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21장 - 예성 고등학교(4)
- 이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 뭐 보는 사람마다 놀라네ㅋㅋ
- 최근에 각성자가 진짜 드물었나 봄
- 오....
- 뭔가 뭔가네
- 튜토리얼 보상으로 감탄받는 게임ㄷㄷ
- ㅋㅋㅋㅋㅋㅋ
"처음 뵙겠습니다. 하얀별입니다."
"반가워요. 부족하지만 예성 고등학교의 운영을 맡은 안소민이라고 합니다."
"저, 예성 고등학교라는 건...."
"말 그대로 저희가 거점으로 삼고 있는 이 학교에요. 게이트 사태가 터지면서 전원 기숙사 학교였던 여기를 그대로 거점으로 삼고 버티는 중이죠."
이제는 이 학교 자체가 거점이면서, 자신들의 소속이 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A급 각성자를 보유하고 있기에 충분히 단체를 꾸릴 수 있었다는 설명은 꽤 흥미로웠다.
'확실히 A급 각성자가 가장 강한 축에 속한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구심점이 될만한 무력이 되겠구나.'
결국, 약탈자가 넘쳐날 수 있는 아포칼립스 상황에서는 무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나저나, 각성을 눈앞에서 봤다는 건 예비 각성자라는 소리야?"
"네, 예비 각성자인데 B급인 저랑 비등한 전투를 하는 걸 확인했어요. 그러니까 잠재적 A급이라고 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잠깐만, 뭐?"
이번에는 신기해하는 걸 넘어서 진위를 믿기 힘들어하는 듯한 반응이 나왔다.
다슬씨는 그런 그녀에게 확실하다고 못을 박았고, 그걸 들은 그녀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런 분이 여길 왜 와? 너 뭔가 속인 거 아니지?"
"딱히?"
이번에는 내 쪽을 바라보았다. 뭔가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안심될 만한 이야기를 하면 되겠지.
"저, 특별하게 대단한걸 약속받고 오거나 한 건 아니에요. 제가 위험할 때 다슬씨가 도와줘서 친분이 생겼고, 어차피 소속도 없으니까 여기서 신세나 질 생각으로 왔어요."
"후, 감사합니다. 확실히 요즘 상황이 뒤숭숭해서 각성자 하나하나가 급하긴 하거든요."
"하하, 괜찮아요. 저도 지낼 곳이 없어서 문제였거든요."
다슬씨와 만나지 못했으면 높은 확률로 죽었을 거고, 그게 아니어도 지금쯤 노숙하고 있을 터였다.
"다슬이는 학교 소개도 해드리고, 남는 기숙사도 하나 지정해드려."
"넵. 얀별씨 이쪽으로."
"아, 옙."
얌전히 다슬씨를 따라서 학교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평범한 학교보다는 조금 작은 감이 있네.
아마 기숙사 학교라 기숙사 인원에 학교 인원이 맞춰져서 그런 거겠지?
"여기가 이전 체육실, 지금은 보급 창고로 쓰고 있어요. 어지간한 식량은 여기에 있으니까 담당한테 보급받으면 돼요."
그리고 소개를 위해서 가는 곳마다 그곳을 관리하는 인원이 있었다.
이런 일의 대부분은 그나마 무력이 있는 낮은 수준의 각성자가 맡고 있었다.
"그럼 비각성자는 무슨 역할을 맡아요?"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대부분의 요직을 안전을 위해 각성자가 맡으면, 비각성자를 데리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
"식량은 어디서 나오겠어요. 유통기한이 짧은 것들은 대부분 소모해가는 상황이고, 긴 것들은 가능하면 아껴야 해서 자급자족을 해야 하죠. 이런 식의 생산 활동은 대부분 비각성자들이 맡아요."
"아하."
그리고 비각성자 비율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고 했다.
각성자인데 등급이 낮은 경우가 대다수라, 아까 그 요직들도 당번으로 번갈아서 하는 정도라는 설명이 추가되었다.
"식량도 식량이지만 은찬이를 필두로 마력 관련해서 연구하고 물건 만드는 팀이 있어요. 마력석으로 전기를 대체하거나 무기를 만드는 연구죠."
단순히 생존자가 모여있는 학교라기엔, 이미 하나의 사회로써 구성되어 굴러가는 구조가 완성되어 있었다.
이러니까 학교인데도 여기가 하나의 소속으로써 인정받는 것이겠지.
내가 보기엔 그냥 무력 수준이 높다고 하여 인정받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아니면 무력이 있으니까 여기까지 완성된 걸지도 모르고.'
하여튼 꽤 흥미로웠다.
그냥 게임의 설정이라기보다는 NPC들이 아포칼립스의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노력해온 결과물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니까.
