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9화 〉18장 - 흔해 빠진 판타지 이야기(6) (99/182)



〈 99화 〉18장 - 흔해 빠진 판타지 이야기(6)

['익명'님이 2,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스위치 클립)

"2천원 감사합니다. 잠시만요?"

대화 모드 도중에 클립 하나가 날아왔다.
클립 이름은 지정이 되어있지 않았지만, 리엘이의 방송에서 만들어진 클립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조금 아쉽긴 하네요.」
「뭐, 제가 실수해서 죽은 건데요. 하여튼 클리어 해서 다행이에요.」

대화 내용을 듣던 도중에야 저 영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오늘 91층 공략하는 날이었지?
다행히 문제없이 공략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성공하셨나 보네 다행이다. 근데 류아님 죽으셨어요?"

ㅔㅔ
류아님만 끝바지에 죽음
- 다음 공략엔 참가 안하신다는데
- 한 명  누구 구하냐
- 얀별님은 이제 안하실거죠?
- ㅠㅠ
- 90층이 좀 에바긴 했어

내가 확실히 약해 빠지긴 했다.
그런 식으로 90층 공략이 마무리된 뒤에 심플월드에 다시 접속하지 않았으니까.
결국 내가 공략에서 빠지면서 임시로 류아님이 공략멤버에 들어갔는데, 이번 공략 도중에 사망하시면서 이제 류아님도 참가가 어려워진 모양이었다.

「류아님이 빠지면, 또 사람 구해야겠네.」
「별이 언니한테 한 번 더 물어볼까요?」
「아니야. 내가 그건 따로 물어볼게.」

"역시 포카님한테 죄송하네요. 이번에는 갈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죠. 그나저나 포카님이 물어본다는데 스수가 선수 쳤네?"

- 저거 앵무새 밴좀하게 닉좀
- ㅋㅋㅋㅋㅋㅋㅋㅋ
- 본인등판ㅋㅋ
- 포하
- 아ㅋㅋ
- 너밴ㅋㅋ

"뭐 밴까지야. 제가 기분 나쁘진 않았으니까 괜찮아요."

솔직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채팅으로 그런것도 아니고 내가 영상 후원을 열어뒀으니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진지하게 고민해볼게요. 저번 공략 참가 못   죄송해요."
- 전화 받아봐요
"전화요?"

포카님이 건 전화를 받자마자 시끌시끌했다.
이거 개인 전화를 건 게 아니었구나.

"하얀별님 왜 선 그으세요."
"제가요?"
"왜 말 놓기로 했는데 존댓말해요. 흑흑."
"아, 아니 뭔가 너무 좀 그런데."
"제가 좀 그렇다구요? 아.... 제가 눈치가 없었네요."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그냥뭔가 부르기 거북하다는 뜻이었다.
원래 예전에도 다른 스트리머랑 말 놓는 경우가 적기도 했었고, 다른 것보다 포카님은 호칭 때문에 더 그랬다.

"그럼 빨리 반말해 줘요. 그렇다고 형이라고 하면 죽는다."
"포카.... 야?"

ㅋㅋㅋㅋㅋㅋ
- 이걸ㅋㅋ
- 추하다 지포카
- 민아야....
- 야ㅋㅋ
- 공략 뒤풀이중이었구나
- 진짜 반말해줬네

채팅을 보고 확인해보니 공략 멤버들이 모여서 뒤풀이 방송 중이었다.
근데 나는 뜬금없이 왜 끌려온 거야.

"해달라는 대로 해줬네."
"큽, 맞네. 반말에 형도 아니네."
"아, 왜 나한테 언니라고 안해줘.... 그럼 그거라도 괜찮으니까 제발 반말해줘.  존댓말 싫어."
"맞아, 포카도 나한테 반말해."
"아니, 그건 너라서 그래."

차라리 가능하다면 반말이 더 낫긴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언니라고는 죽어도  부르겠어.

