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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화 〉17장 - 우리가 몰랐던 75층의 비밀(2) (90/182)



〈 90화 〉17장 - 우리가 몰랐던 75층의 비밀(2)

"이런 미친"

내가 욕을 내뱉었지만, 그것에 태클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채팅방까지 나와 비슷한 반응을 했다.

"이건 다시 봐도 역겹네."

나는 방송용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모자이크 처리를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면서 표정을 구겼다.
심플월드의 NPC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즉, 이 참상을 만든  역시 사람이라는 말로 해석할  있다.

"하얀별님, 계속 이동할게요."
"...네"

신체 일부가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고,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시체가 새까맣게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시설에는 냉동 상태의 신체 일부가 보관되어 있었고, 이제는 실험체로 보이는 소녀들이 작은 철창에 갇혀 있었다.

"우욱...."

같은 인간의 욕심 때문에 가축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비인도적인 인체실험 속에서 하나씩 죽어가는 죽음의 현장이었다.
그것이 일신 연구소의 실체였다.

"참아요. 일단 구하는 것이 먼저니까요."
"왜 이런 짓을...."

내 말을 들은 루냐님이 작은 목소리로  연구소의 목적을설명하기 시작했다.

"판타지에서는 흔한 이야기지만, 키메라를 만드는 연구를 하는 곳이야. 다만 몬스터와 섞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종족들의 특성을 한 인간에게 모으는 연구였지."
"종족의 특성...."

그 이야기를 듣고나서 눈에 들어온 것이, 시체들에서 보이는 신체적 특성이었다.
시선에 닿는 시체는 세라족의 특징인 날개와 베스족의 특징인 동물귀가 함께 하고 있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자, 이번에는 나비족의 특징인 머리에 달린 꽃과 시렌족의 특징인 얼굴 문신이 같이 있는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대체 왜...."
"우리가 알아본 바로는, 인간은 다른 이종족과 하프가 나올 수 있는데 다른 이종족끼리는 하프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알고 싶다는 이유로 시작된 실험이었어."
"겨우 그런 이유라고요?"
"여기는 지독한 인간 우월주의니까. 인간은 여러 종족 특성을 공유하잖아?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모두를 합치면 온전한 사람인 인간이 될 거라고 믿었대."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이런 실험을 진행한 것은, 이종족들을 사람이 아니라 그냥 가축으로 생각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실험이 성공했지."

그리고 그 정신 나간 수술 끝에 살아남아서, 이제는 그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실험체로 이용당하는 하나의 소녀가 있었다.

"그게 시아였군요."
"그래.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실험체는 다른 종족과 임신을 할  있는지, 능력은 어떤 것을 발휘하는지 실험 중인 레포트를 발견했었어. 이거네."

루냐님이 건네준 레포트를 천천히 읽어보다가, 너무 끔찍한 내용이라 눈을 감아버렸다.

ㅁㅊ
- 와 진짜 미친놈들
저거보고 ㅗㅜㅑ가 떠올랐는데정상?
- 에반데
- 진짜 인간 취급을 안하네
- ㄹㅇ무슨 실험동물처럼 쓰네
- 비정상 미친놈아
- ㅅㅂ 저게 뭐야

남자 노예들을 억지로 시켜서 그녀를 강간하게하고, 임신에 성공했는지 일지를 기록해둔 표.
능력을 써보게 하려고 일부러 극한의 환경을 조성해 강제로 발현한 능력들을 기록한 표.
읽기조차 역겨울 정도로 제정신이 아닌 내용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옆에 장난스럽게 메모되어 있는 더러운 농담들이, 이것을 작성한 사람들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몸이 떨렸다.

['시련발아'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이건 진짜 역하네

"진짜 심하네."
"제가 괜히 죽일 놈들이라는 말을 했던 것이 아니에요."

내가 아는 이들이 당한 것이 아님에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화가 났다.
어째서 이런 일을 했냐고 캐묻고 싶었다.

