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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화 〉17장 - 우리가 몰랐던 75층의 비밀(1) (89/182)



〈 89화 〉17장 - 우리가 몰랐던 75층의 비밀(1)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는가, 당연히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다.

"네? 당연히 없죠."
"저는 있어요. 심플월드의 NPC이긴 해도, 제가 느끼기엔 사람이었으니까요."

굉장히 어두워진 분위기에 설화님과 루냐님을 바라봤지만, 두 사람도 영 시원치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가  타이밍에 나왔다는 건,  가지 이유밖에 없겠지.

"그 죽였다는 사람이 설마, 이 층에 있나요?"

포카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강주현, 포카버터칩, 루냐, 설화월화. 마지막으로 레나. 총 다섯 명이 71층의 공략을 위해 들어간 파티원이에요."
"아, 그러네. 공략은 원래 5명이었지."
"그전까지도  멤버를 유지했으니 심플월드를 같이 공략했던 멤버로는 고정이었죠."

레나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큐브온 영상을 좀 찾아볼걸....

"...그리고 75층을 나올 때는 4명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스쳐 지나가듯 들었던 내용이 생각났다.

'심플월드의 NPC는 유저와 크게 다르지 않아. 심지어 로그아웃을 제외한 시스템까지 같이 사용하는 일종의 플레이어지.'

"설마, 레나라는 분이...."
"NPC죠. 대부분의 NPC가 죽음을 두려워해서 탑이나 던전을 꺼렸지만, 레나는 그러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여기의 공략을 하던 도중에 죽었다는 소리다.
유저라면 다시 레벨만 올리면 돌아올 수 있지만, NPC에게는 그게 불가능하다.
죽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니까.

"75층에서 레나를 죽였던 것이 방금 구조 대상으로 나온 시아, 그리고 그 시아를 죽였던 게 바로 저였죠."

포카님은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생겨난 의문을 포기하지 못하고 질문했다.

"죽였다는 사람이 NPC라고 했죠. 설마탑의 NPC도...."
"마법 쓰는 것 보셨잖아요? 크게 다르지 않아요. 물론 시스템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정말로 사람이랑 비슷하거든요."

그리고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왜 포카님이 나를 걱정했는지 깨달았다.
탑이라는  굉장히 잔인하게 설계된 시스템이었다.

"사람과 다름이 없는 존재가, 우리가 탑을 오르기 위해 죽여야 하는 존재일 수가 있어요."

다만 탑의 NPC에게 일반적인 심플월드의 NPC들과 다른 점이 더 있긴 하다고 말했다.

"클리어하지 않는다면 돌이킬  있어요. 모두가 실패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니까."

하지만 클리어하는 순간, 클리어하기 위해 진행했던 모든 건 현실이 된다.
누구를 죽였던, 누구를 지키지 못했던.

"51층 이후로 심플월드의 공략파가 감당해야 할 새로운 부분이었어요.  그걸 물어보려고 하얀별님을 여기 데려온 거고요."
"사람을 죽여야 한다...."
"저는 가능하면 하얀별님이 탑의 공략에 함께했으면 해요. 하지만 절대로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까, 힘들다면 바로 말해주세요."

포카님의 말이 끝나고 나서, 나는 잠시 말없이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래도 이번 던전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서 죽는 NPC는 실제로 죽는 건 아니에요. 여기는 진짜 탑이 아니니까."
"어렵네요.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나는 이전에 아리아를 지키지 못했던 것만으로도 충격을 받았었다.
그런 내가 NPC를 죽이면서까지 탑을 공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생각은 없지만.

"음, 그나저나 그럼  이후에는 누구랑 공략했어요? 한 명이 비잖아요."

당황스러운 마음을 숨기려고 말을 돌렸다. 영 꽝인 선택지 같지만 어쩔  없지.
설화님은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내 질문에 어색하게 웃으며 답을 했다.

"상위급 플레이어가아예 없는  아니니까, 조금 손발이 안 맞긴 해도 추가로 구해서 진행했죠. 그마저도 주현 오빠까지 사라진 이후로는  어려워졌지만."

4명도 아니고, 3명으로 줄어든 상황이었다면 확실히 공략이 어려워졌을 것이다.
그때 포카님이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여길 골랐던 건 다른 이유도 있어. 하얀별님이 아니라도 와볼 생각이었거든. 레나가 한 부탁을 이제는 들어주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걸 들어줬을 때의 결과 정도는 알고 싶어."
"레나씨의 부탁이요?"
"유언이라는 편이 맞겠구나. 두 개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시아를 구해달라는 거였어."
"네?"

