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20장 - 게임 안에 사람들이 있잖아(6)
리트라이의 실행 버튼을 누르자 실행 약관창이 나타났다.
기억을 읽거나 고통 제한을 해제하는 위험한 기술 때문에, 따로 약관 동의를 진행해야만 게임을 할 수있었다.
"둘 다 필수네? 기억 읽기는 왜 쓰는 거야? 심플월드도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특정 스킬에서 기억을 트리거로 쓴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리트라이도 그런 종류의 스킬이 존재하는 건가?
- 필수ㄷㄷ
- 옵션도 없나?
- 제한 해제가 필수네
-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거 보면 옵션 조정이 없나본데?
- ㅁㅊㅋㅋㅋㅋ
- 으 그럼 무조건 아파야하나?
- 무섭네 체험모드 꺼야겠다
"체험모드는 괜찮아요. 제가 제한 해제는 비공유로 설정해놨어요."
그 부분은 따로 설정할 수 있는 옵션이 추가되어 있었다.
일단 나중엔 변경하더라도 지금은 시청자들한테는 공유하지 않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그 와중에 게임 진짜 단출하네. 시작이랑 필수 옵션만 있어. 심지어 통증 관련 옵션도 없네요."
이게 테스트 버전 기준이라 이런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이런 컨셉으로 만들고 있는 건지를 모르겠다.
주현씨가 플레이할 때도 이런 느낌이었으려나?
"일단 시작할게요."
게임을 시작하자 인트로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무너져가는 세계와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
미리 주현씨에게 들은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주현씨는 듣지 않았다고 치고 진행하라고 했지.'
어차피 주현씨가 플레이하던 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상황일 것이라고 했다.
알려준 것들로 선입견이 생길 바엔 차라리 내가 느끼는 상황 위주로 판단하라는 조언이 있었지.
'아니, 딱히 알려준 게 없나?'
애초에 자세한 내용은 알려주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파고들어서 물어보려다가, 주현씨한테 좋은 기억은 아니라서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이거 96층이랑 분위기가 좀 비슷하다. 아포칼립스 같은 느낌?"
그나저나 제대로 된 설명도 튜토리얼도 없이 바로 게임으로 넘어가는 것은 꽤 당혹스러웠다.
아무리 테스트 버전이어도 너무한데?
"설명 하나 없이 시작하네요. 옷은 좀 누더기 같은 거 입고...."
- ㅋㅋㅋㅋㅋㅋㅋㅋ
- 와 진짜 뭐냐
- 거지부터 시작하는 게임 생활
- 뉴비룩ㅋㅋ
- 뭐 어캐하라는거지
- ???
일단 던져놓고 내 알아서 진행하라는 느낌이다.
싱글 게임이면 진행 방향을 강제해서유도라도 할 텐데, 리트라이는 오픈월드 MMORPG라서 그런 방향도 아닐 것 같고.
'이 정도면 불친절의 끝판왕 같은 느낌이네.'
어떻게 보면 현실적인데, 상용 게임에서 볼만한 시스템은 아니었다.
이건 녹스측에 개선해야겠다고 피드백을 넣어야겠는데?
"일단 상황 정리해 볼게요. 여기가 어딘지는 몰라도, 일단 어둡고 어디 건물 내부 같아요."
그리고 딱히 무기로 쓸만한 것이 주변에 존재하지는 않았다.
신체 능력도 그냥 현실이랑 비슷한 느낌이네.
"와 근데 실체감 장난이 아닌데? 야방하는 기분이야. 이번 업뎃이랑게임 퀄리티가 합쳐지니까 무섭네."
큐브에서 이번 업데이트를 괜히 그렇게 성대하게 발표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하게 체감이 무지하게 날 정도로 현실감이 늘어났다.
어떻게 통증 하나가 이런 차이를 주지?
"어, 잠시만. 여러분들 진짜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무척이나 이 게임 내부는 현실과 착각할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현실과 다른 것을 제공하는 것이 딱 하나 존재하고 있었다.
'이건 현실에는 있을 수가 없지.'
몸에 깃들어있는 마력.
나는 마법을 사용해서 작게 불빛을 켜서 주위를 밝혔다.
- 오 마법이다
- 마력 있구나
- ㄹㅇ심플월드 느낌이네
- 근데 뭐 기본 능력은 없나?
- 마법 원툴이면 노잼일 것 같은데
- ???
- ㅇㅎ
"마력이 들어가 있는 신체입니다. 마법 쓰는 데 전혀 문제가 없어요. 초기라 그런지 그리 많지는 않은데 진행하면 늘겠죠."
불을 밝혀서 주위를 확인하자, 눈에 들어오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일단 내가 일어난 곳이 그냥 침대가 아니네.'
큐브랑 비슷하게 사람에 들어가 있을 법한 기계였다.
