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1화 〉17장 - 우리가 몰랐던 75층의 비밀(3) (91/182)



〈 91화 〉17장 - 우리가 몰랐던 75층의 비밀(3)

"숫자가 좀 되네요."
"탑은 던전 공략이랑 달라서 이런 대규모 전투도 은근 있으니까 익숙해져야죠."

심지어 그 상대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사람이었다.
일신 백작가에서 기사와 병사들을 끌고 공격해온 것이었으니까.

"통신 마법은 전혀 안 먹어요. 아마 저쪽에서 미리 손을 썼겠죠."
"이 정도면 그냥 레지스탕스를 밀어버리려는 생각일 겁니다. 애초에 그들로선 이번 일로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을 테죠."
"이종족 노예 제도를 추진했던 것도 일신 백작가고.... 애초에 노예 제도 자체가  실험을 위해 추진했던 것일 가능성도 고려해야겠네요."
"하아....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되었는지."

회의에 들어간 레지스탕스 상부의 이야기가 끝나자, 결국 일신 백작가의 병력을 전멸시켜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번에는  피해 없이 막을 수 있겠지?"
"그때랑 전투력이 딴판인데 당연하지."
"하긴, 그때도 일정 이상 쓰러트리니까 일신 백작이 퇴각 명령했었던 기억이 난다."
"일신 백작 좀 죽이고 싶다. 그 층에서 아직도 잘 살아있는 모습을 보면 짜증 나."

포카님의 말에 시리엘님이 잠시 생각하더니 과격한 결론을 냈다.

"그럼 가서 죽여버리죠?"
"그건 그것대로 좀 싫어서요.  동네는 이유 없이 귀족 죽이면 난리가 나잖아요."
"아, 그건 그렇겠네."
"누군지는 몰라도 일신 백작 밑에 있던 총괄이 전투에 휘말려서 죽었대요. 당연히 관련 계획은 모두 중지. 어차피 그냥 꼭두각시 같은 놈이었으니까 이제는 방치해도 큰 문제는 없으니까 내버려 두기로 했어요."

포카님이 하는 말에서 가장 중요하게 들린 부분은 총괄이 일신 백작보다 중요한 녀석이었다는 부분이었다.
이건 조금 마음에 걸리는데....

"일단 전투 시작. 하얀별님은 가능하면 많은 아군을 치료해 주세요."
"그럴게요."

이 전투는 우리만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레지스탕스의 인원 전체가 우리와 함께 일신 백작가와 싸우는 것이니까.

"괜찮으세요?"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화살이나 마법이 우르르 날아다니는 전투라서 자잘한 부상부터 심각한 부상까지 회복이 필요한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걸 하나라도 많이 회복시켜 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 사상자가 거의 안나오네
- 회복속도 실화냐
- 방금 뭐야
- ???
내가 잘못 본 건가?

처음엔 조금 속도가 느렸는데, 그건 내가 기동성이 좋다고 해도 이 광범위한 범위를 감당하기는 무리였다는 것 때문이다.
내 회복 능력은 손에 닿아야만 발동하니까.

'하지만 방법을 찾았어.'

치명상을 입은 사람들은 1초가 중요한 상황이라 급조로 시도한 방법이었는데, 성공해서 다행이었다.

"감사합니다."

치료받은 베스족 남성이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다시 도끼를 들고 뛰쳐나갔다.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 장면을 보자마자 눈을 감고 싶어졌지만 참았다.

'총을 다루는 법은 알면서, 정신 상태가 이래서는 미필보다 못하네.'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뒤로하고, 부상자가 있는 방향을 찾아서 날아갔다.

- 볼때마다 신기하네
- 와 씨ㅋㅋㅋ
- 이게 말이 되냐고
- 이 정도는 해야 마왕이 섭외하는구나
- ㄹㅇㅋㅋ
- 준신화급 장비를 건내주면서 섭외할 조건ㅋㅋ
- 하얀별이 하얀별 했네

일단 중요한 것은 내 스킬인 '치유의 손길'이다.
손에 닿은 대상을 회복시킬 때 회복량을 높여주는 힐링 스킬.

'그리고  스킬을 사용해야 무기의 효과도 발동해.'

그러니 회복을 사용할 때는 무조건 이 조건을 만족시켜서 사용해야 했다.
그래서 오버라이팅을 이용해서 내 손에서 발동하는 이 스킬의 힘을 실처럼 뽑아내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로메에서는 실로 힐을 할 수 있었으니까, 반대로 힐로 실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정답이었다.
원거리까지는 아니지만, 초근접은 벗어난 수준으로 회복을 사용할 수 있어서 시간을 확 단축할 수 있었다.