레나씨를 죽인 건 시아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시아를 죽은 당사자가 구해달라고 했다고?

"시아는 그때 폭주 비슷한 상태였으니까. 그 이전까지는 레나랑 정말 친하게 지냈거든. 레나를  따르는 애였으니까."
"언니, 힘들면 굳이...."
"내가 힘들게  있어? 레나 죽었다고 폭주해서 그대로 힘 조절 못 하고 시아를 죽인 내 잘못이지. 반성하고 있어. 더 반성하고 싶고."
"포카는 너무 생각이 많아."
"루냐 넌 정말.... 하여튼 생각 없이 여기를 고른 건 아니었다 이거지. 너무 잡설이 길었다."
"포카님...."
"그리고 레나가 부탁한 건 하나가  있어요.우리 팀이 가장 먼저 이 탑을 정복하기. 그래서 공략은 더 포기할  없고요."

그녀가 71층을 골랐던 건, 자신들이 힘들어했던 만큼 나에게 탑에 대해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이라서 고른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선택하지 못한 미래를 보고  길을 걷지 못한 자신의 죄책감을 더 자극하기 위해서.

'아....'

강했다. 아리아가 죽은 이후로 긴 시간 동안 심플월드에서 도망쳤던 나와는 정반대였다.
그런 방향으로 걸어가지 못했던 내가 초라해질 정도로 강한 사람이었다.
그 강함이 눈부셔서 질투가 날 정도였다.

"시아는 예시일 뿐이지, 실제로 나쁜 녀석들이라면 사람이더라도 죽여야 하는 경우가 자주 생겨. 혹은 우리가 클리어해야 하는 탑의 미션에 정반대의 신념을 부딪쳐 오는 NPC도 있고."

그러니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팀에 함께할지 답해 달라는 말이었다.
전부터 했던 생각이지만, 역시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저기, 하얀별님 빼고 다 아는 이야기 하고 있으면 시청자들이 다들 지루해하지 않나요?"

그때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다들 화들짝 놀라서 시선을 옮겼다.

"크흠.... 여기 들어왔던  시리엘님이었어요?"
"저도 누가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갑자기 71층이 클리어되어서 알았어요."

시리엘님은 진짜 어디서 자꾸 이런 정보를 얻어오는 거지?
로메 때도 그렇지만 참 신기한 사람이었다.

- ㄴㅇㄱ
- 이게 마신이네
- 리엘이가 여기서 왜나와
- ㅋㅋㅋㅋㅋㅋ
- 대회때랑 분위기가 다르네
- 오 고양이 
- 베스족이다
- 귀엽다

"시리엘님 대회 때랑 느낌이 많이 다르네요."
"저번에 포카님이랑 영상 찍으면서  머리가 정돈된 느낌이에요."
"아하."
"그나저나 나는 하얀별님 방송 자주 보는데, 하얀별님은 제 큐브온 안보죠?"
"아, 아니에요. 봤어요,"

물론  확인한 것은 아니고, 몇 가지 조회수가 높은 것들은 확인했다.
시리엘님의 큐브온은 마법에 관한 연구와 관련된 영상이 많았다.

"시리엘님, 제가 이번에 올린 공략 영상은 어땠어요?"
"좋던데요? 제가 했으면 아마 엉망이었을 거라 생각해요. 제가 가르치는   아니라서."
"그럼 다행이구요. 솔직히 루냐도 할  있는 정립 마법이 퀄리티가 좋아서  필요하진 않을  같지만요."
"그거 꼭 그 이름이어야 했어?!"

루냐님이 반박하고 나왔지만, 포카님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불쌍한 루냐님.

"하여튼 보안을 비롯해서 최대한 많은 영상을 찍어보려구요."
"제가 올린 영상은 다들 어렵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요. 전문가들만 평이 좋아요."
"그건 뭐...."

- 그걸 어캐 이해해
- 루냐라도 할 수 있는 정립 마법ㅋㅋ
솔직히 너무 어렵던데
- 근데 겁나 유익함
머리 아프긴 한데 가치가 있다
- 난 재밌게 봤는데

"왜 무시해!"
"루냐님이 불타는데요?"
"괜찮아요. 제가 이겨요."