- ㅋㅋㅋㅋㅋㅋㅋㅋ
- 루혐을 멈춰주세요
- 루냐는 뭔죄야ㅋㅋ
- 오빠 대접을 못받네
- 루냐한테 오빠? 에바지
- 루냐 오빠(덜렁덜렁)
- 아ㅋㅋ

"그래서, 다들 무슨 일이에요?"
"아무래도 꼬실만한 사람이 얀별이 밖에 없더라고. 우리가 좀 아싸라 부를  있는 사람이 한정적이야."
"어, 음.... 고민은 해볼 생각이에요."

잠시 같이 잡담하고있는데, 좀 이상한 후원 하나가 도착했다.

['익명'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메일 좀 확인해 보실래요?

"뭐야, 메일단인가? 나 이제 메일단도 있어?"

난 통화 마이크를 끄고 장난스럽게 말한 뒤에 메일을 확인했다.
방금 보낸 걸로 보이는 메일을 읽는데, 내용을 읽을수록 점점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이 느껴졌다.

"......."

그리고 메일을 닫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가사라졌다.
이 메일이 정말이라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것 하나를 실현할 수 있었다.
나는 메일을 모두 읽자마자 양해를 구한 뒤에 급하게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방송 화면에 풀다이브를 준비 중이라는 메시지를 띄우고 큐브로 달려갔다.

???
- 머임 갑자기
- 무슨 메일이길래
- 교주님?
- 무슨일이야
- 괜찮아요?

"죄송해요. 확인해봐야 할 것이 있어서요."

나는 공략 이후로는 다시 켜지 않았던 심플월드를 켜고, 81층으로 이동해서 기억을 더듬으며 뛰어갔다.

"분명 여기였지?"

마법을 사용해서 문을 강제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며 방범 장치가 작동했지만 무시했다.

"헉, 허억...."

- 여기는 왜 옴?
???
- 맨 처음 공략한 던전인데
- 시뮬레이션 아니었나?
- 갑자기 여긴 왜?

시청자들이 궁금해하고 있었지만, 그 질문을 받는 나도 메일의 내용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급하게 여기로 달려온 것이었다.

"시뮬레이션 선택 86층."

[86층~90층 시뮬레이션 시작]

그리고 메일에 적혀 있었던 내용은 진실이었다.

"이게, 진짜네."

기존에 시뮬레이션이 80층까지만 작동한 것이 85층 공략에서 나온 던전이라 그랬던 것이 아니라, 마지막 공략 던전을 제외한 모든 던전이 대상이라 그렇다는 제보가 담긴 메일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90층 공략에 성공했을 때 85층까지 작동이 가능해졌고, 이번 공략으로 90층까지도 가능해졌을 거라고 메일에 적혀 있었다.

'심지어 오늘 공략 가능성을 생각해서 미리 사용한다고 예약을 받아 놓았다고 했었지.'

"메일 보내주신 시청자분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실 때문에 내가 놀란 이유는 다시 메구미를 만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메구미는 우리가 공략을 시도할 때마다 기억을 잃지 않는다.
그게 시뮬레이션에도 적용이 된다면 서로를 기억하는 상태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리였다.

- 이게 되네?
- 뭐임 80층까지만 되는거 아니었음?
- 공략층이 늘어서 열린듯?
저번에 85층까지 된다더니 이젠 90층이네
- ???
- 이게 뭔데
- 86층이 된다고?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한 후에 포탈을 만졌다.
시야가 급격하게 바뀌고, 용사 소환이 이루어지는 장면이 시작되었다.

[86층(시뮬레이션) 미션
용사 파티에 합류(0/1)]

"저, 용사님들이랑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좀  수 있게 물러나 주세요."

그리고 나를 보며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는 메구미를 보며 확신했다.
그녀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있는 지연이를 설득해서, 메구미와의 독대 상황이 되자마자 직설적으로 말했다.

