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19장 - 당신은 사망했습니다(4)
"다가가기도 힘드네."
"저 날개는 어떻게 되어 먹은 거야?"
우리는 보스의 기술 때문에 당황하는 중이었다.
보스가 가진 날개에서 흐르는 마력의 폭풍 때문에 다가가면 위험하고, 그렇다고 그곳에 마법을 날려도 캔슬되는 것이 전부였다.
"포카가 보기에는 어때."
"일단 이거 마법보단 스킬 계열 같은데? 마법만으로는 불가능해."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묻자, 그녀가 마력의 흐름을 좀 더 살피더니 확신하면서 말했다.
"얀별이 네가 가지고 있는 날개가 무한하게 있다면 어떨 것 같아? 착용 제한도 무시한다고 치고."
"...마력이 무한이겠지?"
"저 날개가 그런 식이야. 어떤 힘으로 마력을 증폭시켜서 그 증폭된 걸 또 증폭시키는 중이라고 보면 되겠네. 한계가 있어서 저 수준에서 유지되기는하지만, 그렇게 루프를 돌리는 여파만으로도 지금 같은 상황이 연출되는거고."
"그 흐름을 망쳐야 한다는 건지?"
"그렇게 되겠네. 물론 지금은 버티기도 급급하지만."
공략을 찾을 때까지 보스가 가만히 서서 기다려줄 리가 없었다.
계속 날아다니면서 우리를 공격해오고 있었고, 지금 우리는 그걸 막기에도 벅찬 상황이었다.
"듣다가 깨달은 건데, 그럼 저게 멈추면 충분한 예열이 필요할까요?"
"아무래도 그렇죠. 지금이야 마력이 강하니까 접근조차 힘들지만, 초기에 마력 루프를 시작하는 단계면 현저히 약할 거에요."
"이거 아무래도 잘 챙겨온 것 같네."
그렇게 말한 지음씨가 배낭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저건 뭔가 아이템 같은데?
"마정제거기. 일반적으로는 마력EMP라고 부르지만."
게이트 발생 초창기에 만들어진 것으로순간적으로 일대의 마력을 캔슬시키는 장비라고 했다.
"뭐, 마력이 있는놈들은 화기가 안 먹으니까. 이렇게라도 화기를 때려 박을 생각이었고, 그 생각이 적중했으니 한동안 애용되었지만...."
각성자의 수가 늘어나서 오히려 팀킬 여지가 생긴 이후로는 생산이 중단된 희귀품이라고 했다.
"내가 심하게 폭주하면 멈추려고 가지고 있던 건데, 이게 쓸모가 있게 생겼네. 터트릴 테니까 다들 마력 잘 관리하세요."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으니 다들 마력EMP의 사용에 동의했다.
지음씨가 마력EMP를 발동시키자 이상한 느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 어우ㅋㅋ
- 개기분나빠
- 오늘도 체험모드 안킨 사람들 낭낭하게 1승 챙기고 갑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
- 이건 좀ㅋㅋ
- 오 효과 쩐다
"떨어진다!"
"효과 확실하네."
순간적으로 보스의 날개가 사라지고 그 반동으로 보스가 낙하하기 시작했다.
다시 조금씩 날개가 되살아나려는 듯했지만, 빠르게 다가간 리엘이 마력의 흐름을 방해했다.
"별것도 아닌 놈이 스킬 하나로 보스였네."
"EMP 없었으면 고생 좀 했겠다. 직접 EMP를 마법으로 구현할 뻔했잖아?"
"어우 심장 떨려."
보스를 쓰러트리고도 한동안 조용히 휴식을 취했다.
당장 누가 성검을 사용할지 고민하기에는 다들 지쳐서 그런지 말없이 쉬고 있었다.
"저도 음료수 좀 주세요."
"으악, 분석하는 동안 적당히 힘들었어야지."
"너무 긴장하니까 그렇지."
"날개 닿으면 뒤지는 건데, 어떻게 긴장을 안 하냐?"
- ㄹㅇㅋㅋ
- 나까지 긴장했다
- 탑 보스라 아쉽네
- 이번 보스는 좀 능지를 요구했네
- ㄹㅇ던전이면 우리도 해볼텐데
- 어차피 공략 알면 쉬운 보슨데 뭔 재미임
- 실시간으로 보는게 더 재밌지
다른 때보다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을 보면서, 들고 있던 사이다를 단번에 마셨다.
그나저나 아리아는 대체 왜 음료수까지 들고 다니는 거야?
"오케이. 다들 휴식은 다 취하신 것 같으니까 이번 봉인에 참여할 분을 골라야겠네요."
