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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화 〉20장 - 게임 안에 사람들이 있잖아(5) (110/182)



〈 110화 〉20장 - 게임 안에 사람들이 있잖아(5)

"조금 있으면 서비스 종료 하겠네요."

내 질문에 언니는 시간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플월드는 서비스를 종료할 것이고, 그럼 다시 언니와도 만날 수 없겠지.

"곧, 끝이네. 결국, 아버지인가 하는 사람은 안 왔어?"
"네."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아버지에게 상황에 대한 설명을 모두 들은 것은 이미 며칠 전이었다.

'거짓말해서 미안해요.'

그리고 그 덕에 많은 것들에 대해서 알게 된 상태였다.
내가 모르고 있던 것부터, 이제부터 심플월드에 일어날 일까지.
통보에 가까웠지만 전부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언니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리트라이로 연결될 거잖아요."

이건 거짓이 아니었다.
애초에 심플월드는 리트라이 내의 격리 세계의 일종이라서 리트라이의 서버가 동작한다면 심플월드도 동시에 동작할 수밖에 없으니까.
따라서 서비스 종료는 그냥 유저들의 심플월드의 접속을 막는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간담회에서는 편입된다고 말을 했던가?'

애초에 이미 붙어있는 걸 편입한다는 표현이 조금 웃겼다.
물론 현재는 분리돼서 나누어져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아예 거짓말은 아니지만.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좀 그렇네."
"그래서, 메구미랑은 이야기하고 왔어요?"

애써 참던 감정이 터져 나올까 봐 말을 돌렸다.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깔끔하게 하고 싶었으니까.
애초에 답은 알고 있었다. 언니 성격상 메구미에게 다녀오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까.
언니의 종족이 나비족으로 바뀐 것도 그것이 원인이겠지.

"어, 대충 상황 설명도 했어."
"아, 나도 시아나 메구미랑은 이야기해보고 싶었는데. 그러긴 어렵게 되어 버렸네요."

만약 그녀들이 살아 있었다면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전력이 강한 편이 좋았으니까.

"고마워요."
"어?"
"언니가 나를 구해줬으니까, 나는 이렇게 슬퍼하고 기뻐할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뭐 해. 서비스 종료를 당하는 상황인데."
"분명 나중에 다시 만날  있어요."

모르겠다.
만날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지만, 아마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만으로 그걸 막아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언니라면 방법을 찾아줄 수도 있겠지.'

그 미래에 걸어볼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야지.
아버지도 다시 만날 가능성이 분명 있다고 했으니까.

"맞다, 이거 검 잘 쓸게요."
"그거 서비스 종료라서 아무도필요 없는 거잖아. 헐값인 준신화급 장비도 사줄 걸 그랬나?"
"그 정도 장비는 저도 많아요. 암튼 잘 쓸게요."
"...솔직히 아리아한테는 이별 선물로 뭔가 제대로  걸 주고 싶었는데."
"가장 귀한 걸  놓고, 그렇게 말하면 제가 양심 없어 보이잖아요."

목숨이라는 건, 계산해서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것이었으니까.

"그런가? 모르겠다...."

심지어 나를 구한 것 때문에 방송으로 욕도 엄청나게 먹었으면서, 이 언니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 탈이다.
나는 점점 마지막으로 향해가는 시계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언니, 저는 잘 모르겠어요. 뭐가 팬으로써 좋아하는 건지, 뭐가 사랑한다는 건지."

하지만 그런 제한적인 조건을 모두 걷어내고, 간단하게 표현한다면 내 감정에 확신을 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걸 떠나서, 솔직한 마음으로 언니가 좋아요. 저를 그저 도구에서 스스로 판단할  있는 지위까지 올려준 것도 언니고, 버리려던 목숨을 구해준 것 역시 언니예요."
"도구라니, 너는 나와 처음 만날 때부터 사람이었잖아."
"네?"
"애초에 내가 궁금해서 만나러 거기까지 왔다면서. 와, 그럼 무려 방송 보고 저격을 한 거네?"

그렇게 말한 언니는 재밌다는 듯이 쿡쿡 웃고 있었지만,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만약 서비스 종료가 되어도 네가 살아 있다면 그걸 기억해. 너는 사람이고, 계속 살아갈 가치도 있어."
"......."

그리고 서비스 종료 시간이 되자, 칼같이 언니가 강제 로그아웃되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럴지도 모르죠. 그럼 제가 지금부터 하는 건, 도구로써 하는 일이 아닌 거네요."

아니, 이제까지도 전부 내가 판단해서 했던 일이다.
나는 아버지가 아니라 내가 판단해서 목숨을 걸어왔다.
그걸 내가 판단한다는 것이 너무 잔인해서, 그것이 무서워서 자신을 도구취급해온 것이었다.
그냥 회피에 지나지 않는 행위였다.

