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19장 - 당신은 사망했습니다(2)
"잘 부탁드립니다."
현자라고 유명해진 마법 계열 S급 헌터 헬만.
광전사 계열의 S급 헌터 민지음.
마지막으로 정상그룹의 회장이자 S급 헌터인 강현.
성검을 가진 네 명의 S급 헌터가 모두 자신을 소개했지만, 나는 아직도 맨 처음 자신을 소개했던 아리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
그때 아리아가 조용히 손을 들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러분이 검성 이천화님의 후계이자 이천화님이 맡긴 성검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습니다. 심지어 여러분 다섯 명 모두가 각기 S급 헌터라는 점도 놀랍더군요."
"......."
그 설명을 듣던 지음씨가 우리 쪽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왜 저렇게 우리를 경계하고 있지?
- 눈나 나죽어ㅓㅓ
- 간지오지네
- 외모가 곧 전투력이지
- 이게 주연 외모인가?
- 표정 썩은거 포상ㄷㄷ
- ㅋㅋㅋㅋㅋㅋ
- 지음누나ㅗㅜㅑ
"소유권문제도 있고, 안 그래도 S급 게이트를 닫는데 인원이 부족한 것도 있어서 이렇게 총 9명이 공략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검의 개수는 하나이기 때문에 결의권은 다섯이서 하나만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누가 성검을 가지고 있느냐도 파악해야 하지만, 정답을 안다고 해도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것 또한 중요해진다.
"이천화님의 유언에서 밝혀진 바로, S급 게이트는 성검으로 닫아야 하는 것은 다들 아실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것 중에 가짜가 있어서 가짜는 게이트를 닫지 못한다는 사실도 그렇겠죠."
"다 아는 사실 그만 반복하고 슬슬 출발하죠?"
계속 이어지는 설명이 지루했는지 지음씨가 짜증을 토로했다.
여성분이기는 하지만 아까부터의 행동을 보면 굉장히 직설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음씨 미안해요. 하지만 이것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요. 후계자분들도 소개할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공략에 들어가기 전에 서로 통성명 정도는 해야 한다고 봐요."
우리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자, 그 후 아리아가 작전 브리핑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의 성녀 아리아가 내가 아는 아리아와 같은 사람 같았다.
나이 부분의 차이야 있지만, 외모나 목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닮았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적절해.'
이전에 로메 스토리 모드에서 만난 아리아가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했었다.
심지어 자신이 정말로 죽은 건 아니라는 말도 했었지.
만약 여기에 있는 아리아와 내가 만난 아리아가 동일 인물이라면 그런 상황이 그럴듯하게 이어지기는 했다.
물론 오히려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긴 하다.
심플월드의 NPC인 아리아가 로메에서 등장했던 것이 트라우마를 이용한 AI가 아니라진짜 아리아였다는 것도 좀 이상하지.
'그게 가능해?'
로메쪽에 문의했을 때는 신규 AI의 테스트로 생긴 버그라고 영전과 똑같은 답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이상한 상황들이 너무 겹쳐.'
특히 이런 이상한 상황이 일어날 때는 항상 시스템의 미션이 함께하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탑 최종 층 클리어라는 미션이 걸려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미션들과 지금 상황이 관계가 없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얀별아. 괜찮아?"
"어? 어...."
당황한 것이 얼굴에 드러났던 모양이다.
이건 나중에 상황이 되면 아리아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지.
"들어갈게요."
일단 아리아에 관한 부분은 묻어두고, 공략을 위해 다 같이 게이트에 돌입했다.
"지난번 게이트랑 비슷한 느낌이네."
저번 층에서 나왔던 게이트와 형태 자체는 비슷했다.
그런데 이번에 돌입하는 게이트가 더 크기가 작은 느낌인데?
'이게 S급이면 그때 그 게이트도 S급 아닌가?'
크기랑 난이도는 비례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조용히 다른 이들을 따라갔다.
천천히 게이트에 돌입하자 가득 찬 괴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우, 졸라 많네. 나부터 돌입합니다."
"네?"
선언하자마자 앞으로 뛰쳐나가는 지음씨의 모습에 당황해서 넋을 놓을 뻔했다.
급하게 그녀를 케어하기 위해 나와 루냐님이 따라서 들어갔다.
- 상남자ㅋㅋ
- 잘 싸우는데?
- 피흡있나봄
- 오 피흡스킬ㄷㄷ
- 심플월드에도 피흡이 있네
- 자신감 있을만 한듯
그녀도 역시 생각이 있었는지 금방 위험한 상황이 되지는 않았다.
우리도 진정하고 천천히 자리를 잡아가며 서포팅에 집중했다.
뭔가 쓸려나가는 건 잡몹들처럼 쓸려나가는데, 디자인은 다들 보스몹 느낌이었다.
하긴 이 세계관에서 가장 어려운 난이도의 던전이니까 이런 느낌이어야겠지.
'아, 세계관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탑으로 봐도 최강 난이도 층이구나?'
처음에는 서로 어긋나는 부분이 있었지만, 다들 금방 적응해서 호흡이 맞기 시작했다.