['녹스'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그걸 그렇게 쓰라고 만든 건 아니었는데?

- ㄹㅇㅋㅋ
- 이건 오버라이팅이라는거다
- 공기가 손에 닿음ㅋㅋ
아무튼 닿았다고ㅋㅋㄹㅃㅃ
- 공기는 킹정이지
  사람들은 우리랑 다른 게임 하나요
- ???: 시스템이 너무 허술하네요

원래 오버라이팅이라는 것이,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합법 핵 같은 시스템이니까 어쩔  없지.
게임 개발에서 적용하기 싫으면 막을 수 있다고 들었으니, 애초에 개발사가 의도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괜찮으세요?"
"네, 저는 괜찮은데 이 친구가."

나는 근처의 모든 이들을 회복시키고는 남은 마력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정신없이 회복을 사용하다 보니 벌써 마력이 반 토막이 났다.

'이러다가 마력이 다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그건 좀 사양하고 싶었다.
내가 힐을 멈추면  뒤로 생기는 부상자들이 사망할 확률이 너무 늘어나니까.
나 이외에 다른 치료진들이 있긴 하지만 나와는 기동력과 회복 수준의 차이가 너무 컸다.

"어라?"

걱정하면서 확인한 전장의 상태는 많이 좋아져 있었다.
설화님의 능력으로 자라난 나무들이 병사들을 묶어놓고 있는 것을 시작으로, 죽지 않고 전투 불능 상태의 병사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덕분에 이제는 여유가 생겨서 상태가 위독한 적들을 묶어놓고 치료하는 것도 병행할 수준이되었다.

"왜, 우리까지 치료를...."
"살릴 수 있으니까요. 어차피 당신들은 위에서 명령해서 잘 모르고 싸운 거잖아. 연구소의 일에 동원되기라도 했어요?"
"연구소? 그건 잘 모르겠군. 하지만 우리는 너희를 죽일 생각으로, 악!"

나는 계속 내 행동에 토를 다는 병사의 등짝을 후려쳤다.
세게 친 것은 아니지만 완벽히 치료된 상태는 아니라서 꽤 아플 거다.

"헛소리 그만하고 살아남을 생각이나 하세요."

- ㄷㄷㄷㄷ
- 아낌없이 주는 나무
ㄹㅇ성녀네
병사들 놀란거 
등짝스메싱!
- ㄹㅇ 치료를 얼마나 한 거야
- 안그래도 마력이 부족한데 적까지?

"뭐, 별로 효율적인 짓거리는 아니죠. 근데 제가 언제 게임을 효율적으로 했습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지."

심지어 이제 명령을 무시하고 공격을 멈추는 병사들도 보였다.
아마 상황이우리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는 것을 깨달았겠지.

- 그건 맞지ㅋㅋㅋ
- 등짝스메싱 개웃기네
- 아니 원래는 되게 슬프고 그래야 하는거 아님?
- 죽는 사람이 없는데 어캄ㅋㅋ
- ㄹㅇ 어캐  살렸냐고
- ㄹㅇ천마에서 성녀로 바꿔야함

"우리 제발 오글거리는 칭호 좀 그만 만들어요. 천마도 솔직히 오바라는 생각이 자주 드니까."

애초에 천마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는 먹이사슬 맨 위에 군림하는 강자 같은 것인데, 나는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니잖아.

"좋아, 이쯤이면 각이 보이는데."

그렇게 말한 포카님이 일신 백작에게 직통으로 마법을 때려 박았다.
다만 설화님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해치웠나?'라고 외친 덕분에 대충 결말이 예상이 갔다.
애초에 아까 들은 설명에 따르면, 여기서 가장 강한 것이 일신 백작이었으니 이렇게 싱겁게 죽을 것 같지도 않았고.

['성녀는 설화였네'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최상위 부활주문을 써버리네 이건 못이기지

"진짜 우리 팀은 왜  적팀 살리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는 거야?"
"아니야. 내가 안 외쳐도 안 뒤졌을 거야."
"그건 모르겠는데 넌 이따가 뒤졌다."

곧장 포카님을 향해 돌진하는 일신 백작의 검을 시리엘님이 달려와서 튕겨냈다.

"너무 살살 쳤나 보네. 이번엔   뜨거운 거로 던져볼게."
"포카 언니의 뜨거운 마법.... 오우야."

인상을 찡그리고 둘에게 달려드는 일신 백작과는 다르게 둘은 가지고 노는 것 같은 느낌으로 그를 제압하고 있었다.