"과몰입하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심플월드에서는 과몰입하는 것이 때론 정답일 때가 많아. 이건 화내야  부분이 맞지."

그러던 도중, 처음으로 연구소의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과 마주쳤다.
나는 충동적으로 마력으로 만든 실로 그 직원을 꽁꽁 묶고는 질문했다.

"왜, 그랬어요?"
"무, 무슨.... 당신은 누구야!"
"왜 이런 짓을 했던 거죠?"

마음속으로 바랬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협박해서 이런 일을 했다고, 혹은 우리가  못 알고 있는 것이고 이 실험엔 아주 중요한 목표가 있었던 거라고.
그런 대답을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그야 일이니까. 일이니까!"
"일이라서?"
"그, 그래. 어차피 다 제값에 구매한 노예들이라 문제없을 거라고 상부에서...."

나에게 잡혀있던 연구원은 그 이상을 말하지 못하고 시리엘님의 칼에 단숨에 절명했다.

"그걸 뭐하러 계속 듣고 있어요."

하지만 현실은 별것 없는 모양이었다.
그저 일이니까 사람을 죽이고 괴롭게 했다는 말에, 나는 머릿속이 단숨에 멍해졌다.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이해할만한 인간들이면, 이런 짓거리는  하니까."

눈앞에서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보다, 그 죽은 사람이 생각하고 있던 생각이 더 무섭고 역겨웠다.
이제 조금은 누군가를 죽이는 편이 죄책감이 적다는 시리엘님의 말이 조금 이해가 갔다.

"괜찮아요?"
"...아마도요"

사실은 그리 괜찮지 않다.
눈앞에서 누군가 죽은 것은 이번이 겨우 두 번째니까.
그나마 실제로 죽는 것이 아니라는 되뇌인 덕에 겨우 버틸 만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그만큼 여기 잡혀있는 사람들은 힘들겠죠?"

꼭 누군가에게 답을 바라고  질문은 아니었다. 그냥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다.

"하얀별님?"
"조심하세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충분한 힘이 있고 그것으로 누구를 구할  있다면 구하려고  것이다.

"아."

날개를 펼쳐서 나를 향해온 공격을 피했다.
날 공격한 것은 몸을 떨면서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는 '노예'였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서 그에게 소리치며 우리를 막으라고 하는 '인간' 연구원.
그 상황을 보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구나."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라도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바꿀 수 있는  무섭다는 이유로 도망칠 수는 없겠지.
조금만  역겨움을 참으면, 내가 누군가를 죽일  있게 된다면....

"이런 세상에서는 죽여야만 구할 수 있는 것이 있는 걸지도 몰라."

내가 이들이 다시 이런 일을 벌이지 못하도록 계속 제어할 수 있을까?
그건 분명 아닐 거다.

'그렇기에 죽인다는 건, 내가 모자라니까 고르는 차악이겠지만.'

그것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약해 빠진 모습일 테니까.

"하, 하얀별님?"

마력을 써서 내 비행 속도를 강화했다.
그대로 빠른 속도로 날아서 방금  연구원을 붙잡아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큭!"

- 오...
- 방금 교주님 움직임 실화야?
나날이 늘어가는 교주님의 피지컬
- 이게 세라족의 기동성이지ㄷㄷ
- 힐러(ㅈㄴ쌤)
- ㅋㅋ어캐 저게 힐러임

채팅창에는 나를 칭찬하는 내용이 밀려 올라왔지만, 정작 나는 나 자신을 전혀 칭찬할 수 없었다.

"망할."

이 끝까지 와서도 나는 이 쓰레기 같은 인간을 죽일 수가 없었으니까.
떨리는 손을 잠재우기 위해, 그 손으로 그의 뺨을  번 후려치고는 질문했다.

"살아있는 노예들의 위치 전부."
"...뭐?"
"빠짐없이 말해주면 너는 살려주지."

