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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화 〉16장 - 심플월드(5) (88/182)



〈 88화 〉16장 - 심플월드(5)

시야가 바뀌자마자, 나는 생각하지 못한 광경에 가볍게 감탄했다.

"와, 여기 무슨 SF 같네요. 심플월드는 이런 맵 디자인도 있구나."
"여기가 81층.  지금은 81층에서 85층까지 전부 같은 층이지만."

그나마 층에 해당했던 미션의 플레이 장소에 따라 층을 붙여서 부르긴 하는데, 정말로 층이 달라지는 건 아니야.
그렇게 말한 포카님이 맵을 확인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쯤이 83층이었지."

현대적인 건물들을 여러 번 지나가다가,갑작스럽게 멈춘 포카님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카드 한 장을 꺼냈다.

"여기예요.  따라 들어오세요."
"오, 카드키에요?"
"당시 공략 보상 중 하나인 마스터키에요. 따로 소유권 등록이 갱신되지 않은 건물은 다   있어요."
"없으면 어떻게 들어가요?"
"그냥 힘으로 부숴도 되지만, 그럼 경비가 몰려와서 귀찮아지겠고.... 정규 루트면 부동산에 이야기해서 구매하는 정도? 근데 여기 더럽게 비쌀걸?"
"그래 보이네요."

건물 내부에는 문과 비슷한 모양의 장치가 자리하고 있었다.
설마 저게 아까 말했던 히든던전인가?

"어, 뭐야. 이거 동작 중이네?"

[71층~75층 시뮬레이션 중....]

"동작 중이라고요?"
"안에 들어간 사람이 있어요. 이상하다? 우리들 이외에는 여기를 아는 사람은 없을 텐데."

[남은 참여 가능 인원 4인]

"심지어 혼자 들어갔네. 그럼 우리가  들어갈  있겠다. 음, 컨텐츠를 미루기는  그런데."
"어차피 언니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그냥 가자."
"뭐, 그렇긴 한데. 그러다 누구 하나 죽으면 레벨링에 너무 시간 낭비하잖아."
"당신 누구야. 포카 언니 아니지."
"내가 뭐."
"언니가 그런 뒷 상황을 생각하고 행동할 리가 없는데. 악!"
"호오, 다시 한번 말해 볼래?"

설화님이 포카님에게 혼나는것을 보면서, 나는 별생각 없이 눈앞에 있는 빛에 손을 가져갔다.
이거 반짝거려서 이쁘네.

"어, 하얀별님 잠시만요!"
"네?"

그리고 그 순간 빛이 더 강해지더니 나를 포함해서 근처까지 뻗어나갔다.
뭐야 이거?

"이거 건드리면 바로 입장이거든요. 아...."
"아...."

저는 몰랐습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고민한 의미가 없었네
- 뉴비의 트롤력ON
고인물들 오열
- 근데 진짜 누가 들갔지
- 우연히 발견했을 수도 있지
- 하긴 85층 깨진게 언젠데

"뭐야 어두워."

그리고 이동이 끝나서 시야가 돌아오자, 굉장히 어두운 주변이 느껴졌다.
일단 마법으로 시야를 확보해야겠는데.

'불빛을 켜는 것이 가장 마력 소모는 효율적이겠지만, 그 빛이 어떤 악영향을 줄지 모르니까 시야를 바꾸는 마법이 안전하겠지.'

소모량이 좀 크지만, 심플월드는 다른 게임보다 마력이 넉넉한 게임이다.
 정도의 소모는 문제가 없겠지.

"쉿."

포카님인가? 아, 루냐님이구나.

- 오 뭐야
- 덜컹거리네
- 실시간 상품 시점
- 마차 안 아님?
- 오랜만에 보네
상품 시점이래ㅋㅋㅋ

목소리를 최대한 줄인 포카님이 상황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여긴 종족에 따라 약간 스타팅이 다른데, 리스족을 빼곤 다 이종족 사냥꾼에게 상품으로 끌려가는 거로 시작해요."
"리스족이 인간이었죠?"
"네, 여기서 인간은 노예로 부리지 않아요. 하여튼 그래서 자신의 종족에 맞는 스타팅에서 층별 미션을 달성하면 되는 거죠."

아까 흘러가듯 들었던 이종족 사냥꾼이 이런 의미였구나.
암튼 노예로 끌려가고 있다는 거네.

"그나저나 스타팅이 거의 저희가 해결하던 시절 그대로인 걸 보면, 아직 71층 같네요. 시작한  얼마 안 된 건가? 다행이네."

