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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화 〉21장 - 예성 고등학교(1) (112/182)



〈 112화 〉21장 - 예성 고등학교(1)

"아, 후우."

지끈거리는 두통에 항상 상비하고 있는 두통약을 꺼내서 입안에 털어 넣었다.
최근 들어 두통이 심해지는  같았다.

물론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두통이 아니긴 하다.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니 인류가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남을지.
그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겠지.

"하,  새끼들은 또...."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생각해 적은 안건들을 신경질적으로 책상에서 밀어버렸다.
게이트가 출현하고, 인류의 인프라가 전부 무너졌다.
그 이후로는 내가 교사로서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제까지 그것에만 매달려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아이들이 우리들을 지키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그렇게 아이들이 우리를 지켜주는데  와중에도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어른들이라니.
부끄럽지도 않은 건가?

'하긴 나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나?'

심지어 이제까지 내가 해온 실수들과 그로 인해서 볼 수 없게 된 아이들을 생각하면....
솔직히 나도  자리에 앉아 있을 자격이 없겠지.

"이런 생각을 했단 걸 들키면 혼나겠지만."

선생님이 아니면 절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라 말하는 착한 아이들이다.
다만 그런 아이들도 이제는 점점 표정이 굳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희망이 사라진 지도 이미  개월이 지났으니까.'

그래도 몇 개월 전까지는 지금보다 힘들지언정 인류가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개월 전에 그 희망이 죽었다는소식 이후로, 한국 내의 분위기는 싸늘한 겨울 그 자체였다.
이런 상황임에도 자신을 잘 따라주고 규칙을 잘 지키는 아이들이 고마울 뿐이었다.
나는 항상 실수투성이에 부족한 인간인데, 그런 내가 멈춰 서지 않게 해준 것은 항상 그 아이들이었다.

"선생님. 확인했어요."

교무실의 문이 덜컥 열렸고, 급하게 뛰어온 것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은찬이였다.
아까 은찬이에게 게이트들의 상황을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 떠올랐다.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었어?"
"소문이 사실이에요. 게이트가 사라졌어요. 일단 이 근처에 해결하지 못하고 있던 게이트는 대부분 사라졌다고 보시면 될  같아요."

게이트가 사라졌다.
생존자들 사이에서 게이트가갑자기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어서 조사를 부탁했었다.

"이거 설마 이대로 게이트 사태가 종료되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은찬이는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종이에 적어둔 내용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사라진  게이트뿐, 침식은 그대로예요.물론 침식은 해결하면 되는 거지만 그대로 남아 있는 게이트가 있는 것도 문제예요."
"혹시 그 게이트가...."
"네, 맞아요. S급 게이트는 남았어요."
"애초에 S급 게이트를 해결해야 사태가 종결된다고 했었으니까 끝은 아니겠네."

우리의 희망이었던 영웅이 한 말이었다.
제대로  근거가 있는 말은 아니지만, 반대로 그걸 반박할 만한 근거도 없으니까 다들 그렇게 믿고 있다.

"이걸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면, 역시 예성로쪽 침식을 처리해두는 것이 좋겠지?"
"그것 때문에 손해  게 한두 개가 아니니까요. 더 급한 게이트들 때문에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 처리하면 좋겠죠."

이 기회에 거기를 처리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만 침식 누가 침식을 정화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지금 이 문제에 대화하고 있는 나와 은찬이 모두 정작 비각성자였으니까.

"세랑이는 지금 자리를 비웠고, 그럼 남는 건 다슬이야."
"일단 침식 수준이 B급이니까 다슬이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적정 난이도이긴 한데...."

은찬이도 다슬이를 보내는 것은 마음에 걸리는지 말이 멈췄다.
 적정 난이도라는 것이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는가.
차라리 세랑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역시, 조금 위험해도 세랑이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

아무래도 A급인 세랑이가 정화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게이트는 적정 난이도일 때 할만하지만, 침식은 정말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나니까.

"아, 다 들리니까 쪽팔리게 하지 말고 그냥 보내주세요."

그리고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다슬이를 보고 심장이 철렁했다.
설마 다슬이가이 대화를 듣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어 다슬기 어서 오고.   엿듣고 있냐."
"네가 그렇게 흥분해서 뛰어가는데 안 궁금하게생겼냐. 근데 너 진짜 뒤지고 싶어서 자꾸 다슬기라 부르는 거지?"

