심지어 채팅방까지도 웃느라 바쁜데? 내가 아는 사람인가?
['고양이꼬리밟는루냐'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아 진짜 가을이 외모 실화냐? 정말 가슴이 웅장해진다. 루넘꼴
"루넘...? 잠깐만요. 아니, 진짜?"
루냐님이라고? 저분이? 아니 저분은 여성이시잖아.
게임이라 외모가 바뀐다고 해도, 목소리는 그대로여야 하는 거 아니야?
"죽고 싶다. 하얀별님대회 이후로는 처음이네요. 아.... 진짜 싫어."
"풉, 끅.... 끄흑...."
웃느라 숨을 못 쉬고 있는 설화님을 보다가, 루냐님을 보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괜찮아요. 이해합니다."
"아, 아니에요. 아 진짜 아니라고!"
뭐가 아닌데요.
전 그냥 응원해 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정말 이해해요. 괜찮아요."
애초에 완전히 여자가 되는 것과 게임에서만 저렇게 바뀌는 것이 같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나마 비슷한 경험이 있으니까 이해할 수 있다.
"저 진짜 이런 취향 아니에요."
아, 내 말이 이상하게 들린 모양이다.
나는 그런 뜻이 아니라 정말 루냐님의 당황스러운 감정을 이해한다는 건데.
"그나저나 저렇게 목소리까지 여자가 되는 것도 가능해요?"
"애초에 여자, 라고 하기엔 조금 다르긴 해요. 일단 심플월드 세계관 설명이 좀 필요한데...."
"길어지는 이야기인가요?"
"아뇨. 일단 심플월드 종족 중에 유일하게 자웅동체인 종족이 있거든요."
루나님의 머리에는 한 송이 꽃이 피어 있었다.
설화님이랑같은 종족인 나비족이었다.
"그게 나비족이에요?"
"네, 그리고 외모는 여성체로 고정. 그래서 남성 유저들도 나비족으로 캐릭터가 생성되면 여성에 가까운 외모가 되죠."
"오, 그럼 목소리는요? 다른 게임은 플레이어 목소리는 그대로 사용하잖아요."
"대다수 게임이 플레이어 목소리를 게임에 적용하지, 아예 목소리를 바꾸는 경우는 잘 없어요."
"잘 없다는 건, 있긴 하다는 거네요."
"심플월드는 성대 부분까지 구현해서 시뮬레이션하는 모양인데, 신체가 여성에 가까워지면 목소리도 바뀐다고 해요."
"...미친"
심플월드는 좀 다른 게임과 차별화된 부분이 많았다.
대체 누가 게임에서 내부 장기들까지 완벽하게 구현해?
아, 심지어 심플월드는 마법을 사용해 처리하지 않으면 생리현상도 일어났었지.
'어처구니가 없네.'
게임 설정을보여주려고 그런 비효율적인 방법을 채용하고, 심지어 그게 남성 플레이어를 그럴듯하게 여성 몸체로 바꿔주는 것이라니.
평범한 사고방식으로 나올만한 게임이 아니다.
'몬스터 생태계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대단한 게임이야.'
이런 게임이 왜 한국어로만 서비스되는 중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외국 IP를 통한 접속도 막았다고 들었는데.
"일단 하얀별님 옷부터 좀 사자."
"오, 뉴들박이야? 나도 끼어야지."
"벌써 박았는데. 날개 안 보여?"
"강천날개야? 이거 색만 바뀌는 거라 나랑은 형태가 다르네. 어울리는데, 옷만 좀 맞추면 되겠다."
"그치?"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옷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포카님과 설화님이 조금 무서워졌다.
루냐님은 이것이 처음 겪는 일이 아닌 듯, 질린 듯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이것도요?"
그리고 그 질린 표정이 내 얼굴에 옮는 것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니 대체 옷을 몇 개나 입어보는 거야.
물론 게임에서 룩딸을 하려고 많은 조합을 테스트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고.
'그래도 이건 좀 심한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내가 입어보는 옷은 갈아치워지는 중이었다.
"와 미친. 이건 좀 오지네."
"너무 야한 거 아니야?"
"괜찮아. 내가 입을 것도 아닌데."
아니 뭐라고요?
- ㅋㅋㅋㅋㅋ
-ㅗㅜㅑ
- 내가 입을 것도 아닌데ㅋㅋㅋ
- 포카/논란/인성
- 아ㅋㅋㅋㅋㅋ
- 이거로 가자
- 와 근데 블랙 깔맞춤 오지네
- 시스루 개쩌네
검은색 계열로 맞춘 시스루.
일단 검은색 날개와 색이 맞춰진 상태에, 새하얀 머리카락이 대비를 이루면서 굉장히 이쁘긴 했다.
시스루 특성상 체감 수위가 좀 강하긴 했지만.
"이게 옷이야 수영복이야."
"이거 만든 사람이 수영복으로 유명한 사람이긴 해."
와, 정말 알고 싶은 정보였어요.
물론 나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굉장히 마음에 드는 코디였다.
['수증기'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뭐야 미친 개이쁘다 진짜 와 와와왐ㅁㅁㅁㅁ
'뭐야. 누가 또 어그로 끄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후원자 아이디를 확인했는데, 진짜로 수증기님이었다.