 말이 끝나자마자 신호가 된 것처럼 시야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71층(시뮬레이션) 미션
참가자를 포함해 다섯 명 이상의 이종족 노예를 해방하라.(1/5)]

"아. 우리만 탈출하면 깨지겠다."
"진행이 아예 안 된  아니었네."
"다섯 명이면 리스족이 아닌 이상 본인들만 탈출하면 깨지는 거네요?"
"그렇죠. 간단해 보이지만, 처음엔 꽤 애먹었습니다."
"왜요?"
"노예의 인장이라는 마법이 우리 몸에 달려있거든요. 그냥 탈출만 하면 카운팅이 안 됩니다. 지금이야 어떻게 하는지 알지만...."

아, 노예 신분을 확실하게 벗어나야 하는구나.
심지어 리스족이면 NPC를 구출해야 하고.

"일단 그냥 이 마차는 타고 갈게요. 여기서 그냥 때려 부수고 나가고, 따로 인장을 지워도 되는데. 그럼 너무 오래 걸려요."
"따라가면 어디로 가는데요?"
"노예 경매장이요. 노예의 인장은 주인 갱신을 하려면 지웠다가 다시 써야 하거든요? 그래서 그 갱신하는 마법사를 협박해서 지우는 게 가장 빠릅니다."

노예가 아닌 사람이 섞여 있다면, 그냥 여기서 탈출해도 브로커를 통해 작업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노예뿐이면 그것도 난이도가 올라가서 어렵고.

"공략한 것도 꽤 시간이 지났는데, 막상 앞에 오니까 다 기억나네. 신기하다."
"워낙 굴렀으니까 그렇지. 나는 그때 노예라는 말에 PTSD 생길 뻔했다고."

- ㅋㅋㅋㅋㅋㅋ
- 노예상 마법으로  키는데숭
가을이의 노예 생활ㅋㅋㅋㅋ
- 아ㅋㅋ
데뎃 노예상  좀 닦아오는데챠
- ㅁㅊ놈들아ㅋㅋㅋㅋ
- ㄹㅇㅋㅋ

['틀니빼앗아낀루냐'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가을이 포획해서 노예로 부리면 10만원

채팅창, 아니 심지어 미션까지 제정신이 아닌 것을 보며 정신이 아득해질  같았다.
루냐님 당신은 이제까지 어떤 삶을 살아오신 겁니까.

"아니 닉네임 봐. 진짜 나쁘다. 틀니는 왜 빼앗는데."

그 이후로 우리는 그대로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짐칸이라 뭔가 있나 싶어서 물건들을 헤집어 놨지만, 와닿을 정도로 특별한 것은 없었다.

"이렇게 편안하게 넘어갈  있는 구간을, 그때는 왜 그렇게 고생했는지...."
"반대로 이렇게 작전  맞춰서 가는 것이 더  좋은 거 아니야?"
"왜?"
"지금이야특별한 상황이고, 원래 이런 걸  알고 깬다는 건 실패해서 다시 한다는 거잖아."
"...그런가?'

뭔가 핀트가 어긋난 대화를 듣다가, 아까부터 궁금했던 부분을 질문했다.

"경매장에서는 어떻게 할 거예요? 뭔가 작전이 있는 거죠?"
"아예 무계획은 아니에요. 일단 우리 노예의 인장에 주인으로 설정된 애가 멀어지고, 그때 공격 시작해서 털어야죠."
"주인이요?"
"네, 걔가 있으면 노예의 인장으로 제압당해요. 놈이 사라지면 제가 귓속말로 신호를 넣을 겁니다."
"다 생각이 있으셨군요.  뒤로는요?"
"그냥 화력으로 밀건데?"

- ㅋㅋㅋㅋㅋ
- 표정봐ㅋㅋ
- 뉴비의 사고가 따라가질 못한다
- 포카한테 뭘 바랬냐고
- 작전: 때려 부순다
- 그럼 그렇지ㅋㅋ
- 표정ㅋㅋㅋㅋ
-ㅋㅋ어림도 없지

내 표정이 그렇게 티 났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대충대충인데?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건가?

"포카님을 믿긴 하는데, 그럼 제가 연습이 되지 않잖아요."
"사실 하얀별님이 알아서 적응할 거라고 믿고 있어!"
"믿지 말라고!"

신뢰해 주는 것은 기쁜데 신뢰의 방향성이 이상하잖아.
 큐브로 이런 게임을 하는 건 처음인 아가라고.

'그나마 로메 경험이 있긴 한데, 그것 가지고  적응이 리가 없고.'

심지어 능력이랑 포지션부터 다르다. 아, 포지션 자체는 미묘하게 겹치긴 하나?
그래도 힐러랑 디버프형 서포터가 완전히 같지는 않으니까.

"전 하얀별님이 전투 쪽은 금방 적응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얀별님이 여기서 익숙해지길 원하는  전투 부분이 아니거든요."
"전투가 아니라고요?"
"탑의 미션을 진행하는 방식  자체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 방식 때문에 탑 공략을 그만뒀어요. 하얀별님은 이런 부분에 꽤 신경 쓸 것 같은 타입이라...."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션형의 분위기라는 건 대충 이해했지만, 이게 공략을 그만둘 만한 이유가 된다고?
의미심장한 말이기도 했고,  이야기를 하는 포카님의 표정이어딘가 씁쓸해 보여서 물어봤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아, 도착했나 보네. 자세한  다음 층에 도달하고 이야기하죠."