"하얀별님 고생했어요."
"아, 설화님."
"완전히 다 살리셨네. 죽은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것도 대부분 즉사한 사람들일 거고."
"하하...."
"너무 잘하시니까 원래 힐러였던 제가 허접해 보여서 좀 쪽팔리네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거맞지
- 월화도 못하던건 아니었는데
- 이건 상대가 나쁘지ㅋㅋㅋ
- 허접ㅋㅋ
- 겜잘스는 어쩔 수 없지

아, 설화님에게 그런 별명도 있었지.

"겜 잘 못 하는 스레기가 또."
"아, 아니야!"

그리고 그때, 방금까지 가만히 일신 백작의 곁을 지키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참 이상하네요. 일신 백작님까지 이렇게 간단히 상대하는 자들이 레지스탕스에 있다니 예상 밖이에요."
"네즈, 그런 소리 할 시간이 있으면 도와라. 아무리 연구자여도 엄호 마법 정도는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아는데?"
"아, 엄호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도와드려야겠죠."

그렇게 말한 남자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더니 우리 쪽을 경계하고 있던 일신 백작을 뒤에서 찔렀다.

"커헉, 무슨...?"
"아, 우리 백작님. 이제 슬슬 벽을 넘으셔야죠. 안 그렇습니까?"

낄낄거리는 그의 목소리에 장난을 치고 있던 나와 설화님까지 그에게 시선이 갔다.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흘러가는 상황에 굉장히 긴장했다.

"아, 정말 이런 상황이 될 줄은 몰랐는데. 참 아쉬워요. 전 실험체만 다시 찾아가면 그만이었는데."

일신 백작은 고개를 떨군 채로 정상적이지 않은 자세로 포카님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미친!?"

포카님이 마법으로 만든 방어막이 깨졌다.
시리엘님이 달려들어서 검을 튕겨내서 포카님에게 공격이 닿진 않았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일신 백작이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솔직히 우리는 워낙  풀려가는 상황에 꽤 방심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두 번째 겪는 상황이라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고.

'그렇다고는 해도 갑자기 이렇게 난이도가 오른다고?'

일신 백작의 검에 진득하게 달라붙은 오러가 아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포카님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인지 혀를 차고 있었다.

"데이터는 거의 다 얻긴 했지만,그래도 완성본을 놓치는  아쉬운 일이라서 왔는데. 귀찮게 되었네요."
"설마, 당신이 모든 실험의 주도자야?"
"예 뭐. 연구소장인 네즈입니다. 절 많이 보고 싶으셨나 봐요?"
"그렇게 많은 노예를 희생시켜 놓고 뻔뻔하게 그딴 소리를!"
"워우, 진정하시죠. 전 의외로 종족 차별은 하지 않는 주의라서요. 그래서...."

그는 소름 끼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번 실험에는 인간도 썼죠. 아, 애초에 인간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는 실험이기도 했고. 전 노예만 쓴 게 아니라고요. 절 그런 차별주의자들과 같은 선상에 두지 말아 주세요."
"대체 무슨 소리를...."
"인간은 굉장히 흥미롭죠. 다른 종족은 섞이면 심각한 거부반응에 하프도 나올 수 없는데.... 그 사이에 인간만 섞이면 모든 종족을 섞어도 살아남거든요."

그러다가 지금 그가 저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

"설마, 지금 자랑을 하는 겁니까?"
"오, 이해가 빠르신 분이 있네요? 꼭 제가 이야기를 하면 이해해주지 못하는 답답한 분들 뿐이었는데. 이제야 좀 말이 통하는 상대를 만났네요."
"......."
"하, 평소에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못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었을 때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생은 참 신기해요. 나쁜 일이 있다면 좋은 일도 반작용처럼 생기더라고요. 안 그렇습니까?"

['시련발아'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저거 진짜 미친새끼네

그는 그 뒤로도 일신 백작의 뒤에 숨어서 자신의 연구 성과를 자랑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참고 있었지만, 계속되는 역겨운 말에 더는 참지 못해서 뛰쳐나가고 말았다.

"특히 아까 말했다시피 인간을 이용한다는 발상은 제가 생각해도 완벽했죠. 덕분에 성공된 결과물도 낼 수 있었고요!"

제대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날개를 펼치고 날았다.
내가 날아가는 것을 눈치챘는지 제정신이 아닌 일신 백작이 나를 가로막으려 했고, 그것을 시리엘님이 검으로 때려 막았다.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런 논리적인 생각은 이미 잊어버린 상태였다.

"이, 개미친 씹새끼야!"

뭔가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한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가 남의 목숨을 가지고 재미를 논하는 모습이 너무 화가 났다.
그리고 그걸 들으면서도최대한 참으려고 했던 자신이 너무 답답했다.

"베기!"

지금이라면 나라도 저 쓰레기를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니, 벤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