"나, 기억하고 있지?"
"...그래"

잠시 서로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메구미가 말했다.

"지금 여기서 같이 있는 지연이는 가짜지?"
"가짜라는 말이 올바른지는 모르겠어. 네가 다르게 느낀 걸 말한다면 맞아. 아마 원래 지연이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겠지."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지연이는 이미 밖에서  살아있으니까."
"그렇구나. 내 작전은 성공했다는 소리네?"
"미안해, 너도 같이 나갈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필요 없어. 그런 건. 지연이가 멀쩡히 나갔다면 그걸로 충분했으니까."

그렇게 답한 메구미가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 웃던 그녀는 조금씩 흐느꼈고,  흐느낌은 곧 눈물로 변했다.

"고생했어."
"드디어 구했어, 구할 수 있었어...."

지난 공략이 끝나고, 나는 당장 다음 공략을 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많은 생각을 했었다.
왜 메구미는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왜 자신을 포기하려고 했을까?
혹시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라스트 발렌타인을 다시 플레이하기도 했다.

"그동안 힘들었지?"
"......."

울기 시작한 그녀를 잠시 안아주고 있었다.
메구미는 곧 창피하다는 듯 나를 밀쳐내더니 어색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

"이런 어리광쟁이가 그렇게 싸늘해졌던 걸 보면 얼마나 고생했을까. 너무 마음이 아프네."
"내 성격은 원래 그랬거든!"

여전한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그녀가 정말로 원해서 도착한 결말이고, 그녀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죽였음에도 성공에 기뻐하고 있었다.

"...고마워"
"어?"
"알려주러 와서 고맙다고. 덕분에 마음이 놓였어."
"아냐. 어차피 내가 아니었어도 알아차렸을 거야."
"사람이 너무 겸손한 것도 병이야."
"사람이 너무 츤데레인 것도 병이야."

- ㄹㅇㅋㅋ
- 이건 맞지
- 하얀별님도 츤데레처럼 그만 튕기고 자신이 천마라는 걸 인정하세요
- 교주님....
- 이래서 급하게 게임 켰구나
- 와 이게 이렇게 되네

장난치듯 말하고 있지만, 그녀와 대화하는 동안 머릿속 자체는 아주 복잡했다.
그만큼 이제부터 그녀에게 꺼낼 이야기는 미친 소리였다.
그녀에게 몹시 나쁜 요구할 생각이니까.

"그리고 여기는 그때  이야기를 재현하는 시뮬레이션이야. 너는 계속 여기 갇혀서 이 이야기를 반복해야 해."
"음, 그게 내가 선택한 길의 결말이라는 소리네.짜증은 나지만 지연이를 살린 것이 어디야. 나는 만족해."
"아니, 만족하지 말았으면 해서 여기에 온 거야."
"뭐?"
"아직은 원래 내부에 있는 사람이 시뮬레이션을 나가는 방법은 없어. 그야 그런 시스템이니까."

하지만,  게임도 누군가가 만든 것이다.
허점이 마냥 없으리란 법은 없다.

"이제 지연이 말고, 네가 나가야지. 이제 그 방법을 찾는 거야. 네가 이제까지 지연이를 구하기 위해 시간을 반복했듯이, 이젠 네가 지연이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 반복하는 거야."

나는 그녀에게 이것이 형벌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정신 나갔네."
"그렇지?"
"그리고 나는 예전부터 정신 나간 애를 많이 좋아해서 그런지 정신이  나갔거든."
"어...."
"그래서 되게 마음에 드네."

나는 메구미에게 세상에서 가장 나쁘다는 것을, 희망이라고 불리는 놈을 주기로 했다.

- 오...
- 하얀별 버그 쓰겠다 선언ㄷㄷ
미쳤네
ㄷㄷㄷㄷ
아니ㅁㅊ
- 이걸 구하러고 한다고?

"다른 곳에도 너와 비슷하게 갇힌 애가 있어. 내가 모를 뿐이고 더 있을지도 모르지."