우리 파티나 저쪽 파티나 적응력이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오케이 여기는 다 처리한 것 같아요."
게이트 내부를 탐색하면서 남은 괴물들을 처리하고, 보스방으로 보이는 위치를 찾아냈다.
"아무래도 여기 같은데...."
"마력량 보면 여기가 맞는 것 같아요."
들어가기 전에 마력을 회복하며 정비한 뒤에 내부로 돌입했다.
그런데 안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빈방의 모습이라 다들 당황했다.
"뭐야 아무것도 없는데?"
"마력 느껴지는 건.... 아래인데?"
"루냐야!"
포카가 급하게 부르자, 루냐님이 뭔가 깨달았는지 우리들의 앞을 막아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도 루냐님의 주변에서 대기했다.
그리고 바닥이 흔들리나 싶더니 갑자기 루냐님의 체력이 빠른 속도로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기겁해서 회복을 때려 넣었다.
"다들 보여요?"
"실? 철사 비슷한 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 공격하는거야?"
"아래에서 공격하는 것 같아요."
실? 철사?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마력을 실처럼 뽑아서 주변에 뿌려봤다.
그리고 그 즉시 실이 끊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우 이거 공격 쏟아지는 수준이 장난이 아닌데?"
"버틸 만은 한데, 본체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네. 일단 버프 끊어버리고 탱킹에 올인할게."
그때 잠시 고민한 포카가 한숨을 푹 쉬더니 몸을 풀었다.
저러면 꼭 큐브온 썸네일로 쓸만한 일을 저지르곤 했었다.
"포, 포카야?"
"아, 너무 신경을 많이 썼더니 머리 아프다. 일단 진리대로 해야 했는데."
"내 말 안 들리는 거 아니지?"
"역시 진리는 때려 박는 거지."
"저기요?"
그리고 포카 근처에서 마력이 움직이는 흐름이 나에게까지 느껴졌다.
포카의 기합과 동시에 하늘을 수 놓은 마법들이 바닥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
- 이게 포카지
- 참느라 혼났누ㅋㅋ
- 이제까지 어케 참았나고
- 와 진짜 쏟아지는거 봐
- ? 뭐야 바닥 왜캐 튼튼해
- ???
당연히 엉망진창이 되어 부서지리라 생각한 바닥이 꽤 견고하게 버텼다.
마치 보호막 비슷한 것에 보호되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서 있는 쪽은 약간씩 부서지긴 하네. 대충 끝부분만 그런 건가?'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에 놀라서 모두에게 경고하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들 최대한 라인 뒤쪽으로 땡겨요!"
내 말에 의문이 있는 사람들이 많긴 했지만, 일단 당장 조심해서 나쁜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다들 내 의견을 따라서 뒤로 빠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루냐님에게 연결해둔 마력의 실이 끊어졌다.
혹시나 해서 실을 만들어 뻗어나갔지만, 그 족족 잘려 나갔다.
"와, 씨."
방금까지 우리가 서 있던 바닥에서 공격이 쏟아져 올라온 것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나와 루냐님을 제외하고는 싹 죽었겠는데?
- ㅇ0ㅇ
- 이걸 눈치챘네
- 암살 당할뻔ㄷ
- ㄷㄷㄷ
- 보스가 단번에 킬하려고 각잡았네
- 공격 빼곡한거 실화냐?
- 어우야
"이거 진짜 조질 뻔했네"
이후 우리쪽으로 오는 공격은 그리 많지 않아서 내가 막아낼 수 있었다.
문제는 고립된 채로 대부분의 공격을 막아내야 하는 루냐님이었다.
"죄송해요. 제 힐이 안 닿아요!"
내 힐은 일단 마력 실이라도 접촉이 되어야정상적인 힐이 들어가는 방식이라 이러면 사용이 힘들어진다.
물론 깡 마법으로 회복시키면 가능하지만 그랬다간 마력 부족 때문에 이쪽도 버틸 수가 없다.
일단 아리아의 회복이 루냐님에게 집중되긴 했지만, 그런데도 조금씩 체력이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이거 보스 바닥 안에 있거나 바닥 그 자체 같은데?"
내가 아까 갑자기 라인을 뒤로 빼자고 주장했던 이유였다.
만약 우리가 서 있는 바닥 그 자체가 보스면 방금처럼 기습적으로 공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바닥에 화력집중해서 때려 박아요!"
"딜 집중!"
정신없는 가운데 화력이바닥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격이 전부 막히는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바닥에 영향력이 생기고 있었다.
"효과 있어요!"
급하게 상황 브리핑이 오가는 상황에, 거의 우리 근처까지 돌아온 루냐님이 우리쪽으로 오는 모든 공격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탱킹에서 해방되자마자 마법으로라도 루냐님에게 힐을 해주기 시작했다.
"루냐님 그대로 버티기만 해줘요!"
감소가 멈출 정도로만 회복해주기 시작했지만, 마력의 소모량이 꽤 많았다.
심지어 계속 루냐님이 가까워지기 어렵게 공격이 들어오는 탓에 루냐님은 더 다가오지는 못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다가오면 힐은 문제없는데.'