이게 진짜네.
나는 조용히 수증기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증기님."
"네? 하얀별님?"
"고소하겠습니다."
"네?"
"고소하겠습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전화를 바로 끊었다.
수증기님이 당황한 것이 너무 잘 느껴져서 즐거워졌다.
어떻게 저렇게 사람이 순수하지?
['수증기'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아 선생님 고소만은 제발
"장난이에요 장난. 왜 그렇게 놀라. 후원 고마워요. 저는 수증기님이 마음에 든다니까 이 옷으로 할게요."
- ㅁㅇㅁㅇ
- 오...
- 우결각ㄷㄷ
- 이걸 이렇게 가네
- 이게 되네
- 미쵸따
- 옷 개쩐다ㄹㅇ
- ㅇㄱㅇ
"뭐야뭐야. 하지만 수증공주님은 제겁니다."
"맞아요. 하얀별님은 제겁니다."
"아니 설화님. 전 누구 것도 아닌데요."
굳이 포카님의 발언에는 태클을 걸지 않았다. 그건 수증기님이 알아서 하겠지.
하지만 나는 설화님 것이 아니다.
"좋아. 옷도 맞췄으니 레이드 가죠."
"오, 드디어."
기다렸던 시간이 왔다.
생각해 보면, 이 게임 시작하고 처음으로 파티 플레이하는 거잖아?
"일단 하얀별님, 탑이 51층부터 바뀐다는 건 아시죠?"
"네. 미션형으로 바뀐다고...."
"특별하게도, 51층부터는 인스턴스 던전 방식이 아니에요. 그냥 진입해서 깨는 방식이죠. 물론 입장 제한 수는 있지만, 동시 공략이 안된다는 게 크죠."
"그래요?"
"그리고 한 번 공략되면 재시도할 수도 없어요. 그거로 결과가 고정."
"엥? 레이드 컨텐츠를 아무나 한 번만 하면 끝난다고요?"
"51층부터는 5층 단위로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져있고, 스토리를 따라가듯 클리어하는 방식입니다. 완전히 그 회차가 실패하면 다음 파티는 다시 처음부터 도전하는 식이죠. 클리어하면 거긴 새로운 지역 해금이랑 비슷해요."
그리고 그 지역에서 새로운 던전을 찾거나, 그 지역을 탐험하는 등의 신규 컨텐츠만 공유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진짜 신선한 방식이네.
"지금 탑이 85층까지 깨진 건 다들 알죠? 강뭐씨가 잠적해주신 덕에 다른 사람으로 도전하다가 파티 터졌어요. 즉 우리가 다음에 깨야 하는 건 86층인데...."
"그럼 바로 86층 공략을 해야 하는 건가요?"
"아직 힐러에 익숙하지 않은 하얀별님 데리고 거기 가면 바로 실패해요. 그랬다간 저희 1레벨부터 다시 키워야 합니다."
- ㅋㅋㅋㅋㅋㅋ
- 그건 안되지
- 뉴비 데리고 최전방ㅋㅋ
- 미쳐버린 방식의 게임
- 1렙부터 다시ㅋㅋ
- ㄹㅇㅋㅋ
하긴, 그건 아니겠지.
그럼 평범하게 던전을 가는 건가?
"83층에서 발견한 히든던전이 있어요. 이건 당시 공략 인원만 아는 건데, 오늘 방송에서 공개하려고 합니다."
그 이야기에 채팅창이 시끄러워졌다.
아마도 이제까지는 비밀로 했던 정보인가 보네.
"83층에 80층 이하의 공략을 다시 체험할 수 있는 던전이 있었거든요."
아, 그래서 그거로 연습하자는 이야기구나.
"문제는 이게 방식이 기존 탑이랑 똑같이 입장 인원 제한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공개를 못 하고 있었어요. 지금처럼 새 파티 생기면 연습용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공략을 포기하지 않고 계셨군요."
"공략 포기했으면 온몸에 준신화 장비작을 하진 않았겠지. 이거 때문에힘들어 뒤지는 줄 알았는데."
그건 좀 고인물 냄새나는 발언이네요.
"하여튼, 그래서 오늘 할 컨텐츠는 71층. 어차피 이 파티면 난이도는 문제가 될 것이 없으니까, 하얀별님의 공략 적응을 위해 가보려고 합니다."
"오, 71층. 그때 생각난다."
"거기 뭐였더라.... 아, 이종족 사냥꾼?"
"맞아. 거기만큼 탑이 어떤 느낌인지 알기 좋은 곳이 없잖아?"
"설화가 트롤 오지게 했지."
"가을 언니는 좀 닥쳐."
"난 말도 못 하냐....봐, 겨울이도 사이좋게 지내라잖아."
"느그 동생 어제 나랑 같이 잠."
"나도 알거든?"
진짜 저 자매, 아니 남매의 대화는 따라가기 어렵네.
본인들은 부정해도 확실히 케미가 좋은 편이다.
"그나저나 5층 단위로 세계가 갱신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럼 72층부터 75층은요?"
"당연히 71층부터 75층까지 5단위의 층을 한 번에 깨야겠죠?"
"그렇겠네요. 저 근데 오늘 레벨링 하다가 왔는데?"
"한 번에 깨야겠죠?"
"...네"
망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