그리고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위치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은 소모품처럼 쓰던 사람이,  대상이 자신이 된다면 저렇게나 두려워한다.
어쩌면 당연한 그 모습이 괜히 신경 쓰였다.

"어, 째서...."

그리고 그는 시리엘님의 검에 찔린 채로 나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더니, 잠시 후에 눈을 감았다.

"하얀별님이 살려준다는 거지, 내가 살려주는 건 아니었거든."
"...죄송해요"
"아뇨.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처음으로 누굴 죽인다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판단이나 전투는  깔끔해서 좋았고요."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레지스탕스에서 챙겨온 물을 마시는데 후원 메시지가 나타났다.

['만세만세만만세'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교주님의 실력에 마력이 웅장해진다

아마 아까 전투 때문에 보낸 후원 같았다.
조금 늦게 도착한 감이 있긴 하네.

"선생님 후원 타이밍 너무 늦었어요. 좀 더 속도를 단련해 오도록."

내 장난스러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채팅창에 답이 올라왔다.
이런 반응은 빠르네.

- 존명
- ㅋㅋㅋㅋㅋㅋ
미친놈ㅋㅋㅋ
- 존명ㅇㅈㄹ
- 솔직히 좀 오지긴 했지
-빡친 표정까지 간지 오졌음
ㅗㅜㅑㅗㅜㅑ
- 이게 천마다 희망편

"희망편 이야기하지 마요. 안 그래도 전에 큐브온에서 희망편과 절망편 컨셉으로 나온 거  쪽팔리던데."

당연히 그 영상을 제작한 편집자는 주현씨였다.
대화할 때는 좀 진중해 보이는 사람인데, 의외로 장난기가 많으시더라.
그러니까 영상 편집에서 핵심을 잘 잡으시겠지만.

'뭐, 처음 만날 때 닉네임부터 그랬었지.'

증기나라수증공주? 그런 닉네임이었던  같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연구소를 거의 다 돌아본 것 같은데.

"다들 여기 계속 숨어 있어. 알았지?"

포카님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시렌족여자아이가 책상 구석에 쪼그려 앉아 몸을 숨겼다.

"대충 다 쓸어버린 것 같은데.... 이제 시아가 있는 곳만 남았네요."
"시아.... 그러게요. 우린 시아를 구해야 하는 거였죠?"
"최대한  구할 생각이긴 한데, 시아를 구하는 게 제일 중요하죠."

이번엔 철창이 아니라 유리로 된 방이 있었다. 여기로  건, 이곳에 시아가 있다는 뜻이겠지?

"저기 있네요."
"아...."

시들시들한 잡초 같은 꽃이 한 송이 머리에 펴있고, 얼굴에는 시렌족의 문신이, 등에는 날개가, 귀에는 강아지에게나 있을 법한 복슬복슬한 것이 달려있었다.
몸에는 칼자국이 가득했고, 잠든 표정에조차 고통이 담겨 있다.
나는 왠지 시야에서 그녀를 지우고 싶어져서 잠시 눈을 감았다.

- 시아다
- 처음에는 이랬었지
- 와 진짜 심각하네
ㄹㅇ종족특성 다모아놨네
- 저걸 수술로 꼬매서 만든거라고?
진짜  역겹다
- 에반데;;;

"아마다 처리한  같고, 이제 시아랑 아이들을 데리고 빠져나가죠. 상황을 설명하면 레지스탕스에서 노예의 인장을 지울 수 있어요."

추측이 아니라 경험에서 비롯된 확신일 것이다.

"시아야, 언니들은 여기를 빠져나갈 생각이야. 같이 갈래?"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가 팔을 잡아끌자 아무런 저항 없이 기계적으로 따라왔다.

'저항하는 법을 잊어버렸구나. 아니면, 우리도 무서운 거겠지.'

나는 초점 풀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시아를 향해 작게 웃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우리는 시아가 아픈 건 시키지 않을게."