아마 교무실로 들어오는 은찬이를 보고 우리 대화를 엿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다슬이 실력이면 어렵지 않게 가능했겠지.

"겨우 B급 침식가지고 왜 세랑 선배를 보내요.  혼자면 충분하니까 다녀올게요."

다슬이는 자신을 무시한 것이 기분 나쁘다는 듯이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것 때문에 대응이 늦어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 착해 빠진 마음에 목이 메어서 뭐라고 대답을해야 할지 말을 고를 수가 없었다.

"미안해. 부탁할게. 예성로 침식 위치는 알지? 관련 자료는 은찬이가 가지고 있을 거야."
"네, 예성고등학교 2학년 3반 정다슬. 다녀오겠습니다. 필생!"
"...필생, 절대로 무리하지 마."

다슬이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그녀라고 해서 나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계속되는 죽음을 곁에 둔 나날과 전혀 나아지지 않는 상황.
죽어 나가는 다른 아이들.
이런 절망적인상황에도 저렇게 밝은 척을 해주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희망하나 없는 지금의 상황이 제일 큰 문제겠지.
심지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현상까지 일어나니 불안이 가중되는 느낌이었다.

"아...."

아이들이 모두 교무실을 나서고, 혼자가 되자 다시 부정적인 생각이 자라나려고 했다.

"아니야. 게이트가 사라진  좋은 징조일 수도 있잖아."

어쩌면 이것이 인류가 재기하는 신호탄일 수도 있다.
꺼져버린 희망이 다시 켜지는, 아니 어쩌면 새로운희망의 불빛이 나타날 징조일지도 모른다.
나는 부정적으로 가려는 생각을 최대한 억누르고 존재할  없는 희망을 주억거렸다.


   ☆ ☆ ☆ ☆


아찔해지는 정신을 최대한 붙잡고 있는데, 갑자기 주변에 바람이 불더니 조금씩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뭐야, 사람이 있네."

눈을 뜨자 시야에 들어온 것은 교복을 입고  있는 한 소녀였다.
대충 가늠해보면, 고등학생 정도인가?

"방금 뭐였지, 되게 어지러웠는데."
"침식에 가까이 가니까 그렇죠. 그런 상식도 모르면서 용케 살아있네요. 침식에 영향을 받는 걸 보면 각성자도 아닌 것 같은데.... 어디 소속이에요?"
"소속이요?"

방금  검은 안개 같은 현상이 침식인가?
주현씨가 리트라이에 대해서 설명할 때는 이런 부분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아서 처음 듣는 용어였다.

"소속은 딱히 없는데...."
"소속이 없다고요? 지내시는 곳이 있을  아닙니까?"
"그러게요?"

내가 말하고도 조금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근데 정말로 소속이나 지내는 곳이 없는 걸 어쩌라고.
난 방금 게임에 들어왔단 말이야....

- ㅋㅋㅋㅋㅋㅋㅋ
- 나 집 없는데?
- 홈리스ㅋㅋ
- 노숙자행
- 그러게요ㅋㅋㅋ
아니 뭔뎈
- ??ㅋㅋㅋ

"솔직히  수상하네요. 설마 약탈자?"

약탈자, 아마 이 세계관에는 남들을 털어먹으면서 생활하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름만 봐도 대충 어떤 이들인지 예상이 갔다.
그런데 보통 그걸 본인한테 물어보나?
이런 상황에 누가 자기가 약탈자라고 소개하겠어?

"제가 약탈자가 아니긴 한데, 그걸 보통 본인한테 물어보나요?"
"어차피 죽이고 갈 거라서 그냥 물어봤는데요."
"네?"

아ㅋㅋㅋㅋ
시작한지 1시간도 안되서 죽게 생겼는데?
- 진짜 바로 리트라이 하겠네
- 오...
시작부터 호감도 조졌네
- 역시 여고생은강해ㄷㄷ
- 마인드가 완전 고였네
근데 아포칼립스면  판단이 맞지

아니 죽일 생각이면 아까 도와주지 말던가, 왜 굳이 살려놓고 죽이려는 거야.
아니면 내가 너무 수상하게 굴었나?

"그 제가 수상한 사람은 아니고...."
"겁나 수상한데요."
"제가 보기에도 그렇긴 한데, 수상한 사람은 아니에요."