'하지만, 이제는 무섭지 않아.'

이제는 내 목숨을 넘을 정도로 소중한 사람이 생겼으니까.
이전에는 인류가 나보다 중요하다고 억지로 생각했다면, 이제는 진심으로 나보다 중요하다고 바로 대답할  있는 대상이 생겼으니까.

"그리고 추하게 살아남기에는 언니한테 신세를 너무 많이 졌지."

그녀에게 무언가라도 더 해주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최선을 다해서 싸우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언니라면 추하게라도 살아남으라고 하겠지.
그래도, 스수는 말 안 들어.
내 마음대로  거야.

[경보: 새로운 타입의 게이트가 발견되었습니다. 근처에 계신 헌터분들은 공유된 좌표로....]

"시작했네."

언니가 리트라이에서 기반을 잡을 때까지 시간을 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언니가 도우러 올 때까지 버텨서 반갑게 인사한다.

"네,  출발했어요. 여러분도 준비하세요."

그게 우리만의, NPC들만으로 진행하는 심플월드의 3번째 에피소드였다.

☆ ☆ ☆ ☆ ☆ ☆ ☆


심플월드를 끄고 방송을 켤 준비를 했다.
방금 아리아와 마지막으로 인사를 해서 그런지 텐션이 많이 낮아진 상태였다.
그래도 오늘은 리트라이를 시작하는 날이니까 방송을 쉴 수는 없지.

"여러분 안녕하세요."

-
- 얀별님 악플 괜찮음?
- ㄹㅇ다들 너무한데
- 섭종이 왜 공략파 탓이야
-
- 얀별님은 최선을 다해서 싸웠는데 이제와서ㅋㅋ
- ㄹㅇ너무하네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솔직히 심플월드 섭종한 녹스가 나빴지. 원래 억울하고 화나면 그래요. 이해해 줍시다. 물론 밴은 하겠지만, 나중에 머리 식히고 오시면 풀어드릴게요."

이해할만한 부분이었다.
워낙 많은 유저들이 있는 게임이었고, 그걸 인생처럼 즐기던 사람들도 많으니까.
갑자기 그게 사라진다는 건 꽤 무서운 일이었다.

['마지막 인사'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스위치 클립)

"마지막 인사, 감사합니다.  원짜리네? 엄청 긴데?"

만원이면 후원으로 보낼 수 있는 영상 최대길이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리고 영상이 시작하자마자 채팅창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 이거 그냥 스킵하자
- ㄹㅇ 좀 그런데
- 이거 괜찮으려나?
- 앗...
- 저거 누가 보냈냐
- 넌 눈치도 없냐

"뭐야, 이거 뭔데. 보면  되는 거야?"

그리고 클립에 적혀있는 스트리머 이름을 보고 나서야 마지막 인사의 뜻을 이해했다.
스트리머 아르카, 심플월드의 NPC면서 스트리머인 분이었다.

"저, 이거 보겠습니다. 어차피 다시보기도 볼 생각이었어요."

「흡, 아니 나 오늘은 절대 안 울려고 했단 말이야. 진짜 안 운다고 다짐하고 나왔는데....」

클립의 시작부터 아르카님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반쯤 울고 있는 목소리에  표정은 물론이고 채팅방까지 눈물바다로 변했다.

「이제 너희랑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너무 상상이 안 가. 내일이 너무 무서워....」

이후에도 다른 친한 스트리머와 인사하고 오열하는 모습들이보였다.
나도 방송을 좋아하는 만큼 매번 그녀의 모습에 울컥하게 되었다.

"아, 나까지 눈물이 나오겠는데."

아까 아리아를 보낼 때는 참았는데, 다른 사람이 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그 감정에 동조되게 된다.

「그래도, 우리 하얀 악마는 잡았네.」
「나 뒤지기 전에 하악 격수는 했네. 아르카 결국 하악 잡았다. 나는 하악 격수다!」

그게 뭔데 미친놈들아. 검마 같은 거야?
울컥하는 감정을 깨트릴 정도로 유쾌하게 소리 지르는 아르카님 덕에 진짜로 우는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다.

"그게 뭔데 씹덕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악 격수는 ㅇㅈ이지
- 후원이란 후원은 다 레이드 스타일에 박더니
- 레창 수준ㅋㅋ
하악 격숰ㅋㅋㅋ
- 루나리아섭 매지션 1위는 ㅇㅈ이지ㅋㅋ
하악잡은건 ㄹㅇ레기드였지

그리고 채팅들을 보자 이거 진짜 검마 비슷한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왜  세상까지 그런 게임이 존재하는 거야?