"솔직히 연속 두 번 실패했는데, 이러면 확률상 한 번도 가지 않은 지음씨는 무조건 가는 편이 안전할 것 같아요."
타당한 발언이었다.
만약 지음씨가 무조건 들어간다고 가정하면, 이번 봉인에는 2명의 인원수가 필요하므로 한 사람만 더 고르면 된다.
'만약 여기서 지음씨가 가짜면 끝이야. 하지만....'
지금 정황상 아리아가 가짜일 확률이 훨씬 높았고, 결국 지음씨나 아리아 중 하나를 언젠가는 확인해야만 했다.
'그리고 헬만씨와 우리로 두 명이 가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해.'
우리가 의견을 낸다고 해서 무조건 그것대로 진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파티 내의 여론을 고려해야 하므로 이번에는 지음씨가 공략에 참여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지음씨는 어떤 분이랑 가시겠어요?"
고민하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헬만씨와 강현씨 중 하나라면 상관이 없다고 답했다.
"그럼 봉인에 참여한 수가적었던 헬만씨가 같이 가시면 될 것 같아요.."
지음씨와 헬만씨가 성검을 끼워 넣자, 성검들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게이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 게이트 사라진다."
"하, 여기서 끝나는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97층 미션 완료
게이트 하나 봉인(1/1)]
예상대로 지음씨가 진짜 성검을 가지고 있던 것이 맞았다.
이러면 우리는 진짜 성검을 누가 가졌는지 전부 알게 된 것이 된다.
'다만, 우리가 진짜 성검이라는 걸 증명받지 못했네.'
다음 공략에서는 이 점이 주요 논쟁거리가 될 것 같았다.
특히 지음씨는 강현씨를 많이 믿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98층 미션
게이트 하나 봉인(0/1)]
"미션 복붙 에반데."
이건 누가 생각한 방식이야. 매번 느끼는 거지만 탑의 클리어 조건이 너무 대충이네.
"다행히 이번엔 게이트를 닫았네요. 내일 나머지 두 개를 공략할 생각인데 다들 괜찮으시죠?"
"네, 오늘은 여기서 쉬죠."
다행히 이번 공략에는 스킵이 없었다.
확실히 스킵하기에는 매 공략에 드는 시간이 굉장히 길긴 했다.
'애초에 하루에 게이트 두 개 공략이라는 일정부터가 너무 빡빡해.'
그래서 굳이 스킵을 넣어놓지 않은 것이겠지.
다른 층처럼 잠잘 시간을 줄인다고 단번에 클리어할 만한 길이가 아니었다.
물론 길이뿐만 아니라 공략의 난이도도 어려운 편이었다.
특히 NPC들의 전력 활용이 부족했다면 진작에 공략에 실패했을 것이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내일은 진짜로 마지막이다...."
- 수고하셨어요
- 별바
- 안녕히주무세용
- ㅂㅂㅂㅂ
- 아 지금 왔는데
- 이거 보느라 하루 날림ㅋㅋ
- 오뱅알
- ㅇㅂㅇㅇㅂㅇ
- ㅅㄱㅅㄱ
- ㅂㅂㅂㅂㅂㅂㅂㅂ
채팅방에 쭉 올라오는 인사를 보면서 방송 송출을 종료했다.
혹시 모르니까 녹화 기능만 켜두면 되겠지.
"언니."
"어, 아리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리아가 텐트로 찾아왔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나는 어제 있었던 대화가 떠올라서 조금 마음이 심란해졌다.
"방종한 거 보고 왔어요. 어제 잊고 말하지 않은 것이 있어서...."
"그걸 또 보고 있었어?"
"최근에는 언니 방송 보는 거 말고는 삶에 낙이 없어서요."
얘도 내 방송을 봐주는 시청자지....
NPC가 내 방송의 시청자라는 건 역시 좀 신기하지만.
"하긴, 스트리머를 하는 NPC가 있는데 시청자인 NPC도 있을 수 있는 거지."
"아르카님 이야기에요?"
"응."
스트리머 아르카.
심플월드의 NPC지만 팬들의 도움으로 방송 송출을 하는 스트리머다.
'주로 PC게임 쪽으로 하시는 것 같던데.'
심플월드에 다른 큐브 게임을 연동시킬 수는 없으니, 그나마 연동이 쉬운 PC게임 말고는 컨텐츠를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심플월드의 모험을 하는 건 NPC들 입장에서는 너무 위험하니까.
"하긴 AIR면 최근에 방송 죽돌이였고."
"과금을 할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워요. 나도 후원 보내고 싶은데."
"그럼 살아남아."
"네?"