"여기서 작업하는 거 보이죠? 여기서는 마력 심장을 만들고 있어요. 마력 심장은 항상 부족해서 이렇게 주기적으로 작업을 해요. 이렇게 만들어진 마력 심장으로 생활용품을 만들거나, 무기를 만들죠."
- 오 신기하다
- 심플월드때 기술 못써먹나?
- 마법 시스템이 같아서 가능할 듯?
- 근데 마력 심장이라는게 심플월드 재료랑 다르지 않음?
- ㄹㅇ고인물들 좀 나와봐라
- 여기 생산직 고인물이 있겠냐
- 아ㅋㅋ
- ㄹㅇ생산직은 희귀종인데
"여, 다슬기 무사하네?"
"엉, 일은 잘되냐?"
"큰 문제 없지. 다시 서버가 복구돼서 근황 정도는 전달했어. 다른 곳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야."
"게이트?"
"응, S급 빼고는 전부 사라졌어. 심지어 게이트에 들어갔던 사람들도 같이 실종돼서 난리야."
"아, 그건 생각 못 했네."
남학생으로 보이는 이가 다슬씨에게 말을 걸어왔다.
다슬기라는 식으로 편하게 부르는 걸 보면 친구인 모양이었다.
- 다슬기ㅋㅋㅋㅋ
- 다슬기좌....
- ㅋㅋㅋㅋㅋㅋㅋ
- 귀엽네...
- 부모님 오열
- 다슬기 찰진거 보소
"이쪽은 하얀별씨. 침식 해결하러 갔다가 만났는데 우리 쪽에 합류하기로 했어."
"오, 신은찬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런데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데."
"저, 20살 정도요."
"뭐야 세랑 선배랑 동갑이네. 편하게 대해주세요. 누나."
"어, 그럼 저도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여기도 친화력이 장난 아니네.
심플월드에서 말을 놓던 상황이 떠올라서 괜스레 기분이 이상해졌다.
"괜찮아요."
"오케이. 얀별 언니, 저도 편하게 부르세요."
아포칼립스치고는 꽤 밝게 지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꽤 멋지다고 생각했다.
나라면 이렇게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나는 상황이 안 좋으면 텐션이 떨어지는 스타일이니까.
"흠, 이상하네."
"왜, 뭔가 문제 있어?"
"서울 쪽에 연락 끊어진 곳이 조금 있네. 혹시 어디 A급 침식이라도 터졌나?"
"어느 쪽인데?"
"강남쪽. 그리 멀지 않으니까 더 걱정이야."
"그래도 중간에 상풍 백화점이 있잖아. 거긴 A급도 둘인데, 거기는 무사하지?"
"당연하지. 거기가 터졌으면 내가 아직도 이러고 있겠어?"
아마 주변에 있는 다른 생존자들에 관한 이야기인 모양이다.
연락이 두절 되었다는 건 거기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린가?
"맞다 기숙사 배정해 드려야 하네. 이쪽으로 오세요. 은찬아, 대충 지낼 때 필요한 생필품이랑 오늘치 배급 좀 챙겨와 줘."
"엉, 지금 하던 이야기만 마무리하고 가져다드릴게. 몇 호로?"
"407호 비어있지?"
"응. 아마 그럴 거야. 그럼, 거기로 가져갈게."
다슬이를 따라 기숙사로 이동했다.
대충 건물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설명을 듣고, 내가 가기로 한 407호로 이동했다.
"언니 여기에요. 뭔가 더 필요한 거 있으면 이따 여기로 올 은찬이한테 부탁하시면 될 거예요."
"응, 신경 써줘서 고마워."
"신경 써야죠. A급이 되실지도 모르는 몸인데."
"그러다가 그대로 B급이면 쪽팔리니까 너무 띄워주지 마."
"그것도 C급 이하인 애들이 들으면 화낼걸요? B급도 되게 높은 거잖아요."
그 정도는 알고 있다. 다만 자꾸 잠재적 A급 취급하니까 쫄려서 그렇지.
나중에 실망할 거라면 쳐음부터 기대하지 않는 것이 낫잖아.
"의외로 대부분 상태가 좋네. 하긴 밖에서 볼 때도 학교 건물이 굉장히 멀쩡했으니까."
그 이후로 은찬이가 가져다준 물건들을 정리하고 침대에 누웠다.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방송을 종료하려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세요?"
안에 누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못했는지, 굉장히 당황한 표정의 여학생이 이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하와와, 사람이 있었던 것이에요."
"네?"
순간적으로 내 귀가 잘못되었나 싶어서 들리는 소리를 의심했다.
방금 저 여학생이 하와와라고 한 것 같은데?
기분탓인가?
- ?
- ???