「그래, 솔직히 하악도 잡았는데 더 바랄 건 없다.  뭔 해방이야. 어차피 매지션은 그거 해방 못 해.」

진짜 내가 아는그 게임 아니지?
갑자기 느껴지는 단풍의 향기에 머리가 아찔해졌다.

「하여튼, 그래도 목표 하나는 이뤘으니까. 이거로 된 거야. 다들 고마웠어.」
「우리 아르카단 덕분에 내가 하악도 잡고, 방송도 계속해왔어. 진짜 정말 고마워.」

그리고 그것을 떠나서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그녀의 모습이 굉장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처음에  구해주고, 방송해 볼 생각 없냐고 지원해준 우리 매니저들.... 내 평생 은인들! 정말 고마워.」

시계를 보며 초조해하면서도 최대한 억지로 밝은 표정을 하고, 손을 흔들면서 영상은 끝이 났다.
아마 저렇게 서비스 종료 시각에 도달했겠지.

"타이밍상 저거 보고 나서 여기 오신 스수 분들도 있겠네. 솔직히 너무 마음 찢어지는 상황인데, 아 씨...."

솔직히 레이드 스타일이라는 게임 이야기 때문에 흐려지긴 했지만, 굉장히 슬픈 상황이었다.
나였으면 저렇게 주제  돌리고 멘탈 나갔을지도 모르겠는데?

"제가 오늘 방송을 조금 늦게 켰는데, 미리 메구미랑 아리아를 만나고 와서 그래요."

- ㅇㅎ
- 메구미 보러갔구나
아리아....
- 마지막 인사하셨나보네
- ㅠㅠㅠㅠㅠ
- 진짜 너무 슬픈데
ㄹㅇ서비스 종료라니

아리아도 그렇지만, 메구미까지 괜찮다면서 나를 떠밀었다.
진짜 좋은 애들이라니까.

"솔직히 많이 슬프긴 해요. 하지만 아직 슬퍼하기엔 이르잖아요?"

저번 간담회에서 했던 말들이 사실이라면 리트라이를 통해서 재회할 있는 거니까.
지금부터 열심히 리트라이를 플레이하면서 기도해야겠지.

['시련발아'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교주님 큐브온 10만팔 축하드립니다

"아, 그거 보셨구나. 감사해요."

- 오?
- 진짜네ㄷㄷㄷ
- 실버 큐브ㄷ
- 와 10만!
- 벌써 10만을 찍으셨네
- ㄹㅇ개빠르다

방송에서 말한다는  잊어먹고 있었네.
심플월드에서 NPC들 만나는 거에 정신 팔린 것 때문이었다.

['정월곰'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맞다. 얀별님. 이번에 스위치 업데이트 된거 보셨어요?

"스위치도 업데이트가 있었어요?"

어, 그건 몰랐네.
큐브라이브에서 발표한 큐브 업데이트는 전부 숙지했지만, 스위치도 업데이트가 있었구나.

"뭐가 좀 많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것은 큐브 게임 저격 방지 기능이었다.
큐브 내에서 스위치를 시청하면 같은 게임을 플레이 중이라면 딜레이가 강하게 들어가거나 심하면 시청을 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었다.

'이건 좀 좋네.'

확실히 스트리머들 입장에서는 저격이 골칫덩이 중 하나였으니까.
완벽하지는 않지만, 저 정도면 저격을 꽤 줄일 수 있을 터였다.

"미션 기능?"

이제는 후원으로 말로만 미션을 거는 것이 아니라, 아예 기능으로 등록할 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러면 먹튀가 줄어들겠네.

"어떻게 켜는 거지? 아, 여기구나."

[신규 미션이 등록되었습니다.]
- 오늘 리트라이 접속하기: 5,000원

"오, 된다."

미션 창이 시야 한쪽 구석에 등록되었다.
이러면 현재 어떤 미션이 남아있는지 한눈에  수가 있겠네.

"클리어 판정은 스트리머나 아니면 등록한 사람이 해줄 수 있군요."

이런 편의 기능 추가도 좋지.
스위치가 일을 제대로 하는구만.

"미션도 떴고, 아마 이제 서버도 열렸으니까 리트라이 켜볼까요?"

- 와
- ㄷㄱㄷㄱㄷㄱㄷㄱ
- 대체 어떤 겜이길래 심플월드를 섭종시킨거냐고
- ㄹㅇ기대에 못미치기만 해봐라
- 쓰레기 겜이면 2차 시위지ㅋㅋ
- 근데 PV는 좀 쩔었음
- 오

"오케이, 그럼 들어갈게요."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리트라이를 실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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