"아직은 방법이 없지만, 살 방법을 찾아보자고."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만약에 그럴 수 있으면, 내가 충전을 해주든 해서 너도 그런 거 즐길 수 있게 도와줄게."
"......."
내 말에 그녀는 말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그녀라고 정말로 죽고 싶은 것은 아닐 터였다.
그저 그것보다 세상을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이겠지.
"그래서 아까 말한 잊은 건 뭐야? 설명에 놓친 부분이 있었어?"
"음, 어제 것이랑 연결되는 건 아닌데요."
그녀는 내 손등을 가리켰다.
시아가 나에게 줬던 성흔이라는 이름의 문신이었다.
사용법을 몰라서 일단 방치된 상태였는데.... 이거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나?
"이건 왜?"
"사용법 알려드릴게요."
"어, 이거 알고 있어?"
"시아족의 종족 고유능력이에요. 메커니즘은 좀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설명하면 시아족은 다른 종족 능력을 모두 잃는 대신 스킬 하나를 더 얻어요."
"스킬? 아 설마 초기에 획득하는 2개처럼?"
"네, 그거 두 개가 세 개가 되는 능력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다만 언니는 그냥 그 능력만 받아온 거라, 종족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요."
"...그럼 너무 벨붕 아니야?"
물론 나오는 능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존 능력은 그대로라는 점에서 엄청나게 좋을 것 같은데.
"당연히 언니가 그걸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유저는 그거로 종족이 바뀌지 않아서 일회용이거든요. 따라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단 한 번이죠."
"일회용이구나."
"그것도 일단 활성화를 해야 하는데, 그냥 손등에 일정 이상의 마력을 흘려 넣으면 끝이에요. 활성화한다고 바로 사용되는 건 아니니까 미리 해둬도 괜찮고요."
그나저나 아리아는 이런 정보에 왜 이렇게 빠삭한 거야?
물론 최종보스니까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표정에 다 드러나요. 제가 이걸 알고 있는 건 시아의 특수성 때문이에요."
"특수성?"
확실히 마지막에 시아가 반응했던 것을 생각하면 평범한 NPC가 아닌 것 같기는 했다.
신규 종족이라는 대형 설정이 붙어있기도 했고....
"시아는 처음에는 탑 최종보스로 설계된 캐릭터거든요. 개발 중에 난이도 조절에 실패해서 중간층으로 바뀌었지만요."
"어, 그런 거였어?"
그래서 시아에 대한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녀는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원래는 시아족 이야기가 탑이 모두 클리어되고 마지막에 진행될 종족해방 이벤트인데, 그게 중간층으로 넘어갔죠."
"어, 잠깐만. 갑자기 생각난 건데.... 아리아 네가 탑이 아니라 그냥 심플월드 최종보스라고 했었지?"
"네 맞아요. 원래는 다음 에피소드 계획이 있었지만, 제가 강주현의 AI가 되면서 탑 다음의 에피소드는 취소됐어요. 그러니까 제가 최종보스가 맞아요."
"그런 거였구나."
그럼 이 탑을 다 클리어하면 심플월드는 어떻게 되는 거지?
한동안 업데이트가 없다는 건가?
"애초에 아버지는 이 게임으로 돈을 벌 생각도 없어요. 심플월드는 리트라이를 이용할 유저들이 익숙하도록 도와주는 튜토리얼 용도로 개발된 게임이기도 하고."
"그래, 그래서 결국 이거 사용법 알려주려고 찾아온 거야?"
"그것도 있고, 마지막 전투 전에 미리 하고 싶은 말도 있고.... 근데 역시 못하겠네요."
"뭐야, 뭔데."
"비밀. 이만 들어가 볼게요. 푹 쉬고 내일 봐요."
그녀는 싱긋 웃더니 텐트 밖으로 나가버렸다.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느낌이라 한동안 멍하니 그녀가 나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이거 확인해야지."
아까 아리아가 알려준 것처럼 손등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한동안 마력을 흡수하기만 하던 문신이 번쩍 빛나더니 메시지가 나타났다.
['시아의 성흔(비활성화)'가 '시아의 성흔(활성화)'로 변동됩니다.]
[현재 플레이어의 데이터를 분석 중입니다. 적절한 능력을 찾는 중입니다.]
"데이터 분석? 뭐야?"
내가 궁금증을 해결하기도 전에 다음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거 능력을 자동으로 골라주는 건가?
[능력이 결정되었습니다. 성흔의 능력은 1회 사용 시에 소멸합니다.]
[신화의 회복
준신화 등급의 장비 하나를 선택한다. 해당 장비를 일시적으로 신화 등급으로 변화시킨다.]
"이건 당첨 같은데?"
나는 나쁠 수가 없어 보이는 능력을 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