그게 과연 이기면 되는 문제였던가?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시리엘님이 끼어들면서  분위기가 환기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주변에서 엿듣다가 타이밍 맞춰서 들어오신 걸지도 모르겠네.'

워낙 대회  계획적으로 몰렸던 부분이 많아서그런지,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가 다음 해야 하는 미션이 시아라는 사람을 구하는 거죠? 미션창에 힌트가 아무것도 없네."
"그래서 공략하던 당시에는 고생을 좀 했죠."
"이종족으로 인체실험을 하는 실험실이 있어요. 거길 털면 되는 간단한일입니다."

정말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무력이 있으니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아니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끝이 없잖아?

"뭔가 효과적으로 잠입해서 데리고 빠져나올 수는 없나요?"
"예전엔 그렇게 했지만, 그러면 시아 말고 다른 아이들은 구하지 못한다는 걸 이제는 아니까요. 물론 이번에는 시뮬레이션이라 별 의미는 없겠지만, 그래도 구해보고 싶어요."
"아...."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평범한 게임에서의 효율성을 떠올렸지, 다른 선택으로 더 많은 이들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인체실험실이라, 큐브온에서 봤을 때는 엄청 답답했는데."
"그래도 사람이라는 생각에 최대한 살렸었죠."
"그런 쓰레기들은  죽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데요."

시리엘님의 말은 꽤 파격적인 발언이었다.
나는 아무리 범죄자라도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특히나 그것이 내 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더더욱.

"모든 사람을 지킬 수는 없어요. 사람을 숫자로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그 쓰레기들을 방치해서늘어날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또한 살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 ㄷㄷㄷㄷ
- 정론이긴함
- <삭제된 채팅입니다.>
- ㄹㅇ죽어도쌈
그렇다고 방치했다고 살인이라니
- <삭제된 채팅입니다.>
- 불탄다
- 욕은 좀 하지마

채팅방까지 시끄러워지는 걸 보니, 어느 정도 중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음, 이럴 때는 이렇게 말하는 게 그나마 낫겠지.

"그러니까, 시리엘님 생각은 자신이 생각할 때 그렇다는 이야기죠? 오히려 방치하는 쪽이 죄책감이 느껴진다는."
"네. 저라면 절대 방치 못 해요. 죽이진 못해도 재발   정도의 상태는 만들어야 안심하죠."

시리엘님의 본의는 아니겠지만, 어떻게 보면 기존에 그런 선택을 했던 포카님의 파티를 지적하는 것으로 보일  있었다.
그러니 그게 아니라고 상황을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생각대로 되었는지 조금 분위기가 나아진 채팅창을 보면서 안도했다.

"맞아요. 이제 그런 식으로 적당히 봐주던 시절은 아니죠."

심지어 포카님도 시리엘님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확실히 분위기가 풀린 것 같았다.

'오늘 좀 위태위태하네.'

워낙 소재가 그렇다 보니 어쩔 수는 없지만, 조금 마음에 걸렸다.
시청자들까지 우울해지길 원해서 하는 방송이 아니니까.

"자자, 슬슬 그 장소 공략이나 생각해 봐요. 일단 여기는 어디예요?"
"72층 시작 지점이니까, 아마 여기가 레지스탕스겠네."

다행히 이야기가 게임 공략쪽으로 다시 넘어갔다.
그나저나 레지스탕스라고?

"이종족 연합이에요.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인간들에게 노예로 부려지는 이종족 사냥이 만연하자, 이종족들이 만든 단체죠."

평소에 하는 일은 노예 폐지에 대한 정식적인 항의나, 이종족 노예들의 최소한의 권리 보장 운동 등이라고 한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잡혀있는 노예들을 구출하는 역할도 한다는 거네.'

72층에서는 우리도 레지스탕스에 소속되어서 시아를 구하는 이벤트를 찾아 구하는것이라고 했다.

"근데 이게 공문이드럽게 많았거든. 그때는 하나하나 해보면서 어디에 시아가 있는지 찾아야 했어."

그렇게 말한 포카님이 레지스탕스의 공문 중 하나를 찾더니 우리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이제는 이게 정답이라는 걸 알지."

[일신 연구소 조사]

여러 부분에서 수상한 점이 있는 일신 연구소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공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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