침대처럼 푹신하게 되어있어서 누워 있기에 편한 느낌?
기계는 고장이 난 것으로 보이지만 뭔가 단서일지도 모르니까 기억해 둬야겠지.
"별건 없네요."
뭔가 쓸만한 것이 있을까 싶어서 주변을 뒤져봤지만 크게 의미가 있어 보이는 것은 없었다.
다만 최근에 청소한 듯 건물 내부는 깨끗했다.
마법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손전등을 뒀을 줄 알았는데, 없는 걸보니까 마법 쓸 줄 모르면 입구컷이네.
[시나리오 퀘스트: 정찰
당신은 알 수 없는 건물 속에서 눈을 떴습니다. 건물 내부에는아무것도 없으니, 식량이나 식수를 구하려면 밖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지금으로써는 밖에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밖을 정찰하여 상황을살피십시오.]
"시나리오 퀘스트?"
[시나리오 퀘스트란 플레이어의 플레이 방향을 위한 이정표입니다.
플레이어의 상황이나 현재 세계의 상황을 고려하고 분석하여 행동을 추천해줍니다. 내용 갱신 전까지 목표를 달성하면 소정의 보상이 지급됩니다.]
이러면 MMORPG여도 싱글 게임 같은 느낌으로 즐길 수 있겠네.
그리고 내가 시나리오 퀘스트에 대한 궁금증을 품자마자 설명해주는 것도 좋고.
"이건 심플월드보다 편의성이 좋은데. 확실히 발전했다."
리트라이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심플월드의 편의성이 워낙 개판이었어야지.
심플월드는 진짜 불친절한 퀘스트가 많았는데, 리트라이는 저렇게 설명까지 해주니까 비교적 선녀였다.
- ㄹㅇㅋㅋ
- 이건 좋네
- 도움말 자연스럽게 따라오네ㄷㄷ
- 게임에 휙 던져놓길래편의성 또 좆창냈나 했는데
- 근데 튜토 없는건 좀 선넘는데
- 마법 튜토 없나
- 뭔가 마법은 다 아니까 설명 안한다는 느낌이네
"모르면 죽으라는 건가? 사실 마법만 빼면 게임 자체가 너무 현실적이라 튜토리얼이 필요가 없어요. 아직 스텟 분배나 인벤토리 같은 것도 없고."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현실과 차이 나는 것이 마법만 있다는 것이 과장이 아니라 진짜일 정도다.
솔직히 좀 어처구니가 없네.
"어떻게 보면 편의성 개판 같은데, 그게 현실성을 주는 것 같기도 해서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좀 더 해봅시다."
천천히 앞을 경계하면서 문을 열었다.
복도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여긴 무슨 건물이야? 개박살 나 있는데?"
복도로 나왔을 뿐인데 갈라진 틈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까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던 방 내부랑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일단 저 틈으로 밖을 좀 확인해야겠다.
- ㅁㅊ
- ?
- ㅗㅜㅑ
- 때처럼 몰려다니는거 보소
- 징그럽다
- 몬스터 디자인 미쳤나
- 꿈틀거리는거 개역겨운데
그리고 밖에서는 몬스터로 보이는 것들이 몰려다니고 있었다.
특히 벌레처럼 생겨서 꿈틀거리는 것들이 많았는데, 수가 좀 많아서 골치 아플 것 같았다.
"쟤들 수준은 모르겠는데, 스타트존부터 빡센 몹을 넣어놓진 않았겠죠?"
아니지, 그런 가벼운 생각으로 플레이 하면 금방 죽을거다.
최대한 조심하면서 진행해야지.
"저쪽에 있는 건 편의점 같죠?"
- ㅇㅇ
- 첨보는 상호인데
- 편의점 맞는듯
- 게임에 나오는 편의점을 그럼 처음봐야지ㅋㅋ
- 어캐 미리보누ㅋㅋㅋㅋ
- 아 이거 게임이었지
일단 굳이 문을 찾지 않아도, 심하게 부서진 틈으로 나가면 될 것 같았다.
문제는 최대한 몬스터들과 교전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가능하면 내 상태랑 몬스터 수준을 알아내고 싸우는 게 좋아.'
큰 것들은 다 피한다고 쳐도, 방금 그 기어 다니는 벌레들은 너무 많아서 어디로 가든지 무조건 잡아야 했다.
"아, 칼이라도 한 자루 주던가."
아무것도 주지 않고 방치하는 건 너무한데.
사실 저 벌레가 오러에 면역이 없다면 손날만 강화해도 문제가 없긴 하다.
있으면 오러 형태를 유지하기 좋은 무기들이 중요하고.
['연타장인'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원거리로 하나 쳐보실?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마법을 사용하면 위치를 들키지 않고 타격을 해볼 수 있겠네.
화력은 많이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적이 얼마나 튼튼한지는 확인할 수 있으니까.'