마차가 멈추고, 우리는 얌전히 우리를 끌어서 데려가는 사람들의 따라 건물로 들어갔다.

"오늘은 물이 좋군. 그나저나 검은 날개의 천족이라니, 이건 꽤나.... 고생했다. 들어가서 쉬고 있어."

우리를 데려온 책임자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우리는  방 안에 있던 철창에 넣으려는 것 같았다.
1차로 되어있던 결박이 풀리고, 철창 안으로 들어가던 도중에 귓속말로 신호가 왔다.
아까 포카님이 전투 시작할  신호를 준다고 했었지.

'이것 말고는 작전이 전혀 없다는 게 문제지만.'

"이것들이!"

포카님이 마력을 방출하자 우리를 이동시키던 녀석들이 우르르 넘어졌다.
나는  즉시 마력을 실처럼 뽑아내서  녀석들을 묶어버렸다.

- 합 잘맞네
- 처음 맞냐고ㅋㅋ
- 항상  게임에 고여있는 교주님
ㅋㅋㅋㅋㅋㅋㅋㅋ
- 와 깔끔하네
- 시작이 좋은데?

그리고 대표로 명령을 내리던 사람도 마찬가지로 붙잡아서 포박해놓았다.
그리 약한 것 같지는 않은데, 포카님에게는 상대가  되네.

'아, 그러고 보니 장비 셋팅을 빡세게 하셨다고 했지.'

예전에 이곳을 클리어할 때보다 포카님의 스펙이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 공략은 어지간하면 성공할 거라고 하셨구나?

"오케이, 다른 곳에서 알아차리기 전에 빨리 이동하자. 내 기억에 바로 아래층이거든?"

그 뒤로도 별문제 없이 진행했다.
이렇게 쉬워도 되냐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진행에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쉽네?"

손을 덜덜 떨면서 우리에게 있던 노예의 낙인을 지우는 마법사를 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이거 낙인을 그냥 포카님이 마법으로 지우면 안 되는 건가?

"포카님, 근데 이 낙인은 포카님 마법으로는  지워요?"
"어렵겠네요. 예전에는 이유도 몰랐는데, 이제는 아마  마법에 걸린 보안 때문이라는 정도는 알겠어요."
"보안이요?"

마법에 보안도 걸 수 있는 거였어?

"이번에 정립 마법 공부하면서 깨달았어요. 마법을 해석하는 걸 방지하는 방법을 마법에 추가하는 것이 가능하더라고요."
"아하, 그렇게 보안을  수 있다는 거예요?"
"네, 마법의 형태를 알아내면 부수기도 쉬워지니까요. 그걸 막아야죠."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 심플월드는 원래부터 그런 것까지 고려해서 만들어진 게임이야?

[71층(시뮬레이션) 미션 완료
참가자를 포함해 다섯 명 이상의 이종족 노예를 해방하라.(5/5)]

"오케이. 클리어."

이제 다음층에 도달한 것이니까 다음 미션이 나올 것이다.
점점 공략이 진행되는 흐름을   같았다.
이렇게 총 5개의 미션을 깨면 된다는 거지?

"어?"

[72층(시뮬레이션) 완료 미션
시아를 해방하라.(0/1)]

그런데 다음에 나타난 미션 내용이 너무 짧았다.
이게 대체 뭘 하라는 건지 모르겠네.

- 시아ㅋㅋㅋ
- 맞다 이거였지
-   사건
오랜만에 보는 시아
- 시아ㅋㅋ 그래서 그게 뭐임?
- <삭제된 채팅입니다.>
- 여기가 이거였지
- 클립이 수출금지로 가득한 그 사건

"시아는 또 누구야...."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클리어했는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그 와중에 지워진 채팅도 있네? 그 사건은  뭐지?

"티아야. 채팅 지운 거 뭐야?"

- ^^7
ㅋㅋㅋㅋㅋㅋ
-  진짜 사람 아니냐
- 스포는 밴이지ㅋㅋ
- 아무도 안알려주죠?
 개똑똑하누ㅋㅋ
- 이건 알려주면 안되지ㅋㅋ

아니 왜 맨날 스트리머인 내가 무슨 내용인지 몰라야 하는데.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포카님에게 상황을 물어보려는데, 포카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포카님?"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얼버무렸지만,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녀 근처의 마력과  쥐어진 손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하얀별님."
"네?"
"사람을, 죽여보신 적 있으신가요?"

한동안 고민하던 포카님에게서 나온 질문은, 내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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