시아를 비롯해서 아까 숨겨둔 아이들을 하나씩 찾아서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아까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면 되겠지.

"솔직히 여기까지는 그렇게 전투 난이도가 높은 편은 아니라서 스무스하네."
"아으...."
"괜찮아? 많이 아파?"

아까 구했던 시렌족 아이가 통증을 심하게 호소했다.
내가 치료를 하려는데 시아가 내 앞을 막아섰다.

"아...."

혹시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해서 막아선 모양이다.
그 와중에도 무서운지 몸을떠는 모습에 가슴이 저렸다.

"괜찮아. 이걸 쓰려는 거야."

시렌족 아이가 아니라 시아에게 회복을 사용하자, 시아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천천히 비켜섰다.

"회복으론 큰 효과가 없네요."

어느 정도 표정이 좋아지긴 했지만, 완전히 나아진 것 같지는 않았다.
어딘가 큰 문제가 있는 같은데....
일단 빨리 레지스탕스로 돌아가는 편이 낫겠다.

"여기, 빨리 좀 봐주세요."
"이건 무슨.... 아까 연구소 갔던 팀이죠?  아이들은?"
"그곳이 인체실험을 하는 연구소였어요. 거기서 구해온 겁니다."

포카님의 말에 그녀는 얼굴을 굳히며 되물었다.

"인체실험이라니, 증거는 가져왔죠?"

포카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건네자, 그녀는 간단하게 내용을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들어오세요. 치료부터 해요."

상태가 안 좋은 아이들을 눕히고 레지스탕스의 치료 인력이 전부 달려들었지만, 온전히 회복하는 아이들은 극소수였다.

['시련발아'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여기도 그리 시설이 좋은  아니네

"그러게요."

그렇다고 다른 방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레지스탕스도 아니면 이 아이들을 받아줄 곳이 없을 테니까.
모두의 노예 인장이 지워지긴 했지만, 몇몇 아이들이 점점 상태가 위독해졌다.

"이건 아마 무리겠지"
"아...."

아마도 인체실험으로 수술했던 부분이 잘못된 모양이다.
나도 치료에 전념해서 도우려고 했지만, 역시 큰 의미는 없었다.

'아리아 때도 이랬었지.'

다가오는 누군가의 죽음을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건 다시 겪어도 괴로운 일이었다.

"하얀별님."
"네?"

시리엘님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반응했더니, 시리엘님이 잠시 웃다가 말했다.

"너무 죽는 애들만 신경 쓰지는 마세요. 구한 애들도 신경을 써야죠. 슬슬 시아 한  보고 오세요."
"...그렇네요"

나는 시리엘님의 이야기에 동의하고 시아가 지내고 있는 방으로향했다.

"포카님? 설화님? 아, 루냐님도 있구나."
"아, 하얀별님."
"왜 안 들어가셔요?"
"아직 좀 그렇네요. 레나가 떠올라서 그런가...."
"아...."

이 셋은 처음으로 시아를 만난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시아와 레나님이 친했다고 했었으니 그녀가 생각날 법도 하지.

"하얀별님이 먼저 들어가세요."
"그럼, 그렇게 할게요."

내가 방에 들어가자, 시아가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더니 이불을 집어서 자신을 가렸다.

"몸은  괜찮아?"

시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그녀의 몸 상태를 확인하자마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72층(시뮬레이션) 미션 완료
시아를 해방하라.(1/1)]

"다행이다."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처음에는 무서워하더니 조금씩 표정이 편해진 것을 보며 안심했다.

"앞으로는 맛있는 것도 먹고, 재밌는 것도 하자. 아픈 것도 하지 말자."
"...응"

처음으로 들은 그녀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청명했다.
그게귀엽다고 느껴져서 다시 그녀의 머리를 흩트려버리면서 몰래 다음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다.

[73층(시뮬레이션) 미션
레지스탕스 기지 방어.(0/1)]

"기지 방어?"

아무래도 다음 미션도 여기서 이루어지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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