꼭 오러가 아니어도 타격을 줄 수 있다면, 좀 더 마력을 아낄 수 있다.
"오, 먹히네."
벌레를 마법으로 불태우자 어렵지 않게 숨통을 끊을 수 있었다.
이러면 꽤 난이도가 내려가지.
대충 왼쪽으로 돌아가면서 벌레만 잡으면 될 것 같은데?
- 가즈아
- 다행히 잡몹 맞네
- 왜 이렇게 긴장되냐ㅋㅋ
- 밖에 몹들이 넘 무섭게 생김
- 쉽게 잡히니까 안징그럽네
- ㅋㅋㅋㅋㅋㅋㅋ
- 아ㅋㅋ원킬컷이면 징그럽지 않지
편의점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달려드는 벌레들만 최소한으로 처리했다.
이게 몬스터를 잡는다고 경험치를 주지는 않으니까 최대한 전투를 피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오, 다행히 안 마주쳤다."
일단 편의점 내부는 어느 정도 비어있었다.
이미 사람들이 파밍할 것들은 파밍해간 느낌인데, 그럼 주변에 NPC가 있나?
[시나리오 퀘스트: 생존
당신은 건물을 나와 주변에 있는 편의점을 발견했습니다.
다만 주변에서 이상한 괴물들이 돌아다니는 것이 꺼림직합니다. 위험해 보이는 현 상황에서 최대한 생존하십시오.]
"어, 갱신된 건가?"
시나리오 내용이 변화하더니 눈앞에서 작은 덩어리가 반짝거리면서 나타났다.
이건 또 뭐야?
[시나리오 퀘스트 보상으로 E급 마력석이 지급됩니다.]
"이게 마력석인가? 그래서 마력석이 뭔데 씹덕아."
- ㅋㅋㅋㅋㅋㅋ
- ㄱㅁㅆ
- 그먼씹ㅋㅋ
- 마력석이면 마력 늘려주는게 국룰이지
- 아ㅋㅋ
- 이쁘다
- 오오
이게 뭔가 경험치 대용 같은 건가?
아니면 뭐 장비 만드는 재료일 수도 있긴 하겠다.
"이건 정보를 안 알려주네요. 그냥 가지고만 있어야겠다."
마력석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편의점을 살피기 시작했다.
일단 파밍 할만한 식량이나 식수는 많은데, 그걸 담을 가방이 없네.
"가방 없나? 비닐봉투는 가지고 다니기 좀 힘들 텐데."
아니 무슨 게임이 인벤토리는 물론이고 가방 하나를 안 줘?
나는 중얼중얼 불만을 터트리면서도 비닐봉투에 최대한 식량을 담았다.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디냐.
"파밍 알찼다. 이제 조금씩 이동해 봅시다."
최대한 강해 보이는 몬스터들을 경계하면서 아까 그 건물로 돌아왔다.
일단 처음 시작한 방에 있던 기계에 침대가 붙어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미션에서 생존하라고 했으니 버텨야 하는데, 이동이 중요하긴 해도 휴식을 취하는 거점도 중요해.'
이 게임이 확실하게 현실적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가정을 하면, 몸에 피로가 과다하게 쌓이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좋았다.
"대충 파밍한 건 여기다가 두고, 이제 슬슬 건물 좀 볼게요."
다 무너져가는 건물이기는 해도, 다른 방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여기도 다 살펴볼 필요가 있겠지.
- 뭔가 있는데
- 위험해 보이는데
- 보스인가?
- 와 건드리면 ㅈ될 각인데
-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변과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지닌 문을 보며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이거 아무리 봐도 보스방 비주얼이잖아?
"어, 여기다 캠프를 차리는 건 미친 짓 같은데?"
일단 빨리 돌아가서 짐을 들고 여기를 빠져나가야겠다고 판단했다.
좀 전에는 나름안전한 장소라고 생각해서 고른 것인데, 지금 보니까 가장 위험한 것이 여기인 것 같았다.
"어, 뭐야."
주위 시야가 조금 어둡다고 생각하면서 이동하는데, 두통이 느껴지면서 시야가 핑 돌았다.
- ???
- 괜찮아요?
- 머임
- 와 방금 뭐냐 핑 돌았는데
- 어지러운거 ㅁㅊ
- ㅁㅇㅁㅇ
- ㄱㅊ?
어지러움이 밀려와서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설마 이 어둑어둑한 것이 독 비슷한 건가?
움직일 수도 없고, 환장하겠네....
"뭐야, 사람이 있네? 괜찮아요?"
그리고 내가 어떻게든 일어나 보려고 노력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대상을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렸지만, 시야에 초점이 제대로 잡히질 않았다.
"교복...?"
확실하진 않지만,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이 교복처럼 느껴져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다만 그 직후에 어지러움이 더 심해져서 급하게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