일단은 기억을 되찾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는 시아가 있었다.
만약 메구미를 구할 수 있다면 시아를 구할 가능성도 생기는 것이었다.

"너를 포함해서 모두를 구해보고 싶어. 욕심이겠지만, 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

애초에 길게 계획한 적도 없는 즉흥적인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이걸하겠다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너나 지연이나 정말 이상한 애들이야."
"그래?"
"하지만 거절할게."
"뭐?"
"정확히는 네 도움을 거절한다는 소리야. 내가 알아서 할게."
"그게 무슨...."
"네 말은 이해했고, 당연히 시도해  생각이야. 지연이도 구했으니 남는 게 시간이잖아?"
"그런데?"
"하지만, 너도 다른 할 일이 있겠지?"
"......."
"그걸 나에게 쓰면 너까지 같이 갇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그러니까, 내 일은 내가 할 거야."

그녀의 말에 할 답을 찾지 못했다.
그게 너무 치사하다고 생각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너는 맞는 말만 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지연이를 다루면서 익힌 스킬이지. 하여튼 고마운 것은 고마운 거지만, 나는 내 알아서 할게."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최대한 몰래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네.'

아예 돕지 않는 것은 영 자신이 없었다.
오래된 친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친구를 돕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하, 진짜 다행이다. 얀별아, 놀라게 하지 좀 마."
"뭐야, 포카님?"
"님?"
"어, 그러니까.... 여기  있어 포카야?"

포카뿐만 아니라 지난 공략 멤버가 다 있었다.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갑자기 나가길래 도방했지. 그러다가 네가 여기 갇힐까 봐 깜짝 놀라서 온 거야."
"아, 맞다."

이 던전이 시뮬레이션이긴 해도,   들어오면 클리어해야 나갈 수 있었다.

"지금 96층 데려갈 만한 사람이 너밖에 없다고. 갑자기 죽으면 공략 밀리거든?"
"하하...."

결국 이후로는 다시 한번 여길 공략해야 했다.
물론 다른 멤버들의 스펙이  더 올라간 덕에 지난번보다는 수월하게 진행해서 클리어할  있었다.

"아, 죽겠다. 진짜."
"이렇게까지 했는데, 공략 참가 내빼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할게요. 한다고요."

생각보다 길어진 방송을 종료하고 큐브 밖으로 나왔다.
몸을 대충 닦아내고 있는데 메시지가 나타났다.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정산을 시작합니다.]
[방송으로 11시간이 추가됩니다.]
[팔로워 보상으로 178시간(1783명)이 추가됩니다.]

"이번에 큐브온 올라간  때문인가 팔로우가 좀 많네."

얼마 전에 편집이 끝난 90층 공략 영상이 업로드된 상태였다.
그나저나 오늘 있었던 방송은 최대한 빨리 편집해서 올려야 그 영상에 이어질 것 같았다.

"아, 끈적해."

풀다이브는 다 좋은데 이 수액이 너무 불편하다.
그렇다고 마지컬에 문제가 생기는 세미다이브를 할 수도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만.

"뭐야, 전화?"

무슨 전화인가 해서 확인하니 포카님, 아니 포카가  전화였다.
뭔가 빼먹은 공지가 있었나?

"여보세요?"
"우리 공략 언제로 잡을까?"

오늘 나 때문에 거의 잠도 못 자고 방송만 했을 텐데, 미리 다음 일정까지 잡다니.
대단한 사람이라니까.

"언제나 괜찮아요. 타로 정규 방송 때만 아니면 시간 됩니다."
"오케이, 최대한 빠른 날짜로 잡아서 공지할게."

그리고 간단하게 씻은 후에 자려는데 단체 채팅방에 공지가 올라왔다.
정해진 날짜는 바로 이번 주말이었다.

"오케이 확인."

나는 그렇게 답장을 보내고는 휴대폰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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