- 하와와
- 응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뭔데ㅅㅂㅋㅋㅋㅋ
- 하와와 여고생쟝인 것이에요
채팅창을 보니까 기분 탓이 아닌 것 같았다.
심지어 내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 방은 여아쟝들의 아지트인 것이에요. 그러니까 여기를 비워주시는 것이에요."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해서 어지러워졌다.
지금 얘는 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만약 비키지 않겠다면...."
"어, 잠시만요?"
그녀가 갑자기 손가락을 물어뜯더니, 그곳에서 흘러나온 피가 검 모양으로 굳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좆된 것 같은데?
"죽어주셔야겠어요."
"히익! 나갈게요!"
"아주 좋은 선택인 것이에요."
이거 진짜 미친년인가?
심지어 외모만 보면 고등학생인 것 같은데 하와와거린다니.
"그런데 제가 여기로 배정을 받았는데요. 어디로 가면 될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남은 방이 없는 것이에요."
그럼 나는 어디서 자는데.
내가 멀뚱멀뚱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바로 옆방인 406호로 가시는 거에요."
"거기 비어있어요?"
"제 방인 것이에요."
"......."
어째서 그 방에서는 자도 되고, 여기서는 안 되는 건가요.
굉장히 궁금한 것이었지만 그걸 물어보면 찔릴 것 같아서 참기로 했다.
"저, 저기요?"
그녀는 내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역시 이상한 사람이야.
"알았어요. 옆방 가서 잘게요."
딱히 다른 방에서 잔다고 큰일이 나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들어간 옆방은 굉장히 귀엽게 꾸며져 있었다.
"하와와 미친년을 만났던 것이에요."
나는 그녀의 말투를 따라 하면서 짐을 내려놓았다.
생각해 보니까 여기가 방금 그 애 방이면, 이름 정도는 있을 것 같은데.
"어, 진짜 있네."
책장에 꽂혀 있던 책에 이름이 적혀있었다.
3학년 진세랑?
"아, 얘가 세랑인가보네?"
- ㅇㅎ
- 그채누?
- 아까 다슬기가 말하던데
- 고3인데 세상이 망했네
- 저런...
- 미쳐버릴만 하네
- 아ㅋㅋ
그건 돌아버려도 인정이지.
그렇다고는 해도 그녀가 하와와거리는 건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어으,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다. 다들 방송 보느라 고생하셨어요. 내일 봐요."
- ㅇㅂㅇ
- 오뱅알
- 고생하셨어요
- 아 아쉽다
- 근데 이제 쉬긴해야지ㅋㅋ
- 머임 시간 어디감ㅋㅋㅋ
- 시간 약탈 당했네
- ㅇㅂㅇㅇㅂㅇ
- 시간 약탈자 하얀별ㄷㄷ
방송을 종료하고 식량으로 배급된 감자를 집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이거 음식 먹을 때도 통증 해제 때문인지 느낌이 다르네.
"아, 그럼 이제 매운 것도 먹으면 맵겠네."
평범한 음식도 이렇게 느낌이 다르면, 통각과 관련이 있다는 매운맛은 제대로 차이가 나겠는데?
'뭐, 지금 상황을 보면 그런 식으로 식도락을 즐길 상황은 아닌 것 같지만.'
어떻게든 생존하려는 쪽으로 발달한 여기 상황에서 그런 걸 바랄 정도로 양심이 없지는 않았다.
['영원히사랑하는소녀'님이 100시간을 후원합니다.]
- ■■이를 잘 부탁해
그때 갑자기 눈앞에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이거 설마 후원받은 건가?
"이 의미심장한 말은 또 뭐야?"
그냥 잘 부탁한다고 했을 수도 있겠지만, 앞에 검열된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누구를 잘 부탁한다고 한 거지?
나는 의문을 완전히 끝마치지 못한 채로 다음 후원을 확인했다.
['티크크티'님이 100시간을 후원합니다.]
- 하얀별을 ■아서 이■■!
엄청난 검열이었다.
저게 무슨 뜻인지 전혀 예상이 가지 않았다.
'뭔가 검열이 빡시게 되는 모양인데.'
['반볶음탕'님이 200시간을 후원합니다.]
- ■■■■해서도 잘 보고 있어요!
이번에는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잘 보고 있다는 걸 보면 나를 볼 수 있는 플랫폼 같은 것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왠지 닉네임 같은 느낌이 드네.'
하긴 그런 플랫폼이 존재한다면, 그곳의 닉네임을 설정할 수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성좌가 신 같은 느낌인 줄 알았는데 이건 왠지 시청자 같은 느낌이네.
"후원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전해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뿐이었다.
'성좌라....'
아무리 생각해도 방송을 하고 후원을 받는 느낌이랑 비슷했다.
지금은 일단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되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