- 미치겠네ㅋㅋㅋㅋㅋㅋ
- 아 십 배아파ㅋㅋ
- 아무튼 안수상함
- 게임 시작부터 레전드네ㅋㅋ
오늘의 방송은 여기까지입니다
- 아ㅋㅋ
- ㄹㅇㅋㅋ
- 큐하ㅋㅋㅋㅋㅋ

그녀는 끝까지 미심쩍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면서도, 방금까지 나를 노리고 있던 칼을 치우고는 말했다.

"알아서 도망치세요. 약탈자가 여기에 침식이 있다는  모를 리는 없으니까 믿어드릴게요."

위험부담은 최대한 줄이면서, 그나마 나를 죽이지 않는 방향의 선택지를 고른 것 같았다.
솔직히 여기까지는 별로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침식에서 멀어지기만 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시나리오 퀘스트: 정화
당신은 생존을 위해 방황하다가 침식을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침식을 내버려 두면 인류에게 위협이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침식을 하나 이상 정화하십시오.]

"엥?"

이걸 갑자기? 여기서 갑자기 침식을 정화하라고?
애초에 정화는 또 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나에게 자세히 알려줄 생각이 없는지 마음속으로 묻는 말에도 시스템이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진짜 어쩌라는 거야?

[시나리오 퀘스트 보상으로 각성의 전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런 불평을 하는 사이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방금 여학생이 각성자가 어쩌고 말했던 걸 생각하면, 이게 각성자와 연관이 있는 보상인 것 같았다.
메시지가 사라짐과 동시에  몸에서 작게 빛이 나더니 곧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엄청난 변화가....

"뭐지 진짜."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냥 빛이 번쩍인 것 말고는 큰 변화를 모르겠네.
이펙트만 보면 무슨 레벨업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플레이어에게 맞는 고유 능력을 선별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방금 내가 한 생각의 대답이라는 듯이 구석에 작은 창이 나타났다.
나중에 저게 사라지면서 능력이 주어지는 건가?

"방금 그거, 각성이죠? 각성하셨어요?"
"모르겠어요. 능력을 선별하고 있다고 뜨긴 하는데...."
"예비 각성자! 신규 각성자는 최근에 빈도수가 많이 줄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실제로 보네."
"대단한 건가요?"
"만약 당신이 나쁜 사람만 아니라면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방금 내려놓았던 검을 다시 들고 나를 겨누었다.
아니 왜 이놈의 시스템은 도움이 되질 않지?

"저 진짜 별거 없는데요."
"그래 보이긴 해도, 일단 각성이 끝나면 그때부터는 아닐지도 모르잖아요?"

내가 눈에 띄게 당황하자 피식 웃은 그녀가 검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뭐 농담이고, 가능하면 어떤 분인지 더 보고싶네요. 괜찮은 사람이면 스카우트하겠습니다."

괜찮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소리인가?
그런 생각이 먼저 들기는 했지만, 이것도 전혀 나쁜 방향이 아니었다.
일단 내가 이곳의 상황을 모르는 것에 반해서 이 여학생은 이곳에 익숙한 것으로 보였다.
그럼 그녀와 동행하면서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그리고 그녀의 행동 변화는 아마 예비 각성자라는 키워드 때문일 것이다.
아마 각성자가 귀한 인재이고, 그렇기에 나를 위험부담을 지면서까지 섭외 가능성을 만들려는 것이겠지.

- 오
이걸사네
- 별하 저 사람은 누구임?
- 여기도 각성자가 있네
- 뭐야 벌써 시작했네
- 설마 이번에도 랜덤 능력이야?
- 여기는 능력 없는 NPC도 있나보다

"그럴게요. 그런데 혹시 이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아, 이름. 정다슬이라고 합니다."
"다슬씨구나."
"그쪽은요?"
"저는 하얀별이라고 합니다."
"되게 특이한 이름이네."

- 닉네임이니까...
ㅋㅋㅋㅋㅋㅋ
그게 본명이겠냐고
 이름스럽긴 하지
- 놀랍게도 본명이 얀별인 사람도 있다
- 이럴때는 이런 닉이  편하긴 하지
- ㄹㅇㅋㅋ
- 어떻게 사람 이름이 얀별ㅋㅋ

"혹시  주변에 이상한  없었나요?"
"...이상한 거요?"
"네, 사람 사는 흔적이라던가."

음, 편의점도 그냥 이전에 약탈당한 느낌이었지 누가 사는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나마 내가 지내던 곳이 있긴 하지.

"짐작 가는 곳이 하나 있긴 한데...."
"안내해요."
"그런데 거기는 왜요?"

그러자 그녀는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듯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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