하지만 그건 내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이러면 타임어택으로 딜량싸움이 되겠는데?
"오케이 부서진다!"
바닥 한편이 제대로 무너졌다.
그리고 그러자마자 그 안으로 그대로 공격을 때려 박기 시작하자 보스의 공격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아, 미친."
갑자기 확 깎여나가는 루냐님의 체력에 굉장히 당황했다.
이거 진짜 시간 촉박한데? 이런 속도면 마력이 버티질 않는데....
"역시 그냥 마법으로 하면 효율 확 떨어지네."
이론상으론 알고 있지만, 실제로 이렇게 발동할 일은 잘 없다 보니 마력 관리에 어려움이 느껴졌다.
"별이 언니, 나 잡고 저기 내려가 줄 수 있어?"
리엘이 함께 뚫린 구멍으로 내려가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아마 완전히 도착하기 전까지의 탱킹과 비행을 담당해 줄 수 있냐는 소리겠지.
"하지만 루냐님이...."
"잠깐이라면 아직 무적기 발동할 마력은 있어요!"
이러면 사실상 마지막 시도가 되겠지만 다른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최소한 보스 얼굴은 보고 가야 다음 공략에 도움이 되겠지?
"오케이. 루냐님버텨주세요!"
리엘을 안고 급하게 뚫린 구멍으로 날아갔다.
우리를 막아서는 공격을 최대한 내가 맞아가면서 빠르게 날았다.
구멍 안으로 들어가자 기계와 동물이 뒤섞인 듯한 괴상한 괴물이 거대한 덩치를 하고 있었다.
저게 방금까지 공격하던 보스구나?
'잘 보이진 않지만, 길이 다 얇은 실로 막혀있네.'
위를 공격하고 있다는 것은 당연히 그 실은 여기서부터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실 하나하나가 위험한 함정이라서 피해서 갈 수밖에 없었다.
'이쪽.'
나는 마력으로 실을 뻗어서 잘리지 않는 위치로만 골라서 이동했다.
정말 피할 수 없는 것은 리엘에게 알려서잘라내기로 했다.
"리엘아 그건?"
"잠깐 빌렸어!"
리엘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성검을 꺼내더니 거기 오러를 씌워서 휘둘렀다.
그 검격은 우리를 막던 길은 물론이고, 보스한테까지 제대로 적중해서 폭발을 일으켰다.
- ㅁㅊ
- 와 개박살나네
- 화력 미쳤네
- 이야ㄷㄷ
- 장난이 아닌데?
- 오우야
"준신화급 검이더라. 심지어 S급 게이트 한정으로 더 강해지고.“
방금 그 일격에 마력이 탈진된 리엘을 안은 채로 구멍을 통해 돌아왔다.
다행히 방금 공격이 효과가 좋았는지 보스의 패턴이 느슨해져 있었다.
"설화님 마무리 부탁해요! 겉은 다 박살을 냈으니까 가능할 듯!"
"라져!"
설화님의 씨앗이 보스몹에 때려 박히고 거기서 식물이 자라나며 부서지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화력을 쏟아내자 적의공격이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래로 내려가자 움직임을 멈춘 보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와 끝났네."
그리고 보스의 뒤에 보이는 선명한 홈 두 개가 딱 봐도 성검을 넣는 자리인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누구 것으로 봉인할 건가요?"
"처음에는 추리할 만한 것도 없고, 제비뽑기나 할까요?"
"이런 중요한 걸 제비뽑기요?"
지음씨의 제비뽑기 발언에 헬만씨가 황당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하지만 우리는 누가 진짜 검을 가졌는지 일부분 알고 있다.
"그럼 방금 중요하다고 했던 헬만씨가 가죠?"
우리는 슬쩍 헬만씨가 참가하는 방향으로 의도하려고 했지만, 다른 여론은 제비뽑기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럼 강현님이랑 제 검으로 해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결국, 제비뽑기의 결과대로 강현씨와 아리아가 성검을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솔직히 일부 정답을 알고 있던 우리로서는 무조건 실패할 조합을 보는 건 아쉬운 일이었다.
'이득을 전혀 못 보는 조합이네.'
우리는 저 둘 중 하나가 무조건 가짜 성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결과는 실패였다.
그래서 게이트가 폭주하긴 했지만, 우리가아까 게이트 내부를 청소해둔 덕에 심한 피해는 없는 것 같았다.
"시작부터 이러니까 기분이 좀 다운되네."
"이러면 현이랑 아리아씨 둘 중 하나가 가짜 검이라는 거지?"
지음씨는 아리아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그녀는 아리아를 의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일단 베이스캠프에서 휴식을 좀 취하죠. 다음 공략도 진행해야 하니까요."
그런데도 아리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상황을 계속 리드했다.
그 반응에 지음씨는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는지 혀를 차고는 아리아의 말에 따랐다.
'어우....'
그 뒤로는 각자의 텐트에서 휴식을 취하기로했다.
그리고 여기서 잠까지 자둬야 하는 상황이라 방송을 종료한 했는데,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밖에서 나를 불렀다.
"누구세요?"
텐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이는 아리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